

2018년의 시작은 주부모드. 남펴니가 수험생이라 시험 전 식사 및 자잘한 집안일은 내가 주로 했던 듯...

사진만 봐도 짜증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ER 콜 화면. 3년차 소화기 때 36시간동안 18명 콜 받았던 대기록 이후 그 기록을 깨는 일은 없었지만 굳이 사진을 남겨둔 걸 보니 뭔가 빡쳐서 남겼던 사진인 듯..^^ 4년차 되면서 밤 당직 안 서고 응급실 콜 거의 없는 것은 정말 최고의 행복이었다. 역시 사람은 매일 출/퇴근하고 집에서 자야된다. 잠자리가 자꾸 바뀌면(=당직) 성격이 더러워지고 노화가 촉진된다.

신장내과 때 PA 선생님 퇴사 환송회 겸 신년회로 갔던 워커힐. 원래 저질체력이긴 했지만 네프로 턴 때는 평생역대급으로 기억날 만큼 몸이 안 좋았던 시기였다. 겨울휴가 다녀온 직후부터 2월까지였으니 거의 두 달간 최악 OF 최악. 솔직히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무슨 정신으로 출근하고 회진 돌고 당직까지 섰는지 미스테리. 어릴 때도 안 걸려본 중이염이 심하게 오면서 단 하루만에 귀에 물이 차서 안 들리는 사태까지 갔었다. 나중에 진료 보고 알았지만 평소에 목욕하고 귀 닦는 습관, 수시로 귀 만지던 습관 탓에 만성적으로 중이염이 있었는데, 휴가때 있었던 감기기운이 확 심해지면서 (여행이랍시고 돌아다니고, 비행기 타고 이랬던 것도 연관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음) 급성이 overlap 되었던 게 아닌가...추측 중. 급성기를 넘긴 뒤에는 (주관적인) 청력에 문제는 없었지만, 2-3주간 외래 진료 후 고막손상이 진행 될 수 있어 수술해야 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인생에 회의가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가장 거지 같았던 건 몸이 이 지경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아픈 티가 나도 누구도 쉬라고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잘못 살았나 싶다가도 투석 돌리다 갑자기 넘어가는 환자들 속에 섞여있으면 난 경환이었던 게지 HAHAHA -_- 사실 내가 쉬면 누군가 이 일을 떠맡아야하는데 대학병원 시스템이 이미 맥시멈으로 돌아가고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어디선가 대체 인력이 나타날 수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지금 생각하면 좀 죄송하긴 하지만 정말 죽을 것 같아서 교수님이고 펠로우 선생님이고 간호사 선생님들 앞에서 있는 대로 아픈 티를 일부러 더 내고 다녔다. 주머니에는 항상 타이레놀. 그나마 투석실에서는 좀 도와주셨던 듯. 너무 거지 같았지만 사진은 아름답게 남겨놔야지....

중이염 고비 넘겼더니 며칠 뒤에는 계속 오한이 있어 쎄한 느낌에 셀프로 검사했는데 인플루엔자 확정. 교수님도 이때 인플루엔자셨는데 본인은 A형이라고 나한테 옮은 건 아니네 하하하 이러시는데 나도 모르게 개정색(-_-) 하고, 교수님도 순간 실수했다고 느끼셨는지 웃다가 갑자기 딴 데 보심. 하지만 쉬라는 말은 없었다. (교수님도 못 쉬니 -_- 병가가 권고일 뿐 강제가 아니라서 진짜 거지 같았음) 마스크 끼고 온 몸 싸매고 타미플루 먹으면서 일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냥 병가 낼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버틴 내 자신을 칭찬해야할지 한심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이 난리통을 거치고 결국 3년차가 끝났다.

그래도 베스트 전공의로 뽑아주심. 나름 3년내내 베스트 전공의....(이유는 알수 없지만)

살 만 해지니 연극도 보러 가고.

4년차 레벨업. 난장판 당직실 치우는 중.

거진 17년만에 PSVT가 재발해준 덕에 입원. 모교에 환자로 오다니....^^ RFCA는 잘 되서 2박 3일만에 퇴원. 이 때 주 80시간의 폐해(라고 생각하고 싶다)를 온 몸으로 겪었다. 입원기간 내내 주치의가 회진 한 번을 안 오시더라고...스테이션 가서 소리 지를 뻔. 이 글을 볼 리는 없겠지만 그 때 내 주치의했던 너 반성해라 진짜... 친절한 것까지는 안 바라더래도 환자가 의사니까 주치의 바쁜 거 다 이해해서 회진 안 오는 것도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고객의소리 남기려다 참았다. 혹시 랜덤으로 이 글을 보는 전공의가 있다면 주치의는 하루 한 번은 회진 돌면서 환자 살아있는지는 좀 들여다봐라. 연초에 몸이 너덜너덜 진창이 되니 3월말까지 꼰대 분위기 물씬 풍기는 부정적 인간으로 살게 되었음.

4월 되니 4년차랍시고 야심차게 학회도 다녀오고. 웬만한 학회는 코엑스처럼 교통 좋은 곳에서 하면 참 좋을 텐데 주요 학회는 왜 죄다 홍은동 같은 오지에서 하는지 괴롭다. 학회 갈 때마다 느끼는 건 공부해야겠다는 의지만 불끈했다가 집에 가면서 바로 사라지고...



춘계학회 @ 경주. 동기들과 4월의 경주를 다녀오다.

1-3년차에 비해 말도 안 될 정도로 여유로워져서 당직실에서 이런 셀카를 다 찍고...본4, 전공의 4년차가 인생의 황금기라더니 틀린 말은 아닌 듯. 병치레만 없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환자로 지낸 기간만 2달이었던 게 아쉽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입원. 중이염으로 꼬박 1주 입원했다. 간단한 수술이지만 두경부 수술인데다 전신마취로 항생제를 IV로 하루 2번씩 맞아대니 무조건 1주 입원. 수술 후 딱히 통증도 없어 큰 불편은 없었지만 일주일간 머리를 못 감으니 환장할 지경. 퇴원하고는 반 고흐 마냥 귀에 붕대 감고 1달 정도 지냈다. 물론 그러고 출근하고 회진 돌았고...교수님은 병가 내야되는 거 아니냐면서 막상 계속 일 시키심. 하^^ ( 뒤끝도 길어지고...)



입원 기간 중 촬영구경. 일할 때는 못 봐도 아프니까(?) 이런 것도 보는구나...

볼쇼이 버전 <백조의 호수>. 나홀로 관람이었지만 오길 잘했다. 귀에 붕대감고 있을 때라 갈까말까 했는데 가기 잘 한 것....인턴 때부터 거의 4년간 감성은 몽땅 메말라 없어진 줄 알았는데, 이런 걸 보니 다시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느낌. 역시 사람은 좋은 걸 보고 듣고 지내야돼.

동기언니 소개로 광풍처럼 불어닥쳤던 잼라이브. 4-6월은 점심시간마다 당직실에 모여 퀴즈하고 난리. 생각해보면 이렇게 모여서 퀴즈를 푸는 것도 시니어연차니까 가능했던 것. 서로의 빈약한 상식에 감탄하며 거의 매번 탈락이었지만 운 좋게 통과해서 상금 받은 기념으로 스크린샷...

6월 암학회 @ 롯데호텔. 이틀간 명동 탐방했었고...

날씨가 좋아서 롯데타워도 가 보고. 동기가 한 번은 가볼만하다고 강력 추천해서 가봤는데 말 그대로 한 번은 가볼 만한 곳이다. (일단 비싸고, 확 트인 뷰가 아니라서...) 나름 여기저기 여행 다니면서 보았던 멋지다는 야경은 웬만큼 봤다면 그래도 (남산에서 보는) 서울 야경이 최고인 듯.

미세먼지로 마스크를 달고 살았지만 이런 날도 있었고

정말 올해 여름은 역대급이었던 것 같다. 체감온도 43도가 말이 되냐...

그 와중에 엄마랑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도 보고.

늦은 여름 휴가로 북해도. 1주일만 늦어도 태풍+지진으로 갇힐 뻔 했는데 여러 모로 운 좋았다.

류이치 사카모토 展 @ piknic. 정리하고 보니 올해 나름 문화생활 활발했었다 싶다. 나이 들면 책 많이 못 읽는다고 어릴 때 많이 읽으라는 말이 단순히 시간도 없고, 시력도 안 좋아져서일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 나이가 되어보니 이제 알 것 같다. 직장에서의 위치, 나이 등등으로 도달한 현재는 하루하루가 퀘스트 마냥 해치워나가는 시간들로 점철되는 느낌이랄까. 뭔가 생각할 게 많고 뭔가를 하면서도 다음을 자꾸 생각하는 상황이 되니 업무 외적인 것- 특히 독서-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이제는 어렵다. 책에 집중하는 것조차 이제는 노력을 해야 얻어지는 것들이란 걸 깨닫고 쪼-금 우울하기도 했지만, 공연이나 전시가 이런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것 같다.


남편 학회가 주말에 낀 덕에 갑작스럽게 부산도 다녀오고

학회 테크로 역시 미얀마도 얼떨결(?)에 다녀오고

급 가을이 되어버림. 살면서 가장 시간이 빨리 간 한 해.

올해 가장 잘 한 것중 하나가 요가를 비교적 꾸준히 했던 것. 이사로 더 다닐 수 없어 아쉬운 맘에 마지막 날 기념사진이라고 남기고자 남은 단 한 컷. 주 2회 꾸준히 했더니 한 달이 지나니 몸도 가볍고 뭔가 생기가 도는 느낌이랄까. 수술 등으로 더 일찍 시작하지 못 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올해의 마지막 미션 이사!! 짐 다 빼고 아쉬운 맘에 빈 집에서 한 장. 이 집에서 쭈그리 주치의 생활을 잘 버텼다. 큰 정리는 끝나고 드디어 인터넷 연결.
1) 올해는 유달리 환자로 지낸 날이 많았던 해였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인턴 때나 1-3년차 때 크게 안 아프고 잘 버틴 게 새삼 다행이다 싶을 정도. 올해 몰아서 아프려고 몇 년간 그렇게 멀쩡했나 싶을 정도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장기간 환자 모드로 겔겔거리다 보니 오래 아프면 우울증이 왜 오는지 이해도 가고, 만성환자들의 진상짓이 한편으로는 이해도 가서 반성도 되고 짠하기도 하고....마음이 복잡한 시간들이었다. 환자들에게 더 잘 해야겠다고 느낀 나름 유익한 시간들이었다.
2) 운동!! 30대 중반으로 접어들고 보니, 취미로 운동해야지가 아니라 건강하게 잘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하는 것. 3월에 받은 RFCA가 잘 된 덕인지 살이 6kg 이상 쪘는데, 먹는 양이 줄어도 살은 안 빠지는 참사가...체중계를 보면 만감이 교차하는 요즈음의 나. 집순이에 운동혐오자, 근력이라고는 1도 없는 주제에 뻔뻔한 얼굴로 환자에게 왜 운동 안 하시냐며 가증스럽게 굴었던 지난 날들을 반성한다. 원래 다니던 요가가 정말 좋았는데 이사와서 더 이상 다닐 수 없어 아쉽다. 유연성+근력 향상이 절실한 몸이라 가능한 2월이 되기 전 필라테스를 등록할 예정이다. 180도..는 무리고 150도 다리찢기를 해보자.
3) 아직 내 앞가림도 버겁지만 이제는 슬슬 엄마가 될 준비를 해야하는 시기인 듯 하다. 부모가 될 만큼 성숙한 사람이 될려면 아직도 멀었지만 별 다른 이유 없이 아이를 갖지 않는 건 어쩌면 남편 말 맞다나 영원히 아이로 살고 싶은 마음일지도.
4) 가을턴신분이라 공식적으로는 전문의시험이 동기들보다 1년 늦은 내후년이다. 8월이 지나면 공식적으로는 퇴사가 되어서 소속도 없어지게 된다. 어쨌거나 내년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니, 준비 잘 해서 좋은 결과 받아낼 수 있기를.
5) 마냥 재미있고 신나기만 하던 대학교 1-2년때를 지나고 나서는 뭔가 인생이 너무 평탄하고 심심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무난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게 굉장한 축복이었다는 걸 새삼 느낀다. 병원에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무수한 순간들을 보면서 건강하게 일상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굉장한 행운인지를 직접 보니 더욱 그렇다. 나와 가족, 내가 아는 모든 이들, 그리고 혹시 이 글을 읽을 당신에게도 무탈하고 건강한 새해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