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nger/'17 Sud de France2017. 12. 9. 21:33

여행의 마지막 날. 오늘은 별 다른 일정없이 공항으로 간다. 테라스에서 보이는 풍경이 새삼 아쉽게 다가오는 걸 보니 떠나는 날이 맞나보다.

 

 

반짝이는 지중해를 눈에 한 번 더 담아보고,


 

니스 공항으로 갑니다.

 

 

가는 길에 정말 놀랐던 게 도로 곳곳에서 저런 퍼포먼스하면서 돈을 받는다. 아침 9시 정도의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참. 신호대기에 걸려있는 와중에 차창 유리를 닦아주면서 돈 달라는 사람도 있음. 남펴니가 정색하면서 No라고 외치자 그제서야 멀어짐. 관광객이 어지간히 많긴 한가보다. 그리고 그 관광객들 상대로 돈 벌려는 사람도 참 많다는 생각에 한국은 양반인가 싶기도 하고.

 

반납 전 주유를 하고.

 

차를 반납하고 아쉬운 맘에 인사를 하고, 수속하고, 대기하면서 아침을 해결하러 들어간 카페.

핑크색의 동그란 표지가 예뻐서 안 찍을 수 없었다. 니스 공항에서 끼니를 해결할 만한 곳은 여기와 다른 카페 총 2곳이 전부. 인천공항이 참 좋긴 좋다.

 

 

우리 대각선에 앉아있던 가족. 훈훈한 외모의 부부와 세 딸. 딸들이 다 예뻤는데, 막내가 정말 귀요미. 한 4-5살쯤 되었으려나? 신나는 음악 나오니까 춤추고 난리였는데 너무 귀여워서 우리 뿐만 아니라 옆 테이블에서 다 엄마미소하면서 구경. 늘 있는 일인지 두 언니는 신경도 안 쓰고 자기일 하느라 바빴다.  


 

동생이 뭐라든 숙제하느라 바빠보이는 언니 2명. 이런 게 현실자매인가 ㅋ_ㅋ

 

 

 

면세점이 있는 곳은 깔끔하게 잘 되있다. 밖이 어수선하고 조금 지저분했던 걸 생각하면 약간 인천공항 느낌이 나기도.  곳곳에 틈이 있는지 공항 안에서 새가 자유롭게 날아다녀 깜짝 놀랐다.

 

 

출국 때와 달라 귀국시에는 뮌헨 공항이 아닌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경유했다. 이 날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난리가 났음. 특히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이용객이 많았는데, 독일에 도착했을 때가 이미 이륙시간이라 입국장에서 난리도 아니었다. 우리도 시간이 임박해서 서둘렀는데, 다행히 약간의 여유가 있었음. 그 와중에 남편니가 소세지 파는 곳을 발견해서 정신 없는 와중에 독일 소세지 구매까지 성공.

 

 

나이스한 자리 배치. 안 그래도 여유 있는 좌석인데 제일 앞이라 다리 정말 원없이 뻗고 잠.

 

 

 

 

한국도착 기념샷. 이제 집으로 갑니다.

6박 8일의 멋진 일정이었다. 생각보다 장거리 이동에 더운 날씨에 나름 고생도 했지만, 위시리스트 중 하나였던 라벤더로드를 제철에 둘러볼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언젠가 또 기회가 되면 올 수 있겠지. 글로나마 이번 여행에서 운전하느라 고생한 남펴니, 그리고 구글맵께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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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 라벤더 로드는 커플, 특히 (체력이 되는) 노부부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생각보다 동선도 길고, 여행의 포인트가 잔잔한 풍경 감상이라 가족여행, 특히 아이가 있는 경우는 그닥 권장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건덕지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여행의 매 순간이나 끝없이 한가롭게 펼쳐진 풍경, 아기자기한 마을 혹은 3-4시간을 달려야만 볼 수 있는 광활한 대자연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이들에게 잘 맞는 여행이다. 우리가 간 시즌이 한국에서 본격 휴가시즌을 살짝 비껴간 탓도 있겠지만, 동양인 비율이 낮고(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좋았지만) 인종차별도 꽤 있는 편이고, 한식을 포함해서 아시안푸드를 접하기도 어렵거니와 프랑스 특유의 문화랄까,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에 익숙하다면 뭣 모르고 갔다가는 속 터질 일 투성이다. 또 도로가 신호등이 잘 되어있지 않고, 왕복 1차선이 되는 등 운전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니기에, 운전에 여간 자신이 있는 게 아니라면 차라리 패키지 투어를 추천하는 바이다. 특히 여름에 갔을 때!!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절대로 볼 수가 없다. 스타벅스 등의 카페 체인점은 구경조차 하기 힘든 곳. 여름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달고 사는 나로서는 생각치도 못한 변수라 여행 때 가장 괴로웠던 점 중 하나였음.

 

 

 

 

Posted by kirindari
Stranger/'17 Sud de France2017. 8. 15. 21:47

 

어느 덧 여행도 중반에 접어들어 나흘째 아침이 되었다. 오늘은 방문지가 많은 날. 남프랑스 여행을 결심하게 만들었던 세낭크 수도원을 시작으로 근처의 고르드마을, 그리고 아를을 거쳐 아비뇽으로 가는 날이다. 세낭크 수도원은 고르드 마을 산악지대에 있는 수도원이다. 수도원 사진만 봤을 때는 막상 그렇게 깊은 산 속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은 후 떠오른 화면의 이미지를 통해 이 곳이 꽤나 깊숙한 산 속에 위치해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참을 달려 산 꼭대기에 이르렀을 즈음 수도원의 전경이 보일 법해서 차창 밖을 내다보았지만 막상 보이는 건 숲 뿐이었고, 그저 거리가 가까워졌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의 날씨운은 꽤나 좋은 편이었다. 오늘도 어김 없이 화창한 푸른 하늘. 수도원으로 가는 길 한 켠으로 고르드 마을이 보인다.  남프랑스를 다니면서 수시로 마주쳤던, 어느 순간 일방통행으로 바뀌는 도로, 잘 포장되지 않은 길이 이 곳이 아주 오래된 곳이고, 또 그 때의 모습과 크게 변한 것이 없었음을 알 수 있었다. 가는 길에 중간중간 마을이 있었고, 왕복 1차선을 처음 겪어보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로 바로 옆에 그 흔한 보호대 없이 있던 아찔한 낭떠러지의 풍경은 신선하고 아찔한(?) 경험이었다. 맞은 편에 차가 오면 알아서 정차하고 양보하면서 갈 수 밖에 없는 곳이다. 으레 먼저 양보를 하는 것이 이 곳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모습이다. 한국에서라면 뭐랄까. 이미 왕복 2차선 이상이 나고도 남았겠지.  21세기에 해보는 옛날 길 체험이랄까. 그나마 차가 있어 이렇게라도 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무리해서 길을 내지 않고, 예전 모습을 유지하고, 지켜나가려는 태도가 부럽기도 하다. 

참고로 남프랑스는 운전이 좀 거친 편이다. 함부로 끼어들거나 앞질러 간다던가 하는, 운전자간의 매너에서 느껴지는 기분이 아니라 그 좁고 투박한 길을 달리는 데 있어 거침이 없는 그런 느낌. 


어쨌거나 구불구불하고 좁은 길을 지나 오전 11시가 거진 다 되어서 세낭크 수도원에 도착했다. 여행 첫 날 생 폴드방스를 개장 손님 마냥 들어갔던 걸 감안하면 나름의 피로 누적으로 점점 기상시간이 늦어졌던 것 같다. 나름 부지런히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수도원이 생각보다 오지(?)에 있던 탓일까,  늦은 시간도 아니었고, 주말도 아니었던 걸 감안해도 수도원 앞에 거의 만차가 되다시피한 주차장을 보니 늦장을 부렸나 싶어 괜시리 뻘쭘하다. 그래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차를 세우고, 세낭크 수도원으로 향합니다. 

 

 

수도원 가는 길 초입에 보이는 드론 금지 안내판. 이런 오지(?)까지 드론을 들고 와서 날린단 말인가, 싶어 헉했지만, 막상 가서 주변을 둘러보니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전경을 찍고 싶은 아름다운 풍경이라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수도원 전체를 보여주는 그림과, 입장시 드레스코드를 알려주는 귀여운 안내판.

 

 

주차장을 지나 오른쪽을 보면 담 너머로 보이는 고즈넉한 풍경. 보랏빛 라벤더가 줄지어 피어진 뒤로 천년 가까이 이 곳을 지켜온 세낭크 수도원이 보인다. 약간 노란 빛이 돌게 나와서 아쉬운 사진.

 

 

 

 

이런 풍경. 두근두근.

 

수도원으로 향하는 오솔길 좌측으로도 길게 라벤더 밭이 있다. 방문객들이 들어가서 사진 찍기 비교적 용이한 곳. 라벤더 자체가 꽃송이가 크지 않고, 아주 만개한 시즌은 아니었던 터라 꽃밭이 기대만큼 보랏빛으로 덮이지는 않았지만, 바람에 섞여오는 라벤더 향기를 맡으니 나른해지는 느낌이었다.

라벤더 밭에 정신이 홀려 걷다 보니

 

드디어 세낭크 수도원 앞에 도착했다. 수도원이라는 걸 몰랐다면 언뜻 오래되고 소박한 고성 같기도 하고, 아니면 큰 농가 같기도 하고. 장미의 이름에서 본 음침한 수도원의 인상이 거진 20년 가까이 산 속의 중세 수도원의 이미지를 지배해왔나보다. 그래도 글에서만 받은 이미지라 참 다행이다. 음침한 실물부터 본 게 아니라서. 눈부신 햇살 아래 보이는 투박하게 서 있는 세낭크 수도원은 건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빳빳한 풀을 먹인 옷을 입은 수녀님들과 신부님들이 어디에선가 라벤더를 쓰다듬고 있을 것만 같다. 음산한 느낌이라고는 정말 1도 없는, 깨끗한 느낌의 소박한 수도원. 

 

조금 더 가까이서 보면 이렇지요.

 

 

왔으니 인증샷.

 

안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한다.  시간 절약차원(?) 에서 내부 관람을 따로 하지는 않았고, 수도원 내 일부까지는 자유롭게 입장이 가능해서 들어가서 안을 잠시 둘러보았다. 2층에는 에어컨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계단을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 돌로 된 건물 특유의 서늘한 한기가 감돈다. 안내판을 보니 무려 1148년에 세워진 수도원이다. 천 년 가까운 긴 세월동안 지켜진 수도원에 경외감이 드는 순간. 아마 이런 깊은 산 속에 있어서 가능했겠지, 라는 생각도 들고. 서늘한 실내에서 창 밖을 내다보며 잠시 휴식을 취하다 1층의 기념품 샵을 들렀다. 상점이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이것 저것 보는 재미가 있었다.  샵에서 라벤더 향이 나는 주머니, 라벤더 비누, 2018년도 달력, 냉장고 자석 등등을 구입했다. 사실 라벤더 관련해서 살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었는데, 수도원 가면 뭔가 더 있겠거니 싶어서 여기 와서 몰아서 샀는데 막상 가서 보니, 그리고 이후 다른 기념품 샵을 가보니 크게 차이는 없었다. -_-;;

 

 

 

잘 보고 갑니다.  이별을 아쉬워하는 듯한 남펴니의 뒷 모습으로 세낭크 수도원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고.

 

 

 

금강산도 식후경, 고르드마을로 향했다.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구글맵을 여기저기 찾다 근처의 레스토랑 입성.



익힌 야채와 올리브, 치즈가루를 섞어 면을 말아 입에 넣으니 고소하다. 시원한 콜라를 한 모금 들이키고 주변을 보니 온통 관광객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고르드 마을로 향한다. 무스티에 생트 마리만큼이나 예쁘다는 곳.  무려 고대 로마시대부터 만들어진 마을이라고 한다. 막상 가서 보니 그 동안 보아왔던 유럽 예쁜 마을 사진의 느낌은 생폴드방스의 아기자기하고 예쁜 이미지가 대부분인 듯하다. 고르드 마을은 생폴드방스나 무스티에 생트 마리와는 또 다른, 세낭크 수도원 같은 이미지이다. 산악지대라 그런지 투박하고, 깨끗하고, 고즈넉한 예쁨이다. 아기자기한 동화 느낌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확실히, 더 오래된 곳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아마도 마을 내에서 가장 큰 대로변일 것으로 추정되는 곳.

 

 

 

여기에서 웨딩 촬영이라니. 중국인 커플로 보였다. 햇빛 쨍쨍한 날씨에 더워보이기도 하고. 예쁘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드레스가 뭔가 아쉬웠다. 아무 장식 없는 흰 원피스만 입고 찍어도 예쁠 것 같았다는, 지나가는 행인의 오지랖 -_-;

 

 

 

 

지대가 높은 지역이다보니, 마을 외곽으로 가면 산등성이 아래로 넓게 펼쳐지는 전경이 보인다. 아기자기 귀엽게 초록의 숲과 진한 갈색의 지붕과 옅은 황토빛 벽을 가진 건물들이 제각각의 다른 높이와 넓이로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이름을 알 수 없지만 파스텔빛과 원색의 꽃나무들이 중간중간 섞여 밋밋하지 않은 그림을 만들어준다. 눈에 튀거나 거슬리는 풍경 없이 평화롭다. 남프랑스 곳곳,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많으니 예술가도, 작품이 많이 나올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30도 초반대의 온도, 습도가 높지는 않지만 공기가 깨끗하고 햇빛이 워낙 강렬하다보니 10분만 걸어도 머리가 뜨끈해지는 더위에 일사병 위기가 온다.  더위를 잘 타는 남편은 조금만 걸어도 쉽게 지치는 눈치.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양산이나 챙 넓은 모자를 챙겼어야 싶다. 유럽의 여름 햇빛이 무섭다는 걸 이번 여행에서 처절히 배운다. 무스티에 생트마리에 이어 2차 위기다 싶어 시원한 곳에 가서 음료나 마시자며 다시 마을 쪽으로 이동했다. 

 

 

 

 

더우니 다시 분수가로. 그늘만 가도 서늘해질 정도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역시나 아이스커피는 없고 어김없이 젤라또. 이번 여행에서 젤라또는 정말 원 없이 먹고 간다. 레몬맛의 상큼함이 입안 가득 퍼지면서 더위를 잠시 잊어본다. 잠시 쉰 뒤 다음 방문지인 아를을 향해 고르드 마을을 나섰다. 잘 보고 갑니다. 오늘의 최종 방문지이자 숙소는 아비뇽. 아비뇽을 가기 전 아를을 먼저 들르기로 했다. 

 

 

 

아를에서의 첫 목적지는 고흐가 머물던 정신병원. 가는 길에 여행책자를 찾아보니 개방시간이 오후 6시까지로 되어있었는데 아를에 도착해서 차를 세우고 보니 5시 45분. (-_-;;;) 여기까지 왔는데 못 보나 싶어 아쉬운 마음에 구글맵을 키고 부랴부랴 걸어서 갔는데, 다행히도 공영 주차장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있었다. 거리가 멀지는 않았지만 골목 사이사이로 가야 나오는, 다소 외진 곳에 있었다. (정신병원이니 당연한 건지도...) 다급하게 걸어 6시 전 도착할 수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문을 닫는다던지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마 써머타임 덕에 오픈시간이 연장된 게 아니었을까라고 추측. 안내판이 보이자 그동안 교과서며 온갖 그림에서 보던 그 곳에 정말로, 드디어 가는구나 싶어서 두근반 세근반.

 

 

 

Welcome to Espace Van Gogh !

들어가자마자 왼쪽에 보이던 기념품샵.

 

조금씩 기울어지는 여름 햇살 아래 사람들은 여유롭게 아뜰리에를 둘러보고 있었다. 막상 가서 보니 여기가 정신병원이었던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화사하고 예쁜 정원의 느낌.

 

실제로는 큰 나무들에 그림자가 져서 이 정도로 화사하지 않다. 약간 보정한 사진들임.

 

 

실제 가보면 이 정도에서 더 어두운 느낌.

 

 

문이랑 키가 똑같네.

 

 

 

2층에 올라가서 보면 이런 느낌. 1층 정원에서만 있다보면 그저 예쁜 4각회랑의 정원이라는 느낌이었는데 건물 내부로 들어가서 둘러보니 아, 여기 병원 맞구나 싶다. 시내 같지만 은근 구석지에 위치해있는 이 곳이 이해도 되고. 물론 그 때는 더 외진 느낌이었겠지, 라고 생각해본다. 고흐의 그림에서도 병원이라는 느낌보다 정말 예쁜 아기자기 아뜰리에 느낌이었는데, 직업적으로 보다보니 은근 폐쇄적 구조라는 게 느껴진다.  특히나 이 정원은 건물 내 어디에서든 감시가 가능하다는 사실. 그래도 예쁜 건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예쁜 병원이라면 입원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지금은 더 이상 병원으로 이용되지 않고, 아뜰리에, 기념품 샵, 그리고 각종 강의를 하는 곳으로 쓰이고 있다.

 

고흐의 작품인 [The Courtyard of The Hospital, 병원 안뜰 ]. 그림만 봤을 때도 병원이 저렇게 예쁜가 했는데, 사실이었고.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찍은 사진들을 다시 보니 그림과 유사한 구도로 찍어둔 게 있어 비교차 함께 올려봄. 회랑 한 켠이 무성한 잎들로 가려진 것을 보니, 고흐가 그림을 그렸던 시기는 이렇게 초록이 무성하던 시기는 아니었나보다. 

 

 

 

좌측 저 흰 박스는 옛날 방식으로 사진을 찍어주던 아저씨의 신기한 카메라.

 

 

 

 

 

병원을 봤으니 고흐의 카페를 보러 갑시다. 아뜰리에 나오자마자 보이는 귀여운 핑크 파라솔의 카페. 이런 핑크색 예쁘다.

 

걸어서 10분 정도 갔더니 각종 레스토랑과 카페가 한 가득.

관광객이 절반인 듯.

 

 

여기가 바로 그 카페입니다.

[Café Terrace, Place du Forum, Arles ] 아를르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이 느낌을 기대했으나

 

앞에 카페만큼이나 크고 노란 파라솔이 앞에 하나 더 쳐져있고, 광장 가득한 사람 때문에 그림 같은 분위기는 없다. 실제로는 어수선하니 시장판 같은 분위기.  원래는 저 노란 카페의 벽이 조명 탓에 노랗게 보였던 것인데, 밤에만 보이는 풍경이었다고 한다. 저 그림을 기억하고, 또 기대하고 오는 사람들을 위해 카페 외벽을 아예 노랗게 칠해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미리 찾아본 정보들에서 이 카페의 음식 및 음료수가 정말 별로라는 평이 자자하여 (하나쯤 좋은 평가가 있을 법도 한데), 외관 구경만 하고 패스. 뭔가 그림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못 느껴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고흐 카페를 실제로 본 것으로 만족. 

앞에 수 많은 레스토랑이 있었으나 딱히 끌리는 집이 없어 광장을 몇 바퀴나 빙글빙글 돌다가 생선요리 메인으로 파는 곳이 있어서 착석. 연여 요리가 있어서 시켰다. 남펴니는 스테이크 주문.

 

음.....맛은 그냥 그랬음 -_- 여태 식당은 실패한 적이 없었는데 여긴 좀 많이 아쉬웠다. 그래도 배고픈 관광객이다 보니 언제나 그래왔든 남김 없이 먹고 다시 아를 투어를 시작.

 

 

여행 책자에서 강추하던 젤라또 샵. 큰 맘 먹고 책자에 나온 곳 찾아갔는데 문 닫음 ㅠㅠ 그래도 귀염귀염한 가게가 예뻐서 찍어봤다. 색깔 맞춘 커튼조차 귀여움.

 

 

 

반 고흐가 환자로 머물렀던 곳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를에 대한 지식이 없어 시골깡촌의 이미지만 갖고 방문한 아를이었지만, 막상 가서 둘러본 아를은 예술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도시였다. 구석구석 전시 안내가 가득했고, 나름 큰 규모의 사진 전 안내가 구석구석 붙어있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때마침 우리가 방문했던 시기가 유럽 최대의 사진축제인 아를 국제사진전이 열리는 때였던 것. 

관계자들 뒷풀이였던 듯. 힙 터지는 풍경이다. 갤러리 앞에 오크통 혹은 작은 스탠딩 테이블이 군데 군데 있고, 와인과 간단한 핑거푸드들이 있고, 명찰을 목에 걸고 몰려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생각보니 관계자들이나 참석자들이었던 것 같다. 뭣도 모르고 우리는 요즘 무슨 학회 시즌인가보다 했었지. 나중에 알고 보니 사진 전공자라면 꼭 한 번 오고 싶어하는 축제 중 하나라고 한다. 3개월에 걸쳐 다양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갤러리 밖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전시가 진행된다고 한다.

 

 

 

 

 

코닥 & 후지필름 간판. 보기 힘든 풍경에 반가워서 사진.

 

 

 

 

세계 유산에 등록되었다는 2000년이 넘은 고대로마의 원형 경기장, 보존상태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그 원형 경기장이 아를에 있을 줄이야. 이래서 뭐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생각해보면 아를에 오기 전 들렀던 고르드 마을도 그렇고, 남프랑스 곳곳에 고대 로마의 흔적이 가득하다. 유럽 여행을 즐기는 팁 중 하나는 역사에 대한 지식인 것 같다. 이 곳도 무려 기원 전에 지어진 건물이다. 지금도 아를 시내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고, 지금은 축제 등에 이용된다고 한다. 저녁 7시 가까운 시간이라 문은 이미 닫혀 있었고, 우리는 앞에서 감탄만 하며 보고 옴. 처음으로 단체 한국인 관광객을 보기도 한 날이다.

 

 

개장시간을 놓친 관광객 애절모드.

 

 

 

주차장 향해 가던 길에 발견한 예쁜 바람개비 샷.

 

 

 

이제는 없으면 허전한 회전목마. 잘 보고 갑니다. 아를. 이제 아비뇽으로 가요.

 

 

 

도로에 쭉쭉 뻗어있던 자작나무들. 가는 길에 중간중간 보이던 표지판에 St.Remi 가 많이 보였는데 익숙한 이름에 뭐였더라 생각해보니 고흐가 말년에 정신질환이 악화되면서 아를에서 생 레미의 요양원으로 옮겨졌다는 글을 어디서 읽은 것이 생각났다. 생 레미를 들르지는 않았지만, 보이는 풍경이나 위치를 감안해 보았을 때 아를보다도 한적한 웬지 시골 느낌일 거라는 생각이. 그 때나 지금이나 환자가 안 좋아지면 풍경 좋고 조용한 외곽의 요양원으로 가는 건 여전한 가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 새 아비뇽에 도착!

 

 

도시 구석구석 남아있는 옛 성벽에 고대 도시에 온 느낌이 물씬.

 

 

주차장 뷰. 아비뇽은 주차장이 좋지 않은 편이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주차장이 도보로 500m 거리고, 나름 가장 큰 주차장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만차였다. 꼭대기 층에 간신히 주차함. 캐리어 2개를 끌고 힘들게 숙소 체크인을 하고, 샤워하고 잠시 쉬다가 시내 구경이나 하자며 손 잡고 외출함.

 

 

볼 때마다 예쁜 회전목마들. 밤에 보니 더 예쁘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느낌. 옆에서 사이 좋게 손 잡고 걷던 노부부까지 더 예쁜 풍경.

 

 

길가를 쭉 따라 좌석들이 쫙 깔려있고, 아비뇽의 저녁을 즐기러 나온 관광객들과 시민들이 가득한 광장.

 

 

 

광장에 울려퍼지던 멋진 연주 잠시 구경해주고.

 

 

 

 

 

간만에 술 한잔 하자며 착석. 하지만 정작 논알콜 칵테일을 주문한 나. 남편은 아마 와인을 주문했었던 듯. 감성 터지는 허세샷 찍어드림. 조금은 덥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모두들 기분 좋게 와인이며 맥주를 마시며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덧 밤이 깊어가고 광장이 조금씩 조용해져간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다 같이 보여 노래 부르는 풍경. 옆에서 노점하던 아저씨의 댄스가 귀여워서 찍었다. 처음에는 테이블 끝에 TV가 켜져있길래 무슨 경기를 하나 싶어서 봤는데, TV는 그냥 켜져 있었던 것 같음 -_-;;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 부르면서 즐거워하길래 동창 모임인가보다 이러면서 구경. 좀처럼 보기 쉽지 않은 풍경에 우리처럼 구경하는 사람도 많았다. 다들 즐거워 보였고, 사진 찍고 노래하는데 참 행복해 보였다. 노래는 옛날 같이 부르던 응원가나 교가 아닐까? 이러면서 마음대로 추측해봄.

 

 

 

 

다시 멋진 연주 들으면서 숙소로 컴백. 이렇게 넷째날 밤이 저물어 갑니다.

 

 

 

 

 

 

 

Posted by kirindari
Stranger/'17 Sud de France2017. 8. 12. 20:36

 

셋째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전일 동네를 둘러보면서 느낀 바, 가까운 곳에 식사를 할 만한 데가 딱히 없는 걸 알고 전날 근처 까르푸에 가서 미리 사온 것들로 아침을 준비했다. 전자렌지인 줄 알았던 미니오븐은 사용법을 알 수 없어 모험은 접고, 냄비를 꺼내 물을 끓여 계란을 삶고, 치킨으로 추정되는 레토르트 요리를 담가서 익히고, 크로와상과 냉장고 속에 넣어둔 얇은 햄도 꺼냈다. 

 

납작 복숭아.

옆에서 보면 이름 그대로 납작하게 생겼지요. 여행 가기 전 이것저것 알아보다 여름의 유럽, 특히 프랑스에 가게 되면 납작복숭아를 반드시 먹어야한다며, 잊을 수 없다, 이거 먹으러 다시 가고 싶다 등등의 극찬이 이어지는 후기를 몇 개 우연찮게 발견했더랬다. 들으면서도 이름 웃기네 싶어 봤는데, 실물을 영접하고 나서야 flat peach가 왜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모양새. 마트에서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과 별개로는 이 쪼그만 녀석이 뭐라고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먹어보니...이 글을 보고 있을 혹시 모를 여러분 여름에 유럽가면 이거 꼭 드세요. 납작 복숭아는 사랑입니다. 쪼끄만 모양새와 달리 한 입 베어물면 입 안 가득 퍼지는 즙이 복숭아에 대한 환상을 완성시켜준다. 태어나서 처음 먹은 복숭아가 이 녀석이었다면 웬만큼 달고, 즙이 가득한 복숭아가 아니고서야는 만족하기 쉽지 않울듯. 아직 한국에서는 아직 먹기 힘들답니다. 
 
캠핑온 것 마냥 복작복작하게 아침을 차려 먹고, 숙소를 정리한 후 체크아웃을 하러 내려갔다. 전일 체크인하면서 직원을 아예 보지도 못한 터라 체크아웃을 하며 호텔 직원을 만날 생각에 묘하게 설레는 기묘한 아침. 금발에 살짝 까무잡잡하게 탄 피부가 매력적인, 키가 큰 젊은 아가씨가 직원이였다. 헤어짐을 이야기하러가면서 반갑게 인사하는 것도 처음이라 묘한 기분이었다. 어디로 가냐고 묻길래 엑상프로방스로 간다니 거기 참 좋지, 라며 즐거운 여행 되라고 인사해주심.

 

 

이른 일요일 아침이었던 탓일까. 인적이라고는 찾기 힘든 숲길에도 한참을 달리다 보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사이클 매니아들을 마주치곤 했다. 이렇게 긴 길인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왔을까. 끝 없이 이어지는 푸른 숲을 한참이나 멍하니 보다가 나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다. (남펴니 미안) 숙소로부터 출발한지 약 2시간 가량을 신나게 졸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차창 밖을 슬쩍 내다보니 잠들기 전 나무만 빽빽하게 보이던 풍경과 달리 나무 사이사이 에메랄드 빛의 호수가 언뜻언뜻 보이기 시작하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점점 나무 사이의 간격들이 벌어지면서 에메랄드 빛이 망막에 맺히는 느낌. 빨리 내려서 보고 싶다. 뷰 포인트로 짐작되는 곳을 발견하자마자 냅다 주차를 하고 달려 나갔다. 나무 사이의 그 곳에는

 

 

 

 

이런 장관이 펼쳐지지요. 여러분은 지금 생크루아 호수를 보고 계십니다.



 너무 멋있는 풍경은 이렇게 현실감이 없다.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이게 실제로 가능한 색깔인가 싶어 입을 벌리고 눈만 그저 끔뻑거리면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커다란 DSLR 을 들고 나타나신 백발의 멋진 할아부지. 멋진 풍경은 어디든 담고 싶은 마음은 다 같나보다. 우리처럼 한참을 보다가 셔터를 눌러대다를 반복한다. 

 

 

이쯤 되면 진짜 커플이 누군지 의심스러운 옷차림. 

 

 

초큼 부끄럽지만 이 멋진 배경 속에 나를 넣고 사진을 안 찍고 갈 수는 없지. 쨍쨍하다 못해 타들어갈 것 같은 햇빛 아래 에메랄드빛 호수라니. 아무리 바라봐도 믿기 힘든 빛깔이다.

 

이런 뷰라면 찍을 수 밖에 없는 파노라마. (심지어 폰카로 찍은 사진) 이 곳이 유럽 최대의 협곡이라고 한다. 그 속에 이런 에메랄드 빛깔의 호수가 숨겨져 있다니. 그런데 이렇게 큰 호수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이 곳을 보려면 쉬지 않고 꼬박 2시간을, 차로 달려와야한다. 끽해야 말 밖에 이용할 교통수단이 없던 그 시질 이 풍경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되었을까. 한참을 감탄하면서 보다가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다시 차에 올랐다.

 

 

고르동 협곡을 알리는 팻말. 국립공원이면서, 유네스코에서도 지정한 곳. 멀지 않은 곳에 주차장이 있어 차를 대었다. 

 

 

이 곳의 날씨를 짐작할 수 있는 선인장이나 알로에 같은 이국적인 식물들의 향연.  

 

꼴랑 10분 정도 내리막길을 걸었을 뿐인데, 녹아내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녹아 없어져도 호수는 보고 없어져야지. 호숫가에는 햇빛을 피할 만 곳이라고는 없어 보여 호숫가 입구에 카페를 운형하는 트럭을 발견하고, 잠시 앉아 콜라를 흡입하며 휴식을 취했다. 

 

 

 가까이서 보면 물이 이렇게나 맑다.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마냥 편하게 들어갔다 나오기는 쉽지 않은 곳이다. 근처에 사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날을 잡고 놀지 않는 이상 수영하기에는 조금 무리인 곳. 언젠가 다음에 올 기회가 있겠지 이렇게 또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에 발이라도 담가봤다. 산은 산이다. 바다의 차가움과는 다른 계곡의 선뜩한 시원함이 발 끝부터 느껴진다. 시원한 기운에 순식간에 더위가 가시는 느낌. 좋다. 너무나 큰 호수라 바다 같기도 하다. 잔잔한 파도같은 물결이 끊임없이 일렁거린다. 차가움이 익숙해지자 좀 더 용기를 내서 치마를 걷어 올려 잡고 물 속으로 들어가봤다. 허벅지까지 시원한 찰랑거림이 차오른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던 몸짱 커플.

 

식스팩을 자랑하시던 60대는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 남의 눈 신경 안 쓰고 입는다지만 어딜 가나 몸매 좋은 사람이 더 많이 벗는 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고.  -_-a

신선놀음

 

 

 

아쉬움 안고 다시 올라갑니다.  다시 와서 여유롭게 수영하며 즐길 날이 있겠지. 호숫가에서 멀어지니 다시 더워지기 시작.  다시 목 좀 축이러 갑시다.

 

 

태양을 피고 싶었던 남펴니.jyp

 

처마 밑에 옹기종기 제비집. 새들이 워낙 빨리, 또 낮게 나는데 제비인가 했는데 제비 맞는 것 같다. 너무 빨라서 사진에는 담지 못함.

 

 

남프랑스의 흔한 카페뷰. 창가 틈새로 에메랄드 빛이 찬란하다. 보정 하나 없는 있는 그대로의 색. 기대 이상의 풍경이었다. 이런 곳에 살려면 무얼해야하나. 스쳐가는 관광객 입장에서 가장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는 말, 여기 살고 싶다. 그런 말이 아깝지 않은 곳이다. 겨울에 춥고 눈이 많이 와서 갇힌다하더라도 이런 풍경을 매년 여름마다 볼 수 있다면 기꺼이 살고 싶어지는 곳. 커피를 쪽쪽 마시며 한참을 바라 본다. 

오늘의 행선지는 오전에 생크루아 호수, 고르동 협곡을 지나 엑상 프로방스. 이 풍경을 뒤로 한 채 바로 가려니 아쉽기도 하고, 어차피 여름이라 해도 긴데 네비게이션에 계속 무스티에 생트 마리가 뜨길래 들러보기로 했다. 무스티에 생트 마리 (Moustiers saint marie), 몇 년 전 대한항공의 광고에서 남프랑스편 '프랑스, 어디까지 가봤니?' 에 나오던 바로 그 마을. 그 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가는 중에, 이럴 일이니. 출발한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차를 세우게 만드는 풍경.

눈이 시릴 정도로 끝없이 펼쳐지는 보랏빛 라벤더 평원도 모자라서

 

그 앞에 노-랗게 가득 핀 해바라기들.  이 황홀한 정경을 보기 위해 우리는 12시간 가까이를 날아 이 곳에 기꺼이 왔다고, 그럴 가치가 있는 풍경일 수 밖에 없다고 몇 번이고 감탄한다. 살짝 바람이 불면 향긋한 듯 살짝 매콤한 향기가 코 끝을 스치고, 눈 앞에는 보랏빛(더 멋진 표현을 찾아내고 싶지만)의 파도가 일렁인다. 넓은 땅 그저 꽃만이 피어있는 이 단순하고, 어쩜 별 것 아닐 지도 모르는 풍경 사진 하나를 처음 본 순간 만리타국의 이방인이 몇 년 동안 이 곳을 꿈꾸고, 12시간쯤의 비행은 기꺼이 하겠다고 결심했다. 첫 눈에 반했던 것 같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보러 올 필요가 차고도 넘치는 풍경. 여행에서 겪는 자잘한 모든 고생을 감내하게 하고, 단 번에 잊게 하는 자연의 아름다움. 그 어떤 기교와 아름다움을 가진 것도 결국 자연 그대로의 풍경, 노을이나 꽃밭을 이길 수는 없다. 아무리 잘 찍으려고 해도, 잘 찍히지 않았다. 잘 찍었다고 하더라도 보정을 하더라도 지금 내가 보는 이 풍경, 이 감정, 이 공기를 담을 수는 없겠지. 몇 번이고 셔터를 이리저리 눌러대다 그냥 내려놓고 본다.  

 

 

 

 

인생샷. 지금 내 카톡 사진 프로필이다.

 

 

 

정신없이 라벤더를 보다가 문득 옆을 보니 도로 건너편 수풀 사이로 숨어있는 뷰포인트를 다시 발견. 

 

하지만 이 정경을 마냥 즐기기에는 태양빛은 너무도 뜨거웠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너무 아름다운 곳- 특히 그 곳에 자연이라면- 은 신의 정원이고, 우리는 그 곳에 허락 없이 몰래 들어간 인간이 된 것 같다고. 그래서 마냥 즐기기 어렵게 뜨거운 태양이 내리쬔다는 그런 유치한 생각. 그래서 자연의 풍경을 원 없이 즐기기 위한 좋은 시간이 그렇게 많이 안 주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더위를 비교적 덜 타는 나는 그나마 견딜만 했지만,  10분 이상 돌아다니면 정신을 차리기 쉽지 않다. 뷰포인트고 뭐고 일단 그늘로 달려가는 남펴니. 뭔가 귀여워서 찍어봤다. 산 속이라 더 그랬을지 몰라도 이 날은 정말 가장 더웠다. 정수리가 녹아내리는 느낌. 
 
 
7월 초에도 이렇게 더운데 도대체가 8월은 어떡하냐며 걱정 아닌 걱정을 햇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 돌아오고, 8월 초의 인터넷은 유럽이 폭염이라는 기사가 연신 뜬다. 프랑스는 37도, 스페인은 43도 -_-;; 여튼 각설하고, 다시 라벤더 밭 사이를 달려 우리는 무스티에 생트마리로 갑니다. 
 

 

 

차 안에서 달릴 때 보이는 풍경은 이런 느낌. 마구 사진을 찍다가도, 무슨 짓을 해도 실제만 못 하구나 싶어 시무룩해져 카메라를 내려놓다가도 다시 찍는 행위를 반복한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차창을 열어본다.  라벤더 향이 건조한 바람에 섞여 차창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다소 뜨겁지만 기분 좋은 바람이다. 

 

 

 

 

 

드디어 나타난 마을 입구.

 

 

 

마을 입구를 관통하는 계곡과 폭포. 하지만 이 사진을 찍은 시간을 기점으로 남편이 일사병으로 기절 위기가 와서 관광이고 뭐고 일단 접고 휴식을 취할 곳을 찾았다. 사실 마을 들어오기 전에도 너무 어지럽다며 힘들어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일사병이었던 것. 심지어 운전 중에 너무 어지럽다고 해서 잠깐 차 세우고 쉬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사고 없었던 게 다행이고, 운전한다고 고생한 남편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오후 2시반이 지나니 웬만한 식당들이 다 break time 에 들어가버리고 남펴니는 점점 멘탈이 나가는 상태에서 울 것 같은 기분이 들 뻔 했는데, 다행이 식사가 가능해보이는 집을 발견했다. 메뉴는 샌드위치 정도였지만 메뉴를 따질 때가 아니라 일단 달려들어가 주문 되는 걸 확인하고, 바로 착석.

메뉴는 정말 온통 샌드위치 뿐이었다. 밥순이라 스파게티든 뭐든 밥이 될 만한 걸 먹고 싶었지만 어쩌랴. 고민하다 익숙한 토핑이 많이 보이는 메뉴로 골라 주문했다. 주문한 메뉴가 나왔는데, 정말 단촐한 샌드위치. 비쥬얼도 막 화려하지 않고. 한 입 먹고 맛이 너무 소박한 느낌이라 읭? 했으나 먹으면 먹을 수록 묘한 맛이 있었다. 후루룩 다 먹고 콜라까지 마셨더니 남편도, 나도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 일사병이 이런 건가보다, 더위가 참 무섭다 싶어서 새삼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를 구제해준 샌드위치 카페 앞에서.

 

 

 

 

고생해서 왔는데, 그래도 마을 한 번 둘러봐야지.

 

 

 

 

 

다비드의 별. 마을 입구로 들어가 절벽 사이를 보면 한 가운데 별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마을의 상징처럼 유명한 별인데 찾아보니 옛날, 십자군 전쟁에 출정했던 기사가 전쟁에서 살아돌아오면 성모마리에게 별을 갖다 바치겠다고 다짐했었고, 운 좋게도 살아 돌아올 수 있어서 저 별을 달았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은가보다. 꽤나 높이 매달려 있어서 어떻게 달았는지도 새삼 궁금해지지만 너무 더워서 다른 생각은 더 나지 않고

 

 

↑이거슨 아이폰 7으로 찍은 사진

 

 

 

 

그늘만 보면 앉고 보는 남펴니.jyp

 

 

아기자기 예쁜 풍경. 그림 같은 마을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예쁜 마을이라는 말에 충분히 납득이 간다. 누군가 남프랑스를 여행간다면 꼭 가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곳이다. 하지만 너무 더웠다. 너무....태양이라면 환장한다는 이 동네 사람들도 막상 그늘만 보이면 앉는 모습. 

 

 

어김없이 젤라또.

 

 

그늘에 앉아있어도 참을 수 없는 더위. 카페 바로 옆 분수에 다들 몸을 적신다. 습기를 가장 못 견디는 나는 비교적 건조한 날씨에 그나마 괜찮았지만 이 날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하긴 했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더위도 더위지만,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 썬그라스 없이는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햇살. 이 날은 해질 녘까지도 썬그라스를 벗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분수 등에 들어갔다 나오기 시작했다. 물 한 번 뒤집어쓰면 낫지 않겠냐는 말에 축축해진다고 거절했던 남편도 결국 못 참고 머리 감기 시전. 그래도 머리 감으니까 시원하다고...


 

다들 그늘로.

 

 

마을 안도 좀 더 둘러보고, 성당도 가보고 싶었지만, 이 날씨에 이 일정은 도저히 무리라고 판단해서 마을 입구와 인근만 둘러본 뒤 발렝솔을 거쳐 엑상 프로방스로 향했다.

 

안녕 무스티에 생트마리, 다음에는 좋은 날씨에 여유롭게 볼 수 있겠지. 또 올게.

 

 

 

차창 밖 눈부신 해바라기 들판. 우리를 바라 보고 있었다면 좀 더 좋았으련만.

 

 

발렝솔로 가자.

 

 

 

그림 같은 라벤더 평원.  그리고 이 라벤더 로드의 정점은 오늘 방점을 찍었다. 발렝솔은 경유지로 지나가면서 라벤더나 볼 정도로만 생각했던 데라 Valensole을 네비게이션에 입력했더니 뭔가 알 수 없는 곳이 나왔다. 거리나 위치를 보니 맞기는 한데, 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동안 늘 그래왔듯이 마을 주차장 근처려니 싶어서 일단 출발.  

처음에는 이렇게 멋졌지.

 

 

한참 가다보니 빈 평원도 있어서 여긴 수확이 끝났나 싶었는데,

 

갈수록 오지로 안내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아스팔트가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여기는 어디인가요.

 

 

일반적인 자동차가 아닌, 트랙터가 다닐 법한 길로 가고 있었다. 우리는 분명 네비게이션을 따라 가고 있었고, 도로가 표시되어 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종착점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도무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평원 한 복판에 있었고, 때 마침 하이킹을 하던 가족이 우리를 신기한 듯이 보고 갔다. 네비게이션에 선명히 찍혀있는 발렝솔.

 

네비게이션에 찍혀있던 발렝솔은 지금 생각해보니 발렝솔 마을 한 복판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미스테리다. 트랙터가 다니는 길이 네비게이션에 찍혀있었던 것도, 그리고 프랑스에서 달릴 때마다 차체로 튀어오르는 자갈 소리에 이거 계속 가도 되나 싶은 길을 달리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 날 우리의 라벤더로드는 로맨틱한 꽃길에서 갑자기 SUV를 몰고 계곡물을 사방으로 흩뿌리며 질주하는 오프로드가 되었다. 아무 것도 없는 벌판에서 헛웃음치다가 이젠 진짜 도로로 가자며 어찌어찌 숲인지 밭인지 모를 그 곳을 나왔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지면에 차가 닿는 그 순간, 도로가 푹신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아마 이런 라벤더로드를 겪은 여행자는 또 없겠지. 한참을 웃다가 음료수라도 마시자며 까르푸를 찾았다.

 

 

알록달록 쭈쭈바. 별 생각없이 집었는데, 외양은 영락없이 불량식품 같지만 꽤나 맛있는 하드였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거 나름 인기 있는 하드바인 것 같다. 나중에 보니 애들이 이거 물고 다니는 모습 꽤 많이 봤더라고. 남프랑스에, 그것도 라벤더 보겠다고 와서 흙길을 달리고, 이런 불량식품을 먹을 줄은. 참 재미있는 날이었다.

 

 

 

 

여기는 엑상 프로방스.

시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저녁을 먹으러 갑니다.

 

 

 

가는 길에 만난 신비한 비눗방울 아저씨.

 

오색 영롱하게 부풀어오르는 비눗방울은 참 신기하다. 별 것 아닌데, 그저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면서 행복해지는 것들이 있다. 바람에 날려 퍼지는 비눗방울을 쫓아가고 싶은 마음을 아기들이 대신해준다. 
 

 

 

 

이젠 그냥 프랑스 시내면 으레 있으려니 싶은 회전목마.

 

 

나름 식당가가 밀집해 있는 곳. 사람들은 바글바글했지만, 눈 씻고 몇 번을 둘러봐도 동양인은 우리 말고 거의 없었다. 조금 위축되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여행자의 기분을 맘껏 내기에는 최적의 장소. 

 

무난해보이는 메뉴들로 주문했는데, 꽤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말 그대로 포식. 무리했으니 하루 한 번 단백질을 섭취해야한다는 미명 하에 프랑스에 와도 나의 고기 사랑은 멈추지 않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서 꽤 고단한 일정을 잘 버텼나 싶기도 하다. 

 

 

 

시내를 둘러보고, 가장 큰 거리 중 하나인 미라보 거리로 갑니다.

 

구석구석 예쁜 분수. 엑상 프로방스는 분수가 많은 걸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아기자기한 분수가 여기저기 있어서 보는 재미가 제법이다. 지저분한 느낌의 이질감 없이 구석구석 잔뜩 낀 이끼가 잘 어울리던 돌이 있는 분수. 분명 분수인데, 인공적이고 화려한 조각들로 덮여, 나 좀 보라고 외치는 분수와 달리 순응하는 녀석.  

 

한국으로 치면 인사동 거리 비슷한 느낌도 난다. 특산물은 라벤더가 메인.

 

 

미라보 거리 끝 가장 큰 도로에 있던 큰 분수. 이 사진을 끝으로 우리는 숙소로.

 

내일은 라벤더로드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세낭크 수도원으로 갑니다. 이번 블로깅을 통해 다시 한번 여행 내내 운전하느라 고생해준 남편에게 감사합니다.

 

 

 

Posted by kirind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