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nger/'18 北海道2018. 9. 28. 22:53

삿포로에서의 두번째 아침이 밝았다. 창 밖에 슬쩍 보이는 풍경은 구름 가득한 회색빛이다. 햇빛이 없으니 돌아다니기에는 편하겠거니 싶으면서도 어제의 쌀쌀했던 날씨가 생각나 긴 옷을 바리바리 꺼내 챙겨입고 머플러도 가방에 넣었다. 오늘 아침은 방문지는 니조시장(二条市場). 삿포로의 명물이기도 하다. 시장의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북해도의 명물인 털게를 비롯한 각종 싱싱한 해산물을 볼 수 있고, 그 싱싱한 해산물이 듬뿍 올려진 카이센동(海鮮丼, 해산물덮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체크아웃 후 시내구경을 위해 로비에 짐을 잠시 맡겨두고 호텔을 나섰다. 방에서는 그저 흐리게만 보였건만, 막상 나와보니 촉촉한 공기 속 가늘은 빗줄기가 내리고 있었다. 방에서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가늘은 빗줄기는 돌아다니기에는 부담이 없을 정도였지만, 우산을 쓰지 않고 다니기에는 옷이 젖을 것 같았다. 혹시나해서 챙긴 우산이 하나 뿐이라, 숙소 맞은편 편의점에 들러 비닐 우산을 하나 더 사고, 무인양품의 감성이라며 기념사진을 남겨봤다. 유니클로 체크무늬 셔츠까지 입은 남편은 영락 없는 니혼진데쓰네 ㅋ



거리마다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며 휴가 중인 관광객 신분임을 새삼 실감했다. 이 곳에서는 가늘게 흩뿌리는 비가 익숙한 모양인지 우산 없이 비옷을 걸친 사람도 많았고, 핸들 쪽 어딘가에 큰 우산을 단단히 고정해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있었다. 분주한 듯 조용한 아침 풍경을 둘러보며 15분 정도를 걸어 니조시장에 도착했다. ​

​즉석에서 구워주는 가리비구이의 향이 고소하다. 

​이른 시간에 비까지 온 탓인지 손님도 많지 않았고, 시장 내 가게들은 절반도 오픈하지 않은 상태였다. 시장이 크지 않아 전체를 한 번 돌아보는데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열려있는 가게 몇 군데를 둘러본 뒤, 식사를 위해 오이소(OHISO)로 이동했다. 여느 일본식당이 그러하듯 문이 열리자마자 씩씩한 목소리의 이랏샤이마세가 들리고, 다다미가 깔린 안쪽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테이블 옆에 끼워둔 커다란 메뉴판은 종이에 사진과 가격, 재료가 인쇄되어 코팅된 형태로 되어있다. 


밥은 2가지 크기로 고를 수 있는데, 실제 그릇을 가져와서 크기를 보여준다. 해산물이 올라가있어 양이 보통이라면 작은 크기를 해도 크게 모자람이 없다는 설명을 미리 보고 온 터라 사이즈는 작은 것으로 골랐다. 가격은 해산물의 종류나 크기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평균 2천-3천엔 정도였고, 내 기억에서 가장 비쌌던 메뉴가 우니만 올라가 있는 덮밥으로 5천엔에 육박하는 가격이었다. 해산물 토핑 조합이 다양하고 원하는 메뉴도 추가할 수 있지만 가격대가 있다보니 식탐 많은 (나 같은) 먹보는 메뉴를 고르는 것도 쉽지 않다. 고민 끝에 나는 털게, 연어, 우니가 올라간 메뉴를, 남편은 2가지(참치+우니, 우니+연어+연어알)로 주문했다. 


조심스레 우니를 떼어 입 속에 넣자, 입 안 가득 고소함이 퍼진다. 서울에서 이 가격으로 이렇게 싱싱한 우니와 연어, 게살을 먹기는 쉽지 않다. 다음에 또 오게 된다면, 그 때는 우니만 듬뿍 올라가 있는 메뉴를 주문해서 먹어봐야겠다고 다짐하며 정신 없이 수저를 움직인다. 밑에 깔린 밥은 일본 특유의 달큰한 간이 약하게 배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간이 없고, 밥 양도 조금만 더 있으면 더 좋았으련만 싶었다. 아침공복에 달큰한 간장과 날 것의 해산물이 들어가서 그런지 양적인 아쉬움에 비해 더 먹히는 느낌이 없어,  큰 사이즈를 시키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먹고 시장을 한 번 더 둘러보며 조그만 통에 한 입 크기로 썰어서 파는 유바리 멜론을 사서 먹었는데, 이게 정말 맛있었다. 순식간에 흡입해서 사진 한장 남지 않았지만, 훗카이도 가면 반드시, 무조건 유바리 멜론을 먹어야 한다. 가격은 3천엔. 참고로 시원할 수록 더 달고 맛있다. 이 맛을 잊지 못하고 이후 여행 내내 멜론을 찾아헤매게 됨. 




아침을 먹고 다시 삿포로 시내 이 곳 저 곳을 둘러보았다. 


 

 


 


​때 마침 백화점 근처라 구경을 해보자며 갔다. 본의 아니게 개장시간(오전 10시반) 전에 도착해서 앞 벤치에서 한량마냥 대기하다 입장. 


잠도 깰 겸 백화점 1층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 한잔하고. 놀랍게도 일본은 아이스 short사이즈를 판다. 한국도 도입해줘요~~


 

삿포로 미츠코시 백화점(店)의 외관.  가본 적도 없는 곳인데 귀에 익은 이름이라 네이버를 찾아봤더니, 우리나라에 생긴 최초의 백화점이 바로 경성 미츠코시 백화점이라고. 영화 <암살>에서 미츠코-안옥윤 쌍둥이 자매(전지현)가 서로 만난 장소로도 나오던 바로 그 곳. 주변의 다른 백화점들이 젊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여기는 다소 연배(와 돈이) 있는 고객을 대상으로 한 느낌. 다른 백화점들에 없는 고급 브랜드 대다수가 입점해있다. 명동신세계 본관 느낌이랄까. 다만 외관이나 입점브랜드에 비해 내부 인테리어며 디스플레이가 80-90년대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느낌이라 약간 당황스러웠다. 삿포로 시내가 80년대 후반~90년대의 서울 같다고는 생각했는데, 백화점마저 이럴 줄이야.  패션이니 유행이니 그런 걸 잘 알지 못하는 내 눈에도 옷이나 몇몇 가방 빼고는 21세기의 느낌은 눈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서울 강남 백화점 디스플레이가 너무 세련된 탓일 수도 있겠지만, 빈티지도 아니고 그냥 올드한 분위기. 에스컬레이터가 닫는 층층마다 과도하게 친절한 인사를 하는 직원들이 아니었다면 영락 없는 아울렛 분위기다. 친구가 이야기했던 매장이 있어 가 봤는데, 밖에서 대충봐도 너무 볼 게 없어서 들어가보지도 않고 지나왔다. 일본에 쇼핑을 목적으로 온 거면 북해도는 안 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은 백화점 투어였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한국과 달리 젊은 직원 위주가 아닌, 다양한 연령대의 직원들이 고루 일하고 있었다는 점. 

 




다시 시내를 지나, 훗카이도청 구 본청사로 향했다. 1888년, 미국 네오바르크 건축양식의 건물로 메릴랜드 주 의사당과 메사추세츠 주 의사당을 본뜬 곳이라고 한다. (여행책자 참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자유롭게 입장이 가능하다. 


​내부는 당시의 조명이며 벽의 형태를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다. 


​100년이 넘은 건물답게 바닥을 걸을 때마다 오래된 나무바닥 특유의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현재는 박물관으로만 이용되고 있다. 몇몇 방은 건물의 역사를 설명한 그림 등이 전시되어있거나, 역대도지사(?)의 사진이 걸려있기도 하고, 건물이 이용되던 당시의 시설을 재현해둔 관 같은 것으로 만들어져있다.    

 

 


​장미 같은 솔방울. 



앞이 시끌시끌하길래 나오면서 봤더니 만담 및 마술쇼 분위기. 무슨 말인지는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데 듣는 사람들 모두 웃고 있다.....





​귀여운 픽토그램. 

 


 


마지막 삿포로 시내 투어로 삿포로의 상징이라는 시계탑 도케이다이를 보러 갔으나 공사중............................

그렇게 안내판만 보고 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무계획 삿포로 시내 투어가 끝났다.  



오늘 오후는 삿포로에서 기차로 1시간 반 정도 거리의 토마무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삿포로역으로 가기 전 일본라멘집을 들렀다. 구글맵에서 평가가 좋아서 찾았던 이치류안 라멘(ラーメン札幌 一粒庵), 지하상가 식당가의 한 곳이다. 점심 때라 그런지 줄이 제법 있었는데, 딱 봐도 로컬들 바글바글한 분위기라 맛집임을 확신하고 대기. 15분 정도를 기다렸다가 입장했다. 입구에 자판기가 있어서 원하는 메뉴를 티켓으로 뽑아서 점원에게 주면 된다. 잘 모르면 베스트메뉴가 가장 안전하다. No.1이라는, 기운이 나는 미소라멘을 선택했다.

​짭조름한 국물에 해장이 되는 느낌. 이제는 일본라멘도 워낙 대중화 된 탓에 놀랄 만큼 새로운 맛은 아니지만 본토에서 먹는 일본라멘이라는 것에 의의를. 그래도 삿포로에 다시 간다면 추천할 만한 집이다. 



점심 시간 이후라 그런지 역 내 쇼핑몰에는 정말정말 사람이 많았다. ​겨우 빈 자리를 찾은 한 까페에 들러 라떼 한 잔 마시면서 기차시간까지 잠시 휴식을 취했다. 


​평일 낮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승강장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우리가 탄 급행 슈퍼오-조라 3호칸. 승강장 빼곡한 승객들을 보며 전날 예매해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토마무로 갑니다. 





Posted by kirindari
Stranger/'18 北海道2018. 9. 27. 12:33


도착 이후 가장 큰 미션 중 하나였던 레일패스 구매를 마친 후 한결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삿포로행 기차에 올랐다. 좌석을 확인한 후 짐을 한 켠에 밀어두고 자리에 앉아 둘러본 기차 안은 좌석이며 객실 출입구 위 전광판 등 전반적인 모양새가 한국의 SRT와 굉장히 비슷하다. 옆자리에 앉은 일본인 승객이 앞좌석 헤드 뒷판에 붙어있는 플라스틱 포켓에 자신의 종이티켓을 꽂는 걸 보고, 나도 익숙한 일인 척 레일 패스에 끼워둔 삿포로행 기차표를 꺼내 꽂는다. 속으로는 오~신기하다~라고 생각하면서. 이 기차에 처음 타서 낯설고 어색하다는 걸 티내기 민망할 정도로 기차 안은 굉장히 조용했다. 공공장소에서의 예절을 이야기할 때 항상 일본을 선례로 드는 것이 이해가 가는 조용함이다. 통화를 하기 위해 전화기를 들고 조심스레 객실을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일본을 왜 선진국이라고 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조용한 객차 안에 소리가 나는 건, 일본어-영어 순으로 나오는 안내방송이 나올 때 혹은 누군가 기침을 할 때 뿐이다. 매 역에 정차하고, 다시 떠날 때마다 앞으로 어떤 어떤 역이 남아있는지 안내가 흘러나왔다. 


 이번 여행의 첫 방문지는 삿포로로 기차의 종착역이기도 했다. 여행책자 속, 북해도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라는 소개가 허풍이 아닌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30여분을 달려, 고층 건물들이 점차 빼곡해지는 느낌이 들 때 즈음, 삿포로에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에서 느껴지는 대도시의 느낌은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차가 멈추자, 빈 좌석이 거의 없이 빼곡히 앉아있던 승객들이 우르르 내렸다.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구글맵을 열고, 두 눈은 출구를 찾느라 낯선 언어 속 안내판을 연신 살핀다. 승강장을 나와 개찰구를 통과하니 온통 매장이 줄지어 있는 삿포로역은 곳곳이 커다란 쇼핑몰 여러 개와 연결되는 구조였다. 퇴근시간이 겹친 탓인지 정장 차림의 샐러리맨들까지 섞여 역 안은 상당히 북적거렸다. 깔끔하지만, 세월이 느껴지는 분위기 탓에, 삿포로역은 살짝 바랜 용산역 같기도 했다. 


삿포로 역사를 나서기가 무섭게, 서울보다 훨씬 북쪽(위도 42도)에 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얼굴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뒤를 돌아보니 거대한 유니클로 간판이 보인다. 주변을 둘러보니 한국의 강남이나 명동 길거리에서 간판만 일본어로 바뀐 것 같은 풍경이었다. 예전에 2009 로스트 메모리즈라는, 일제 치하가 현대까지 지속되었을 때를 가정한 배경의 영화가 있었는데, 영화 초반에 나오던 서울풍경이 딱 이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닮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누가 먼저일까. 외국여행이라는 설렘을 느끼기에는 너무 친숙한 풍경이었지만, 서늘한 날씨가 이국에 도착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 같았다. 한국보다 시원해서 좋네 길거리가 깔끔하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15분 정도를 부지런히 걸어 숙소에 도착했다. 오픈한지 2년도 되지 않은 새 건물답게, 로비며, 크지 않아도 필요한 건 빠짐없이 갖춘 방은 정갈하고 깔끔해서 마음에 쏙 들었다. 가방을 열어 챙겨온 긴 옷을 몽땅 꺼내 껴입고, 혹시 몰라 우산도 챙긴 뒤 다시 숙소를 나섰다. 비행기 이륙 전 라운지에서 먹은 음식이 전부였던 터라 허기가 강하게 몰려왔다. 식당과 각종 술집이 모여있는 스스키노(すすきの, 삿포로 시내 최대 번화가) 쪽으로 가면서 중간에 TV 타워를 들르기로 했다.  


​에펠탑을 축소시켜놓은 것 같은 TV 탑은 1957년에 세워진 것으로 오후 5시부터 조명이 들어온다고 한다. 



​타워 맞은 편 쪽으로 큰 공원이 있다. 찌는 듯한 더위에서 갑자기 서늘한 곳으로 오니 분수에서 튀는 물방울도 새삼 더 차갑게 느껴진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분수 주변에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



현대화된 재래시장에 지붕을 씌워놓은 듯한 느낌. 온갖 가게가 뒤섞여있는 이런 풍경이 몇 블럭이고 이어진다.






번화가에서 한 골목만 뒤로 가도 아담한 규모의 각종 식당이며 이자카야 등이 줄지어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따뜻한 색의 조명 아래, 저마다의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집에 가기 전 술 한 잔하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앉아있는 일본의 저녁 풍경. 평범한 일상의 풍경인데도, 관광객의 마음이라 그런지 괜히 저 속에 껴서 같이 술도 한 잔 하고, 꼬치요리도 주문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골목 사이사이 곳곳에 자전거 보관소가 보인다. 삿포로 역에서 숙소로, 또 숙소에서 다시 스스키노까지 걸어오는 거리 내내 오르막도 내리막도 없어 자전거 타고 다니기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을 기웃거리며 뭘 먹을까, 고민하던 중 구글맵에 다루마라는 양갈비 집의 평가가 괜찮아 가보기로 했다. SNS,블로그 속 온갖 낚시성 광고가 판을 치지만,  구글맵은 아직 믿을 만한 정보통이다.  10여분을 더 걸어 드디어 목적지를 발견!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건물 한 바퀴를 거의 휘감듯 길게 늘어져 있는 줄에 기함했다. 일정상 양갈비를 먹을 수 있는 날이 오늘 밖에 없던 터라 그냥 줄 서자며, 일단 줄 끄트머리로 갔다. 


중간중간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그 동안의 대기경험을 총 동원, 착석까지의 예상시간을 50분으로 예상해보았다. 기다리는 중에 찾아봤더니 다루마(だるま)는 본점을 포함, 총 3곳의 매장이 있다고 한다. 다른 두 매장도 멀지는 않았지만, 어디든 대기하는 건 마찬가지였으며, 우리가 온 다루마 5.5가 가장 최근에 오픈한 곳으로 그 중 가장 큰 매장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현지인도 많이 오는 분위기라 신뢰도 가고, 아예 다른 식당을 가려고 구글맵을 열어보니 가까운 곳에 갈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결국 계속 줄을 서기로 했다. 매장 입구까지 다가가고, 이제 곧 먹겠구나 싶어 기분이 좋아지려는 찰나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밖에 서 있는 줄보다 더 많은 인원이 실내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 우리 바로 앞 일행-일본 직장인 3명-은 매장 입구에서 안을 들여다보더니 포기하고 가버리길래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좋아했는데, 지금까지 기다린 만큼-혹은 더 이상- 기다려야하는 걸 알았던 게지. 사진 속 식사하는 사람들 뒤에 보이는 인원이 모두 대기 줄이다. 뒤에서 대기하는 사람은 식사하는 사람 바로 뒤에서 갓 구워진 고기가 입에 들어가는 풍경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 이건 너무도 신박한 고문 아니냐며, 심리적 압박으로 매장을 운영하는 것 같다고 이 기묘한 대기 시스템이 참 특이하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했던 것 같다. 밖에서 기다리는 시간만큼 안에서도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중간쯤 가면 앉을 의자가 생긴다는 것. 이 기묘한-한국에서 본 적 없는- 대기는 겨울에 오는 사람들을 위한 나름의 배려이려나. 겨울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는 곳이라고 한다.  여름에도 서늘한 이 곳을, 겨울에 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온갖 궁금증이 솟는다. 





​우리도 곧 저기 앉으리라. 기다리며 미리 메뉴를 정했다. ​재미있었던 게 실내에서는 더 괴로울 줄 알았는데, 계속 고기 냄새를 맡으니 오히려 허기도 누그러지고, 곧 내 차례겠거니 싶어 의외로 덤덤해지는(?) 기분.  예상했던 대기 시간 50분은 이미 넘긴지 오래다. 일행도 없고, 핸드폰 배터리도 간당간당하다면 그 동안 살아온 인생도 되돌아 볼 만큼의 긴 시간이다. 한겨울인 1월에 떨면서 1시간을 기다렸다는 사람의 후기를 우연히 발견하고, 여름에 온 우린 양반이려니 하며 허허 웃었다. 그래도 너무 길다. 장거리를 이동한 탓에 점차 피로가 몰려왔다. 그냥 편의점 가서 라면이나 사서 숙소로 돌아갈까, 한계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낀 순간 자리가 났다.


주문을 받자마자 종업원들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빠르게 세팅을 하고, 화로 위에 조그만 양기름 덩어리를 올리고, 한 입 크기로 썰은 대파와 양파를 쏟아놓는다. 한국처럼 쟁반 하나에 주문한 고기를 모두 담아오는 게 아니라 메뉴/인수 별로 고기를 다 따로 담아서 내온다. 양이 많지 않아 4인분을 시키니 접시 4개가 쫙 깔려 약간 민망했다. 고급메뉴도 주문해봤는데, 기본이 가장 괜찮아서 결국 추가로는 기본만 더 시켰다. 쯔란 등을 제공하는 중국식 양고기 요리와 달리 간장베이스에 고춧가루 등을 섞어 찍어먹는 소스도 궁합이 좋았다.  뜨거운 양기름에 튀기듯 데워진 양파도, 대파도 고소하고 달큰한 맛이 일품. 얼핏 피클처럼 보이던, 절인양배추(기본으로 나오는데 유료임)도 잘 어울렸다.  

사실, 개인적으로 양고기보다 더 기대했던 메뉴는 바로 삿포로 클래식비어였다. 내수가 충분해서 수출하지 않기에 북해도에 와야만 먹을 수 있다는 바로 그 맥주. 그래서인지 삿포로 시내 술을 파는 곳이라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삿포로클래식비어를 마실 수 있다는 광고가 걸려있다. 막상 테이블에 앉으니 너무 피곤해서 술을 마셨다가는 뻗을 것 같아 남편 것만 시키고, 몇 모금 마셔봤는데, 결국 내 맥주도 시켰다. 삿포로하면 맥주라더니 역시. 피곤하지 않았다면, 주량만 충분했다면 몇 잔이고 마시고 갔을 것 같다. 작은 공기밥까지 시켜 함께 먹고 나니 배가 점차 불러왔다. 기다린 시간, 내 뒤에 대기자가 앉아있다는 사실을 까먹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작은 매장이었지만 환기 시스템이 잘 되어있는지 생각만큼 옷에 냄새가 많이 배지 않아서 더 좋았다. 


만족스러운 첫 식사를 잘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대욕장을 다녀온 후 기분 좋게 취침. 


 




 




Posted by kirindari
Stranger/'18 北海道2018. 9. 21. 19:14


북해도로 떠나는 아침. 출발 며칠 전부터 열어본 삿포로의 일기예보에는 비구름이 연속으로 떠 있었었고, 떠나는 날 한국의 하늘마저 잿빛으로 흐려져있었다. 반년 전 미세먼지가 심해 비행기가 지연되서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 고작 흐린 하늘만 봤을 뿐인데 괜시리 불안함이 든다. 굳이 갖다붙이면 나이값이라고 해야할지, 보고 들은 게 많아지니 예상 밖 혹은 원치 않는 상황이 닥치면 겁만 늘어간다. 어디 간다고 하면 엄마들이 하는 온갖 오지랖과 걱정이 이해가 된달까. 까짓 비행기 밀리면 밀리는 거지 뭐 큰 일 나겠냐며 가벼운 타박을 듣고, 집을 나선다. 도심공항에서 미리 출국 심사를 마치고, 짐을 부치니 손이 가벼워진 탓일까, 마음이 살짝 편해진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인천공항으로 이동한다. 



​면세점 한 번 둘러본 후 (면세점에서 아무 것도 사지 않았다. 이럴 수가) 식당을 찾았다. 시간이 애매해서 공복으로 나왔지만 1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온 탓에 선뜻 끌리는 메뉴가 없어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마티나 라운지로 갔다. 워커힐에서 관리하는 곳이라더니 라운지 내 곳곳에 로고가 보인다.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지만, 직원들이 수시로 빈 접시며 테이블을 정리하는 등의 서비스와 시설이 깔끔하고, 음식도 꽤 괜찮게 나온 편이다. 오믈렛과 컵라면 등으로 배를 채우고, 다음에도 여기 와야겠다며, 후식까지 먹고, 휴식을 취하며 2시간 정도를 보내다 시간 맞춰 나왔는데, 탑승구 앞에서는 연결문제로 이륙이 30분 정도 지연되었다는 안내가 나온다. 빗방울이 슬쩍 비치는 탓에 혹시나 했는데, 날씨 탓이 아니니 다행이다. 싶다.


비행기에 앉아 도착 예상시간을 보니 참 애매한 시간이 남았다. ​길지도, 짧지만도 않은 2시간 반 가량의 비행시간은 딱히 할 만한 게 없다. 생각해보니 그 동안 비행은 1시간 내외거나 아니면 아예 최소 5시간 이상의 장거리였고, 대개가 밤 비행기라 이륙하기 무섭게 잠들어버리거나 영화만 줄창 봤었는데, 짧은 낮비행에 대한 대비는 너무 없었던 듯하다. 잠도 오지 않고, 금방 갈 줄 알았는데 착륙까지 꽤 남은 시간에 이리 할 게 없다니, 집에서 보던 책이라도 한 권 들고 나올걸. 일어나지도 않을 쓸데 없는 오만가지 걱정은 하면서 정작 필요한 거는 늘 빼먹는 내가 새삼 우습다. 앞좌석에 꽂혀있는 면세품리스트와 잡지, 비상상황 발생시 안내도를 2번쯤 정독하고도 시간이 남아 몇 번이고 봤던 훗카이도 여행책을 (또)보며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푸른 하늘이 다시 회색 빛으로 흐려지고 구름이 자욱해지면서, 착륙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한국이라고 말해도 깜빡 속을 것 같은 풍경. 쭉 뻗은 도로에서 한국과 좌우가 바뀐 방향으로 움직이는 차를 보며 애써 일본에 도착했음을 실감하려고 노력해본다.  



도라에몽과 정복 차림의 피카츄가 맞이하는 입국장, 온갖 매장 속 사방에서 들려오는 일본어에 일본에 왔음을 재차 실감한다. 비슷한 시간대에 여기저기서 쏟아져나온 사람들로 신치토세 공항은 생각보다 꽤나 어수선하고 혼잡했다. 짐을 찾자마자 훗카이도 레일패스를 구입하기 위해 지하 1층으로 바로 이동했다. 훗카이도 레일패스는 외국인만 이용 가능한 티켓으로 정해진 일수 내에서 무한대로 기차 이용이 가능한 티켓이다. 서류에 이름과 여권번호 등을 적어내면 이를 코팅해서 뒷면에 붙여주는데, 마치 얇은 여권을 하나 더 받은 느낌이다. (5일간 이용해본 결과, 안에 티켓 등을 끼울 수 있는 조그만 포켓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우리는 총 5일 일정 중 하루는 렌트카를 이용할 계획으로 실제 이용일수는 4일 뿐이었지만, 개시날짜 기준으로 4일이면 마지막 날 이용할 수가 없었고, (다행히도) 4일권과 5일권 가격이 차이가 없어 5일권으로 구매했다. 가격은 2만 2천엔. 1일권이나 3일권도 한화 기준 10만원 대의 가격이다. 그다지 싼 가격도 아니거니와, 기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수록 이득이 많은 티켓이기에, 기차를 이용하는 외국인 관광객이라는 이유로 이 패스를 무조건 구매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을 통해 개별티켓 가격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용횟수만큼 합산해본 가격과 레일패스의 가격을 비교해서 이득이 있는 편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 듯하다. 우리는 하루 평균 1회 이상 이용하기도 했거니와 매번 티켓을 구매하는 번거로움을 원치 않았고, 개별 티켓의 합계가 패스 가격이 그닥 차이가 없어 레일패스를 구매했다. 


참고로 이번 여행에서 개별적으로 얻었던 추가팁 2가지는, 

1) 일본어 능통자가 아니고서야 매번 전광판 속 기차 안내를 찾는 것도 번거로울 수 있어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는 기차별 시간표를 미리 출력해서 가져가는 것도 하나의 팁이다. 아예 한국어로 된 웹사이트가 따로 있어 기차 이용에 관한 정보를 얻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2) 훗카이도 레일패스는 이용기간 내 원하는 표를 미리 예매하기가 단 1회 가능하다. 구매하자마자, 동선을 고려해서 배차간격이 긴 여행지로 이동할 경우가 있다면 유용할 듯하다. 우리는 익일 삿포로에서 토마무로 이동하는 표를 미리 예매했다. 




Posted by kirindari
Stranger/'18 北海道2018. 9. 21. 17:31

나의 첫 번째 일본여행은 1995년 겨울이었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또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꾹꾹 눌러담아 싸들고 간 김치통이 무거워 전철 사물함 한 켠에 두었는데, 시내 한 바퀴를 돌고 와 보니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것이, 우습게도 그 여행에서의 가장 생생한 기억이다. 그 해 여름 도쿄 지하철에 옴진리교 테러사건이 있었더랬다. 정체불명의 짐이라 테러폭발물로 의심되서 들고 갔나봐, 그렇게 생각했었다. 다들 모여가지고, 긴장해서 막 열어봤을 텐데 김치가 나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다른 데도 아니고 일본까지 와서 한국 욕 먹이는 짓 한 거 아닌가? 그런 말들을 하며 한참을 웃었다.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한 거리 풍경에 엄마가 감탄하셨던 기억이 나고, 나는 사람들이 한국사람이랑 너무 똑같이 생긴 것 같다는 소리를 했었더랬다. 우에노 동물원 입구의 커다란 사자개, 자동으로 열리던 택시문, 새마을호보다도 훨씬 빠르다던 신간센,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무릎까지 푹푹 잠겼던 그 눈더미들, 건물 전체가 얕게 반짝이던 금각사, 친구랑 현지에서 사서 쌍둥이처럼 같이 입고 다녔던 푸른 체크무늬 잠바, 그런 것들이 시간 순서 없이 뒤죽박죽 섞여 사진처럼 떠오르는 기억 속 일본, 그 곳은 나의 첫 해외여행지였다. 

그 때 이후로는 딱히 갈 일이 없었다. 그 때 여행 말에 안 좋은 일이 있기도 했었고,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되었던 것 같음) 가까우니까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이유로 늘 선택지에 들어가지도 못 했던 곳이 일본이었는데, 올해의 미친 더위에 시달린 이후 1) 서울보다 시원하고 2) 비행기로 2시간 넘지 않는 가까운 곳을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1순위가 되어버렸다. 고민하지 말고 일본이나 가자, 며 평소보다 휴가지를 일찍 정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도쿄/교토를 갈 계획이었다. 지인들의 SNS에서도 사진이 자주 올라왔고, 때 마침 TV에서도 맛집이 자주 나와서 끌렸더랬지. 낭만적이고 예쁜 카페들이며, 아기자기 잔잔한 옛거리, 뒷골목 구석구석 노포들을 둘러볼 생각에 마음이 붕 떴지만, 들뜬 마음도 잠시, 8월의 교토여행은 한 여름에 대구를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지인들은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다며 잘 생각하라는 주변의 만류가 꽤 있었더랬다. 아니나 다를까, 매일 같이 확인해본 교토의 날씨는 서울만큼이나 더워보였다. 8월 말인데 괜찮지 않으려나, 아니다, 그 때도 더우면 어쩌지. 쉽게 포기 못하고 있던 찰나, 남편이 제안해서 찾아본 북해도의 날씨는 완벽했다. 더워봐야 25를 넘지 않는온도, 여행자로서는 그야말로 최적의 날씨이다. 그렇게, 이번 여름은 북해도를 다녀왔다. 



침략을 일삼았던 역사, 섬나라가 주는 이미지 탓인지 몰라도 나는 늘, 일본이 꽤 큰 나라임을 잊고 지낸다. 특히,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았던 사실 중 하나가 북해도의 면적만도 한국의 80%에 달한다는 사실. 온천에서 요양만 하다 갈 생각이라면 모를까, 막상 찾아보니 생각보다 이동거리도 길고, 구석구석 가 볼만한 곳이 꽤 많았다. 여행 책자 속 북해도는 크게 동,서,남, 북부, 중부 5군데로 나눠서 구성이 되어 있었다. 특히 동부나 북부는 거대한 늪지와 오호츠크 해의 유빙 관찰이 가능한 지역이기도 해 방문지로서 상당히 끌리긴 했지만, 애초에 카페나 먹거리를 생각하며 교토를 가려했던 걸 감안하면 다소 생뚱 맞은 코스이기도 했고, 일본이 초행인 사람에게는 너무 이질적인 느낌이라 여행코스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사실 막상 간다고 하더라도 동부의 쿠시로 늪지는 삿포로에서 기차로만 6시간 이상 걸리는 곳이라 고작 5일 남짓의 일정에서 이동으로 하루를 소모하고 싶진 않았다. 구글맵과 여행책자 등을 참고한 끝에, 가능한 기차 이동을 하는 것을 전제로 삿포로, 토마무, 노보리베츠와 중부의 후라노/비에이를 방문하는 것으로 4박 5일의 일정이 짜여졌다.  



비교적 널럴하게 계획을 세웠다고 했지만 막상 돌아다녀보니 생각보다 일정이 아주 여유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서도 참 좋았었고, 여행이 끝나고 돌아온 뒤에는 운까지 좋은 여행이었다는 결론이 났다. 일본을 떠나는 날 아침 뉴스의 일기예보에서 태풍 북상소식이 나오길래, 태풍 피해간다며 타이밍 좋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다음 날, 그 태풍으로 일본은 쑥대밭이 되었다. 더 운이 좋았던 건 귀국한지 며칠 되지 않아 북해도를 강타한 지진이었다. 뉴스를 보며 가슴을 몇 번이나 쓸어내렸는지.  


도착한 첫날부터 흐린 날씨에 살짝 뿌리는 비까지 있어 약간 아쉬운 마음으로 시작된 여행이었지만, 결론은 대 만족. 구글맵에서 대략적인 위치만 둘러보고 비교적 랜덤으로 갔던 식당들 거의 대부분이 다시 가고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고, 숙소도 모두 마음에 쏙 들었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저녁마다 갈 수 있었던 목욕탕이었다. 노곤해진 몸을 뜨거운 물에 담그고 다리를 쭉쭉 뻗으며 긴장을 푸는 하루의 마무리를 매일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행복 중 하나였다. 한 편으로는 일본, 이라는 이름에서 그저 벚꽃과 고성, 기모노, 온천 등의 이미지로만 점철된 일본을 떠올렸던 게 아닌가 싶었다. 기차로 이동하면서 보았던 북해도-그 또한 일부일 뿐일테지만-는 그야말로 신비롭고, 광활한 대자연이 펼쳐진 곳이었다. 모노노케 히메 등의 각종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던 거대한 숲과 정령들이 이해가 되는, 유럽이나 미국의 숲과는 분명하게 다른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경들이 한참이고 펼쳐진다. 하루종일 보고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은 초록의 끝없는 풍경. 언젠가, 발이 푹푹 잠기는 눈과, 북해도의 유빙을 보게 될 날을 고대하며, 나의 첫 북해도 여행기를 기록하려 한다. 



Posted by kirind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