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nger/'19 Kyoto, Fukuoka2019. 10. 21. 21:53

 

일본 불매 운동이니 어쩌니 난리인 이 시점에 일본에 다녀오게 되었다. 퇴사 후 여행 한 번 못 가는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딱히 멀리 가고 싶다는 생각도 없던 차에 남편이 학회 차 후쿠오카에 방문하게 생겨 그 핑계로 덤으로 따라 가기로 했다. 때 마침 한글날이 낀 연휴가 있어 학회 전 이틀을 더 벌 수 있었고, 다시 가보고 싶었던 교토를 일정으로 함께 잡아 총 4박 5일의 일정으로 다녀왔다. 출국일을 1주 앞두고 뉴스에서는 하기비스라는 역대급 태풍 뉴스 속보가 나오고, 날짜를 잡다보니 한글날에 일본행이라 뭔가 기묘한 죄책감(?)을 갖고 일단 떠나기로 함.

한글날 오전 8시 비행기라 반 좀비상태에서 오전 4시반 공항버스를 타고 새벽 같이 인천공항에 도착했지만, 연휴라 우리처럼 나가는 사람이 많은지 오전 6시가 안 된 시간이라는 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공항은 번잡했다. 오사카로 가는 우리 비행기도 만석인 건 매한가지. 공항에 올 때마다 불경기는 도무지 실감을 할 수가 없다. 사람이 얼마나 많았냐면 내가 공항에서 짐 부친다고 이렇게 오래 기다려본 게 처음이라....줄만 거의 한 시간 섰던 듯 하다. 짐 부치고, 미리 구매해뒀던 면세품 수령도 하고, 출국장 이동해서 간단한 아침까지 챙겨먹고 탑승 완료. 새벽 4시 버스 탈 생각에 늦잠 잘까봐 긴장해서 잠을 반 설쳤더니, 비행기가 이륙한다는 안내방송 이후 기억이 없다 (-_-) 눈 뜨니 오사카 도착 안내가 나오고 있었음...

비몽사몽 오사카에 도착해서 교토로 갑니다.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교토로 가는 방법은 신칸센 등의 기차를 이용하거나 공항버스를 이용하는 법이 있는데, 짐을 끌고 이동하지 않고 출구로 바로 나오면 버스를 탈 수 있다는 말에 과감히 버스를 탔지만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 때는 기차로 갈 것 같다. (요금도 기차가 500엔 정도로 버스요금 절반 수준이라고) 딱히 막히지도 않았지만 버스로는 거진 1시간 반 이상이 걸려, 차를 오래 타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좀 힘들었다. ㅜㅜ

 

어쨌거나 교토에 무사히 도착! 뉴스에서 연신 태풍 속보가 나와서 걱정했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쨍한 햇빛에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날씨는 끝내주다 못해 더웠다. 햇빛 때문에 버스에서 내려서 바로 선글라스부터 찾음.

 

 

짐 끌고 숙소 가는 길.




그래도 왔으니 서로 인증샷 찍어주시고...

교토에서 묵었던 호텔은 사쿠라테라스더갤러리. 교토역에서 도보 5분 거리인데, 다음에도 교토를 갈 일이 있으면 또 다시 여기 묵을 계획이다. 시설도 매우 깔끔하고 훌륭한데다가 교토역이 코 앞이라 이동할 때 정말 편리했다. 시기가 시기였는지 어쨌는지 몰라도 호텔 안에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고, 거의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 체크인 전에 도착이라 일단 짐부터 데스크에 맡겨놓고 뭘 먹으러 갈까 고민 시작. 남편은 구글을 뒤지기 시작했고, 나는 이런 건 현지인한테 물어야한다며 데스크에 지배인으로 추정되는 분께 물었더니, 보기 드물게 정말 유창한 영어로 알려주셔서 감동. (이 분이랑 이날 갔던 KURASU 의 바리스타 이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일본인을 거의 보지 못함) 어쨌거나 어떤 메뉴를 원하냐길래 뭐든 좋다고 했더니, "very local place"라면서 호텔 바로 한 블럭 뒤에 우동집을 추천해주고, 만약 별로면 근처의 쇼핑몰이 있으니 참고하라고 지도까지 챙겨줘서 감사했다. 남편은 뭔가 반신반의하는 눈치 같았지만 일단 알려준 대로 가봄.



실내가 보이지 않아 장사를 하는 건지 아직 오픈조차 하지 않은 집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긴가민가하고 문을 열었는데, 가게 문을 여는 순간 맛집임을 확신. 서빙하는 분들이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라 한 번 더 놀라고

 

남편은 소고기계란우동을, 나는 치킨계란우동을 시켰는데,

 

인스타충답게 사진부터...여행 내내 음식사진으로 인스타 스토리 도배를 한 듯. 각설하고, 따뜻한 육수는 담백하면서 일본 그 특유의 단맛 없이 느끼하지도 않았고, 계란도 고기도 부드럽고 폭신했다. 싱싱한 파 고명은 덤. 속이 따뜻해지니 비행과 버스로 줄창 이동하느라 비몽사몽했던 정신이 돌아오는 느낌. 저렇게 먹고 한 사람당 만원도 안 나온다. 이 날 메뉴를 보고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인데, 닭-계란이 같이 나오거나 연어-연어알 이런 메뉴는 이름에 친자(親子)가 들어간다. 소고기-계란은 타인(他人)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처음에는 이 집만의 작명 센스라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 카이센동 집에서 똑같은 메뉴를 발견함. 관용적 표현인가...여튼 첫 식사는 매우 성공적. 역시 내 맛집 찾는 감은 죽지 않았다. 추천해주신 지배인 분 만나면 훌륭한 곳 추천해줘서 고맙다고 하려고 했는데 이 날 이후 보지 못함...




구글맵이 알려준 평점 4점이상의 카페 KURASU. 이 날 한국인 관광객을 처음 봤는데, 분위기 탓인지 서로 한국인임을 인지하면서도 애써 굳이 아는 척하지 않으려는 분위기 (ㅋㅋㅋ) 처음에는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여행기간 내내 그러하였다. 어쨌거나, 이 날 너무 더워서 (28도까지 올라감) 라떼를 먹으려다가 아이스아메리카노로 마셨는데 산미가 너무 강해서 아쉬웠다. 때 마침 라떼를 시킨 다른 한국인은 너무 맛있다고 감탄하는 소리가 들리니 후회가 2배 이상. 밖의 그늘은 시원해서 커피를 마시면서 땀을 식혔다.

오늘은 첫 날이라 무리하지 않기로 한 상태로 후시미이나리만 가기로 한 날. 체크인해서 방에 짐을 넣어두고, 최대한 가볍게 나왔다. 미리 찾아봤더니 신사 안의 코스를 다 둘러보려면 2시간 정도를 잡아야한다길래 다른 일정을 다 빼고 갔던 거긴 한데, 지금 생각해보니 좀 나중에 넣어도 되었던 것 같긴 하다. 교토역에서 전철로 2 정거장이라 거리가 가깝고 무엇보다도 24시간 개방하는 곳이더라는...여튼 교토에서 가보고 싶었던 장소 중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했다.

오후 3-4시 쯤이라 역에는 학생들이 유달리 많았다. 이나리역 (稲荷驛, いなりえき) 에 내리면 역 출구 바로 앞에 신사가 보인다.

신사 들어가기 전에 입과 손을 씻고..

여우신사답게 사방에 여우상이 보인다.

 

 

​색색의 기모노를 입고 온 관광객들을 보는 것도 재미.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서 어린 치요가 소원을 빌기 위해 저 붉은 토리이들 아래를 질주하던 바로 그 곳. 실제 영화 촬영 장소이기도 하다고...10년도 넘은 예전에 본 영화 장면이 단 번에 다시 떠오를 만큼, 수백 수천 개의 다홍빛 토리이들이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은 인상적이었다.




여우신사답게 소원도 여우 위에다 빈다. 다양한 여우얼굴 구경하는 재미. (이런 센스는 애니 강국답달까...)






고양이도 많고. 올라가다 보니 원숭이 조심하라는 안내도 꽤 많았다.

 

 

기둥 뒷켠에는 시주한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입구에는 워낙 사람이 많아 시야를 가질 정도니 사진은 좀 들어가서 찍는 게 좋은 듯 하다. 10분 정도만 들어가도 한산해지는 느낌.






 

원래 계획은 끝까지 다 보고 오는 거였는데, 막상 피곤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코스가 길어 과감히 포기함 (ㅋㅋ) 우리가 포기한 코스 쯤에서 다들 돌아나오는 것도 재미있었다.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한 모양...

 

 

 

 



 

해질녘이 되니 붉은 신사 위에 노을 빛이 떨어져 꼭 필터를 씌운 것 같은 풍경.

잘 보고 갑니다.

오늘의 저녁은 남펴니가 찾아낸 토리센이라는 곳.

 


나는 여기서 먹은 오징어튀김을 잊지 못할 것이다. 사진상으로는 정말 평범해보이지만 이건...정말....한 입 먹는 순간 눈이 커지는 맛. 맹세코, 내가 태어나서 먹은 모든 튀김 중 최고의 맛이었다. 다시 교토를 가야하는 가장 큰 이유. 뭔가 아쉬워서 시킨 메뉴가 이렇게 충격과 감동의 맛이라니 ㅜㅜ

방에 들어가기 전, 숙소 첫 날 나오는 (논알콜) 웰컴 드링크 한 잔하고 방으로. 대욕장에서 목욕하고 돌아와서 자기 전까지 오징어튀김을 찬양하다가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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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rindari
Stranger/'18 北海道2018. 10. 4. 16:42

오후 2시 16분, 삿포로 발 토마무행 기차를 탔다. 삿포로에서 토마무를 가는 기차는 종착지가 동부의 쿠시로인 급행 슈퍼오-조라호로, 하루에 6-7대 정도 운행된다. 삿포로에서 오전시간을 여유 있게 보내고, 체크인 시간에 맞춰 토마무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 대가 이 때 뿐이라 티켓을 미리 예매해두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금요일이기도 했고)

기차가 출발하고, 삿포로에서 멀어질 수록 거의 그치다시피했던 비가 다시 거세지기 시작했다. '광활한 대자연'이 뭔지를 보여주겠다고 작정이라도 한 듯, 차창 밖에서는 녹색의 풍경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참 신기하다. 얼핏 비슷해보이지만, 초록이라는 단어로만 표현하기에는 음영과 밀도가 다 달라 그 비슷함 속에서도 구별이 되는, 수 많은 초록들의 연속이다. 그 위에 비와 자욱한 안개까지 겹치니 신비로운 느낌까지 더해진다. 모노노케 히메 속 고대 숲의 묘사는 과장이 아니었다. 저 속을 걷고 있으면 정말로, 어디에선가 숲의 정령들이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은 신비로움.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의 한국의 숲과도 다르고, 유럽의 울창하고 검은 숲과도 다르다. 비 오는 북해도의 자연이 이렇게 멋있는 곳이라니. 이런 풍경이라면 기차 안에서의 시간이 그리 지루하지만은 않다. 고등학교 때 비오는 내린천에 래프팅을 하러 갔다가 봤던 그 녹색과 검은색, 비와 안개들이 만들어내는, 동양화 한 폭 같았던 풍경의 기억, 그 이후 정말로 오랜만에 다시 본 멋진 숲이었다. 몇 번의 터널을 지나고, 빽빽하던 숲 사이사이 간혹 건물이 보였다. 1시간 반 정도를 달린 후, 토마무에 도착한다는 안내가 나오고, 짐을 챙겨 내릴 준비를 했다. 기차가 멎고, 창 밖에 리조트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정말 작은 간이역 느낌의 토마무 역. 계단 한 번만 내려가면 바로 역 바깥이다. 계단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복차림의 리조트 직원들이 상냥하게 인사하며 짐을 버스에 싣는다.

우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승객은 중국인.

 

​15분 정도를 달리니 리조트 입구가 보였다. 입구를 알리는 안내판에서도 5분을 더 달려 리조트에 도착했다.

 

 

 

 

 

체크인 후 둘러본 로비. 숲 속에 위치한 곳이라 그런지 사진처럼 리조트 곳곳에 나무를 이용한 동물 모형이 장식으로 놓여있었다. 어설픈 영어지만 필요한 내용을 빠짐없이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8시에 시작되는 불꽃놀이가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을 챙겨주는 친절이 참 고마웠다.  나무 장식이 달린 방 열쇠와 한국어로 된 인포메이션 책자, 다른 시설 이용에 필요한 티켓도 함께 받았다.      

 

 

 

 

방 문을 열자마자 정면에 TV가 보인다.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채널에서 매일 아침, 운해테라스의 방문 가능여부를 알려주는 일기 예보가 나온다. 짐을 내려놓고 방 전체의 커튼을 젖히니,

 

 

​창 밖은 온통 푸른 색이고, 풍경 저 멀리 높은 곳은 운해가 자욱하게 덮여 하늘과 분간이 되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서 찍은 사진. 자다가 눈을 떴을 때 온통 초록만 보이는 방이라니. 이런 풍경이라면 아무 것도 안하고 방에서 책만 읽고 가도 행복할 거야. 방에 들어오자마자 가기 싫다 다음에도 여기 와야지, 여기서 일하고 싶다 살고 싶다 온갖 아무 말이 나온다.

 

 

 

짐을 풀고, 웰컴 드링크를 마시기 위해 라운지로 갔다.

라운지의 통유리 창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 사이의 연결통로들. 유리로 된 통로가 많다. 호시노 리조트는 숙박을 위한 건물 4동을 포함하여 레스토랑 20여곳, 액티비티 센터들까지 있는 초대형 리조트이다. 깊은 숲 속에 위치해있는데다 겨울에 워낙 눈이 많이 오기도 하고, 리조트 특성상 여러 곳으로 이동이 많은 곳이다보니 모든 건물들이 이렇게 통로로 연결되어 있는 듯 했다. 통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리조트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20분 간격으로 버스가 운행된다. 며칠동안 여유있게 머무르는 일정이 아니라면, 동선을 어느 정도 감안하고 움직이는 게 좋을 듯하다. 우리는 저녁에 비치와 기린노유를 이용할 예정이라 같은 방향의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온통 초록인 숲 속 빨간 차가 귀여워서 한 컷 .

오픈시간 전에 도착한 터라 잠시 대기하다 들어갔는데, 들어가서 보이는 레스토랑 전경이 이렇다. 

​물놀이를 갈 예정이라 고기 위주로 섭취. 육류가 전반적으로 퀄리티가 괜찮았고, 양고기 훌륭했다. 음식 퀄리티나 맛은 별 1개 반. (3개 만점기준)

 

 

잘 먹고, 다시 버스를 타고 미나미나비치(ミナミナビーチ) & 기린노유(木林の湯)로 이동. 두 시설이 한 건물에 있다. 

비치를 들어가자마자 훅 하고 덥고 습한 바람이 불어온다. 체크인 때 받았던 티켓은 입장권이자, 라커에 짐을 보관할 때 열쇠 겸 명패 역할을 한다. 사물함 위치와 번호를 외우고 가지 않으면 수백개의 사물함을 일일이 둘러보며 자기의 이름을 찾아야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일본 최대의 실내비치라는 미나미나 비치. 실제 해변처럼 물이 점점 깊어지는데, 가장 안 쪽은 수심이 1.7m 이상이라 안전바가 떠 있고, 일정시간 간격으로 파도가 친다. 따로 2-3천엔 정도 금액을 지불하면 튜브 등을 대여가 가능하다. (우린 안 빌렸지만) 


물에 들어간다고 엄청 신났는데 막상 놀기 시작하니 ​체력이 딸려 1시간도 되지 않아 기진맥진한 30대들. 아쉬운 맘에 둥둥 떠다니면서 밍기적대다 기린노유로 가기로 했다. 샤워 후 옷을 걸쳐 입은 뒤 비치 탈의실 반대편의 기린노유로 이동했다. 두 시설이 한 건물 내에 있지만, 입구가 아예 달라 비치 이용 후 옷을 다시 입고 나와야해서 두 시설을 모두 이용하는 입장이면 약간 번거로울 수는 있다. 

피크시간을 피한 탓인지 온천 탈의실 안은 크게 붐비지 않았다. 샤워실을 지나 기린노유로 나가자 어둑어둑한 밤하늘 아래, 수증기가 올라오는게 보였다. 어둡고 쌀쌀한 여름밤, 안개처럼 뿌리는 비를 맞으며 하는 온천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최소한의 조명 외에는 워낙 어두워 날씨가 맑았다면 쏟아질 듯한 별도 보이지 않을까. 가족 단위의 이용객이 많았는데, 아기들의 재잘거리는 일본어를 들으며 뜨끈한 물 속에 앉아있으니 몸도, 기분도 나른해진다. 왜 여기를 하루만 있는 걸로 했을까. 밤마다 오고 싶은 이 풍경,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나갔다. 미나미나 비치, 기린노유 모두 홈페이지 속 사진이 과장이 아니었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두고, 1층 마트에서 산 유바리멜론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당이 보충되는 느낌. 잠시 기운이 반짝하니, 방에 들어가기 전 리조트를 둘러보았다. 

 

 

 

 

비가 온 탓인지 유리복도 내는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 여름도 이렇게 서늘한데, 겨울에는 정말 추울 듯. 리조트를 포함, 전반적인 시설이 어느 정도 연식이 있는 편이지만 워낙 깔끔하게 관리를 잘 해서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둘러보면 볼 수록 마음에 쏙 드는 곳이다.    


방으로 돌아와 짐을 대충 정리하고, 내일 아침 운카이테라스( 雲海テラス)에 꼭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잠 들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 4시에 기를 쓰고 일어나 TV를 켰는데, 영어 안내가 없어 일본어랑 한자를 한참 쳐다보며 해석하는데 뭔가 불길한 예감. 혹시나 해서 로비에 전화로 확인을 해봤더니 기상 악화로 곤도라 운행 및 운카이테라스 관람은 오늘 아예 불가능이란다. 토마무에서 가장 기대했던 일정이었는데, 못 본다니 마냥 아쉽지만 날씨가,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니 별 방법이 없다. 다음에 또 오라는 거라고, 아쉬운 마음을 안고 다시 잠을 청했다.  

 


(출처 : 호시노리조트토마무) 

이 사진을 보고 토마무는 무조건 가야겠다고 해서 넣었던 거였는데, 정말 아쉬웠다. 워낙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 풍경이고, 계속 비가 오는 일정이라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결국, 이번에는 유독 날씨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다음에 분명 기회가 있을 거야. 

 


 

 

체크아웃전 마지막으로 물의 교회를 볼 예정이라, 교회가 함께 있는 레스토랑으로 이동해서 조식을 먹었다. 어딜 가나 숲이 보이는 곳. 실내에 별 다른 장식이 없어도, 통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과 숲의 풍경만으로도 레스토랑이 꽉 찬다.    ​

​양식, 일식이 다양하게 있다. 털게가 유명한 곳이다보니 직원이 실제 털게 사이즈의 모형을 들고 와서 함께 사진을 찍게 해준다. 아기들이 있는 손님만 찍는 줄 알았더니 우리한테도 와서 얼떨결에 들고 찍었는데, 둘다 얼굴이 털게처럼 부어서 사진은 마음 속에만 남기는 걸로.....




밥을 먹고, 물의 교회 입구로 갔는데, 입구를 막고 있는 안내판 위 오전은 6시 반에서 7시반, 저녁은 오후 8시 반에서 9시반까지만 개방한다는 충격적인 안내문이 있었다.  전날 받은 인포메이션 지에는 입장시간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브로셔를 몇 번이고 다시 보아도, 그 어디에도 안내는 나와있지 않았다. 전날 비치를 갔다오는 길, 버스에서 거친 물의 교회에서 사람들이 대거 탑승하던 게 그제서야 생각났다. 그 때 봤어야했는데 피곤해서 바로 리조트로 갔지 아마. 

리조트 내에 있긴 하지만 단순 관광지가 아닌 실제 종교시설이고, 각종 행사에 이용되는 터라 개방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듯 했다. 운카이테라스와 함께 토마무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된 곳이었는데, 결국 여기도 못 보게 되었다. 저녁 시간 외 별 언급이 없길래 편하게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미리 확인 해볼 걸, 이건 날씨랑 상관없는 건데. 운카이테라스도 못 본 터라 아쉬움이 더 크다.  

(사진출처 : news1 뉴스)


사진들을 보니 밤에 오면 더 멋진 곳일 것 같았다. 혹시나 싶어 조금이라도 보일까, 이 곳 저 곳으로 이동해서 교회 쪽을 봤는데, 아쉽게도 안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 또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뗀다. 소화도 시킬 겸, 통로로 이동해서 리조트로 되돌아갔다.

 

​통로 밖은 정말 온통 초록의 향연. 숲을 보면서 걷자니 아침의 아쉬움이 조금은 풀린다. 방으로 들어가 짐을 챙겨 나와, 체크아웃을 하고, 렌트카를 빌렸다. 리조트 1층 내에서 렌트카를 대여할 수가 있다. 몇 가지 사항을 체크한 후 직원이 직접 따라나와 차를 보여주고, 지도도 챙겨주고, 네비게이션을 한국어로 세팅해주고 갔다. 문득, 작년 남프랑스 여행에서 렌트카를 빌렸던 기억이 났는데, 참 여러 모로 비교되는 친절함이랄까......


떠나기 전, 주차장 바로 앞에 GAO outdoor center 가 있어 한 번 둘러보았다. 

골프 치기 참 좋겠군요. 다음에 올 때는 골프를 배워서 와야겠다. 



양떼 목장 주위의 무지개색 해먹. 



말이나 양, 염소 등의 동물을 가까이서 볼 수가 있다. 아기가 있다면 추천하고 싶은 곳. 

 


다음에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 가득 토마무를 떠나 후라노로 향한다. 








Posted by kirindari
Stranger/'18 北海道2018. 9. 27. 12:33


도착 이후 가장 큰 미션 중 하나였던 레일패스 구매를 마친 후 한결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삿포로행 기차에 올랐다. 좌석을 확인한 후 짐을 한 켠에 밀어두고 자리에 앉아 둘러본 기차 안은 좌석이며 객실 출입구 위 전광판 등 전반적인 모양새가 한국의 SRT와 굉장히 비슷하다. 옆자리에 앉은 일본인 승객이 앞좌석 헤드 뒷판에 붙어있는 플라스틱 포켓에 자신의 종이티켓을 꽂는 걸 보고, 나도 익숙한 일인 척 레일 패스에 끼워둔 삿포로행 기차표를 꺼내 꽂는다. 속으로는 오~신기하다~라고 생각하면서. 이 기차에 처음 타서 낯설고 어색하다는 걸 티내기 민망할 정도로 기차 안은 굉장히 조용했다. 공공장소에서의 예절을 이야기할 때 항상 일본을 선례로 드는 것이 이해가 가는 조용함이다. 통화를 하기 위해 전화기를 들고 조심스레 객실을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일본을 왜 선진국이라고 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조용한 객차 안에 소리가 나는 건, 일본어-영어 순으로 나오는 안내방송이 나올 때 혹은 누군가 기침을 할 때 뿐이다. 매 역에 정차하고, 다시 떠날 때마다 앞으로 어떤 어떤 역이 남아있는지 안내가 흘러나왔다. 


 이번 여행의 첫 방문지는 삿포로로 기차의 종착역이기도 했다. 여행책자 속, 북해도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라는 소개가 허풍이 아닌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30여분을 달려, 고층 건물들이 점차 빼곡해지는 느낌이 들 때 즈음, 삿포로에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에서 느껴지는 대도시의 느낌은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차가 멈추자, 빈 좌석이 거의 없이 빼곡히 앉아있던 승객들이 우르르 내렸다.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구글맵을 열고, 두 눈은 출구를 찾느라 낯선 언어 속 안내판을 연신 살핀다. 승강장을 나와 개찰구를 통과하니 온통 매장이 줄지어 있는 삿포로역은 곳곳이 커다란 쇼핑몰 여러 개와 연결되는 구조였다. 퇴근시간이 겹친 탓인지 정장 차림의 샐러리맨들까지 섞여 역 안은 상당히 북적거렸다. 깔끔하지만, 세월이 느껴지는 분위기 탓에, 삿포로역은 살짝 바랜 용산역 같기도 했다. 


삿포로 역사를 나서기가 무섭게, 서울보다 훨씬 북쪽(위도 42도)에 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얼굴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뒤를 돌아보니 거대한 유니클로 간판이 보인다. 주변을 둘러보니 한국의 강남이나 명동 길거리에서 간판만 일본어로 바뀐 것 같은 풍경이었다. 예전에 2009 로스트 메모리즈라는, 일제 치하가 현대까지 지속되었을 때를 가정한 배경의 영화가 있었는데, 영화 초반에 나오던 서울풍경이 딱 이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닮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누가 먼저일까. 외국여행이라는 설렘을 느끼기에는 너무 친숙한 풍경이었지만, 서늘한 날씨가 이국에 도착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 같았다. 한국보다 시원해서 좋네 길거리가 깔끔하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15분 정도를 부지런히 걸어 숙소에 도착했다. 오픈한지 2년도 되지 않은 새 건물답게, 로비며, 크지 않아도 필요한 건 빠짐없이 갖춘 방은 정갈하고 깔끔해서 마음에 쏙 들었다. 가방을 열어 챙겨온 긴 옷을 몽땅 꺼내 껴입고, 혹시 몰라 우산도 챙긴 뒤 다시 숙소를 나섰다. 비행기 이륙 전 라운지에서 먹은 음식이 전부였던 터라 허기가 강하게 몰려왔다. 식당과 각종 술집이 모여있는 스스키노(すすきの, 삿포로 시내 최대 번화가) 쪽으로 가면서 중간에 TV 타워를 들르기로 했다.  


​에펠탑을 축소시켜놓은 것 같은 TV 탑은 1957년에 세워진 것으로 오후 5시부터 조명이 들어온다고 한다. 



​타워 맞은 편 쪽으로 큰 공원이 있다. 찌는 듯한 더위에서 갑자기 서늘한 곳으로 오니 분수에서 튀는 물방울도 새삼 더 차갑게 느껴진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분수 주변에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



현대화된 재래시장에 지붕을 씌워놓은 듯한 느낌. 온갖 가게가 뒤섞여있는 이런 풍경이 몇 블럭이고 이어진다.






번화가에서 한 골목만 뒤로 가도 아담한 규모의 각종 식당이며 이자카야 등이 줄지어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따뜻한 색의 조명 아래, 저마다의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집에 가기 전 술 한 잔하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앉아있는 일본의 저녁 풍경. 평범한 일상의 풍경인데도, 관광객의 마음이라 그런지 괜히 저 속에 껴서 같이 술도 한 잔 하고, 꼬치요리도 주문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골목 사이사이 곳곳에 자전거 보관소가 보인다. 삿포로 역에서 숙소로, 또 숙소에서 다시 스스키노까지 걸어오는 거리 내내 오르막도 내리막도 없어 자전거 타고 다니기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을 기웃거리며 뭘 먹을까, 고민하던 중 구글맵에 다루마라는 양갈비 집의 평가가 괜찮아 가보기로 했다. SNS,블로그 속 온갖 낚시성 광고가 판을 치지만,  구글맵은 아직 믿을 만한 정보통이다.  10여분을 더 걸어 드디어 목적지를 발견!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건물 한 바퀴를 거의 휘감듯 길게 늘어져 있는 줄에 기함했다. 일정상 양갈비를 먹을 수 있는 날이 오늘 밖에 없던 터라 그냥 줄 서자며, 일단 줄 끄트머리로 갔다. 


중간중간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그 동안의 대기경험을 총 동원, 착석까지의 예상시간을 50분으로 예상해보았다. 기다리는 중에 찾아봤더니 다루마(だるま)는 본점을 포함, 총 3곳의 매장이 있다고 한다. 다른 두 매장도 멀지는 않았지만, 어디든 대기하는 건 마찬가지였으며, 우리가 온 다루마 5.5가 가장 최근에 오픈한 곳으로 그 중 가장 큰 매장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현지인도 많이 오는 분위기라 신뢰도 가고, 아예 다른 식당을 가려고 구글맵을 열어보니 가까운 곳에 갈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결국 계속 줄을 서기로 했다. 매장 입구까지 다가가고, 이제 곧 먹겠구나 싶어 기분이 좋아지려는 찰나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밖에 서 있는 줄보다 더 많은 인원이 실내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 우리 바로 앞 일행-일본 직장인 3명-은 매장 입구에서 안을 들여다보더니 포기하고 가버리길래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좋아했는데, 지금까지 기다린 만큼-혹은 더 이상- 기다려야하는 걸 알았던 게지. 사진 속 식사하는 사람들 뒤에 보이는 인원이 모두 대기 줄이다. 뒤에서 대기하는 사람은 식사하는 사람 바로 뒤에서 갓 구워진 고기가 입에 들어가는 풍경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 이건 너무도 신박한 고문 아니냐며, 심리적 압박으로 매장을 운영하는 것 같다고 이 기묘한 대기 시스템이 참 특이하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했던 것 같다. 밖에서 기다리는 시간만큼 안에서도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중간쯤 가면 앉을 의자가 생긴다는 것. 이 기묘한-한국에서 본 적 없는- 대기는 겨울에 오는 사람들을 위한 나름의 배려이려나. 겨울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는 곳이라고 한다.  여름에도 서늘한 이 곳을, 겨울에 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온갖 궁금증이 솟는다. 





​우리도 곧 저기 앉으리라. 기다리며 미리 메뉴를 정했다. ​재미있었던 게 실내에서는 더 괴로울 줄 알았는데, 계속 고기 냄새를 맡으니 오히려 허기도 누그러지고, 곧 내 차례겠거니 싶어 의외로 덤덤해지는(?) 기분.  예상했던 대기 시간 50분은 이미 넘긴지 오래다. 일행도 없고, 핸드폰 배터리도 간당간당하다면 그 동안 살아온 인생도 되돌아 볼 만큼의 긴 시간이다. 한겨울인 1월에 떨면서 1시간을 기다렸다는 사람의 후기를 우연히 발견하고, 여름에 온 우린 양반이려니 하며 허허 웃었다. 그래도 너무 길다. 장거리를 이동한 탓에 점차 피로가 몰려왔다. 그냥 편의점 가서 라면이나 사서 숙소로 돌아갈까, 한계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낀 순간 자리가 났다.


주문을 받자마자 종업원들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빠르게 세팅을 하고, 화로 위에 조그만 양기름 덩어리를 올리고, 한 입 크기로 썰은 대파와 양파를 쏟아놓는다. 한국처럼 쟁반 하나에 주문한 고기를 모두 담아오는 게 아니라 메뉴/인수 별로 고기를 다 따로 담아서 내온다. 양이 많지 않아 4인분을 시키니 접시 4개가 쫙 깔려 약간 민망했다. 고급메뉴도 주문해봤는데, 기본이 가장 괜찮아서 결국 추가로는 기본만 더 시켰다. 쯔란 등을 제공하는 중국식 양고기 요리와 달리 간장베이스에 고춧가루 등을 섞어 찍어먹는 소스도 궁합이 좋았다.  뜨거운 양기름에 튀기듯 데워진 양파도, 대파도 고소하고 달큰한 맛이 일품. 얼핏 피클처럼 보이던, 절인양배추(기본으로 나오는데 유료임)도 잘 어울렸다.  

사실, 개인적으로 양고기보다 더 기대했던 메뉴는 바로 삿포로 클래식비어였다. 내수가 충분해서 수출하지 않기에 북해도에 와야만 먹을 수 있다는 바로 그 맥주. 그래서인지 삿포로 시내 술을 파는 곳이라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삿포로클래식비어를 마실 수 있다는 광고가 걸려있다. 막상 테이블에 앉으니 너무 피곤해서 술을 마셨다가는 뻗을 것 같아 남편 것만 시키고, 몇 모금 마셔봤는데, 결국 내 맥주도 시켰다. 삿포로하면 맥주라더니 역시. 피곤하지 않았다면, 주량만 충분했다면 몇 잔이고 마시고 갔을 것 같다. 작은 공기밥까지 시켜 함께 먹고 나니 배가 점차 불러왔다. 기다린 시간, 내 뒤에 대기자가 앉아있다는 사실을 까먹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작은 매장이었지만 환기 시스템이 잘 되어있는지 생각만큼 옷에 냄새가 많이 배지 않아서 더 좋았다. 


만족스러운 첫 식사를 잘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대욕장을 다녀온 후 기분 좋게 취침. 


 




 




Posted by kirindari
Stranger/'18 北海道2018. 9. 21. 19:14


북해도로 떠나는 아침. 출발 며칠 전부터 열어본 삿포로의 일기예보에는 비구름이 연속으로 떠 있었었고, 떠나는 날 한국의 하늘마저 잿빛으로 흐려져있었다. 반년 전 미세먼지가 심해 비행기가 지연되서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 고작 흐린 하늘만 봤을 뿐인데 괜시리 불안함이 든다. 굳이 갖다붙이면 나이값이라고 해야할지, 보고 들은 게 많아지니 예상 밖 혹은 원치 않는 상황이 닥치면 겁만 늘어간다. 어디 간다고 하면 엄마들이 하는 온갖 오지랖과 걱정이 이해가 된달까. 까짓 비행기 밀리면 밀리는 거지 뭐 큰 일 나겠냐며 가벼운 타박을 듣고, 집을 나선다. 도심공항에서 미리 출국 심사를 마치고, 짐을 부치니 손이 가벼워진 탓일까, 마음이 살짝 편해진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인천공항으로 이동한다. 



​면세점 한 번 둘러본 후 (면세점에서 아무 것도 사지 않았다. 이럴 수가) 식당을 찾았다. 시간이 애매해서 공복으로 나왔지만 1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온 탓에 선뜻 끌리는 메뉴가 없어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마티나 라운지로 갔다. 워커힐에서 관리하는 곳이라더니 라운지 내 곳곳에 로고가 보인다.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지만, 직원들이 수시로 빈 접시며 테이블을 정리하는 등의 서비스와 시설이 깔끔하고, 음식도 꽤 괜찮게 나온 편이다. 오믈렛과 컵라면 등으로 배를 채우고, 다음에도 여기 와야겠다며, 후식까지 먹고, 휴식을 취하며 2시간 정도를 보내다 시간 맞춰 나왔는데, 탑승구 앞에서는 연결문제로 이륙이 30분 정도 지연되었다는 안내가 나온다. 빗방울이 슬쩍 비치는 탓에 혹시나 했는데, 날씨 탓이 아니니 다행이다. 싶다.


비행기에 앉아 도착 예상시간을 보니 참 애매한 시간이 남았다. ​길지도, 짧지만도 않은 2시간 반 가량의 비행시간은 딱히 할 만한 게 없다. 생각해보니 그 동안 비행은 1시간 내외거나 아니면 아예 최소 5시간 이상의 장거리였고, 대개가 밤 비행기라 이륙하기 무섭게 잠들어버리거나 영화만 줄창 봤었는데, 짧은 낮비행에 대한 대비는 너무 없었던 듯하다. 잠도 오지 않고, 금방 갈 줄 알았는데 착륙까지 꽤 남은 시간에 이리 할 게 없다니, 집에서 보던 책이라도 한 권 들고 나올걸. 일어나지도 않을 쓸데 없는 오만가지 걱정은 하면서 정작 필요한 거는 늘 빼먹는 내가 새삼 우습다. 앞좌석에 꽂혀있는 면세품리스트와 잡지, 비상상황 발생시 안내도를 2번쯤 정독하고도 시간이 남아 몇 번이고 봤던 훗카이도 여행책을 (또)보며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푸른 하늘이 다시 회색 빛으로 흐려지고 구름이 자욱해지면서, 착륙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한국이라고 말해도 깜빡 속을 것 같은 풍경. 쭉 뻗은 도로에서 한국과 좌우가 바뀐 방향으로 움직이는 차를 보며 애써 일본에 도착했음을 실감하려고 노력해본다.  



도라에몽과 정복 차림의 피카츄가 맞이하는 입국장, 온갖 매장 속 사방에서 들려오는 일본어에 일본에 왔음을 재차 실감한다. 비슷한 시간대에 여기저기서 쏟아져나온 사람들로 신치토세 공항은 생각보다 꽤나 어수선하고 혼잡했다. 짐을 찾자마자 훗카이도 레일패스를 구입하기 위해 지하 1층으로 바로 이동했다. 훗카이도 레일패스는 외국인만 이용 가능한 티켓으로 정해진 일수 내에서 무한대로 기차 이용이 가능한 티켓이다. 서류에 이름과 여권번호 등을 적어내면 이를 코팅해서 뒷면에 붙여주는데, 마치 얇은 여권을 하나 더 받은 느낌이다. (5일간 이용해본 결과, 안에 티켓 등을 끼울 수 있는 조그만 포켓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우리는 총 5일 일정 중 하루는 렌트카를 이용할 계획으로 실제 이용일수는 4일 뿐이었지만, 개시날짜 기준으로 4일이면 마지막 날 이용할 수가 없었고, (다행히도) 4일권과 5일권 가격이 차이가 없어 5일권으로 구매했다. 가격은 2만 2천엔. 1일권이나 3일권도 한화 기준 10만원 대의 가격이다. 그다지 싼 가격도 아니거니와, 기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수록 이득이 많은 티켓이기에, 기차를 이용하는 외국인 관광객이라는 이유로 이 패스를 무조건 구매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을 통해 개별티켓 가격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용횟수만큼 합산해본 가격과 레일패스의 가격을 비교해서 이득이 있는 편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 듯하다. 우리는 하루 평균 1회 이상 이용하기도 했거니와 매번 티켓을 구매하는 번거로움을 원치 않았고, 개별 티켓의 합계가 패스 가격이 그닥 차이가 없어 레일패스를 구매했다. 


참고로 이번 여행에서 개별적으로 얻었던 추가팁 2가지는, 

1) 일본어 능통자가 아니고서야 매번 전광판 속 기차 안내를 찾는 것도 번거로울 수 있어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는 기차별 시간표를 미리 출력해서 가져가는 것도 하나의 팁이다. 아예 한국어로 된 웹사이트가 따로 있어 기차 이용에 관한 정보를 얻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2) 훗카이도 레일패스는 이용기간 내 원하는 표를 미리 예매하기가 단 1회 가능하다. 구매하자마자, 동선을 고려해서 배차간격이 긴 여행지로 이동할 경우가 있다면 유용할 듯하다. 우리는 익일 삿포로에서 토마무로 이동하는 표를 미리 예매했다. 




Posted by kirindari
Stranger/'18 北海道2018. 9. 21. 17:31

나의 첫 번째 일본여행은 1995년 겨울이었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또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꾹꾹 눌러담아 싸들고 간 김치통이 무거워 전철 사물함 한 켠에 두었는데, 시내 한 바퀴를 돌고 와 보니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것이, 우습게도 그 여행에서의 가장 생생한 기억이다. 그 해 여름 도쿄 지하철에 옴진리교 테러사건이 있었더랬다. 정체불명의 짐이라 테러폭발물로 의심되서 들고 갔나봐, 그렇게 생각했었다. 다들 모여가지고, 긴장해서 막 열어봤을 텐데 김치가 나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다른 데도 아니고 일본까지 와서 한국 욕 먹이는 짓 한 거 아닌가? 그런 말들을 하며 한참을 웃었다.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한 거리 풍경에 엄마가 감탄하셨던 기억이 나고, 나는 사람들이 한국사람이랑 너무 똑같이 생긴 것 같다는 소리를 했었더랬다. 우에노 동물원 입구의 커다란 사자개, 자동으로 열리던 택시문, 새마을호보다도 훨씬 빠르다던 신간센,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무릎까지 푹푹 잠겼던 그 눈더미들, 건물 전체가 얕게 반짝이던 금각사, 친구랑 현지에서 사서 쌍둥이처럼 같이 입고 다녔던 푸른 체크무늬 잠바, 그런 것들이 시간 순서 없이 뒤죽박죽 섞여 사진처럼 떠오르는 기억 속 일본, 그 곳은 나의 첫 해외여행지였다. 

그 때 이후로는 딱히 갈 일이 없었다. 그 때 여행 말에 안 좋은 일이 있기도 했었고,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되었던 것 같음) 가까우니까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이유로 늘 선택지에 들어가지도 못 했던 곳이 일본이었는데, 올해의 미친 더위에 시달린 이후 1) 서울보다 시원하고 2) 비행기로 2시간 넘지 않는 가까운 곳을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1순위가 되어버렸다. 고민하지 말고 일본이나 가자, 며 평소보다 휴가지를 일찍 정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도쿄/교토를 갈 계획이었다. 지인들의 SNS에서도 사진이 자주 올라왔고, 때 마침 TV에서도 맛집이 자주 나와서 끌렸더랬지. 낭만적이고 예쁜 카페들이며, 아기자기 잔잔한 옛거리, 뒷골목 구석구석 노포들을 둘러볼 생각에 마음이 붕 떴지만, 들뜬 마음도 잠시, 8월의 교토여행은 한 여름에 대구를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지인들은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다며 잘 생각하라는 주변의 만류가 꽤 있었더랬다. 아니나 다를까, 매일 같이 확인해본 교토의 날씨는 서울만큼이나 더워보였다. 8월 말인데 괜찮지 않으려나, 아니다, 그 때도 더우면 어쩌지. 쉽게 포기 못하고 있던 찰나, 남편이 제안해서 찾아본 북해도의 날씨는 완벽했다. 더워봐야 25를 넘지 않는온도, 여행자로서는 그야말로 최적의 날씨이다. 그렇게, 이번 여름은 북해도를 다녀왔다. 



침략을 일삼았던 역사, 섬나라가 주는 이미지 탓인지 몰라도 나는 늘, 일본이 꽤 큰 나라임을 잊고 지낸다. 특히,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았던 사실 중 하나가 북해도의 면적만도 한국의 80%에 달한다는 사실. 온천에서 요양만 하다 갈 생각이라면 모를까, 막상 찾아보니 생각보다 이동거리도 길고, 구석구석 가 볼만한 곳이 꽤 많았다. 여행 책자 속 북해도는 크게 동,서,남, 북부, 중부 5군데로 나눠서 구성이 되어 있었다. 특히 동부나 북부는 거대한 늪지와 오호츠크 해의 유빙 관찰이 가능한 지역이기도 해 방문지로서 상당히 끌리긴 했지만, 애초에 카페나 먹거리를 생각하며 교토를 가려했던 걸 감안하면 다소 생뚱 맞은 코스이기도 했고, 일본이 초행인 사람에게는 너무 이질적인 느낌이라 여행코스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사실 막상 간다고 하더라도 동부의 쿠시로 늪지는 삿포로에서 기차로만 6시간 이상 걸리는 곳이라 고작 5일 남짓의 일정에서 이동으로 하루를 소모하고 싶진 않았다. 구글맵과 여행책자 등을 참고한 끝에, 가능한 기차 이동을 하는 것을 전제로 삿포로, 토마무, 노보리베츠와 중부의 후라노/비에이를 방문하는 것으로 4박 5일의 일정이 짜여졌다.  



비교적 널럴하게 계획을 세웠다고 했지만 막상 돌아다녀보니 생각보다 일정이 아주 여유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서도 참 좋았었고, 여행이 끝나고 돌아온 뒤에는 운까지 좋은 여행이었다는 결론이 났다. 일본을 떠나는 날 아침 뉴스의 일기예보에서 태풍 북상소식이 나오길래, 태풍 피해간다며 타이밍 좋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다음 날, 그 태풍으로 일본은 쑥대밭이 되었다. 더 운이 좋았던 건 귀국한지 며칠 되지 않아 북해도를 강타한 지진이었다. 뉴스를 보며 가슴을 몇 번이나 쓸어내렸는지.  


도착한 첫날부터 흐린 날씨에 살짝 뿌리는 비까지 있어 약간 아쉬운 마음으로 시작된 여행이었지만, 결론은 대 만족. 구글맵에서 대략적인 위치만 둘러보고 비교적 랜덤으로 갔던 식당들 거의 대부분이 다시 가고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고, 숙소도 모두 마음에 쏙 들었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저녁마다 갈 수 있었던 목욕탕이었다. 노곤해진 몸을 뜨거운 물에 담그고 다리를 쭉쭉 뻗으며 긴장을 푸는 하루의 마무리를 매일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행복 중 하나였다. 한 편으로는 일본, 이라는 이름에서 그저 벚꽃과 고성, 기모노, 온천 등의 이미지로만 점철된 일본을 떠올렸던 게 아닌가 싶었다. 기차로 이동하면서 보았던 북해도-그 또한 일부일 뿐일테지만-는 그야말로 신비롭고, 광활한 대자연이 펼쳐진 곳이었다. 모노노케 히메 등의 각종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던 거대한 숲과 정령들이 이해가 되는, 유럽이나 미국의 숲과는 분명하게 다른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경들이 한참이고 펼쳐진다. 하루종일 보고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은 초록의 끝없는 풍경. 언젠가, 발이 푹푹 잠기는 눈과, 북해도의 유빙을 보게 될 날을 고대하며, 나의 첫 북해도 여행기를 기록하려 한다. 



Posted by kirind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