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nger/'18 Myanmar2018. 12. 19. 15:33

오전에 보족마켓을 둘러보고 돌아와서 샤워하고 푹 쉬었다. 이렇게 더운 곳은 생명유지를 위해서라도 낮에는 돌아다니지 않는 게 맞는 것 같다. 법으로라도 시에스타를 강제해야 할 것 같은 날씨. 올해 한국의 여름도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더웠지.

어느 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인야 호수 위로는 멋진 석양이 펼쳐진다. 저녁은 차이나타운을 방문하기로 했다. 택시로 10-15분의 거리. 어둑어둑하던 길들을 지나 저 앞에서 눈부신 조명들이 빛나는 것을 보니 야시장에 가까워진 느낌이다. 비교적 어두운 도로와 달리 시장으로 이어지는 골목들은 눈부신 조명들이 한 가득이다.



낮만큼이나 밝은 조명 아래 각종 다채로운 음식들이 입맛을 자극한다. 보족시장과는 또 다른 분위기. 좌판에서 파는 음식들도 먹음직스러워보였지만, 그래도 열대의 기후에서 섣불리 아무 거나 먹었다는 탈이 날 지도 모른다. 남편은 그래도 수도시설이 되어있는 건물 내 가게를 고집해서 여기저기 둘러보다 비교적 깔끔해보이는 가게를 골랐다. 밤시장이라 그런지 식당가의 느낌보다 술과 식사가 가능한 포차 느낌.



일단 자리를 잡으면 메뉴판을 준다. 생선구이와 각종 구이를 선택했더니, 밖의 매대로 안내한다. 손님으로 하여금 매대에 진열된 재료를 직접 고르게 한다. 재료는 그야말로 다양하다. 온갖 야채를 포함해 돼지고기, 각종 내장(미얀마에서 곱창을 볼 줄이야), 각종 소세지, 어묵류, 소고기, 닭고기, 온갖 해산물이 즐비하다. 알러지가 있는 게 아니라면 추천하고 싶은 메뉴는 새우, 생선구이, 야채다.



진짜 너무너무 친절했던 종업원. 미얀마 와서 느꼈던 특이점 중 하나가 호객행위가 소극적이라는 거였다. 손님 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태도가 대부분이었는데, 이 분은 기억 나는 게 (부담스럽지 않게) 적극적이었고, 신경써서 서비스해준다는 느낌이 좋았음. 비위를 맞춰주는 느낌보다는 싹싹하게 손님을 대접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나중에 잔돈은 다 팁으로 드림. 


진짜 충격적으로 다 맛있었다. 미얀마 음식 별로라는 거 누군가.... 처음 나왔던 구운 브로콜리에서 시작, 나오는 메뉴 하나하나 빠짐 없이 훌륭하다. 조리과정을 직접 보지는 못 했지만 맛도, 향도 영락없는 직화구이다. 특히 성인 손바닥 크기만한 타이거새우는 입 안에 넣기가 무섭게 감동이 몰려온다. 소스를 넣어 비벼먹는 볶음밥도 일품. 한국에서 이 정도로 먹으면 최소 1인당 7만원 이상 나올텐데 둘이 이렇게 배 터지게 먹고도 5만원 내외가 나온다. (술, 음료 포함해서) 미얀마 와서 먹었던 식사 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한 끼.



다시 구석구석 둘러보는 밤시장.


한국인도 많지 않고, 번화가 아니면 조명도 그리 환하지 않아 조금 무섭긴 했지만, 미얀마 밤시장은 기대 이상으로 볼 거리가 풍성했다.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유달리 깜깜한 골목을 지날 때는 불안한 느낌에 비해 비교적 안전하고, 또 조용한 분위기였다. 저녁메뉴에 감동한 남편이 연달아 맥주 2잔을 들이킨 탓에 화장실 가겠다며(ㅋㅋ) 더 오래 있지 못하고 숙소로 금방 돌아왔지만, 여러 모로 즐거운 밤이었다.



Posted by kirindari
Stranger/'18 Myanmar2018. 12. 7. 12:38


토요일 아침, 역시나 조식 부페로. 콘지가 있어 반가운 마음에 한가득 퍼왔다. 낯선 곳에서 익숙한 음식을 만나면 참 반갑다. 콘지나 누들을 먹었던 기억 때문에 지금도 불쑥불쑥 홍콩을 가고 싶을 때가 많다. 한 그릇 먹고 나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외출 준비를 했다. 


오늘은 양곤 내 최대 전통시장 중 하나라는 Bogyoke Aung San market (보족마켓)을 다녀오기로 했다. 다행히 오늘도 날씨가 좋았다. 전일 더운 날씨를 체감한 터라 해가 높아지기 전에 다녀오자며 오전에 부지런히 숙소를 나섰다. 숙소인 세도나 호텔에서 보족마켓은 택시로 15-20분 거리. 번잡한 다운타운 속 시장은 서울의 남대문 시장 초입과 꽤나 비슷한 풍경이다. 번잡스러워보이는 시장 건너편에는 커다란 현대식 건물이 있어, old market과 new market으로 나누어져 있는 듯했다. 전통시장 구경을 할 예정이라 낡아보이는 건물로 향했다. 

오전 10시도 안 된 시간인데 현지의 온도는 32도. 숨 막히는 더운 공기가 차오른다. 다행히, 습하긴 해도 우려했던 만큼 축축한 날씨는 아니었다.  한국의 여름과 비슷한 날씨랄까. 일기예보에 늘 비예보가 있었지만 실제로 비는 오지 않았다. 우리가 갔던 때가 우기를 벗어나는 시기였던 게 맞나보다.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아가씨가 귀여워 찍으려고 하는데 앵글에 남편 난입....아가씨의 양 볼에 보이는 하얀 진흙 같은 것은 '따나카'라고 부르는 것으로 햇빛에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바르는 일종의 선크림이다. 따나카 나무의 껍질을 갈아서 바른다고 하며, 눈에 띌 정도로 얼굴에 듬뿍 바르고 있다. 미얀마에서 지내는 내내 이 따나카를 바르고 있는 사람들을 굉장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족마켓에 도착한 후 처음 둘러보았던 데는 전통공예품이나 귀금속, 불교 관련 제품을 파는 곳이었다. 가격은 비싸지 않지만 퀄리티가 워낙 조악해서 막상 뭔가를 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집에 가져가면 어딘가에 처박혀서 어디 있는지도 까먹을 물건은 사가지 말자는 주의라 점점 뭔가를 사기가 쉽지 않다. 전통의상인 론지는 한국에서도 입을 수 있을 것 같아 사려고 했는데, 막상 마음에 드는 게 없어 결국 사지 못 해서 아쉽다. 그래도 뭐 어떠랴. 굳이 뭘 사지 않아도 구경하는 재미는 역시 전통시장이 최고. 

신기했던 건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호객행위가 별로 없었다. 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이다. 자존심일까, 아님 더워서 그런 걸까, 아님 낯선 이방인에 대한 경계일까. 내가 돈이 없어보여서인가 싶었는데, 둘러보니 다른 관광객들도 비슷해보였다. 이방인에 치일 대로 치인 관광지 특유의 과도한 친절함이 없어 부담도 없고, 마음이 편했다.   


사실 이 날 여기서 가장 충격이었던 건 이 시장에서 본 웬 백인아저씨였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겠지만, 나는 여행지에서 풍경이나 인물을 찍을 때는 피사체(특히 사람일 경우)에게는 최대한 불편함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찍는 편이다. 만약 찍는 걸 불편해하면 당연히 찍지 않는 거고. 그런데 어디서 왔는지 심히 궁금한 그 백인은,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후레쉬를 있는 대로 팡팡 터뜨려가며 포즈까지 요구해서 사진을 찍고는 '내가 친히 네 사진을 찍어주셨다'는 태도로 어깨 한번 들썩하더니 휙 가버리면서 계속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어대더라. 찍힌 사람들도, 그 광경을 옆에서 보는 나도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어쩜 저렇게 무례할까. 매번 돈이라도 줄 수는 없어도 최소한 고맙다는 의사 표시라도 해야되는 거 아닌가....제 3자인 내가 기분이 나쁠 정도로 싸가지 없는 태도였다. 옆에서 보던 남편조차 필리핀이었으면 저러다 총 맞을 것 같다는 소리까지 함...-_-;;


1시간 정도 시장 둘러보니 더위가 찾아와 카페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씩 하면서 땀도 식히고, 다시 OUT. 건너편 길거리 좌판이 깔린 시장으로 가보기로 했다. 건너편에는 주로 식재료나 음식을 파는 분위기.  


발목이 묶인 장닭. 당황스럽게도 전자제품 수리점 앞에 묶여 있었다. 애완용인가 싶기도 하고....


서울역큼이나 징그럽게 많던 비둘기들. 길을 건너기 직전 족히 수백마리는 되어보이던 비둘기가 일제히 날아오르길래 불안불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비둘기 똥을 맞는 참사가 발생함....-_-;;;;; 그나마 다행인게 팔로 떨어졌다. 양곤 시내에 울려퍼지던 남편의 비명을 잊을 수 없음.......참고로 뒤에 보이는 건물은 술레 파고다. 전일 슈웨다곤 파고다를 본 터라 딱히 사원에 대한 아쉬움은 없어 지나가면서만 봤다. 똥 맞았으니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애써 위로하고, 갖고 있던 생수와 물티슈를 동원해서 해결하고, 다시 부지런히 이동. 점심을 먹으러 갑니다. 


하얗게 빛나는 양곤 시청사를 지나갑니다. 구경할 수 있으면 들어가볼까 싶었는데 뭔가 조용하더라. 주말 공공기관 휴무는 만국 공통의 진리인 듯...이 날은 양곤에 와서 처음 횡단보도를 본 날이기도 했다. 우리가 묵었던 세도나 호텔 주변에서는 눈 씻고 봐도 없던 횡단보도였는데,  다운타운 쪽에서는 자주 볼 수 있었고, 무단횡단도 비교적 적었던 듯하다. 



남펴니가 찾아낸 999 SHAN Noodle shop.  

식당에 도착하니 가슴까지 흐르는 땀이 느껴진다. 시원한 물냉면이 간절한 순간. 하지만 미얀마 시장에 냉면은 없겠지. 뜨끈한 국물을 들이킬 자신이 도저히 없어 메뉴를 열심히 읽은 뒤 비빔국수를 주문했다. 나름 유명한 집인지 식당 안에 빈 자리는 거의 없었다.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니 국수가 나왔다. 얇게 깔린 소스에 익숙한 비쥬얼의 고명이 올라간 모양새는 집에서 엄마가 해줄 것 같은 모양이다. 얼핏 보면 김치 같아보이는 반찬들도. 이 사진 한 장만 놓고 보면 미얀마라고 누가 생각할까 싶을 정도다. 양도 별로 없고, 비빔국수가 뭐 뻔하겠지 싶어 큰 기대 없이 한 입 넣자, 입안 가득 피쉬소스의 짭쪼름함과 식초의 시큼함이 퍼진다. 더위로 땀을 한 바가지 흘린 탓에 입맛이 없어 잘 먹히려나 싶었는데, 상큼한 소스 향에 식욕도 되살아나고 정신없이 술술 넘어간다.  

매장 안에서 선풍기 여러 대가 쉴 새없이 돌아갔지만 전혀 시원하지 않았다. 스프라이트는 얼음을 주지 않기도 했지만, 냉장고에서 꺼내온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시원하지도 않았거니와, 탄산이 적었다. 더운 곳이라 그런지 한국에서 마셨던 것처럼 탄산 특유의 톡 쏘는 느낌이 강하지 않다. 아쉬운 마음에 바로 짜서 주는 라임쥬스를 하나 더 시켜서 정신없이 들이키니 갈증도 가라앉았다.  


나오자마자 운 좋게 택시가 있어 바로 타고 일단 호텔로 귀가. 이 날 확실히 얻은 교훈은 더운 나라 여행에서는 부지런해야 하나라도 더 즐겁게 볼 수 있다는 거였다. 며칠 스쳐가는 관광객 입장에서야 더워서 땀 한 바가지 흘린 하루였다는 에피소드 정도로 남을 시장 구경이었지만, 이 더위에 부대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음을 깨달은 일정이었다. 이방인에게나 열대의 빛나는 태양일 뿐, 냉방시설도 열악한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견디고 버텨야할 더위라는 것을. 시장에서 보았던 현지사람들의 표정이 대부분 밝지 않았던 것도 이해가 된다.  한국에 태어난 사실에 새삼 감사하며 호텔로 돌아왔다.   


Posted by kirindari
Stranger/'18 Myanmar2018. 11. 20. 13:35

 미얀마에서의 첫 아침이 밝았다. 방에서 보이는 인야호수의 아침. 



대충 씻고 아침을 먹기 위해 1층 부페로 갔다. 더운 나라라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지 이 곳은 무려 오전 5시 반부터 조식부페를 이용할 수 있다. 그 시간부터 손님을 맞으려면 도대체 몇 시부터 나와서 준비를 해야되는 걸까. 그렇다고 밤 8시만 되면 불이 꺼지는 동네도 아니다. 비교적 하루를 빨리 시작하는 병원라이프에 익숙한 나에게도 잠 한 모금이 아쉬운 시간대다. 아침잠 많은 나로서는 더운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 싶다. 


조식부페는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다. 주방에서 직접 바로 만들어주는 쌀국수며 오믈렛도 좋았고, 홍콩 이후 오랜만에 본 콘지도 반가웠다. 다만 망고를 원 없이 퍼먹을 기대로 갔던 과일코너는 종류도 적고, 수박 외에 딱히 맛있지 않아 아쉬웠달까. 미얀마에서도 귀한 과일인가보다.  든든하게 먹고, 남편은 학회로, 나는 우선 소화도 시킬 겸 방으로 올라갔다.  

혼자라도 수영장을 가야하나 고민을 했는데, 오후에는 비 예보가 있어 오전이 아니면 수영장 이용이 힘들 것 같아 방을 나섰다. 호텔 냉방이 워낙 잘 되어있어 실내가 늘 서늘했던 탓에 밖의 날씨는 직접 나가지 않으면 체감이 되지 않는다. 가운을 입고 덜덜 떨면서 수영장으로 향했다. 야외로 통하는 유리문을 열기가 무섭게 뜨거운 공기가 훅 들어온다. 썬베드에 주섬주섬 짐을 놓고 앉으니 그 새 땀이 나서 가운을 벗지 않을 수가 없다. 오전 10시도 안 된 시간이었지만 핸드폰으로 확인한 기온은 33도. 뜨끈한 바람을 맞으며 썬베드에 늘어져있자니 천국이 따로 없다. 평일이라 그런지 수영장 이용객은 나 뿐이라 조금 민망했지만, 뭐 어때. 전세낸 기분으로 책도 보다가 더워지면 수영도 했다가 하며 맘껏 호사를 누렸다. 1시간 정도 혼자 놀고 있으려니 남편도 오전에 강의 몇개 듣고 오늘은 들을 만한 강의가 더 없다며 수영장으로 아웃. 역시 호캉스가 최고다. 




수영장에서 원 없이 늘어져 쉬다보니 어느 덧 점심시간. 그래도 미얀마까지 와서 수영만 하다 갈 수는 없지. 양곤 내에서 가장 큰 사원인 슈웨다곤 파고다를 가기로 했다. 호텔 로비에서 택시를 타고 가니 6000짯을 달라고 한다. (**미얀마는 택시미터기가 없고,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해서 요금을 미리 정하고 간다)
 
그리고 이 날 나의 엄청난 실수, 오전에 호텔 은행에서 미얀마 현지 화폐로 환전한 돈을 몽땅 방에 두고 온 것을 사원에 도착해서 지갑을 열고 나서야 발견한 것...... 달러화가 있어서 이걸로 할까 하다가 택시비는 둘째치더라도 사원도 그렇고 돈을 더 써야되는 상황일 수도 있는데, 달러가 통용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카드는 기대도 하면 안됨) 눈물을 머금고 호텔로 다시 돌아가는 대 참사가 발생해부렀다. 남편은 어이없어 웃었지만 내가 너무 미안해서 사과를 한 100번쯤 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기사님은 이해가 안 되서 호텔 다시 가는 이유를 한 3번쯤 다시 물어보심... 그래서 이미 사원가는데 원래 택시비의 3배인 만 8천짯을 들였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 암튼 이 난리를 치고, 사원 근처에 도착했다. 사원에 들어가기 전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남펴니가 찾은 인근 식당을 들렀다. 


이 식당은 view가 다 했음...

사진과 영어설명을 참조, 무난해보이는 볶음밥과 후추생선요리로 주문했다. 방콕에서도 느꼈지만, 동남아 요리의 향신료 마법을 다시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식사였다. 새우젓 같은 투명한 소스를 볶음밥에 비벼 먹으면 맛이 신기할 정도로 변한다. 먹는 내내 감탄하며 저 소스를 한 3번쯤 리필했더랬다. 

처음으로 호텔 밖에서 먹는 식사였는데, 이 식사를 기점으로 이후 미얀마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늘 친절 포인트가 한국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손님의 비위를 맞춰주는 한국식 서비스가 아니라 '우리집에 온 손님을 신경써서 챙긴다'는 느낌의 친절함이랄까. 캔음료를 시키면 휴지로 입을 대는 부위를 다 일일이 닦아서 내오고, 휴지를 하나하나 접어서 손님이 편하게 쓸 수 있도록 세팅하는 느낌. 뭔가 아기가 된 기분이 들어 살짝 오그라들기도 했지만 받아본 적 없는 서비스라 신선했다. 


파고다로 향하는 길에 만난 개들. 양곤에서는 곳곳-사람 많은 곳-에서 커다란 떠돌이 개를 쉽게 볼 수 있는데, 말랐고, 다리가 유달리 길다. 더운 곳이다보니 지열을 조금이라도 덜 받는, 다리 긴 녀석들만 살아남았나 싶기도 하고. 덩치에 비해 신기할 정도로 순하고, 정말 위험해보이는 도로 한복판에서도 늘어지게 잘 자고 있다. 


양곤 한복판에서 만난 경기도 버스, 그리고 꽤나 불편해보이는 좁은 블럭 위에 무심하게 손자를 안고 있는 할머니.

 

화려하고 복잡한 문양의 장식의 파고다입구. 파고다 입구는 동서남북 크게 4군데다. 파고다 안은 무조건 맨발(양말 착용도 불가)로 다녀야하기 때문에 입구에서 비닐봉지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비닐봉지를 받으면 뭔가로 돈이 뜯긴다고 한다. 비닐봉지를 미리 챙겨가던지, 아니면 불편함을 감수하고 내내 들고 다니는 방법 뿐. 

참고로 사원 입장시에는 끈나시, 짧은 치마, 바지도 안 된다. 이 날은 사원을 가는 터라 미리 반팔 위의 긴 셔츠에, 긴 바지를 입고 가긴 했다만서도, 이후에도 결국, 미얀마에서 지내는 내내 반바지는 한 번도 입지 못 했다. 왜냐면 시내도 그렇고 양곤 곳곳 어디에서도 어깨나 무릎 위가 노출되는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 남자들도 론지(Longi)라는, 긴 치마 비슷한 전통복장을 입고 다니는 등 전반적으로 노출이 없는 분위기다. 



긴 통로와 계단이 반복되는 구간을 10분 이상 지나야한다. 안에는 불교나 사원 관련한 기념품이니 전통의상등을 판매하고 있다. 체감상 건물 3층 정도의 높이를 오르고 나니 사원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매표소가 보인다. 일인당 만짯씩 내면 스티커(입장표)를 주는데 옷 위에 붙이고 가면 된다. 




어두컴컴한 실내복도를 나가기가 무섭게 탁 트인 환한 하늘 하래 금색의 탑들이 아찔할 정도로 가득하다. 비밀스럽고 긴 동굴을 빠져나와서 마주친 황금의 사원. 편평하고 넓은 바닥에는 하얀 대리석이 깔려있고, 눈부신 황금빛 위에 온갖 화려한 보석장식이 박혀있는 수백 수천개의 탑이 빼곡하게 서 있다. 그 옛날 마야를 발견한 유럽인들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의 눈에도 신기하고 경이로운 풍경이다. 

미얀마의 최대성지라는 슈웨다곤 파고다(Shwedagon pagoda). 미얀마어로 '쉐'는 황금, '다곤'은 언덕이라는 뜻이란다. 명성에 걸맞게 사원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외국인들도 많았지만, 현지인들의 비율이 좀 더 많아보였다.  



보수 중이라 덮혀있긴 하지만 이 탑이 이 사원의 핵심이다. 이 사원의 이름이기도 한 쉐다곤이 바로 이 탑이다. 현재 높이는 99.4m, 둘레는 446m로 저 위를 둘러싼 금빛은 진짜로 순금이다. 구름 사이 잠시 해가 나온 순간, 수백 개의 탑 중 단연 압도적인 빛을 내뿜는다. 확실히 주변의 다른 탑들과 때깔이 다르다.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황금의 빛깔, 다이아몬드 류의 보석이 주는 광채와 다르다. 금색이 화려하지만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금빛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거였구나. 왜 그토록 사람들이 황금에 매혹되고, 연금술에 매달렸는지 이해되는 순간.   

처음 이 탑이 세워질 당시의 높이는 16m였다고 한다. 하지만 15세기 신소부 여왕이 40kg의 금을 보시하고, 탑을 장식하면서 높이가 점차 올라가기 시작했고, 이후 후대의 왕들과 일반인들도 금을 보시하여 오늘날의 이 탑이 된 것이라고. 현재 총 기증된 금만 6만kg, 꼭대기는 73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있고 주변에도 수백 수천개의 보석이 치장되어 있으며 지금도 계속 금판을 덮어나가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이 곳은 유일하게 부처 생전에 지어진 파고다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도 한다. (출처 프렌즈미얀마)



쉐다곤 주위로 태어난 요일 별로 관욕식 불상이 되어있고, 사람들은 이에 맞춰 세욕식을 하며 기도를 드린다. 관욕식을 하려면 자신의 탄생요일에 맞는 관욕식 불상이 어떤 건지 미리 알고 가야한다. 

부처님 뒤의 후광에 현란한 LED로 되어있는 장식에 다소 경악. 



아찔할 정도로 화려한 곳이지만 곳곳에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 사원을 한 바퀴 돌다보니 마음이 차분해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덥긴 더웠다. 그나마 햇빛이 많이 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다 둘러보고 나니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들어왔던 남문으로 다시 나와서 신발을 신으려고 보니 발바닥이 온통 새까맣게 변해있었다. 물티슈를 챙겨와서 다행이었다. 양 발을 깨끗이 다 닦고나니 물티슈 뭉치가 훅 줄어든다. 잊지말자. 미얀마 사원 방문의 필수품 3가지 생수, 물티슈, 신발을 넣을 비닐봉지. 
 


사원 입구에서 택시를 잡아 숙소로 향했다. 가는 길 구석구석 스냅.



방에 잠시 널부러져 있다 건너편 미얀마 플라자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방에서 나가기 전 인야호수의 석양.


플라자 4층에서 가장 인기 많아보이던 집 Hot pot. 파는 음식은 샤브샤브 비슷한 메뉴다. 입구의 냉장고에서 원하는 재료를 집으면 서버가 테이블로 재료들을 옮겨준다. 원하는 국물을 선택하고, 재료를 넣어 끓여먹으면 된다. 미얀마 음식 맛 없다더니 누가 한 얘긴지. 이렇게 미얀마에서의 둘째 날이 지나간다. 





Posted by kirindari
Stranger/'18 Myanmar2018. 11. 13. 14:07

한국에서 미얀마로 가는 비행기는 직항이 거의 없고, 있다해도 일정상 직항을 이용할 수 없어 타이항공을 이용, 방콕을 경유해서 가는 코스로 가게 되었다. 비행시간만 해도 거의 7시간 정도. 트랜스퍼 대기 시간이 여유가 있기도 했고, 때마침 저녁 시간이라 허기가 져서 태국 현지 요리나 먹어보자며 탑승장 근처의 한 식당에 입장. 낯선 언어가 가득한 메뉴들 속에서 뭘 주문해야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고민하다 영어설명을 참고, 무난해보이는 사진으로 골라 메뉴 2개를 주문했다. 결과는 대만족. 

몇달 전 백종원 씨가 나오는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주로 아시아 국가를 방문해서 현지 길거리 음식을 먹는 일종의 다큐멘터리(?)였는데, 태국편에서 쌀국수 등에 향신료를 넣어서 전후를 비교하는 내용이 있었고, 그 방송에서 본 기억과 비슷한 모양새의 향신료들이 함께 나왔다. 주문한 국수와 함께 알 수 없는 소스가 담긴 4개의 작은 유리컵들이 같이 나오는데 병에 붙어있는 라벨도 없고, 서빙하는 직원도 아무런 설명이 없다. 뭔지 몰라 하나하나 냄새도 맡아보고 콩알만큼 덜어서 맛도 보니 액젓, 식초와 비슷한 것이 생소하거나 크게 특별한 건 없었다. 방송을 본 바로는 향신료를 넣기 전후가 다르다고 해서 맛 차이가 날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을 했었지만, 소스가 생각보다 무난해서 차이가 나봤자 얼마나 나겠어 싶었건만 직접 넣어서 먹어보니 맛이 기가 막힐 정도로 달라진다. 평범한 메뉴에 더해진 소스 몇 방울에 음식의 풍미가 확 달라지는 마술 같은 경험. 배가 부르니 기분도 좋아지고, 지쳐있던 마음도 갑자기 설레기 시작했다. 뭐니뭐니해도 여행의 묘미는 맛있는 음식이다.  


해질녘에 출발하는 비행기 덕분에 만나본 방콕의 노을. 황홀한 핑크빛의 하늘을 날아 다시 양곤으로 향한다. 태국과 미얀마는 비행거리로 1시간 정도. 도착해서 핸드폰을 켜니 양곤은 거의 밤 9시가 다 되어있었다. 미얀마는 한국보다 2시간 반이 느리다. 한국 시간으로는 밤 11시가 다 되는 시간이라 그런지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입국심사를 통과하자마자 로비에서 택시를 바로 잡고, 바로 숙소로 향했다. 체크인하고 짐 내려놓고 정신 차려보니 이래저래 밤 10시가 다 되어간다. 방콕에서 미리 밥 먹고 오기 잘했다 싶다.




이동으로 하루를 거의 다 보낸 탓에 피곤하기는 했지만 여행 첫 날인데 바로 자기도 아깝고, 저녁도 소화되었을 타이밍이라 간식거리나 사오자며 호텔을 나섰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은 양곤의 세도나 호텔로, 인야 호수가 전경으로 내려다보이고 바로 맞은 편 미얀마 플라자가 있어 위치가 좋다는 평가를 봤었더랬다. 쇼핑몰은 기대 이상으로 컸다. 늦은 시간이라 웬만한 매장은 닫혀있고, 건물 1층에 한참 영업 중인 펍이 있어 들어갔는데 나름 힙플레이스인지 꽤나 잘 차려입은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연인끼리 친구끼리 모여 맥주를 마시며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는 풍경이고, 큰 화면에서는 축구 중계가 나오는 것이 서울의 밤거리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늦은 시간이라 많이 먹기는 부담스러워 허기만 채우자 싶어 닭꼬치와 음료를 시켰다. 카레향이 나게 구운 닭꼬치였는데 같이 나온 고수잎을 조금씩 뜯어 함께 먹으니 풍미가 괜찮았다. 절반 이상 먹다가 발견한 것은 닭꼬치마다 닭털의 흔적이 있다는 것...닭털 뽑으면서 먹는 건 또 처음.


닭꼬치 먹고, 바로 들어가기 아쉬운  마음에 호텔 바로 맞은 편의 인야호수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거대한 인공호수라던데, 한강 고수부지 같기도 하고, 광안리 해변 같기도 하다. 핸드폰으로 확인한 날씨는 30도에 육박하는 기온이었지만 늦은 밤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덥지 않아 돌아다니기에 부담이 없었다. 사방에서 폭죽이 터지고, 가족끼리 연인끼리 조그만 돗자리를 깔고 나와 웃고 이야기한다. 어둑한 밤, 낯선 곳임에도 불구하고 위협적인 느낌은 없고 평화로운 분위기에 마음이 놓였다. 미얀마에서의 첫날밤이 이렇게 지나간다.






Posted by kirindari
Stranger/'18 Myanmar2018. 11. 8. 21:21



당분간 없을 여유로운 시기와 남편의 학회 기간이 운 좋게 겹쳐 지난 5일간 미얀마를 다녀왔다. 학회 장소는 미얀마 양곤. 미얀마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건 옛 이름인 버마와 아웅산 수지여사, 그리고 30여년 전의 테러사건이 전부였다. 아득하게 먼 유럽이나 미국보다는 훨씬 가까운 곳이건만 꽤나 미지의 나라인 곳. 인터넷으로 이런 저런 정보를 찾아보았지만,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등의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달리 몇몇 여행사 광고글 혹은 짧은 여행기 외에는 건질 만한 내용이 그닥 많지 않았다. 서점에서 여행책자도 사서 보고, 때 마침 TV 등에서 해준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정보들 중 그나마 기억에 남았던 건 불교국가라는 것, 그리고 음식은 딱히 맛있는 게 없다는 내용과 현찰이 구겨져있으면 실제보다 가치를 낮게 쳐준다는 신기한 정보가 다였다. 


한국은 이미 패딩을 입고 다니는 이 시점에 갑작스럽게 30도를 웃도는 곳으로 가려니 여름 옷만 챙겨가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미리 확인해본 양곤의 일기예보에는 온통 구름 아니면 비 투성이었다. 추가로 찾아본 정보에서는 우기가 10월까지라는 곳도 있었고, 11월까지라는 곳도 있고 말이 조금씩 다 달랐다. 도대체 건기라는 건지 우기라는 건지. 수년 전 세부에 갔다가 순식간에 도로가 잠길 정도로 쏟아지던 비가 생각났다. 장화라도 챙겨가야하나. 우기인지 건기인지 확신도 없는 시점에 어디선가는 미얀마의 건기는 밤이 추워서 얇은 패딩을 입어야되다는 얘기도 있고. 도무지 옷을 어떻게 가져가야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모르면 다 챙겨가고 봐야지 싶어 결국 짦은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옷이며 신발이며 바리바리 많이도 챙겼다. 음식이 그냥저냥이라는 이야기에 혹시? 싶어 생전 안 싸던 컵라면에 참치캔까지 챙겼고, 빵빵하게 터질 듯한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았던 사실 중 하나가 미얀마는 동남아에서 가장 큰 국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비자가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니와 정치적 상황 등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아직은 낯선 곳 중 하나. 여행을 다녀와서 뒤늦게 알게 된 내용이었지만 올해 10월부터 무비자가 되었다고 한다. 로비 윌리엄스의 노래이자 대한항공 광고의 BGM으로도 유명했던 The Road to Mandalay, 그 만달레이도 바로 미얀마에 있다. 그런데 알아봤더니 양곤에서 만달레이로는 버스로 8-9시간이 걸린다. 미얀마에 간다면 꼭 가볼만한 곳이라는 바간도 거리는 마찬가지. 꽤나 폐쇄적인 국가라 2018년 현재에도 외국인이 방문할 수 있는 지역이 제한적이다. 결국 이런 저런 이유로 양곤에서만 4박 5일을 보내게 되었다. 


그래도 결론부터 말하면 대만족. 최근 몇 년간 갔던 여행을 통틀어 가장 좋았다. 언어도, 문자는 낯설기 그지 없었다. 4-5성급의 호텔과 호텔 밖의 세상은 그야말로 천지 차이였다. 호텔 바로 앞 도로를 포함해 양곤 시내 도로에서는 횡단보도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한국이나 일본의 도로를 달렸던 오래된 버스가 달린다. 미얀마의 사원 앞에서 압구정이 표시된 서울시내의 파란버스를 마주쳤을 때의 그 황당함이란. 정신없는 길 위로 사람들은 무심하게 무단횡단을 하고 있었다. 비교적 그럴싸해보이는 카페에서 사 먹은 음료수의 빨대도 마감처리가 엉망이었고, 음식 주문을 포함해서 4박 5일동안 겪은 모든 서비스에서는 자잘한 실수가 거의 빠짐 없이 있었다. 몸으로 느껴지는 빈부격차, 확실히 잘 사는 나라는 아니다. 그럼에도 좋았던 이유가 뭐였을까. 장거리 이동도 없었고, 가서 딱히 뭔가를 해야한다는 압박 없이 실컷 쉬다 와서 그랬을까. 습하고 따뜻한 날씨도 좋았고, 별로라던 음식은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고, 무엇보다도 아직 때 묻지 않은 곳, 소위 말하는 장삿 속에 찌들지 않은 곳이라 더 좋았던 것 같다. 가장 좋았던 이유를 말하라면 전통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간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가기가 쉽지 않은 곳이지만, 꼭 언젠가 다시 가겠다고 다짐한다. 



뜬금 없지만 어쨌거나 가지 못한 만달레이에 대한 아쉬움은 노래로 대신. 다시 보니 가사도 꽤나 시 같다. 







Posted by kirind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