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nger/'18 Myanmar2018. 11. 8. 21:21



당분간 없을 여유로운 시기와 남편의 학회 기간이 운 좋게 겹쳐 지난 5일간 미얀마를 다녀왔다. 학회 장소는 미얀마 양곤. 미얀마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건 옛 이름인 버마와 아웅산 수지여사, 그리고 30여년 전의 테러사건이 전부였다. 아득하게 먼 유럽이나 미국보다는 훨씬 가까운 곳이건만 꽤나 미지의 나라인 곳. 인터넷으로 이런 저런 정보를 찾아보았지만,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등의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달리 몇몇 여행사 광고글 혹은 짧은 여행기 외에는 건질 만한 내용이 그닥 많지 않았다. 서점에서 여행책자도 사서 보고, 때 마침 TV 등에서 해준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정보들 중 그나마 기억에 남았던 건 불교국가라는 것, 그리고 음식은 딱히 맛있는 게 없다는 내용과 현찰이 구겨져있으면 실제보다 가치를 낮게 쳐준다는 신기한 정보가 다였다. 


한국은 이미 패딩을 입고 다니는 이 시점에 갑작스럽게 30도를 웃도는 곳으로 가려니 여름 옷만 챙겨가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미리 확인해본 양곤의 일기예보에는 온통 구름 아니면 비 투성이었다. 추가로 찾아본 정보에서는 우기가 10월까지라는 곳도 있었고, 11월까지라는 곳도 있고 말이 조금씩 다 달랐다. 도대체 건기라는 건지 우기라는 건지. 수년 전 세부에 갔다가 순식간에 도로가 잠길 정도로 쏟아지던 비가 생각났다. 장화라도 챙겨가야하나. 우기인지 건기인지 확신도 없는 시점에 어디선가는 미얀마의 건기는 밤이 추워서 얇은 패딩을 입어야되다는 얘기도 있고. 도무지 옷을 어떻게 가져가야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모르면 다 챙겨가고 봐야지 싶어 결국 짦은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옷이며 신발이며 바리바리 많이도 챙겼다. 음식이 그냥저냥이라는 이야기에 혹시? 싶어 생전 안 싸던 컵라면에 참치캔까지 챙겼고, 빵빵하게 터질 듯한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았던 사실 중 하나가 미얀마는 동남아에서 가장 큰 국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비자가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니와 정치적 상황 등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아직은 낯선 곳 중 하나. 여행을 다녀와서 뒤늦게 알게 된 내용이었지만 올해 10월부터 무비자가 되었다고 한다. 로비 윌리엄스의 노래이자 대한항공 광고의 BGM으로도 유명했던 The Road to Mandalay, 그 만달레이도 바로 미얀마에 있다. 그런데 알아봤더니 양곤에서 만달레이로는 버스로 8-9시간이 걸린다. 미얀마에 간다면 꼭 가볼만한 곳이라는 바간도 거리는 마찬가지. 꽤나 폐쇄적인 국가라 2018년 현재에도 외국인이 방문할 수 있는 지역이 제한적이다. 결국 이런 저런 이유로 양곤에서만 4박 5일을 보내게 되었다. 


그래도 결론부터 말하면 대만족. 최근 몇 년간 갔던 여행을 통틀어 가장 좋았다. 언어도, 문자는 낯설기 그지 없었다. 4-5성급의 호텔과 호텔 밖의 세상은 그야말로 천지 차이였다. 호텔 바로 앞 도로를 포함해 양곤 시내 도로에서는 횡단보도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한국이나 일본의 도로를 달렸던 오래된 버스가 달린다. 미얀마의 사원 앞에서 압구정이 표시된 서울시내의 파란버스를 마주쳤을 때의 그 황당함이란. 정신없는 길 위로 사람들은 무심하게 무단횡단을 하고 있었다. 비교적 그럴싸해보이는 카페에서 사 먹은 음료수의 빨대도 마감처리가 엉망이었고, 음식 주문을 포함해서 4박 5일동안 겪은 모든 서비스에서는 자잘한 실수가 거의 빠짐 없이 있었다. 몸으로 느껴지는 빈부격차, 확실히 잘 사는 나라는 아니다. 그럼에도 좋았던 이유가 뭐였을까. 장거리 이동도 없었고, 가서 딱히 뭔가를 해야한다는 압박 없이 실컷 쉬다 와서 그랬을까. 습하고 따뜻한 날씨도 좋았고, 별로라던 음식은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고, 무엇보다도 아직 때 묻지 않은 곳, 소위 말하는 장삿 속에 찌들지 않은 곳이라 더 좋았던 것 같다. 가장 좋았던 이유를 말하라면 전통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간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가기가 쉽지 않은 곳이지만, 꼭 언젠가 다시 가겠다고 다짐한다. 



뜬금 없지만 어쨌거나 가지 못한 만달레이에 대한 아쉬움은 노래로 대신. 다시 보니 가사도 꽤나 시 같다. 







Posted by kirind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