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nger/'18 Myanmar2018. 12. 7. 12:38


토요일 아침, 역시나 조식 부페로. 콘지가 있어 반가운 마음에 한가득 퍼왔다. 낯선 곳에서 익숙한 음식을 만나면 참 반갑다. 콘지나 누들을 먹었던 기억 때문에 지금도 불쑥불쑥 홍콩을 가고 싶을 때가 많다. 한 그릇 먹고 나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외출 준비를 했다. 


오늘은 양곤 내 최대 전통시장 중 하나라는 Bogyoke Aung San market (보족마켓)을 다녀오기로 했다. 다행히 오늘도 날씨가 좋았다. 전일 더운 날씨를 체감한 터라 해가 높아지기 전에 다녀오자며 오전에 부지런히 숙소를 나섰다. 숙소인 세도나 호텔에서 보족마켓은 택시로 15-20분 거리. 번잡한 다운타운 속 시장은 서울의 남대문 시장 초입과 꽤나 비슷한 풍경이다. 번잡스러워보이는 시장 건너편에는 커다란 현대식 건물이 있어, old market과 new market으로 나누어져 있는 듯했다. 전통시장 구경을 할 예정이라 낡아보이는 건물로 향했다. 

오전 10시도 안 된 시간인데 현지의 온도는 32도. 숨 막히는 더운 공기가 차오른다. 다행히, 습하긴 해도 우려했던 만큼 축축한 날씨는 아니었다.  한국의 여름과 비슷한 날씨랄까. 일기예보에 늘 비예보가 있었지만 실제로 비는 오지 않았다. 우리가 갔던 때가 우기를 벗어나는 시기였던 게 맞나보다.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아가씨가 귀여워 찍으려고 하는데 앵글에 남편 난입....아가씨의 양 볼에 보이는 하얀 진흙 같은 것은 '따나카'라고 부르는 것으로 햇빛에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바르는 일종의 선크림이다. 따나카 나무의 껍질을 갈아서 바른다고 하며, 눈에 띌 정도로 얼굴에 듬뿍 바르고 있다. 미얀마에서 지내는 내내 이 따나카를 바르고 있는 사람들을 굉장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족마켓에 도착한 후 처음 둘러보았던 데는 전통공예품이나 귀금속, 불교 관련 제품을 파는 곳이었다. 가격은 비싸지 않지만 퀄리티가 워낙 조악해서 막상 뭔가를 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집에 가져가면 어딘가에 처박혀서 어디 있는지도 까먹을 물건은 사가지 말자는 주의라 점점 뭔가를 사기가 쉽지 않다. 전통의상인 론지는 한국에서도 입을 수 있을 것 같아 사려고 했는데, 막상 마음에 드는 게 없어 결국 사지 못 해서 아쉽다. 그래도 뭐 어떠랴. 굳이 뭘 사지 않아도 구경하는 재미는 역시 전통시장이 최고. 

신기했던 건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호객행위가 별로 없었다. 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이다. 자존심일까, 아님 더워서 그런 걸까, 아님 낯선 이방인에 대한 경계일까. 내가 돈이 없어보여서인가 싶었는데, 둘러보니 다른 관광객들도 비슷해보였다. 이방인에 치일 대로 치인 관광지 특유의 과도한 친절함이 없어 부담도 없고, 마음이 편했다.   


사실 이 날 여기서 가장 충격이었던 건 이 시장에서 본 웬 백인아저씨였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겠지만, 나는 여행지에서 풍경이나 인물을 찍을 때는 피사체(특히 사람일 경우)에게는 최대한 불편함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찍는 편이다. 만약 찍는 걸 불편해하면 당연히 찍지 않는 거고. 그런데 어디서 왔는지 심히 궁금한 그 백인은,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후레쉬를 있는 대로 팡팡 터뜨려가며 포즈까지 요구해서 사진을 찍고는 '내가 친히 네 사진을 찍어주셨다'는 태도로 어깨 한번 들썩하더니 휙 가버리면서 계속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어대더라. 찍힌 사람들도, 그 광경을 옆에서 보는 나도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어쩜 저렇게 무례할까. 매번 돈이라도 줄 수는 없어도 최소한 고맙다는 의사 표시라도 해야되는 거 아닌가....제 3자인 내가 기분이 나쁠 정도로 싸가지 없는 태도였다. 옆에서 보던 남편조차 필리핀이었으면 저러다 총 맞을 것 같다는 소리까지 함...-_-;;


1시간 정도 시장 둘러보니 더위가 찾아와 카페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씩 하면서 땀도 식히고, 다시 OUT. 건너편 길거리 좌판이 깔린 시장으로 가보기로 했다. 건너편에는 주로 식재료나 음식을 파는 분위기.  


발목이 묶인 장닭. 당황스럽게도 전자제품 수리점 앞에 묶여 있었다. 애완용인가 싶기도 하고....


서울역큼이나 징그럽게 많던 비둘기들. 길을 건너기 직전 족히 수백마리는 되어보이던 비둘기가 일제히 날아오르길래 불안불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비둘기 똥을 맞는 참사가 발생함....-_-;;;;; 그나마 다행인게 팔로 떨어졌다. 양곤 시내에 울려퍼지던 남편의 비명을 잊을 수 없음.......참고로 뒤에 보이는 건물은 술레 파고다. 전일 슈웨다곤 파고다를 본 터라 딱히 사원에 대한 아쉬움은 없어 지나가면서만 봤다. 똥 맞았으니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애써 위로하고, 갖고 있던 생수와 물티슈를 동원해서 해결하고, 다시 부지런히 이동. 점심을 먹으러 갑니다. 


하얗게 빛나는 양곤 시청사를 지나갑니다. 구경할 수 있으면 들어가볼까 싶었는데 뭔가 조용하더라. 주말 공공기관 휴무는 만국 공통의 진리인 듯...이 날은 양곤에 와서 처음 횡단보도를 본 날이기도 했다. 우리가 묵었던 세도나 호텔 주변에서는 눈 씻고 봐도 없던 횡단보도였는데,  다운타운 쪽에서는 자주 볼 수 있었고, 무단횡단도 비교적 적었던 듯하다. 



남펴니가 찾아낸 999 SHAN Noodle shop.  

식당에 도착하니 가슴까지 흐르는 땀이 느껴진다. 시원한 물냉면이 간절한 순간. 하지만 미얀마 시장에 냉면은 없겠지. 뜨끈한 국물을 들이킬 자신이 도저히 없어 메뉴를 열심히 읽은 뒤 비빔국수를 주문했다. 나름 유명한 집인지 식당 안에 빈 자리는 거의 없었다.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니 국수가 나왔다. 얇게 깔린 소스에 익숙한 비쥬얼의 고명이 올라간 모양새는 집에서 엄마가 해줄 것 같은 모양이다. 얼핏 보면 김치 같아보이는 반찬들도. 이 사진 한 장만 놓고 보면 미얀마라고 누가 생각할까 싶을 정도다. 양도 별로 없고, 비빔국수가 뭐 뻔하겠지 싶어 큰 기대 없이 한 입 넣자, 입안 가득 피쉬소스의 짭쪼름함과 식초의 시큼함이 퍼진다. 더위로 땀을 한 바가지 흘린 탓에 입맛이 없어 잘 먹히려나 싶었는데, 상큼한 소스 향에 식욕도 되살아나고 정신없이 술술 넘어간다.  

매장 안에서 선풍기 여러 대가 쉴 새없이 돌아갔지만 전혀 시원하지 않았다. 스프라이트는 얼음을 주지 않기도 했지만, 냉장고에서 꺼내온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시원하지도 않았거니와, 탄산이 적었다. 더운 곳이라 그런지 한국에서 마셨던 것처럼 탄산 특유의 톡 쏘는 느낌이 강하지 않다. 아쉬운 마음에 바로 짜서 주는 라임쥬스를 하나 더 시켜서 정신없이 들이키니 갈증도 가라앉았다.  


나오자마자 운 좋게 택시가 있어 바로 타고 일단 호텔로 귀가. 이 날 확실히 얻은 교훈은 더운 나라 여행에서는 부지런해야 하나라도 더 즐겁게 볼 수 있다는 거였다. 며칠 스쳐가는 관광객 입장에서야 더워서 땀 한 바가지 흘린 하루였다는 에피소드 정도로 남을 시장 구경이었지만, 이 더위에 부대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음을 깨달은 일정이었다. 이방인에게나 열대의 빛나는 태양일 뿐, 냉방시설도 열악한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견디고 버텨야할 더위라는 것을. 시장에서 보았던 현지사람들의 표정이 대부분 밝지 않았던 것도 이해가 된다.  한국에 태어난 사실에 새삼 감사하며 호텔로 돌아왔다.   


Posted by kirind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