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각별한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2년차 호흡기 주치의 시절, 폐 조직검사를 의뢰하기 위해 꽤나 자주 찾아갔었다.
전공의 입장에서 교수는 원래 어려운 사람이지만, 타과 교수는 더 어렵다. 순전히 일적인 문제로 컨택을 하더라도 단지 그 때가 한밤중이라던가, 아니면 본인이 바쁜데 찾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만만한 전공의에게 짜증내고 신경질적으로 굴던 스텝들이 유독 많았던 그 과에서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몇 안 되는 교수님이었다.
어느 정도의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그 위치만으로도 아랫사람을 불편하게 한다고 한다. 도제식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기가 쉬워지는 그 동네에서 그 분은 아랫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를 할 줄 아는, 막상 찾아보면 드문 사람이었다. 전공의가 눈치 봐가면서 뒤에 서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멀거니 세워놨다가 20분쯤 지나고 그제서야 무슨 일이니? 하며 아는 척하는 몇 명을 겪고 나니, 먼저 아는 척 해준다던지, 안 되면 미리 no를 표시하는, 당연한 것 같지만 막상 해주는 이가 별로 없는 그 배려가, 사방에서 치이는 주치의 입장에서는 눈물나게 고마울 때가 있다. 일처리도 늘 깔끔했고 검사가 안 되면 왜 안 되는지 이유도 분명하게 이야기해주셨다. 동기들끼리도 그 분이 계셔서 너무 다행이라는 말도 자주 했었다.
3년차로 올라가기 전쯤이었나. 당분간 병가로 안 계신다는 말을 들었고, 이제 검사를 믿고 부탁할 교수님이 당분간 안 계시겠네. 아마 내년쯤에는 돌아오시려나 했다. 잘 계시리라 믿었는데, 오늘 병원에 있는 친구로부터 부고를 전해 들었다. 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랑 고작 한 살 차이라는 이야기에 속이 더 쓰리다. 부디 그 곳에서는 아픔 없이 편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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