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라이프가 마침내 끝이 났다. 2차 시험이 끝난 다음 주에 남편도 미리 휴가를 내 두었던 터라 시험 끝난 기념으로 짧게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처음에는 대만이나 후쿠오카를 갈까했는데, 뜻밖의 코로나 사태로 해외는 깔끔하게 포기. 겨울바다나 보자며 동해 쪽으로 결정했다. 10월에 도로연수 마치고 장거리를 제대로 주행한 적이 없어 여행 겸 고속도로 주행 연수차 잘 됐다 싶었는데 전날부터 엄청난 눈이 내리기 시작...결국 ktx 를 예매하고 말았다 ㅜㅜㅋㅋㅋ

대학교 1학년 MT 이후 거진 십 몇년만에 오는 듯한 청량리역. 옛날에는 뭔가 휑한 느낌이었는데 거대한 쇼핑몰이 있어 새삼 나이 실감하고...빈 속에 캐리어 끌고 오느라 어지러웠는데 잔치국수 흡입하니 조금 정신이 돌아오더라.

가는 길 절반은 터널 통과. 그래도

간만에 넓은 풍경을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설탕가루처럼 눈이 곱게 덮인 곳은 10년 전 보았던 눈 덮인 알프스만큼이나 예쁘고 아기자기한 풍경.


하늘이 흐리다 싶더니 갑자기 몰아치는 눈보라. 차 안 가져오기 잘 했다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쏟아지는 곳도 있었다. 원주와 평창까지만 해도 눈이 수북했지만 막상 강릉에 도착했을 때는 눈의 흔적조차 없어 당황하고. 호텔 도착해서 체크인까지 시간이 남아 로비에 짐 맡기고 바로 앞의 바다를 보러 나갔다.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은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 합격 확인. 발표인 2시에 접속자가 순간적으로 몰려 버퍼링 걸리는데 불안해서 미치는 줄 ㅠㅠ 웬만하면 다 붙는 시험이라지만 내과는 올해 3년제가 첫 시험을 보는 해라 응시자가 평소의 2배수가 된데다 2차에 타블렛 시험이 도입된 첫 해라 온갖 루머는 돌고, 갑자기 코로나 사태로 원래 1차 시험 종료 후 며칠 간 진행하는 2차 시험 대비 슬라이드 강의가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있었더랬다. (다들 그 강의만 들으면 2차 시험 준비는 끝이라고 했는데 -.,-) 난 그 와중에 퇴사해서 혼자 공부하려니 얼마나 쫄리던지 ㅠㅠ 어쨌거나 수험생은 이제 끝!! 남펴니가 찍은 사진을 보면 발표 전후로 표정이 다르다. 사람마음이 이렇게나 간사하다. 나도 이제 전문의 ㅜㅜ



처음 보는 높이의 엄청난 파도. 게다가 쉬지 않고 불어대는 엄청난 바람에 입이 돌아갈 것 같았지만 시원한 풍경과 파도 부서지는 풍경이 멋있어서 한참을 구경했던 것 같다.
여기서 미니스커트 입고 온갖 셀카와 sns용 영상을 찍다 갑자기 훅 밀려온 파도를 뒤집어쓴 20대 아가씨 둘을 보았지.........바다로 안 휩쓸려가서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다. (수영금지구역임) 멀리서 보면서도 파도 오는데 저래도 되나? 싶어 뭔가 불안불안했는데 역시나..(이마짚) 남편이랑 멀리서 보고 경악하며 분명 저 모습조차 태그를 달고 인스타를 들어갈 거라고 했다 ㅋㅋ 덕분에 내가 찍은 영상에 그 분들의 비명소리와 남편의 어이구!! 소리도 녹음됨 -.,- 코트에 치마에 부츠 차림이었는데 추우면 이성이 마비되는 나로서는 멋 낸다고 입어본 적이 패션이라 존경심마저 들 정도였다 ㅋㅋ 그리고 실제로 다음 날 인스타하다가 생각나서 적당한 태그쳐서 들어가봤더니 그 아가씨들 인스타가 바로 떴음.....예상대로 물에 빠지는 것까지 올렸더라...당사자들이 행복하다면야....-.,-

체크인 시간이 되서 호텔 입성. 오션뷰는 훌륭한 선택입니다. 파도소리가 쉬지 않고 계속 들리는 게 너무 좋았다.

늘어져 쉬다 저녁을 먹으러 호텔 앞 해변 쪽으로 외출.

바다에 왔음 회부터 먹어야죠. 코로나 여파인지 뭔지 손님이 우리 뿐이라 웬지 뻘쭘. 같이 주신 찬이며 된장이 너무 맛있길래 주인분께 여쭤봤더니 예상대로 직접 담그신 된장이라고. 가게 연지 40년째라며, 장류를 다 직접 담근다고 하셨다. 된장에 들기름을 뿌려 나오는 게 특이했는데 풍미가 너무 좋았음.

파도가 높아 배가 못 나간 날이라 오늘은 낚시를 못 나가셨다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양식으로. 아쉽지만 그래도 회는 역시 바닷가다.

매운탕도 맛있고. 잘 먹고 갑니다.


해 떨어지기 전 겨울바다. 해가 지니 더 추웠다.

호텔 돌아가는 길에 발견한 오징어 크기 무엇....

방에서 쉬다가 아쉬워 호텔 앞 펍에 햄버거 또 먹으러 옴. 한참 입맛이 바닥을 쳤는데 합격 확인하자마자 돼지모드 on인 나 자신 반성하자.....

소화시킬 겸 밤바다보러. 이날 유독 바람이 많이 불어 진짜 추웠다. 코 떨어지는 줄 ㅜㅜ

아침의 환상적인 일출. 하지만 사진 찍고 바로 다시 기절. 휴가는 늦잠이라며 ㅋㅋ 하지만 남편은 새벽에 아무도 없는 헬스클럽 가서 1시간을 뛰다 오심.

아침의 동해바다.

걸어걸어 근처 초당마을의 순두부 식당으로. 골목골목 옛 동네도 둘러 보고.

원래 가려던 곳이 문을 닫아 다른 곳으로 갔는데 생각보다 별로라 실망. 수요미식회에도 나온 집이라더니....다시 오면 안 갈 듯. 이번에 여행하면서 알았지만 강릉이 위치상 주말 여행객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주말은 오픈하고 월,화,수 중 휴일이 많았다. (그 와중에 우리 여행 일정은 월~수) 강릉 여행을 주초에 간다면 영업일을 미리 잘 확인해야 할듯.


구글맵에서 평가가 좋아 들렀던 kaffe Kiwa. 구석구석 빈티지한 아이템으로 가득하다. 자칫하면 엄청 조잡스러워질 인테리어를 아기자기하게 잘 해놓았더라.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살 덕에 따끈따끈해서 좋았다. 남편은 새벽 운동 여파로 책 읽다 졸기 시작 ㅋㅋㅋ 여튼 커피 마시며 책 읽고 사진 찍고 하면서 시간 때우다가 택시 타고 시장 구경하러.





여행은 어디든 가장 재밌는 것 중 하나가 시장구경인 것 같다. 한 바퀴 쭉 둘러보고 살짝 허기져서 강릉 먹거리라는 장칼국수 집으로.

신라면? 같은 느낌인데 강릉까지 와서 챙겨먹을 정도로 대단한 별미는 아닌 것 같다만 요즘 같은 물가에 단돈 3천원이라는 매력적 가격에 맛도 개운하고 양도 푸짐하니 괜찮았다. 잘 먹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한숨 자다가 저녁 먹으러 외출. 나이 들고 추우니 밖에서 3시간 돌아다니면 너무 지친다 ㅜㅜ


남펴니가 원해서 간 꼬막 비빔밥. 삼성 현백에 종종 팝업으로 들어와서 먹어봤는데 강릉 본점에 오게 될 줄이야 ㅋㅋ 인스타나 블로그에서 대기가 어마어마하다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본 터라 일찍 가도 좀 기다리겠거니 싶었는데 바로 착석. 5시 좀 넘은 이른 시간이라 그랬나 싶다. 포장해서 먹었던 것도 맛있었지만 역시나 바로 해서 나온 밥이 훨씬 맛있었다. 비수기라 그런지 코로나 탓인지 다 먹고 나가는 시간까지도 빈 자리가 제법 있었다는.


중간중간 골목 구경도 하고.


소화도 시키고 선물 받은 쿠폰처리겸 스타벅스행. 바로 앞이 바다인데 밤이라 보이지가 않네 ㅠ 차 마시면서 쉬다가 호텔로 돌아와서 수영장에서 1시간 정도 물놀이하다 옴. 8시부터 성인만 입장 가능인데 온통 20대 젊은이들뿐이라 좌절했음.....애 데리고 낮 시간에 와야겠다며 ㅜㅜ

물놀이했더니 배고파져서 또 치킨 먹고....발표 전날까지 어거지로 하루 2끼 먹었는데 발표까지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었나보다.


터미널 가기 전 마지막 해변산책. 세인트존스에서 숙박했는데 객실이 천 개가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호텔이었다. 비수기에 오니 붐비지도 않고 오션뷰로 룸을 잡으니 방에서 책 읽으면서 바다만 봐도 너무 좋았다는. 잘 쉬다 갑니다.

강릉 명물 교동짬뽕. 짬뽕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지 감동적인 맛까지는 잘 모르겠다만서도 보기만큼 맵지 않아 부담 없이 잘 먹었다.

차 시간까지 여유 있어 앞에 카페도 잠시 들르고.

야무지게 책 한 무더기를 싸갔지만 제대로 읽은 책은 한 권뿐이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으로 유명해진 김영민 교수님 책인데 강추. 제목은 비장하지만 1-2부는 보는 내내 빵빵 터짐. 기회가 되면 꼭 강의를 들어보고 싶다.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무계획으로 가서 맘 편하게 먹고 자고 잘 쉬다 와서 좋았다. 작년과 올 초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였던 전문의 시험을 무사히 넘겨서 참 다행스러운 시작이다. 다음 주부터 다시 노예로 끌려 들어가는 삶이지만 마지막을 즐겁게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하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잘 해낼 수 있게 또 최선을 다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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