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저래 못 간 겨울휴가를 3월 봄 휴가로 보상(?) 받았다. (내 잘못으로 잘린 것도 아니고 병원 사정 때문이라지만) 막상 겨울휴가 잘렸을 때는 분노와 무기력함에 어떤 위로도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막상 남들 일할 때 떠나려니 이렇게 좋을 수가. ^______________________^
원래는 요양목적의 일본 료칸 투어를 계획했으나 여수를 꼭 가고 싶다는 오마니의 의견을 따르기로 함. 용산에서 KTX를 타고 여수를 먼저 들렀다가 순천을 이동한 뒤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2박 3일 코스로 계획했다. 여행계획 짜면서 알아보니, 여수-순천, 혹은 담양-여수-순천 코스로 많이 짜는 듯하다. 매화 피는 시기에는 광양을 넣기도 하고. 차를 가져갔으면 그랬으련만 운전 계획도 없거니와 여행은 편하게 가자는 주의라 그냥 간단하게 맛있는 거 먹고 명소 한 두군데 보는 코스로.
오전 10시 기차였고, 알람을 깜박하는 바람에 8시가 넘어서 오마니 전화를 받고 일어난 내가 늦을 줄 알았으나 정작 나는 30분 전에 도착하고, 오마니가 전철을 놓치는 바람에 자칫 기차 놓칠 뻔한 아찔(-_-)한 상황이 연출되었지만 무사히 둘다 탑승. 원래 학교 앞에 사는 애가 매일 지각하는 법이다.
미세먼지로 뿌옇던 하늘은 남쪽으로 가도 큰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 곡성을 지날 때는 비가 쏟아져서 영화 생각도 나고 괜시리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다행히도 곡성을 벗어나자 비가 걷히고 조금씩 해가 비쳐오는 듯했다. 숙소 위치를 다시 검색해보니, 여수역에서는 숙소까지 택시로 30분, 그 직전 역인 여천역에서는 10분 거리인 것을 발견해서 여수 대신 여천역에서 내리기로 했다. 내리니 오후 1시, 일단 배부터 채우자며 택시기사님께 맛집 추천을 부탁 드려서 게장백반을 먹으러 갔다.
남도 한정식답게 상 가득 반찬이 깔린다. 이 집는 밥, 반찬은 무한리필. 30년동안 게장만 먹어온 저는 압니다. 게장 맛있으면 다른 반찬 다 필요없어.
여기에 굽지 않은 생김을 싸서 먹으면 바로 여기가 파라다이스 ㅠㅠ 게장이 짜지 않아 아주 만족스러웠다. 요즘 식당에서 보기 힘든 큰 밥공기를 주는데, 그 공기에 밥 2그릇 가득 채워 먹음. 나중에 주문해 먹으려고 명함까지 쟁여옴.
(식당은 여수시 꽃돌게장 1번지)
배부르게 잘 먹고, 근처 가까운데나 보자, 싶어서 여수 오동도로 향했다. 여행 준비하면서 여수 코스에서 금오도 투어를 생각했으나 일정 자체가 여유롭지 않았고, 실제 금오도를 보려면 하루 날 잡고 봐야된다는 택시기사 아저씨 말에 깔끔하게 포기. 남쪽이라 더 따뜻할 거라는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날도 흐리고 바람 때문에 어찌나 추우신지 -_- 얇은 패딩 안 가져갔으면 여수 도착해서 옷부터 살뻔..
오동도는 동백꽃이 가득한 섬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동백꽃은 생각보다 많이 피지 않았다는 게 함정. 섬은 작고 아기자기하다. 동백과 각종 나무가 가득해서 오히려 바람에 막혀 상대적으로 따뜻한 느낌. 소나무 사이로 스치는 바람 소리가 참 좋았다. 동백이 가득한 때도 좋겠지만, 여름에 와도 참 좋을 곳 같았다. 방파제로 걸어 갈 수 있는 섬이고, 걷기 힘들거나 귀찮은 이들을 위해 동백열차가 왔다갔다 한다. 육지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로, 동백열차를 타면 7분 남짓. 워낙 천천히 가서 걸어가나 열차(실은 길게 이은 버스)나 시간이 크게 차이나지는 않는다.
오동도 포토스팟. 동백꽃은 여기가 제일 많이 피어있었음.
이 날의 패션 : 바람막이, 썬그라스가 햇빛보다 바람 막는데 더 유용했던 것 같다. 머플러가 이날 최고의 아이템.
오동도 둘러보고 숙소 들어왔다가 근처 횟집에서 먹은 회덮밥 & 장어탕.
그 유명한 여수 밤바다.
숙소에서 쉬는데 귓속말이라고 새로 시작한 드라마. 무심코 켰는데 재밌길래 보다 우리병원 나와서 깜짝 놀람. 여튼 재미있게 보고 씻고 숙면.
둘째날 아침이 되었지용. 아침부터 상다리 휘는 남도정식을 먹으러 갑니다.
원래는 생태탕을 먹으려고 하였으나 2인분부터만 되고, 갈치 직접 낚시해서 잡는다며 추천하시길래 생선구이 백반을 시켰는데, 만족스러웠다.
아침부터 알차게 잘 먹고 갑니다. 이 아침의 위력은 오후 5시에 발휘됨.
오늘은 여수에서 순천으로 넘어가는 날. KTX로 10분 거리. 숙소에 먼저 들러 짐부터 맡기고, 순천만 정원으로 갔다. 원래 체크인 시간보다 3시간 이상 일찍 도착했는데 친절하게 새 방 내어주셔서 감사했다. 숙소에서 순천만 정원까지는 1km 남짓이라 택시 타느니 걷자며 슬슬 걸어서 도착.
텔레토비 동산 같기도 하고, 나선 모양의 언덕이 있다. 멀리서 보면 꼭 스톤헨지 축소해놓은 모양 같기도 하고.
입구를 지나 언덕을 넘어가면 국가정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각 국가별로 정원이 있다. 프랑스 정원, 중국정원, 독일 정원 등등. 생각보다 추운 날씨 탓이었는지 몰라도 3월 말임에도 불구하고 꽃이 만발한 풍경은 없어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아기자기 꾸며놓은 정원 보는 재미로 기웃거리며 다녔다. 비교적 내 취향이었던 건 중국정원과 중국정원 담 밖의 벚꽃들.
올해 볼 벌의 80%는 여기서 다 본 듯. 어쨌거나 벚꽃은 참 예쁘다. 나는 새해라는 느낌을 정초인사가 오고 가는 설날에 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늘 봄이 되고, 꽃이 피어야 아 정말 새로 시작하는 새해구나, 새 계절이구나, 라는 느낌을 봄이 되서야 늘 받았는데, 그 역할을 했던 것이 항상 벚꽃이었던 것 같다. 하얗게 몽글몽글 나무에 매달려있는 벚꽃은 여전히, 언제 보아도 설렌다.
2시간 정도에 걸쳐 국가정원을 둘러본 뒤 이번 여행지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순천만습지로 향했다. 꿈의 다리를 건너 모노레일 승강장으로 가면 순천만습지로 가는 모노레일을 탈 수 있다. 정원과 습지는 7km 이상 거리로, 걸어서 갈 곳은 못 된다. 차를 갖고 왔다면 따로 이동한다던지, 아니면 이 모노레일을 이용해야 한다고 한다.
귀여운 모노레일. 안에서 보면 이런 느낌이다. 승강장에서 내려오면 눈 앞에 뻘밭 위 갈대밭이 한없이 펼쳐짐.
#가을아니고봄
사진만 얼핏 보면 봄인지 가을인지 구분도 안 가지만, 갈대에게는 제철이 아닌 계절이라 그런지, 풍성한 갈대는 없고, 말라서 앙상해져있었다. 그래도 시선 고정할 곳 없이 눈 앞에 펼쳐지는 트인 풍경은 참으로 만족스러웠다. 얼마만에 보는 트인 풍경인지. 비수기에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없고, 바람에 갈대 사이로 지나가면서 들려오는 소리에 속이 다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아이폰 7 찬양. 사진 컴퓨터로 옮겨서 보는데 위화감이 없다.
카메라로 찍은 유일한 사진. 순천만전망대에 올라 찍은 사진. 날씨도 스산해서 전망대를 올라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지만, 오른 보람이 있었다. 날씨 덕에 사진은 오히려 더 잘 나온 듯.
이 날 숙소 도착하니 오후 6시. 아침을 든든히 먹은 덕에 허기 한번 못 느끼고 무려 15km를 걸었다.
숙소 근처로 돌아와서 먹은 일명 남도 정식. 간만에 홍어삼합 먹으니 코가 시원했다.
배 불리 먹고, 숙소 와서 씻고 쉬다가 숙소 근처 마사지샵 가서 오마니랑 사이좋게 발마사지 30분 받고 방에 들어와서 기절함.
마지막날. 이 날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이른 시간이라 식당도 거의 문 닫고 숙소 주변을 돌아다녀보니 오전6시부터 한다는 간판이 있길래 들어갔던 국밥집. 간만에 콩나물 국밥을 먹으니 속이 따뜻하니 좋았다.
노른자 터트려 밥이랑 국물이랑 한가득 먹고, 돌아와서 체크아웃하고, 서울행.
봄 휴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스산한 날씨가 여러 모로 아쉬운 남도 여행이었다. 차를 가져갔더라면 좀 더 멀리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 부담 없이 편하게 다닌 여행을 다녀온 것도 나름 참 좋았다. 언젠가 가을에 햇살이 따사로운 날에 갈대가 가득한 순천만에 다시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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