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내가 이런 글을 쓰게 될 줄이야. 원래 여유 있으면 미리 정리하려고 했는데 2,3월은 미친 듯이 바빴고 출산 휴가를 나온 이제서야 정리한다. 정작 출산 뒤는 시간이 더 없을 것 같아서......여튼, 임신기간 중 겪은 일들 중에 가장 예상 못 했던 것 중 하나가 임신성 당뇨를 진단 받은 거였다.
GDM (Gestational Diabetes Melitus), 임신성 당뇨를 뜻하는 말로 임신 중 발병한 당뇨로 이미 당뇨를 진단 받은 사람이 임신한 경우를 말하지는 않는다. 한 마디로 그 동안 별 문제 없이 지내다가 임신하고 나서 당뇨가 발병한 것이 확인된 경우. 임산부라면 누구나 24-28주 사이에 임신성 당뇨 검사를 받게 되어있는데, 이 때 진단을 받는 경우에 해당한다. 비록 내가 의사지만 이 글은 철저히 당뇨를 겪은 환자의 입장에서 쓴 글임.
1) 원인
: 태아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인한 인슐린 저항성에 의해 모체의 인슐린 분비가 증가해야 하는 게 정상이지만 이게 잘 되지 않는 경우 당뇨로 발병. 한국에서의 임신성 당뇨 발병율은 5% 내외로, 생각보다 빈도가 아주 낮지는 않다. 발병에 영향을 줄 수 있는 risk factor로는 가족력, 임신 전비만인 경우 (BMI 30이상), 경산부인 경우라면 4kg 이상의 거대아 출산력 혹은 예전 임신 때 GDM 진단을 받았던 기왕력, 노산 등이 있다고 한다.
나 같은 경우는 가족력, 비만 등 일반적인 risk factor에는 해당 사항이 없었던 터라 진단을 받을 거라는 생각을 1도 안 하고 있었는데 선별검사에서 걸린 거에 1차 충격 받고 확진 받은 후 하루가 좀 멍했다고 해야되나. 심지어 선별검사시에는 공복이 필요없다는 말 듣고 그날 아침도 야무지게 챙겨먹고 가고, 가는 차 안에서 사탕이니 뭐니 까먹으면서 갔던 터라 ...나중에 출근해서 그런 얘기했더니 같이 일하는 간호사 쌤들이 공복으로 갔어야지~~~라고 타박을 타박을...ㅠㅠㅋㅋ 그래서 선별은 몰라도, 확진검사는 문제 없이 통과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결국 걸리고 말았다. (-_-) risk factor를 따져보면 굳이 임신 관련 시술이나 노산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는 근거 없는 나의 생각이 있다. 시술 후 PD 를 거의 2-3달 복용했으니 그런 것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라는 내 맘대로 추측.
2) 진단
- 선별 검사: IUP 24-28주 사이에 50g 경구당부하검사를 시행하여 1시간 식후 혈당이 140이 넘는 경우 확진 검사를 시행하게 된다. 이 때 140이 넘지 않으면 통과. 140이 넘으면 확진 검사 해야 된다고 따로 연락이 온다.
- 확진 검사 : 병원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은데, 내가 다니는 병원은 75g 경구당부하검사를 했고, 100g 으로 하는 곳도 있다고.
75g OGTT (mg/dl) | 100g OGTT (mg/dl) | |
공복 | 92 | 95 |
1시간 뒤 | 180 | 180 |
2시간 뒤 | 153 | 155 |
3시간 뒤 | - | 140 |
** PK 내분비내과 실습 때 경구당부하 검사하는데 달아도 너무 달아서 먹다가 구역질이 났던 기억이 있어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그 사이 약이 좋아진 건지 아니면 따로 나오는 건지 생각보다 먹을만 했다. 레몬향, 오렌지향 같은 게 첨가되어 있어서 그런가.
3) 증상
: 당뇨는 증상이 없다는 게 가장 무서운 점이다. 단 저혈당은 체감 증상이 바로 나타난다. 임신 후기에 저혈당이 올 수 있다고 하던데, 나도 한 37주쯤엔가? 오전에 일하는 중에 갑자기 저혈당이 와서 깜짝 놀랬다. 갑자기 어지럽고 두근거리면서 식은 땀나고, 옆에서는 내 얼굴이 창백해져서 놀라고...당장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큰 일 날 것 같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혈당이 높아도 문제지만 저혈당은 의식 저하 같은 심각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저혈당을 대비해 당뇨환자라면 사탕 같은 것을 반드시 챙겨다니는 게 좋다. 회사라면 본인이 당뇨가 있음을 꼭 알리는 게 좋다고 생각.
4) 관리
: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결국 당뇨의 관건은 혈당 관리다. 목표는 공복혈당<95mg/dL, 식후 1시간은 140 미만, 식후 2시간은 120 미만으로 유지. 혈당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으면 태아 기형, 거대아, 신생아 저혈당, 신생아 호흡곤란 증후군 발생 확률이 증가하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도 소아 비만이나 대사증후군이 생길 확률이 높다고 한다. 물론 임산부에게는 임신성 고혈압, 조산 등등의 위험이 있고, 출산 후 Type 2 DM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
진단을 받게 되면 보통 내과 진료를 같이 보게 되는데, 대학병원의 경우 내분비내과로 환자가 의뢰된다. 어차피 당뇨를 진단 받은 임산부가 쓸 수 있는 약은 인슐린(주사) 뿐이다. 진단을 받았다고 무조건 인슐린 치료를 하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2-3주간 공복 및 식후 혈당을 측정하여 기본적인 혈당 패턴을 분석한다. 하루 3끼를 규칙적으로 먹는다는 전제 하에 공복, 아침/점심/저녁 식후 2시간 혈당을 측정하여 기록해가면, 그걸 바탕으로 인슐린 치료 필요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결국 혈당은 식습관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식단 조절이 필수고, 영양사를 통한 식단 교육도 함께 받는데, 막상 수업을 들어보니 영양이니 식단 등에 관해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절절하게 깨닫게 됨. 꼭 당뇨가 아니더라도 기회가 된다면 영양사를 통한 식이 교육 받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여튼, 식이 조절 및 운동 등등 온갖 비약물적 치료를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혈당이 조절되지 않는다면 인슐린 치료를 하게 되지만, 나는 그렇지는 않았다. 하루 4번 혈당을 재다보면 혈당이 언제 주로 오르는지가 보인다. 나는 공복이나 오전 식후는 거의 문제가 없었는데, 보통 점심이나 저녁 식후 혈당이 튀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1달 반 정도는 4번 체크한 이후 하루 2-3번으로 혈당 측정을 줄여도 된다는 말을 듣고 점심/저녁 식후 하루 2번씩 측정했다. 요즘은 혈당 측정기가 어플로 연동이 되어서 수첩에 매번 적지 않아도 다 저장이 되서 좋긴 하다. (물론 그래도 외래에서 선생님이 보시기 때문에 수첩은 따로 정리함)
(1) 식단 조절 - 한식의 배신
가장 환장대잔치인 부분. 특히 나처럼 먹는 게 낙인 사람들에게는 식이 제한은 정말 괴로운 일 중 하나다. 단순한 체중조절을 목표로 하는 다이어트는 어떻게 보면 옵션이지만, 당뇨와 관련된 혈당 조절은 합병증 예방 및 추후 2형 발생 예방 등 장기적인 예후와 생존 등등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고, 특히 임산부의 입장에서는 본인과 아기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빡세게 조절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힘들고 괴롭다.
기본적으로 당 조절에 있어 반드시 섭취를 줄여야 하는 식품군은 탄수화물. 매끼 밥 한 그릇씩 뚝딱 먹는 나로서는 이게 가장 고역이었다. 빵순이도 예외는 없다. 빵도 탄수화물 덩어리이기 때문. 면류는 더 위험하다. 전분이 포함된 탄수화물 폭탄이기 때문에 밥 한 그릇보다 위험한 게 라면이나 국수, 냉면. 여름에 언젠가, 별 생각 없이 백화점 갔다가 평양냉면을 주문해서 먹는데, 몇 입 먹다가 느낌이 쎄해서 검색해봤더니.........결국 반 그릇 남겼는데도 그 날 식후 2시간 혈당 140을 넘는 참사가 발생함. 내분비내과 선생님 말씀으로 당 조절에 가장 치명적인 음식들이 중국요리, 분식, 튀김, 각종 면류라고. 편의점 등에서 음식물(음료 포함)을 사게 될 때 붙어있는 영양구성표를 반드시 체크하는 습관을 들이길 바란다. 탄수화물, 당이 높은 수치로 기록되어 있으면 눈 딱 감고 스킵하는 게 가장 좋다.
기본적으로 밥은 한 공기 기준에서 1/3~1/2로 줄여야하는데, 탄수화물을 충분히 먹지 못하면 포만감이 떨어져서 뭔가를 찾게 된다. 밥을 줄이면 충분히 잘 먹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는 데다가, 당 섭취가 실제로 줄면서 예민해지는 게 느껴진다. 옆 사람한테 짜증을 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부족함을 각종 반찬으로 메꿔야한다. 물론 대체하는 반찬들이 묵이나 전류면 곤란해진다. 포만감까지 감안했을 때는 고기 반찬(불고기, 생선구이 등등)섭취가 가장 좋고, 나물이나 쌈야채 등도 추천할 만하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짜게 먹지 않는 것.
한 동안 주말에 마트 갈 때마다 각종 야채 (샐러리, 오이, 파프리카) 등을 쓸어와서 반찬에 늘 추가해서 먹었는데,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습관이 안 되 있으면 쉽지 않다. 생야채를 꾸준히 먹는 방법의 가장 큰 문제는 그걸 매번 손질해놔야 한다는 거. 한 2-3주는 그럭저럭 먹는데, 어느 순간 귀찮아지면서 자연스레 손이 안 가게 된다. 나는 그랬어...퇴근하고 오면 나도 남편도 좀비인데 매번 야채 씻고 손질하는 게 이리 귀찮을 줄이야. 세상 귀찮지만 혈당 조절에는 직방이다. 보통은 저녁 전이 가장 힘들고 배가 고프기 때문에 기다리기가 유독 힘든데, 식사 준비하면서 오이 1개나 (손질되서 파는) 샐러리 5-6조각을 미리 먹으면 어느 정도 공복감이 해소되서 밥을 덜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여러가지 식단을 시도해본 결과 혈당 관리에 있어 내가 받은 느낌은 한식의 배신이었다. 우리는 은연 중에 햄버거, 피자 등등은 몸에 좋지 않고 트랜스지방이 어쩌고...를 늘 듣고 한식이 좋다 어쩌다 했는데, 혈당을 체크해보니 전혀 (-_-) 밥은 물론이고 짠 음식은 혈당 조절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식이 기본적으로 간이 좀 되 있는 것들이 많아서....백미밥보다는 현미가 좋지 않나요 이러는데 기본적으로 밥을 한 그릇 다 먹는 건 안 된다. 잡곡밥이라고 해서 혈당이 안 오르는 게 아니라 혈당이 좀 천천히 오른다고....결국은 양을 줄이는 게 필수인데, 한식은 반찬들도 기본적으로 간이 되 있는 짠 음식들이 많아 권장이 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밥, 찌개 베이스의 한식이 생각보다 혈당 조절에 위험하다고 보면 된다.
매번 고기에 야채쌈만 먹을 수도 없고, 고민하다 찾은 것은 소위 말하는 지중해식단. 올리브오일을 베이스로 한 소스를 사용한 각종 샐러드(방울토마토, 부라타치즈 많이 먹음), 오일파스타, 그리고 생선구이(주로 연어)를 먹었는데, 이렇게 먹으면 포만감을 채우면서도 혈당이 120을 넘은 적이 없었다. 물론 이 지중해 식단도 계속 가지는 못 했다. 귀찮은 건 어쩔 수가 없다. "건강한" 한 끼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추가로 햄버거도 혈당 튄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 쉑쉑 먹고 혈당 100대 나온 거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지. 비교적 야채 위주에 기름기 덜한 서브웨이도 추천 메뉴다.
(2) 운동
운동은 필수. 솔직히 식이를 완벽하게 조절하는 건 쉽지 않다. 하루가 고되고 너무 힘들면 혈당이 오를 걸 알면서도 참을 수 없는 순간이라는 위기가 누구나 온다. 결국 마지막 한 입을 포기 못 하거나, 미친 척하고 먹은 라면은 충격적인 혈당으로 나타나 후회와 죄책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기 잘했다는 알 수 없는 희열의 양가감정을 안겨준다. 그래서 우리는 운동을 해야된다. 나는 원래 다니던 필라테스도 있었지만 매일 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기에...
임산부가 가장 부담없이 할 수 있는 운동은 결국 걷기다. 짧게는 30분에서 1시간 정도, 몸에 부담이 되는 게 아니라면 걷는 것만큼 좋은 건 없다. 날씨만 좋다면 말이다.
어제도 한동안 못 먹을 거라는 생각에 이젠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주문한 마라샹궈에 밥 2/3까지 먹은 나. 경험적으로 혈당이 높게 튈 거라 짐작하고, 남펴니와 함께 1시간을 넘게 걸었다. 집에 돌아와서 식후2시간 혈당을 재보니 114. 안 걸었으면 140은 가뿐히 넘겼겠지. 만삭이 다가오는 시점에는 걷기가 순산에도 도움이 되고, 적당한 운동 후 밤에도 비교적 푹 잘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
우선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봤다. 빼먹은 내용이나 출산 후 F/U 관련하여서는 추후에 정리하기로.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Scrap] 내향인 시대... 기쁨보다 슬픔 공부해야 (0) | 2023.02.16 |
---|---|
Feb + Mar 2021 (0) | 2021.04.06 |
Jan 2021 (0) | 2021.01.31 |
Nov+ Dec 2020 -먹는 사진만 있음 주의 (0) | 2021.01.10 |
Sep 후반 + Oct 2020 (0) | 2020.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