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도로 떠나는 아침. 출발 며칠 전부터 열어본 삿포로의 일기예보에는 비구름이 연속으로 떠 있었었고, 떠나는 날 한국의 하늘마저 잿빛으로 흐려져있었다. 반년 전 미세먼지가 심해 비행기가 지연되서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 고작 흐린 하늘만 봤을 뿐인데 괜시리 불안함이 든다. 굳이 갖다붙이면 나이값이라고 해야할지, 보고 들은 게 많아지니 예상 밖 혹은 원치 않는 상황이 닥치면 겁만 늘어간다. 어디 간다고 하면 엄마들이 하는 온갖 오지랖과 걱정이 이해가 된달까. 까짓 비행기 밀리면 밀리는 거지 뭐 큰 일 나겠냐며 가벼운 타박을 듣고, 집을 나선다. 도심공항에서 미리 출국 심사를 마치고, 짐을 부치니 손이 가벼워진 탓일까, 마음이 살짝 편해진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인천공항으로 이동한다.
면세점 한 번 둘러본 후 (면세점에서 아무 것도 사지 않았다. 이럴 수가) 식당을 찾았다. 시간이 애매해서 공복으로 나왔지만 1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온 탓에 선뜻 끌리는 메뉴가 없어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마티나 라운지로 갔다. 워커힐에서 관리하는 곳이라더니 라운지 내 곳곳에 로고가 보인다.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지만, 직원들이 수시로 빈 접시며 테이블을 정리하는 등의 서비스와 시설이 깔끔하고, 음식도 꽤 괜찮게 나온 편이다. 오믈렛과 컵라면 등으로 배를 채우고, 다음에도 여기 와야겠다며, 후식까지 먹고, 휴식을 취하며 2시간 정도를 보내다 시간 맞춰 나왔는데, 탑승구 앞에서는 연결문제로 이륙이 30분 정도 지연되었다는 안내가 나온다. 빗방울이 슬쩍 비치는 탓에 혹시나 했는데, 날씨 탓이 아니니 다행이다. 싶다.
비행기에 앉아 도착 예상시간을 보니 참 애매한 시간이 남았다. 길지도, 짧지만도 않은 2시간 반 가량의 비행시간은 딱히 할 만한 게 없다. 생각해보니 그 동안 비행은 1시간 내외거나 아니면 아예 최소 5시간 이상의 장거리였고, 대개가 밤 비행기라 이륙하기 무섭게 잠들어버리거나 영화만 줄창 봤었는데, 짧은 낮비행에 대한 대비는 너무 없었던 듯하다. 잠도 오지 않고, 금방 갈 줄 알았는데 착륙까지 꽤 남은 시간에 이리 할 게 없다니, 집에서 보던 책이라도 한 권 들고 나올걸. 일어나지도 않을 쓸데 없는 오만가지 걱정은 하면서 정작 필요한 거는 늘 빼먹는 내가 새삼 우습다. 앞좌석에 꽂혀있는 면세품리스트와 잡지, 비상상황 발생시 안내도를 2번쯤 정독하고도 시간이 남아 몇 번이고 봤던 훗카이도 여행책을 (또)보며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푸른 하늘이 다시 회색 빛으로 흐려지고 구름이 자욱해지면서, 착륙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한국이라고 말해도 깜빡 속을 것 같은 풍경. 쭉 뻗은 도로에서 한국과 좌우가 바뀐 방향으로 움직이는 차를 보며 애써 일본에 도착했음을 실감하려고 노력해본다.
도라에몽과 정복 차림의 피카츄가 맞이하는 입국장, 온갖 매장 속 사방에서 들려오는 일본어에 일본에 왔음을 재차 실감한다. 비슷한 시간대에 여기저기서 쏟아져나온 사람들로 신치토세 공항은 생각보다 꽤나 어수선하고 혼잡했다. 짐을 찾자마자 훗카이도 레일패스를 구입하기 위해 지하 1층으로 바로 이동했다. 훗카이도 레일패스는 외국인만 이용 가능한 티켓으로 정해진 일수 내에서 무한대로 기차 이용이 가능한 티켓이다. 서류에 이름과 여권번호 등을 적어내면 이를 코팅해서 뒷면에 붙여주는데, 마치 얇은 여권을 하나 더 받은 느낌이다. (5일간 이용해본 결과, 안에 티켓 등을 끼울 수 있는 조그만 포켓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우리는 총 5일 일정 중 하루는 렌트카를 이용할 계획으로 실제 이용일수는 4일 뿐이었지만, 개시날짜 기준으로 4일이면 마지막 날 이용할 수가 없었고, (다행히도) 4일권과 5일권 가격이 차이가 없어 5일권으로 구매했다. 가격은 2만 2천엔. 1일권이나 3일권도 한화 기준 10만원 대의 가격이다. 그다지 싼 가격도 아니거니와, 기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수록 이득이 많은 티켓이기에, 기차를 이용하는 외국인 관광객이라는 이유로 이 패스를 무조건 구매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을 통해 개별티켓 가격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용횟수만큼 합산해본 가격과 레일패스의 가격을 비교해서 이득이 있는 편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 듯하다. 우리는 하루 평균 1회 이상 이용하기도 했거니와 매번 티켓을 구매하는 번거로움을 원치 않았고, 개별 티켓의 합계가 패스 가격이 그닥 차이가 없어 레일패스를 구매했다.
참고로 이번 여행에서 개별적으로 얻었던 추가팁 2가지는,
1) 일본어 능통자가 아니고서야 매번 전광판 속 기차 안내를 찾는 것도 번거로울 수 있어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는 기차별 시간표를 미리 출력해서 가져가는 것도 하나의 팁이다. 아예 한국어로 된 웹사이트가 따로 있어 기차 이용에 관한 정보를 얻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2) 훗카이도 레일패스는 이용기간 내 원하는 표를 미리 예매하기가 단 1회 가능하다. 구매하자마자, 동선을 고려해서 배차간격이 긴 여행지로 이동할 경우가 있다면 유용할 듯하다. 우리는 익일 삿포로에서 토마무로 이동하는 표를 미리 예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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