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매 운동이니 어쩌니 난리인 이 시점에 일본에 다녀오게 되었다. 퇴사 후 여행 한 번 못 가는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딱히 멀리 가고 싶다는 생각도 없던 차에 남편이 학회 차 후쿠오카에 방문하게 생겨 그 핑계로 덤으로 따라 가기로 했다. 때 마침 한글날이 낀 연휴가 있어 학회 전 이틀을 더 벌 수 있었고, 다시 가보고 싶었던 교토를 일정으로 함께 잡아 총 4박 5일의 일정으로 다녀왔다. 출국일을 1주 앞두고 뉴스에서는 하기비스라는 역대급 태풍 뉴스 속보가 나오고, 날짜를 잡다보니 한글날에 일본행이라 뭔가 기묘한 죄책감(?)을 갖고 일단 떠나기로 함.
한글날 오전 8시 비행기라 반 좀비상태에서 오전 4시반 공항버스를 타고 새벽 같이 인천공항에 도착했지만, 연휴라 우리처럼 나가는 사람이 많은지 오전 6시가 안 된 시간이라는 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공항은 번잡했다. 오사카로 가는 우리 비행기도 만석인 건 매한가지. 공항에 올 때마다 불경기는 도무지 실감을 할 수가 없다. 사람이 얼마나 많았냐면 내가 공항에서 짐 부친다고 이렇게 오래 기다려본 게 처음이라....줄만 거의 한 시간 섰던 듯 하다. 짐 부치고, 미리 구매해뒀던 면세품 수령도 하고, 출국장 이동해서 간단한 아침까지 챙겨먹고 탑승 완료. 새벽 4시 버스 탈 생각에 늦잠 잘까봐 긴장해서 잠을 반 설쳤더니, 비행기가 이륙한다는 안내방송 이후 기억이 없다 (-_-) 눈 뜨니 오사카 도착 안내가 나오고 있었음...
비몽사몽 오사카에 도착해서 교토로 갑니다.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교토로 가는 방법은 신칸센 등의 기차를 이용하거나 공항버스를 이용하는 법이 있는데, 짐을 끌고 이동하지 않고 출구로 바로 나오면 버스를 탈 수 있다는 말에 과감히 버스를 탔지만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 때는 기차로 갈 것 같다. (요금도 기차가 500엔 정도로 버스요금 절반 수준이라고) 딱히 막히지도 않았지만 버스로는 거진 1시간 반 이상이 걸려, 차를 오래 타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좀 힘들었다. ㅜㅜ
어쨌거나 교토에 무사히 도착! 뉴스에서 연신 태풍 속보가 나와서 걱정했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쨍한 햇빛에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날씨는 끝내주다 못해 더웠다. 햇빛 때문에 버스에서 내려서 바로 선글라스부터 찾음.
짐 끌고 숙소 가는 길.
그래도 왔으니 서로 인증샷 찍어주시고...
교토에서 묵었던 호텔은 사쿠라테라스더갤러리. 교토역에서 도보 5분 거리인데, 다음에도 교토를 갈 일이 있으면 또 다시 여기 묵을 계획이다. 시설도 매우 깔끔하고 훌륭한데다가 교토역이 코 앞이라 이동할 때 정말 편리했다. 시기가 시기였는지 어쨌는지 몰라도 호텔 안에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고, 거의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 체크인 전에 도착이라 일단 짐부터 데스크에 맡겨놓고 뭘 먹으러 갈까 고민 시작. 남편은 구글을 뒤지기 시작했고, 나는 이런 건 현지인한테 물어야한다며 데스크에 지배인으로 추정되는 분께 물었더니, 보기 드물게 정말 유창한 영어로 알려주셔서 감동. (이 분이랑 이날 갔던 KURASU 의 바리스타 이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일본인을 거의 보지 못함) 어쨌거나 어떤 메뉴를 원하냐길래 뭐든 좋다고 했더니, "very local place"라면서 호텔 바로 한 블럭 뒤에 우동집을 추천해주고, 만약 별로면 근처의 쇼핑몰이 있으니 참고하라고 지도까지 챙겨줘서 감사했다. 남편은 뭔가 반신반의하는 눈치 같았지만 일단 알려준 대로 가봄.
실내가 보이지 않아 장사를 하는 건지 아직 오픈조차 하지 않은 집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긴가민가하고 문을 열었는데, 가게 문을 여는 순간 맛집임을 확신. 서빙하는 분들이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라 한 번 더 놀라고
남편은 소고기계란우동을, 나는 치킨계란우동을 시켰는데,
인스타충답게 사진부터...여행 내내 음식사진으로 인스타 스토리 도배를 한 듯. 각설하고, 따뜻한 육수는 담백하면서 일본 그 특유의 단맛 없이 느끼하지도 않았고, 계란도 고기도 부드럽고 폭신했다. 싱싱한 파 고명은 덤. 속이 따뜻해지니 비행과 버스로 줄창 이동하느라 비몽사몽했던 정신이 돌아오는 느낌. 저렇게 먹고 한 사람당 만원도 안 나온다. 이 날 메뉴를 보고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인데, 닭-계란이 같이 나오거나 연어-연어알 이런 메뉴는 이름에 친자(親子)가 들어간다. 소고기-계란은 타인(他人)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처음에는 이 집만의 작명 센스라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 카이센동 집에서 똑같은 메뉴를 발견함. 관용적 표현인가...여튼 첫 식사는 매우 성공적. 역시 내 맛집 찾는 감은 죽지 않았다. 추천해주신 지배인 분 만나면 훌륭한 곳 추천해줘서 고맙다고 하려고 했는데 이 날 이후 보지 못함...
구글맵이 알려준 평점 4점이상의 카페 KURASU. 이 날 한국인 관광객을 처음 봤는데, 분위기 탓인지 서로 한국인임을 인지하면서도 애써 굳이 아는 척하지 않으려는 분위기 (ㅋㅋㅋ) 처음에는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여행기간 내내 그러하였다. 어쨌거나, 이 날 너무 더워서 (28도까지 올라감) 라떼를 먹으려다가 아이스아메리카노로 마셨는데 산미가 너무 강해서 아쉬웠다. 때 마침 라떼를 시킨 다른 한국인은 너무 맛있다고 감탄하는 소리가 들리니 후회가 2배 이상. 밖의 그늘은 시원해서 커피를 마시면서 땀을 식혔다.
오늘은 첫 날이라 무리하지 않기로 한 상태로 후시미이나리만 가기로 한 날. 체크인해서 방에 짐을 넣어두고, 최대한 가볍게 나왔다. 미리 찾아봤더니 신사 안의 코스를 다 둘러보려면 2시간 정도를 잡아야한다길래 다른 일정을 다 빼고 갔던 거긴 한데, 지금 생각해보니 좀 나중에 넣어도 되었던 것 같긴 하다. 교토역에서 전철로 2 정거장이라 거리가 가깝고 무엇보다도 24시간 개방하는 곳이더라는...여튼 교토에서 가보고 싶었던 장소 중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했다.
오후 3-4시 쯤이라 역에는 학생들이 유달리 많았다. 이나리역 (稲荷驛, いなりえき) 에 내리면 역 출구 바로 앞에 신사가 보인다.
신사 들어가기 전에 입과 손을 씻고..
여우신사답게 사방에 여우상이 보인다.
색색의 기모노를 입고 온 관광객들을 보는 것도 재미.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서 어린 치요가 소원을 빌기 위해 저 붉은 토리이들 아래를 질주하던 바로 그 곳. 실제 영화 촬영 장소이기도 하다고...10년도 넘은 예전에 본 영화 장면이 단 번에 다시 떠오를 만큼, 수백 수천 개의 다홍빛 토리이들이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은 인상적이었다.
여우신사답게 소원도 여우 위에다 빈다. 다양한 여우얼굴 구경하는 재미. (이런 센스는 애니 강국답달까...)
고양이도 많고. 올라가다 보니 원숭이 조심하라는 안내도 꽤 많았다.
기둥 뒷켠에는 시주한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입구에는 워낙 사람이 많아 시야를 가질 정도니 사진은 좀 들어가서 찍는 게 좋은 듯 하다. 10분 정도만 들어가도 한산해지는 느낌.
원래 계획은 끝까지 다 보고 오는 거였는데, 막상 피곤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코스가 길어 과감히 포기함 (ㅋㅋ) 우리가 포기한 코스 쯤에서 다들 돌아나오는 것도 재미있었다.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한 모양...
해질녘이 되니 붉은 신사 위에 노을 빛이 떨어져 꼭 필터를 씌운 것 같은 풍경.
잘 보고 갑니다.
오늘의 저녁은 남펴니가 찾아낸 토리센이라는 곳.
나는 여기서 먹은 오징어튀김을 잊지 못할 것이다. 사진상으로는 정말 평범해보이지만 이건...정말....한 입 먹는 순간 눈이 커지는 맛. 맹세코, 내가 태어나서 먹은 모든 튀김 중 최고의 맛이었다. 다시 교토를 가야하는 가장 큰 이유. 뭔가 아쉬워서 시킨 메뉴가 이렇게 충격과 감동의 맛이라니 ㅜㅜ
방에 들어가기 전, 숙소 첫 날 나오는 (논알콜) 웰컴 드링크 한 잔하고 방으로. 대욕장에서 목욕하고 돌아와서 자기 전까지 오징어튀김을 찬양하다가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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