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charted2015. 5. 1. 12:22

 

 몇 달 전 적어놓고 잠시 묵혀두었던 글인데, 오늘 응급실 진료비 책정에 대한 기사가 떠서 글을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생각보다 악성 댓글이 많지는 않지만, 응급실 근무 경험자로서 댓글들만 봐도 응급실에 와본 사람인지 아닌지 감별이 된다는 이 웃픈 현실. 진작 되었어야 하는 일들인데, 이제서라도 이런 법안이 통과되고, 시행되어간다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관련 기사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01&aid=0007566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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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턴 생활 중 응급실 근무를 해 보면서 참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응급실 근무는 아마 의사들, 특히 새내기 의사들(인턴이나 주치의 초반)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과일 것이다. 물론 그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 좋은 의미일수도, 나쁜 의미일 수도 있지만. 

 응급실은 과의 특성상 워낙 다양하고 많은 환자 외에도 다른  의료진들과 접촉할 일이 매우 많기 때문에 근무 로딩이 큰, 소위 말하는 힘든 과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급실 근무는 새내기 의사도 직접 환자를 보고 처방을 내는 등 주체적인 의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점, 또 의사로서 성숙해진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사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글을 쓰기가 조심스러웠던 이유는 크게 2가지인데, 우선 내가 응급실에 상주하면서 근무를 했던 기간이2달 반 남짓으로 그닥 길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환자든 의료진이든 응급실이라는 곳이 대개 좋은 기억으로 남기 힘든 곳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의사의 시각에서 쓴 글이다보니 장황한 변명에 가까운 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보았거나 겪었던 일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하겠지만 글을 쓴 의도와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응급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남긴다.

 

여기서 언급되는 응급실은 특정지역/연령/직업/인종이 몰려있지 않은 평균적이고 일반적인 중소 도시 이상의 대형병원 응급실- 내가 근무했던 곳-을 기준으로 쓰여진 글이다.

 

 

 

 

- 응급실에 대한 오해 

 중환자가 넘쳐나고, 소란스럽고, 소리 지르는 의사와 간호사들, 울고 있거나 난동부리는 환자 혹은 보호자들이 그려진다면 당신은 아마 응급실에 딱 한번 가 봤는데 하필 그때 중환자 혹은 주취자 혹은 그냥 진상이 있었던 경우였을 것이고, 그게 아니면 응급실을 단 한 번도 와보지 않은 경우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응급실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응급실은 '응급'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는 이유만으로 오해를 많이 산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다들 오죽 아프면  응급실에 갔겠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응급실 안에는 죄다 응급환자이고, 또 모든 의료진들이 내원하는 즉시 환자를 봐줄 것이라는 것. 천만의 말씀.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가 하루 100명이라고 할 때 실제로 응급에 준하는 중환 혹은 입원이 필요한 경우는 평균 25명 미만이다. 내원 환자의 상당수가 경환이고, 검사를 해도 특별한 이상이 나오지 않을 확률이 생각보다 꽤 높으며, 관찰 혹은 약물 투여만으로도 증세가 호전되는 경우가 상당수이다. 그리고 참 재미있는 게 응급실 내원하는 사람들 챠트를 열어보면 예전에 왔던 사람이 꼭 다시 온다.

 

또, 이 말은 정말 내가 응급실에 온, 그리고 올지도 모를 수 많은 사람들에게 고하고 싶은 말인데, 응급실에 내원시 환자가 특별대우를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의료진이 달려드는 경우만 응급이다. 물론 내원하는 사람이야 아프고, 불안하고, 몰라서 온 것을 우리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진료를 한 의사나 간호사가 뭔가 시큰둥해보이는 반응을 보인다던가, 아니면 진료도 보고 검사도 이거저거 했는데 하는 것 없이 뭔가 방치된 느낌이 든다던가 하면 당신은 일단 응급환자가 아니니 제발 안심 좀 해달라고. 그리고 당신은 방치된 것이 아니라 정말 다른 응급 환자에 밀렸다던가, 아니면 당신의 피검사든 소변검사든 영상검사든 판독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아니면 이건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당신이 의료진이 다시 들여다 볼 만큼 중환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잊은 걸수도 있다고. 그래서 어찌 보면 당신은 걱정할 만한 환자가 아니니 다행인 걸 수도 있다고.

 

 응급실은 식당이 아니다. 진료의 순서는 응급한 순서이고, 같은 증상이라면 노인과 아이(특히 영유아)가 우선 순위로 간다. 응급실에서는 먼저 왔다는 이유만으로 우선순위의 진료를 받을 권리가 없다. 그리고 그 응급한 순서는 의료진이 내원 이유와 환자의 증상을 듣고 의학지식을 통해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정하는 것이다. 물론 어쨌거나 나는 아파서 왔는데, 응급실의 상황상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누구 하나 없이 목 빼고 마냥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짜증이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내가 설사 2시간을 기다렸다고 하더라도, 당장 의식이 없는 환자가 실려왔다면 당신은 또 기다려야먄 한다. 이건 뒤집어 말하면 누군가 나보다 먼저 왔더라도 내가 더 상태가 안 좋으면 우선적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혹자는 그러더라. 그래서 병원 가면 진상짓 해야된다고, 그래야 빨리 봐준다고. 다른 환자에게 피해갈까봐 봐주는 거다. 그런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자기 때문에 다른 환자가 밀릴 수 있다는 걸 모르는, 한 마디로 기본 예의가 없는 거다. 환자의 개인적인 사정은 의료진이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진찰과 검사에 근거한 환자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한 의료진의 결정에 의해 의료행위의 우선순위가 결정되는 것이 응급실이 운영되는 하나의 기본 원칙이다.

 

 

 

- 환자는 병원으로, 취한 자는 집으로

 

 예전에 경찰서 유치장에 방치되었던 주취자가 사망한 일이 발생하면서 주취자를 응급실로 보내는 법안이 발의되었나 해서 논란이 되었었는데, 응급실에 오는 주취자는 몸을 가누지 못해 넘어지거나 아니면 싸우다 다쳐서 오는 경우가 대다수. 연말과 연초, 3월 경에는 주량 모르는 대학생 새내기 혹은 노는 고등학생들이 술을 진탕 먹고 의식 잃어서 오는 경우를 종종 보기도 한다. 그것도 아니면 술 깨게 수액 맞고 가겠다는 경우도 있고.

 또 음주 후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꽤 많은데, 주로 다치는 부위가 머리나 손이다.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손 같은 경우는 취한 상태에서는 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는 봉합을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취했을 때는 전반적인 감각이나 운동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에 봉합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의료진 입장에서는 기본적인 지혈 등의 처치만 하고, 24시간 내 봉합 등을 하는 경우가 가장 좋다. 환자 입장에서는 병원이 진료를 안 해주고 환자를 내쫓는다고 생각하기 일수다. 물론 손이 절단되었다던가 골절 등이 있으면 예외지만.

 

 차라리 의식을 잃은 경우라면 모를까, 술 먹고 다쳐오는 경우의 태반은 응급실에 곱게 들어오는 경우가 드물고, 난동을 부리거나 의료진 혹은 주변 환자 혹은 보호자들에게 폭언을 퍼붓는 등 응급실의 근무를 방해함으로서 다른 환자에게 피해를 준다. 또한 취해서 혹은 술이 깨면서 자리에 얌전하게 있지 않거나 구토를 하는 등 온갖 행동을 통해 낙상이나 기도 질식 등 2차적인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런 경우라면 누군가는 그 환자에서 눈을 떼기가 어렵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환자가 의료진의 시야에서 밀려나기도 하고.

 

가장 문제가 되는 일 중 하나는 폭언 및 폭행인데, 의료진이나 다른 환자들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악몽이다. 네이버 등의 검색창에 응급실 폭행으로 치면 어처구니 없는 동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응급실 근무 3일째에 손을 베여온 주취자에게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의 붕대가 없다고, 일방적으로 20분 가까이 쌍욕을 들은 황당한 경험이 있었는데 처음 겪는 일이라 경황도 없었고, 환자에게 화를 낼 수 없는 노릇이기에 화를 참다보니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 이래서 말 한마디에 뚜껑 열려서 한 대 치고 싶은 기분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물론 이런 환자를 몇 명 더 겪은 이후는 웬만한 쌍욕에 눈 한번 깜짝하지 않게 되었고, 정말 누가 봐도 시비를 거는 환자에게는 나 역시 당당하게 맞서게 되는 슬픈 일이 왔다. 내 꿈은 그래도 예의 바른 친절한 의사였는데, 그 꿈은 어디로 갔는가.

 주취자에게 유달리도 시달리던 어떤 날, 혼자 스테이션 데스크에 앉아서 술 먹고 오는 사람은 일단 50만원 받고 시작해야된다고, 진짜 환자는 돌려주고, 아니면 그 돈 다 받아내야 한다고 궁시렁거렸더니 주변에 앉아있던 레지던트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나를 돌아보더니 모두 고개를 끄덕거린 적이 있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며.

 

 

 술 먹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고, 취하면 다칠 수도 있다. 하지만 술 먹고 이런 저런 이유로 응급실에 갈 정도면 평상시에도 술버릇이 안 좋을 확률이 95%다. 희한하게도 기록을 하다 보면 비슷한 이유로 전에도 내원한 경우도 태반. 그렇기 때문에 내원 이유가 뭐였든 환자가 취해서 왔다면 응급실 입장에서는 짜증이 먼저 치밀어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당신이 정말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하더라도 응급실에 내원시 술에 취해있다면 의료진 입장에서는 일단 객관적으로 좋게 맞아주기는 힘들다는 걸 좀 이해해주길. 물론 말도 안 되는 욕심이지만.   

 

 

 

- 의사도 사람일까?

 부제가 그렇다만 뭐 그렇다. 응급실 근무의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병원 중에서도 특히 응급실은 늘. 휘몰아치는 환자들 속에서 여기저기 까이면서 일을 하다보면 당장 지금 내가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사람을 살리겠다고 의사를 했나라는 생각에서 시작해서 지금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싶은 순간들이 온다.

 병원마다 다르지만 내가 있었던 병원은 12시간 근무 - 12시간 Off 시스템이었는데 12시간은 말 그대로 풀로 근무한다. 24시간 교대 근무도 매한가지. 그렇다고 오프 때 잘 쉬고 먹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지쳐서  쓰러져 자느라 밥을 못 먹는 경우도 많다. 교대근무 시간이라고 해서 퇴근이 칼같이 지켜지지도 않는다. 환자를 보는 중에 퇴근시간이 되었다고 중도에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교대 근무자가 오면 인계를 해야되기 때문에 전후로 최소 30분씩은 추가가 될 수 밖에 없다.

 동네병원이 문을 열거나 외래가 열려있는 주간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지만 환자가 어디 아픈 시간이 정해져서 오는가. 말 그대로 복불복. 환자가 기적처럼 단 한 명도 없을 때를 일명 white bed라고 부르는데, 그런 경우는 기념 사진을 남길 정도로 드물고, 사실 그닥 오래 가지도 않는다. 개인적으로 봤던 화이트베드는 2번이었는데, 한 번은 5분 한번은 2시간이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처음에만 잠깐 좋고 그 이후에는 환자가 또 언제 오나 싶어서 좌불안석.

 

 

 환자가 몰릴 때는 내가 어떤 환자를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몰린다. 그야말로 시장판. 추석 때 응급실 데이근무를 섰었는데 30분간 20명이 온 적이 있었다. 환자는 환자대로 쌓이고 나는 영혼이 머리 위로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평상시 응급실에는 환자가 아예 없지도, 그렇다고 바글거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랜덤으로 오는 환자들과, 초진, 처방, 퇴원지시, 초진 기록 등등을 의사가 도맡아서 하는 응급실 근무는 앉아있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심한 경우 식사는 커녕 화장실 가는 것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 의사는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 몸이 안 좋아도 병가를 내기 쉽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쉰다하더라도 그 때는 내가 해야할 일만큼을 누군가가 떠안는다. 아픈데 쉴 수가 없어서 참고 일하다가, 뒷방에 들어가서 울고 있는 동기들도 본 적이 있다. 응급실은 환자에게 불친절하다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의사에게도 잔인한 곳이다. 

 

 하지만 환자들은 이런 상황을 잘 모른다. 대부분의 의료시스템은 모든 기록 및 처방을 컴퓨터로 하고 있기 때문에 모니터 앞에 앉아있으면 의사가 앉아서 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왜 컴퓨터만 보고 나는 안 봐주느냐에서부터 시작해서  환자를 봤으면 바로 진단을 내야되지 않느냐는 둥 이 검사는 왜 하냐 저러냐 등등등 시비를 걸어오는 환자도 상당히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응급실의 미덕은 친절보다는 환자를 빠르고 정확하게 보는 것이 된다. 평소 몸에 밴 행동이 나온다 어쩐다하지만 친절은 생각보다 굉장히 의식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지치고 예민한 의료진은 생각보다 불친절하다. 그 와중에  연신 독촉을 하거나 진상을 부리는 환자나 보호자에게는 당연히 말이 더 안 좋게 나가는 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에게 예의를 갖추고 대하는 사람에게는 나 역시도 의식적으로 친절하게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선생님이라고 불러달라느니 그런 걸 원하는 게 아니라, 의료진도 노력을 하고 있으니, 조금 더 이해해주고, 기본적으로 예의를 갖춰줬으면 하는 바람. 예의는 give and take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 낮은 응급실의 문턱에 관한 소소한 불만

 

사실 이 모든 문제는 대한민국에서 응급실은 응급환자가 가는 곳이라기보다는 24시간 연중무휴 열려있는 병원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응급'이라는 이름은 가면 들어가는 순간 나를 빠르게 봐줄 것 같은 환상까지 조합해준다. 응급진료비는 보통 기본 책정가에 약이나 기타 처치를 받았을 때 보통 5-10만원 정도이다. 사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 갔다오면 이번 달은 굶어야 된다라는 식으로 부담이 가서 도저히 못 갈 돈은 아니다. 아픈데 한밤중이고, 겁이 많은 성격까지 조합되면 고민도 않는다. 바로 응급실 직행. 새벽 3시에 내원해서 '집에서는 죽을 것 같았는데, 응급실 들어오니까 갑자기 괜찮네요.' 라는 환자를 볼 때마다 머리 속에 온갖 생각이 스쳐간다.

 

응급실에서 느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는 건강염려증인 사람이 유달리도 많다.  물론 아프면 병원을 가보는 게 맞긴 하다. 소위 말해 미련하게 아픈 거 참다 병 키우느니 병원 가는게 낫다. 하지만 이런 모든 이유가 조합되어 사실상 응급실에 올 필요가 없는 환자가 응급실 내원 환자의 반수 이상을 차지한다. 사실 웬만한 사람들은 응급실에 한 번 가보면 또 갈 곳은 아니라는 걸 안다. 좋은 걸 보기는 힘들거든. 그리고 누구나 살면서 1-2번쯤은 응급실에 갈 수는 있다는 걸 응급실에 근무하는 우리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다 알고 있다.

앞서 말한 White bed에 관해 한 가지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그 날은 실상 환자가 적긴 했는데, 이유는 날씨였다. 겨울이었고, 유달리 추운 날이었다. 강풍에 영하 10도를 밑도는 지독히 추운 날이었다. 춥다고 환자가 없을까? 천만에. 그래도 올 사람은 온다. 그 추위를 참고 올만큼 아프지 않다는 거다.

  

 

간혹, 응급실에서 별 거 아니라고 해서 돌아갔는데 나중에 보니 복막염이에요, 골절이에요 이런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된 이유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환자가 내원 당시 증세나 검사결과가 매우 미미해서 첫 내원 당시 진료나 검사결과가 환자가 이러이러한 병이니 입원을 해야겠네요 라고 할만큼의 심각한 결과가 없었을 경우가 태반이다. 한 마디로 지금 검사결과는 큰 문제가 없고, 설사 문제가 있다하더라도 초기에는 각종 진찰과 검사에서 단서를 잡기 어렵다는 것.  그래서 귀가 후 증세가 지속되면 다시 돌아오세요. 가 되는 상황.  두 번째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고, 또 우리가 늘 주의해야 되는, 환자를 '놓치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들은 생각보다 예민하다. 설사 별 것 아니어서 환자를 보낸다고 하더라도, 보내는 의사 입장에서 마음이 개운하게 편한 경우는 잘 없다.

 

 

 

 

-  낮시간에는 동네병원을 이용하기.

응급실에 가면 만나는 의사는 교수가 아니라 인턴이나 레지던트(전공의)이다. 응급실에 환자가 단 1명도 없는 경우라면 모를까, 피나 소변검사 결과는 아무리 빨리 나와도 1시간 이상이 걸린다. 이상하게 우리 나라사람들은 동네 병원을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대학병원가면 차라리 비싸도 더 잘 해줄 것 같고 막 그런 믿음. 사람들이 그럭저럭 만만하게 보는 그 동네의사가 그런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다 거친 전문의들이고, 그 전문의들이 훨씬 더 환자를 빠르게, 정확하게, 또 친절하게 잘 본다. 그리고 그 전문의들은 환자가 대형병원을 갈 필요를 환자보다 더 정확하게 파악한다. 대한민국처럼 전문의를 동네병원에서 부담없이 쉽게 만나는 나라는 없다. 대학병원 외래도 예약을 잡고 간 경우라도, 환자 상태가 안 좋거나 빨리 봐야되는 경우라면 우선적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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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에 부쳐서 응급실에 내원하는 응급/비응급 환자의 분류를 간단하게 남겨본다. 특별히 비응급환자로 분류한 경우는 무조건 비응급이라는 것이 아니라, 해당 증상으로 내원하는 경우의 상당수가 비응급일 확률이 높다는 것을 전제로 쓴 글이다. 그 증상 중에서도 분명 응급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밝힌다. 

 

 

응급인 경우는 크게 다음과 같다.

1) 바이탈이 흔들린다 : 혈압 급하강 혹은 지나치게 높거나 의식 소실. 원인은 심한 외상, 출혈, 감염, 중풍 등등

2) 흉통 : 협심증 혹은 심근경색, 대동맥 박리(복통으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음) 가끔 기흉 등등을 시사.

3) 갑자기 의식이 없거나 쳐지거나 말이 어눌해지는 경우 : 뇌졸중, 뇌출혈, 저혈당 의심.

4) 출산 임박 산모, 고열이 나는 신생아.

5) 고령의 환자 혹은 만성질환자(특히 암환자)가 열이 나는 경우

6) 호흡곤란 

위의 순서는 중요도와 상관없이 생각나는 대로 적은 거고, 여기 적혀 있지 않다고 중환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응급으로 인정되는 경우도 있으니 오해는 않았으면. 하여간, 이런 경우는 누가 봐도 이 사람은 환자구나 싶을 정도의 모습으로 응급실에 오고 (대부분 실려옴), 의료진이 득달같이 달려든다.

 

 

위의 경우와 반대로 응급 같지만 실상은 그닥 응급이 아닌 경우도 있단 말이지. 물론 대부분이 그렇다는 것이고, 그 중에 응급 혹은 입원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간혹 있으니 역시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1) 복통 -  60-80%는 단순 복통이다. 입원이나 수술을 요하는 경우는 20-30%

2) 두통, 혹은 어지러움 - 저혈당, 영양부족, 이석증, 심리적 원인에 의한 증상이 상당수고, 심지어 꾀병도 많다. -_- 드물긴 하지만 뇌졸중이 있기도 함. 

3) 과호흡 - 보통 숨쉬기 힘들고 온 몸의 힘이 빠진다고 해서 오고, 대개 중환처럼 오지만 알고 보면 과호흡으로 인한 숨참, 손발저림 등을 호소하는 경우로, 이런 경우는 응급실 의료진의 짜증과 분노 콤보를 유발하는 병이다. 심리적인 문제로 인한 신체증상이므로 정신과적 문제에 가깝고, 사실 병이라기에도 뭐하다. 1분 안에 혼자 숨 100번 몰아쉬면 이 증세는 누구나 나타난다.  대부분 여자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로, 처음이 아닌 경우가 태반이고, 싸우거나 음주 중 같은 경우에 종종 실려온다. 보호자는 8할이 애인이나 남편으로 추정되는 남자.

 4) 열 - 영유아기는 지났으나, 학령기 이전의 소아들 중에 해열제 한 번 안 먹이고 데려오는 보호자들은 도대체가 왜. 요즘 편의점 가면 해열제 판다. 3일 내내 해열제를 먹고 약을 먹어도 열이 전혀 안 떨어진다던가 아니면 동네 의원에서 소견서 등을 지참해서 오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사실 정말 약을 못 구했다던가 이런 거면 몰라도, 정말 생각없이 데려오는 보호자들이 꽤 있는데, 응급실이라고 단 번에 열이 떨어지는 마법의 약을 갖고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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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rind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