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charted2014. 12. 21. 00:32

콜 많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내과 1주차. 그래도 나름 주말답게 콜이 적은 터라 의국쇼파에 드러누워 티비를 보는데 병동에서 콜이 온다.

"선생님 oo병동인데요, ekg 좀 찍어주세요"

파견병원의 특성상 ekg(심전도) 콜이 그리 많지 않은 터라 직감적으로 일반적인 경우가 아님을 감 잡고 급한 일이냐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아..급한 건 아닌데요..익스파이어라서요. "
"아 네. 바로 갈게요"

약 10분 뒤 병동에 도착했을 때 나는 황망해지고 말았다. 침상 위에서 한쪽 눈은 반쯤 뜬 채로 천장을 보고 누운 망자는 불과 5시간 전 c-line 드레싱할 때 갑자기 라인을 뽑으라며 난동을 부리던 바로 그 환자였다.

의료진들이 주로 쓰는 단어 중에 Cachexic 이라는 단어가 있다. 인터넷 사전에는 '악액질의' 라는 생소한 단어가 번역된 뜻으로 달려있지만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시체같은 몰골'이 되시겠다. 그 표현이 딱 맞는 환자였다. 해골에 거죽만 씌워놓은 듯한, 근육이라고는 남아있지 않은 환자. 드레싱을 하러 갔더니 갑자기 역정을 내면서 라인을 뽑아달라는 것이 아닌가. 투정 부리는 환자에게 그거 뽑으면 어르신 밥줄 끊는 거라고 안 된다고 가볍게 나무라면서 소독해드리고 돌아서서 대각선의 환자를 소독하는 데 옆의 간병인이 놀란듯 어어하길래 돌아보니 환자가 일어서서 라인을 잡아당기려던 찰나였다. 소리를 질렀더니 스테이션에서 간호사들이 우르르 달려오고 환자는 본격적으로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결국 간호사3명에 간병인에 나까지 달라붙어 환자에게 간신히 강박대 적용. 그 와중에도 폴리 부여잡고 있는게 보여서 잡아뜯음 골치 아프겠다 싶어서 손을 폴리줄에서 풀었더니 간호사들 손모가지며 옷이며 닥치는대로 잡아댔다. 겨우 환자를 묶고 반쯤 떨어진 테가덤을 뗀 뒤 다시 소독해 붙여드리면서 환자에게 화를 냈다가 다시 타일렀다. 하지만 환자는 막무가내였다. 시발년부터 시작해 온갖 욕설을 퍼붓기 시작하면서 사람 살려달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기 시작. 다른 병실의 다른 환자들을 모두 소독하고 병동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그 환자는 계속 기운차게 소리 지르고 있었다.

주치의한테 노티해서 아티반이라도 줘야되는 거 아니냐는 말에 스테이션에서는 자주 있었던 일인듯한 반응. 저러는 거 보니 나보다 기운은 좋으신 것 같다고 혼자 궁시렁거리니 간호사가 지나가다 듣고 큭큭거린다. 환자가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일을 다 끝내고 병동을 떠났다. 그리고 5시간만에 환자는 죽었다. 살려달라고 그렇게 외쳤으면서. 내가 건드리지도 않은 C-line이 빠져있길래 어찌 된 거냐고 간병인에게 물었더니 입으로 물어 뜯어낸 것 같단다. 그제서야 침상 아래가 피투성이인게 보인다. ekg 리드를 붙여야되는데 리드가 흡착할 살도 없어 손소독젤을 덕지덕지 바르니 겨우 붙는다. 심박수25. 한번씩 심박수를 나타내는 라인이 뜬다. 환자는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손 쓸 틈도 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곧 모든 리드가 flat. 반쯤 떠진 눈을 감겼다. 주치의 선생님 역시 내 뒤에서 황망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뽑아드린 심전도를 받아들고 말없이 나가셨다.

뒤늦게 챠트를 열어보니 환자는 식도암 말기 환자였다. 간호기록 마지막을 보니 환자는 밥이라도 먹어야겠다며 자꾸 앉으려고 했단다. 그러고 20분뒤 바이탈이 체크되지 않았다고. 그리고 다시 20분 뒤 내가 심전도를 찍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주치의의 사망선언.

아마 오랫동안 입으로 뭔가를 넘기지 못했던 환자였을 거다. 아마 많이 배가 고프셨다보다. 나가서 겨울이 온 것도 느끼고 눈 많이 왔다고 짜증도 내보고 집에 가서 뜨신 국에 밥이라도 한 술 말아드시고 싶었을 거다. 남은 기력을 다 쏟아부어 나가려고 했던 듯하다. 환자는 기를 쓰고 살겠다고 뭐라고 움켜쥐고 몸부림쳤던 건데 폴리 뽑으면 골치 아플 거라고만 생각한 내 자신이 좀 부끄러워졌다. 아마 내일 드레싱 명단에서 환자이름이 사라져있는 걸 보며 일이 줄은 것에 대한 묘한 안도감과 황망함이 잠시 교차할 듯하다. 그리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겠지. 새삼 연말이라는 걸 느낄 틈도 없는 일상이. 얼른 푹 자야겠다. 또 얼른 잊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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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rind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