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병원 순환근무차 내려온지 3주차.
다른 병원은 어떤지 모르겠다만, 지방병원들은 서울과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
일단 확실히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 시설, 경제상태가 전반적으로 낮음-이고, (지방이라도 대도시는 그 정도는 아니겠다만)
두번째는 과에 레지던트가 없어서 내가 주치의를 해야된다는 것.
그런데 말이 좋아서 주치의지, 교수님도 한달간 있다 가는 인턴에게 애초에 기대조차 안 하는 눈치이다.
지금 과 2개를 동시에 돌고 있는데, 각각 일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닌 마당에 쥐뿔도 모르면서 주치의를 하려니,
막상 그렇게 할 의지도, 의욕도 없고, 한다고 해도 기회가 없는 이 마당에 주치의 잡이 그리 만만한게 아닌기라.
기세등등 PA 들은 인턴을 반병신취급하는 게 너무 눈에 훤하다.
단지 그걸 좀 드러내놓고 티를 내느냐, 안 내느냐 정도랄까.
또 주치의 잡을 하다보니 응급실에서 콜이 오면 직접 응금실에서 환자를 상대하는 일도 하게 되었는데
확실히 느낀 건 응급실에 진짜 응급환자는 소수라는 것과 진상이 참 많다라는 사실.
그래서 사람 상대하는 게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구나 싶다.
PK 때 한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환자들은 아프다는 사실만으로도 피해의식을 갖기 때문에 예의를 갖추는 사람이 잘 없다고.
기본적으로 진상기질이 깔려있는 사람은 아플 때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치료를 위해 움직이지 못하게 할 때도 쌍욕을 하는 건 일상다반사.
이래저래 양 과에 끼여서 가운데에서 눈치 볼 일도 있고, 그래서 그것 때문에 본의 아니게 누명을 써서 서러웠던 적도 있고.
정말 글로 옮기기도 웃길 정도로 쪼잔하고 거지같은 일인데 당하는 내 입장에서는 정말 짜증나는 일들의 연속.
하지만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나의 나이, 경력, 시각 등이 너무나 얕고 보잘 것 없다는 것이고,
결국 남는 건 매번 분노하는 나의 낮은 역치를 한심해 한다는 것.
오프 받아 집에 오면 병원 얘기하다가 툴툴거리게 되는데,
내가 어지간히 힘들어보였는지 어머니가 늘 격려문자를 보내신다. 힘들지 우리딸 이런 식으로.
평생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던 분인데 말이다.
그래도 남은 인턴기간동안 힘이 될 한 마디를 어머니한테 받게 되었다.
아직은 그래도 남은 기간이 길다. 좀 더 강한 사람이 되어야지.
결국 인턴수련과정의 가장 큰 의의는 지식이나 경험도 있겠지만, 결국 내가 받을 상처들에 대한 역치를 올리는 기간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