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 16분, 삿포로 발 토마무행 기차를 탔다. 삿포로에서 토마무를 가는 기차는 종착지가 동부의 쿠시로인 급행 슈퍼오-조라호로, 하루에 6-7대 정도 운행된다. 삿포로에서 오전시간을 여유 있게 보내고, 체크인 시간에 맞춰 토마무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 대가 이 때 뿐이라 티켓을 미리 예매해두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금요일이기도 했고)
기차가 출발하고, 삿포로에서 멀어질 수록 거의 그치다시피했던 비가 다시 거세지기 시작했다. '광활한 대자연'이 뭔지를 보여주겠다고 작정이라도 한 듯, 차창 밖에서는 녹색의 풍경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참 신기하다. 얼핏 비슷해보이지만, 초록이라는 단어로만 표현하기에는 음영과 밀도가 다 달라 그 비슷함 속에서도 구별이 되는, 수 많은 초록들의 연속이다. 그 위에 비와 자욱한 안개까지 겹치니 신비로운 느낌까지 더해진다. 모노노케 히메 속 고대 숲의 묘사는 과장이 아니었다. 저 속을 걷고 있으면 정말로, 어디에선가 숲의 정령들이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은 신비로움.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의 한국의 숲과도 다르고, 유럽의 울창하고 검은 숲과도 다르다. 비 오는 북해도의 자연이 이렇게 멋있는 곳이라니. 이런 풍경이라면 기차 안에서의 시간이 그리 지루하지만은 않다. 고등학교 때 비오는 내린천에 래프팅을 하러 갔다가 봤던 그 녹색과 검은색, 비와 안개들이 만들어내는, 동양화 한 폭 같았던 풍경의 기억, 그 이후 정말로 오랜만에 다시 본 멋진 숲이었다. 몇 번의 터널을 지나고, 빽빽하던 숲 사이사이 간혹 건물이 보였다. 1시간 반 정도를 달린 후, 토마무에 도착한다는 안내가 나오고, 짐을 챙겨 내릴 준비를 했다. 기차가 멎고, 창 밖에 리조트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정말 작은 간이역 느낌의 토마무 역. 계단 한 번만 내려가면 바로 역 바깥이다. 계단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복차림의 리조트 직원들이 상냥하게 인사하며 짐을 버스에 싣는다.
우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승객은 중국인.
15분 정도를 달리니 리조트 입구가 보였다. 입구를 알리는 안내판에서도 5분을 더 달려 리조트에 도착했다.
체크인 후 둘러본 로비. 숲 속에 위치한 곳이라 그런지 사진처럼 리조트 곳곳에 나무를 이용한 동물 모형이 장식으로 놓여있었다. 어설픈 영어지만 필요한 내용을 빠짐없이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8시에 시작되는 불꽃놀이가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을 챙겨주는 친절이 참 고마웠다. 나무 장식이 달린 방 열쇠와 한국어로 된 인포메이션 책자, 다른 시설 이용에 필요한 티켓도 함께 받았다.
방 문을 열자마자 정면에 TV가 보인다.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채널에서 매일 아침, 운해테라스의 방문 가능여부를 알려주는 일기 예보가 나온다. 짐을 내려놓고 방 전체의 커튼을 젖히니,
창 밖은 온통 푸른 색이고, 풍경 저 멀리 높은 곳은 운해가 자욱하게 덮여 하늘과 분간이 되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서 찍은 사진. 자다가 눈을 떴을 때 온통 초록만 보이는 방이라니. 이런 풍경이라면 아무 것도 안하고 방에서 책만 읽고 가도 행복할 거야. 방에 들어오자마자 가기 싫다 다음에도 여기 와야지, 여기서 일하고 싶다 살고 싶다 온갖 아무 말이 나온다.
짐을 풀고, 웰컴 드링크를 마시기 위해 라운지로 갔다.
라운지의 통유리 창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 사이의 연결통로들. 유리로 된 통로가 많다. 호시노 리조트는 숙박을 위한 건물 4동을 포함하여 레스토랑 20여곳, 액티비티 센터들까지 있는 초대형 리조트이다. 깊은 숲 속에 위치해있는데다 겨울에 워낙 눈이 많이 오기도 하고, 리조트 특성상 여러 곳으로 이동이 많은 곳이다보니 모든 건물들이 이렇게 통로로 연결되어 있는 듯 했다. 통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리조트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20분 간격으로 버스가 운행된다. 며칠동안 여유있게 머무르는 일정이 아니라면, 동선을 어느 정도 감안하고 움직이는 게 좋을 듯하다. 우리는 저녁에 비치와 기린노유를 이용할 예정이라 같은 방향의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온통 초록인 숲 속 빨간 차가 귀여워서 한 컷 .
오픈시간 전에 도착한 터라 잠시 대기하다 들어갔는데, 들어가서 보이는 레스토랑 전경이 이렇다.
물놀이를 갈 예정이라 고기 위주로 섭취. 육류가 전반적으로 퀄리티가 괜찮았고, 양고기 훌륭했다. 음식 퀄리티나 맛은 별 1개 반. (3개 만점기준)
잘 먹고, 다시 버스를 타고 미나미나비치(ミナミナビーチ) & 기린노유(木林の湯)로 이동. 두 시설이 한 건물에 있다.
비치를 들어가자마자 훅 하고 덥고 습한 바람이 불어온다. 체크인 때 받았던 티켓은 입장권이자, 라커에 짐을 보관할 때 열쇠 겸 명패 역할을 한다. 사물함 위치와 번호를 외우고 가지 않으면 수백개의 사물함을 일일이 둘러보며 자기의 이름을 찾아야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일본 최대의 실내비치라는 미나미나 비치. 실제 해변처럼 물이 점점 깊어지는데, 가장 안 쪽은 수심이 1.7m 이상이라 안전바가 떠 있고, 일정시간 간격으로 파도가 친다. 따로 2-3천엔 정도 금액을 지불하면 튜브 등을 대여가 가능하다. (우린 안 빌렸지만)
물에 들어간다고 엄청 신났는데 막상 놀기 시작하니 체력이 딸려 1시간도 되지 않아 기진맥진한 30대들. 아쉬운 맘에 둥둥 떠다니면서 밍기적대다 기린노유로 가기로 했다. 샤워 후 옷을 걸쳐 입은 뒤 비치 탈의실 반대편의 기린노유로 이동했다. 두 시설이 한 건물 내에 있지만, 입구가 아예 달라 비치 이용 후 옷을 다시 입고 나와야해서 두 시설을 모두 이용하는 입장이면 약간 번거로울 수는 있다.
피크시간을 피한 탓인지 온천 탈의실 안은 크게 붐비지 않았다. 샤워실을 지나 기린노유로 나가자 어둑어둑한 밤하늘 아래, 수증기가 올라오는게 보였다. 어둡고 쌀쌀한 여름밤, 안개처럼 뿌리는 비를 맞으며 하는 온천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최소한의 조명 외에는 워낙 어두워 날씨가 맑았다면 쏟아질 듯한 별도 보이지 않을까. 가족 단위의 이용객이 많았는데, 아기들의 재잘거리는 일본어를 들으며 뜨끈한 물 속에 앉아있으니 몸도, 기분도 나른해진다. 왜 여기를 하루만 있는 걸로 했을까. 밤마다 오고 싶은 이 풍경,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나갔다. 미나미나 비치, 기린노유 모두 홈페이지 속 사진이 과장이 아니었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두고, 1층 마트에서 산 유바리멜론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당이 보충되는 느낌. 잠시 기운이 반짝하니, 방에 들어가기 전 리조트를 둘러보았다.
비가 온 탓인지 유리복도 내는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 여름도 이렇게 서늘한데, 겨울에는 정말 추울 듯. 리조트를 포함, 전반적인 시설이 어느 정도 연식이 있는 편이지만 워낙 깔끔하게 관리를 잘 해서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둘러보면 볼 수록 마음에 쏙 드는 곳이다.
방으로 돌아와 짐을 대충 정리하고, 내일 아침 운카이테라스( 雲海テラス)에 꼭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잠 들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 4시에 기를 쓰고 일어나 TV를 켰는데, 영어 안내가 없어 일본어랑 한자를 한참 쳐다보며 해석하는데 뭔가 불길한 예감. 혹시나 해서 로비에 전화로 확인을 해봤더니 기상 악화로 곤도라 운행 및 운카이테라스 관람은 오늘 아예 불가능이란다. 토마무에서 가장 기대했던 일정이었는데, 못 본다니 마냥 아쉽지만 날씨가,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니 별 방법이 없다. 다음에 또 오라는 거라고, 아쉬운 마음을 안고 다시 잠을 청했다.
(출처 : 호시노리조트토마무)
이 사진을 보고 토마무는 무조건 가야겠다고 해서 넣었던 거였는데, 정말 아쉬웠다. 워낙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 풍경이고, 계속 비가 오는 일정이라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결국, 이번에는 유독 날씨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다음에 분명 기회가 있을 거야.
체크아웃전 마지막으로 물의 교회를 볼 예정이라, 교회가 함께 있는 레스토랑으로 이동해서 조식을 먹었다. 어딜 가나 숲이 보이는 곳. 실내에 별 다른 장식이 없어도, 통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과 숲의 풍경만으로도 레스토랑이 꽉 찬다.
양식, 일식이 다양하게 있다. 털게가 유명한 곳이다보니 직원이 실제 털게 사이즈의 모형을 들고 와서 함께 사진을 찍게 해준다. 아기들이 있는 손님만 찍는 줄 알았더니 우리한테도 와서 얼떨결에 들고 찍었는데, 둘다 얼굴이 털게처럼 부어서 사진은 마음 속에만 남기는 걸로.....
밥을 먹고, 물의 교회 입구로 갔는데, 입구를 막고 있는 안내판 위 오전은 6시 반에서 7시반, 저녁은 오후 8시 반에서 9시반까지만 개방한다는 충격적인 안내문이 있었다. 전날 받은 인포메이션 지에는 입장시간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브로셔를 몇 번이고 다시 보아도, 그 어디에도 안내는 나와있지 않았다. 전날 비치를 갔다오는 길, 버스에서 거친 물의 교회에서 사람들이 대거 탑승하던 게 그제서야 생각났다. 그 때 봤어야했는데 피곤해서 바로 리조트로 갔지 아마.
리조트 내에 있긴 하지만 단순 관광지가 아닌 실제 종교시설이고, 각종 행사에 이용되는 터라 개방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듯 했다. 운카이테라스와 함께 토마무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된 곳이었는데, 결국 여기도 못 보게 되었다. 저녁 시간 외 별 언급이 없길래 편하게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미리 확인 해볼 걸, 이건 날씨랑 상관없는 건데. 운카이테라스도 못 본 터라 아쉬움이 더 크다.
(사진출처 : news1 뉴스)
사진들을 보니 밤에 오면 더 멋진 곳일 것 같았다. 혹시나 싶어 조금이라도 보일까, 이 곳 저 곳으로 이동해서 교회 쪽을 봤는데, 아쉽게도 안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 또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뗀다. 소화도 시킬 겸, 통로로 이동해서 리조트로 되돌아갔다.
통로 밖은 정말 온통 초록의 향연. 숲을 보면서 걷자니 아침의 아쉬움이 조금은 풀린다. 방으로 들어가 짐을 챙겨 나와, 체크아웃을 하고, 렌트카를 빌렸다. 리조트 1층 내에서 렌트카를 대여할 수가 있다. 몇 가지 사항을 체크한 후 직원이 직접 따라나와 차를 보여주고, 지도도 챙겨주고, 네비게이션을 한국어로 세팅해주고 갔다. 문득, 작년 남프랑스 여행에서 렌트카를 빌렸던 기억이 났는데, 참 여러 모로 비교되는 친절함이랄까......
떠나기 전, 주차장 바로 앞에 GAO outdoor center 가 있어 한 번 둘러보았다.
골프 치기 참 좋겠군요. 다음에 올 때는 골프를 배워서 와야겠다.
양떼 목장 주위의 무지개색 해먹.
말이나 양, 염소 등의 동물을 가까이서 볼 수가 있다. 아기가 있다면 추천하고 싶은 곳.
다음에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 가득 토마무를 떠나 후라노로 향한다.
'Stranger > '18 北海道' 카테고리의 다른 글
北海道 2018 : 별이 쏟아지는 노보리베츠 (0) | 2018.10.22 |
---|---|
北海道 2018 : 후라노/비에이, 일본의 라벤더로드 (0) | 2018.10.11 |
北海道 2018 : 비 오는 삿포로의 아침 (0) | 2018.09.28 |
北海道 2018 : 맥주는 삿포로에서 (0) | 2018.09.27 |
北海道 2018 : 북해도 여행객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 (0) | 2018.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