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전일 동네를 둘러보면서 느낀 바, 가까운 곳에 식사를 할 만한 데가 딱히 없는 걸 알고 전날 근처 까르푸에 가서 미리 사온 것들로 아침을 준비했다. 전자렌지인 줄 알았던 미니오븐은 사용법을 알 수 없어 모험은 접고, 냄비를 꺼내 물을 끓여 계란을 삶고, 치킨으로 추정되는 레토르트 요리를 담가서 익히고, 크로와상과 냉장고 속에 넣어둔 얇은 햄도 꺼냈다.
납작 복숭아.
옆에서 보면 이름 그대로 납작하게 생겼지요. 여행 가기 전 이것저것 알아보다 여름의 유럽, 특히 프랑스에 가게 되면 납작복숭아를 반드시 먹어야한다며, 잊을 수 없다, 이거 먹으러 다시 가고 싶다 등등의 극찬이 이어지는 후기를 몇 개 우연찮게 발견했더랬다. 들으면서도 이름 웃기네 싶어 봤는데, 실물을 영접하고 나서야 flat peach가 왜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모양새. 마트에서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과 별개로는 이 쪼그만 녀석이 뭐라고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먹어보니...이 글을 보고 있을 혹시 모를 여러분 여름에 유럽가면 이거 꼭 드세요. 납작 복숭아는 사랑입니다. 쪼끄만 모양새와 달리 한 입 베어물면 입 안 가득 퍼지는 즙이 복숭아에 대한 환상을 완성시켜준다. 태어나서 처음 먹은 복숭아가 이 녀석이었다면 웬만큼 달고, 즙이 가득한 복숭아가 아니고서야는 만족하기 쉽지 않울듯. 아직 한국에서는 아직 먹기 힘들답니다.
캠핑온 것 마냥 복작복작하게 아침을 차려 먹고, 숙소를 정리한 후 체크아웃을 하러 내려갔다. 전일 체크인하면서 직원을 아예 보지도 못한 터라 체크아웃을 하며 호텔 직원을 만날 생각에 묘하게 설레는 기묘한 아침. 금발에 살짝 까무잡잡하게 탄 피부가 매력적인, 키가 큰 젊은 아가씨가 직원이였다. 헤어짐을 이야기하러가면서 반갑게 인사하는 것도 처음이라 묘한 기분이었다. 어디로 가냐고 묻길래 엑상프로방스로 간다니 거기 참 좋지, 라며 즐거운 여행 되라고 인사해주심.
이른 일요일 아침이었던 탓일까. 인적이라고는 찾기 힘든 숲길에도 한참을 달리다 보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사이클 매니아들을 마주치곤 했다. 이렇게 긴 길인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왔을까. 끝 없이 이어지는 푸른 숲을 한참이나 멍하니 보다가 나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다. (남펴니 미안) 숙소로부터 출발한지 약 2시간 가량을 신나게 졸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차창 밖을 슬쩍 내다보니 잠들기 전 나무만 빽빽하게 보이던 풍경과 달리 나무 사이사이 에메랄드 빛의 호수가 언뜻언뜻 보이기 시작하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점점 나무 사이의 간격들이 벌어지면서 에메랄드 빛이 망막에 맺히는 느낌. 빨리 내려서 보고 싶다. 뷰 포인트로 짐작되는 곳을 발견하자마자 냅다 주차를 하고 달려 나갔다. 나무 사이의 그 곳에는
이런 장관이 펼쳐지지요. 여러분은 지금 생크루아 호수를 보고 계십니다.
너무 멋있는 풍경은 이렇게 현실감이 없다.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이게 실제로 가능한 색깔인가 싶어 입을 벌리고 눈만 그저 끔뻑거리면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커다란 DSLR 을 들고 나타나신 백발의 멋진 할아부지. 멋진 풍경은 어디든 담고 싶은 마음은 다 같나보다. 우리처럼 한참을 보다가 셔터를 눌러대다를 반복한다.
이쯤 되면 진짜 커플이 누군지 의심스러운 옷차림.
초큼 부끄럽지만 이 멋진 배경 속에 나를 넣고 사진을 안 찍고 갈 수는 없지. 쨍쨍하다 못해 타들어갈 것 같은 햇빛 아래 에메랄드빛 호수라니. 아무리 바라봐도 믿기 힘든 빛깔이다.
이런 뷰라면 찍을 수 밖에 없는 파노라마. (심지어 폰카로 찍은 사진) 이 곳이 유럽 최대의 협곡이라고 한다. 그 속에 이런 에메랄드 빛깔의 호수가 숨겨져 있다니. 그런데 이렇게 큰 호수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이 곳을 보려면 쉬지 않고 꼬박 2시간을, 차로 달려와야한다. 끽해야 말 밖에 이용할 교통수단이 없던 그 시질 이 풍경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되었을까. 한참을 감탄하면서 보다가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다시 차에 올랐다.
고르동 협곡을 알리는 팻말. 국립공원이면서, 유네스코에서도 지정한 곳. 멀지 않은 곳에 주차장이 있어 차를 대었다.
이 곳의 날씨를 짐작할 수 있는 선인장이나 알로에 같은 이국적인 식물들의 향연.
꼴랑 10분 정도 내리막길을 걸었을 뿐인데, 녹아내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녹아 없어져도 호수는 보고 없어져야지. 호숫가에는 햇빛을 피할 만 곳이라고는 없어 보여 호숫가 입구에 카페를 운형하는 트럭을 발견하고, 잠시 앉아 콜라를 흡입하며 휴식을 취했다.
가까이서 보면 물이 이렇게나 맑다.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마냥 편하게 들어갔다 나오기는 쉽지 않은 곳이다. 근처에 사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날을 잡고 놀지 않는 이상 수영하기에는 조금 무리인 곳. 언젠가 다음에 올 기회가 있겠지 이렇게 또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에 발이라도 담가봤다. 산은 산이다. 바다의 차가움과는 다른 계곡의 선뜩한 시원함이 발 끝부터 느껴진다. 시원한 기운에 순식간에 더위가 가시는 느낌. 좋다. 너무나 큰 호수라 바다 같기도 하다. 잔잔한 파도같은 물결이 끊임없이 일렁거린다. 차가움이 익숙해지자 좀 더 용기를 내서 치마를 걷어 올려 잡고 물 속으로 들어가봤다. 허벅지까지 시원한 찰랑거림이 차오른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던 몸짱 커플.
식스팩을 자랑하시던 60대는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 남의 눈 신경 안 쓰고 입는다지만 어딜 가나 몸매 좋은 사람이 더 많이 벗는 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고. -_-a
신선놀음
아쉬움 안고 다시 올라갑니다. 다시 와서 여유롭게 수영하며 즐길 날이 있겠지. 호숫가에서 멀어지니 다시 더워지기 시작. 다시 목 좀 축이러 갑시다.
태양을 피고 싶었던 남펴니.jyp
처마 밑에 옹기종기 제비집. 새들이 워낙 빨리, 또 낮게 나는데 제비인가 했는데 제비 맞는 것 같다. 너무 빨라서 사진에는 담지 못함.
남프랑스의 흔한 카페뷰. 창가 틈새로 에메랄드 빛이 찬란하다. 보정 하나 없는 있는 그대로의 색. 기대 이상의 풍경이었다. 이런 곳에 살려면 무얼해야하나. 스쳐가는 관광객 입장에서 가장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는 말, 여기 살고 싶다. 그런 말이 아깝지 않은 곳이다. 겨울에 춥고 눈이 많이 와서 갇힌다하더라도 이런 풍경을 매년 여름마다 볼 수 있다면 기꺼이 살고 싶어지는 곳. 커피를 쪽쪽 마시며 한참을 바라 본다.
오늘의 행선지는 오전에 생크루아 호수, 고르동 협곡을 지나 엑상 프로방스. 이 풍경을 뒤로 한 채 바로 가려니 아쉽기도 하고, 어차피 여름이라 해도 긴데 네비게이션에 계속 무스티에 생트 마리가 뜨길래 들러보기로 했다. 무스티에 생트 마리 (Moustiers saint marie), 몇 년 전 대한항공의 광고에서 남프랑스편 '프랑스, 어디까지 가봤니?' 에 나오던 바로 그 마을. 그 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가는 중에, 이럴 일이니. 출발한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차를 세우게 만드는 풍경.
눈이 시릴 정도로 끝없이 펼쳐지는 보랏빛 라벤더 평원도 모자라서
그 앞에 노-랗게 가득 핀 해바라기들. 이 황홀한 정경을 보기 위해 우리는 12시간 가까이를 날아 이 곳에 기꺼이 왔다고, 그럴 가치가 있는 풍경일 수 밖에 없다고 몇 번이고 감탄한다. 살짝 바람이 불면 향긋한 듯 살짝 매콤한 향기가 코 끝을 스치고, 눈 앞에는 보랏빛(더 멋진 표현을 찾아내고 싶지만)의 파도가 일렁인다. 넓은 땅 그저 꽃만이 피어있는 이 단순하고, 어쩜 별 것 아닐 지도 모르는 풍경 사진 하나를 처음 본 순간 만리타국의 이방인이 몇 년 동안 이 곳을 꿈꾸고, 12시간쯤의 비행은 기꺼이 하겠다고 결심했다. 첫 눈에 반했던 것 같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보러 올 필요가 차고도 넘치는 풍경. 여행에서 겪는 자잘한 모든 고생을 감내하게 하고, 단 번에 잊게 하는 자연의 아름다움. 그 어떤 기교와 아름다움을 가진 것도 결국 자연 그대로의 풍경, 노을이나 꽃밭을 이길 수는 없다. 아무리 잘 찍으려고 해도, 잘 찍히지 않았다. 잘 찍었다고 하더라도 보정을 하더라도 지금 내가 보는 이 풍경, 이 감정, 이 공기를 담을 수는 없겠지. 몇 번이고 셔터를 이리저리 눌러대다 그냥 내려놓고 본다.
인생샷. 지금 내 카톡 사진 프로필이다.
정신없이 라벤더를 보다가 문득 옆을 보니 도로 건너편 수풀 사이로 숨어있는 뷰포인트를 다시 발견.
하지만 이 정경을 마냥 즐기기에는 태양빛은 너무도 뜨거웠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너무 아름다운 곳- 특히 그 곳에 자연이라면- 은 신의 정원이고, 우리는 그 곳에 허락 없이 몰래 들어간 인간이 된 것 같다고. 그래서 마냥 즐기기 어렵게 뜨거운 태양이 내리쬔다는 그런 유치한 생각. 그래서 자연의 풍경을 원 없이 즐기기 위한 좋은 시간이 그렇게 많이 안 주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더위를 비교적 덜 타는 나는 그나마 견딜만 했지만, 10분 이상 돌아다니면 정신을 차리기 쉽지 않다. 뷰포인트고 뭐고 일단 그늘로 달려가는 남펴니. 뭔가 귀여워서 찍어봤다. 산 속이라 더 그랬을지 몰라도 이 날은 정말 가장 더웠다. 정수리가 녹아내리는 느낌.
7월 초에도 이렇게 더운데 도대체가 8월은 어떡하냐며 걱정 아닌 걱정을 햇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 돌아오고, 8월 초의 인터넷은 유럽이 폭염이라는 기사가 연신 뜬다. 프랑스는 37도, 스페인은 43도 -_-;; 여튼 각설하고, 다시 라벤더 밭 사이를 달려 우리는 무스티에 생트마리로 갑니다.
차 안에서 달릴 때 보이는 풍경은 이런 느낌. 마구 사진을 찍다가도, 무슨 짓을 해도 실제만 못 하구나 싶어 시무룩해져 카메라를 내려놓다가도 다시 찍는 행위를 반복한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차창을 열어본다. 라벤더 향이 건조한 바람에 섞여 차창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다소 뜨겁지만 기분 좋은 바람이다.
드디어 나타난 마을 입구.
마을 입구를 관통하는 계곡과 폭포. 하지만 이 사진을 찍은 시간을 기점으로 남편이 일사병으로 기절 위기가 와서 관광이고 뭐고 일단 접고 휴식을 취할 곳을 찾았다. 사실 마을 들어오기 전에도 너무 어지럽다며 힘들어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일사병이었던 것. 심지어 운전 중에 너무 어지럽다고 해서 잠깐 차 세우고 쉬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사고 없었던 게 다행이고, 운전한다고 고생한 남편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오후 2시반이 지나니 웬만한 식당들이 다 break time 에 들어가버리고 남펴니는 점점 멘탈이 나가는 상태에서 울 것 같은 기분이 들 뻔 했는데, 다행이 식사가 가능해보이는 집을 발견했다. 메뉴는 샌드위치 정도였지만 메뉴를 따질 때가 아니라 일단 달려들어가 주문 되는 걸 확인하고, 바로 착석.
메뉴는 정말 온통 샌드위치 뿐이었다. 밥순이라 스파게티든 뭐든 밥이 될 만한 걸 먹고 싶었지만 어쩌랴. 고민하다 익숙한 토핑이 많이 보이는 메뉴로 골라 주문했다. 주문한 메뉴가 나왔는데, 정말 단촐한 샌드위치. 비쥬얼도 막 화려하지 않고. 한 입 먹고 맛이 너무 소박한 느낌이라 읭? 했으나 먹으면 먹을 수록 묘한 맛이 있었다. 후루룩 다 먹고 콜라까지 마셨더니 남편도, 나도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 일사병이 이런 건가보다, 더위가 참 무섭다 싶어서 새삼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를 구제해준 샌드위치 카페 앞에서.
고생해서 왔는데, 그래도 마을 한 번 둘러봐야지.
다비드의 별. 마을 입구로 들어가 절벽 사이를 보면 한 가운데 별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마을의 상징처럼 유명한 별인데 찾아보니 옛날, 십자군 전쟁에 출정했던 기사가 전쟁에서 살아돌아오면 성모마리에게 별을 갖다 바치겠다고 다짐했었고, 운 좋게도 살아 돌아올 수 있어서 저 별을 달았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은가보다. 꽤나 높이 매달려 있어서 어떻게 달았는지도 새삼 궁금해지지만 너무 더워서 다른 생각은 더 나지 않고
↑이거슨 아이폰 7으로 찍은 사진
그늘만 보면 앉고 보는 남펴니.jyp
아기자기 예쁜 풍경. 그림 같은 마을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예쁜 마을이라는 말에 충분히 납득이 간다. 누군가 남프랑스를 여행간다면 꼭 가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곳이다. 하지만 너무 더웠다. 너무....태양이라면 환장한다는 이 동네 사람들도 막상 그늘만 보이면 앉는 모습.
어김없이 젤라또.
그늘에 앉아있어도 참을 수 없는 더위. 카페 바로 옆 분수에 다들 몸을 적신다. 습기를 가장 못 견디는 나는 비교적 건조한 날씨에 그나마 괜찮았지만 이 날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하긴 했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더위도 더위지만,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 썬그라스 없이는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햇살. 이 날은 해질 녘까지도 썬그라스를 벗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분수 등에 들어갔다 나오기 시작했다. 물 한 번 뒤집어쓰면 낫지 않겠냐는 말에 축축해진다고 거절했던 남편도 결국 못 참고 머리 감기 시전. 그래도 머리 감으니까 시원하다고...
다들 그늘로.
마을 안도 좀 더 둘러보고, 성당도 가보고 싶었지만, 이 날씨에 이 일정은 도저히 무리라고 판단해서 마을 입구와 인근만 둘러본 뒤 발렝솔을 거쳐 엑상 프로방스로 향했다.
안녕 무스티에 생트마리, 다음에는 좋은 날씨에 여유롭게 볼 수 있겠지. 또 올게.
차창 밖 눈부신 해바라기 들판. 우리를 바라 보고 있었다면 좀 더 좋았으련만.
발렝솔로 가자.
그림 같은 라벤더 평원. 그리고 이 라벤더 로드의 정점은 오늘 방점을 찍었다. 발렝솔은 경유지로 지나가면서 라벤더나 볼 정도로만 생각했던 데라 Valensole을 네비게이션에 입력했더니 뭔가 알 수 없는 곳이 나왔다. 거리나 위치를 보니 맞기는 한데, 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동안 늘 그래왔듯이 마을 주차장 근처려니 싶어서 일단 출발.
처음에는 이렇게 멋졌지.
한참 가다보니 빈 평원도 있어서 여긴 수확이 끝났나 싶었는데,
갈수록 오지로 안내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아스팔트가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여기는 어디인가요.
일반적인 자동차가 아닌, 트랙터가 다닐 법한 길로 가고 있었다. 우리는 분명 네비게이션을 따라 가고 있었고, 도로가 표시되어 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종착점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도무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평원 한 복판에 있었고, 때 마침 하이킹을 하던 가족이 우리를 신기한 듯이 보고 갔다. 네비게이션에 선명히 찍혀있는 발렝솔.
네비게이션에 찍혀있던 발렝솔은 지금 생각해보니 발렝솔 마을 한 복판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미스테리다. 트랙터가 다니는 길이 네비게이션에 찍혀있었던 것도, 그리고 프랑스에서 달릴 때마다 차체로 튀어오르는 자갈 소리에 이거 계속 가도 되나 싶은 길을 달리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 날 우리의 라벤더로드는 로맨틱한 꽃길에서 갑자기 SUV를 몰고 계곡물을 사방으로 흩뿌리며 질주하는 오프로드가 되었다. 아무 것도 없는 벌판에서 헛웃음치다가 이젠 진짜 도로로 가자며 어찌어찌 숲인지 밭인지 모를 그 곳을 나왔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지면에 차가 닿는 그 순간, 도로가 푹신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아마 이런 라벤더로드를 겪은 여행자는 또 없겠지. 한참을 웃다가 음료수라도 마시자며 까르푸를 찾았다.
알록달록 쭈쭈바. 별 생각없이 집었는데, 외양은 영락없이 불량식품 같지만 꽤나 맛있는 하드였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거 나름 인기 있는 하드바인 것 같다. 나중에 보니 애들이 이거 물고 다니는 모습 꽤 많이 봤더라고. 남프랑스에, 그것도 라벤더 보겠다고 와서 흙길을 달리고, 이런 불량식품을 먹을 줄은. 참 재미있는 날이었다.
여기는 엑상 프로방스.
시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저녁을 먹으러 갑니다.
가는 길에 만난 신비한 비눗방울 아저씨.
오색 영롱하게 부풀어오르는 비눗방울은 참 신기하다. 별 것 아닌데, 그저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면서 행복해지는 것들이 있다. 바람에 날려 퍼지는 비눗방울을 쫓아가고 싶은 마음을 아기들이 대신해준다.
이젠 그냥 프랑스 시내면 으레 있으려니 싶은 회전목마.
나름 식당가가 밀집해 있는 곳. 사람들은 바글바글했지만, 눈 씻고 몇 번을 둘러봐도 동양인은 우리 말고 거의 없었다. 조금 위축되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여행자의 기분을 맘껏 내기에는 최적의 장소.
무난해보이는 메뉴들로 주문했는데, 꽤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말 그대로 포식. 무리했으니 하루 한 번 단백질을 섭취해야한다는 미명 하에 프랑스에 와도 나의 고기 사랑은 멈추지 않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서 꽤 고단한 일정을 잘 버텼나 싶기도 하다.
시내를 둘러보고, 가장 큰 거리 중 하나인 미라보 거리로 갑니다.
구석구석 예쁜 분수. 엑상 프로방스는 분수가 많은 걸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아기자기한 분수가 여기저기 있어서 보는 재미가 제법이다. 지저분한 느낌의 이질감 없이 구석구석 잔뜩 낀 이끼가 잘 어울리던 돌이 있는 분수. 분명 분수인데, 인공적이고 화려한 조각들로 덮여, 나 좀 보라고 외치는 분수와 달리 순응하는 녀석.
한국으로 치면 인사동 거리 비슷한 느낌도 난다. 특산물은 라벤더가 메인.
미라보 거리 끝 가장 큰 도로에 있던 큰 분수. 이 사진을 끝으로 우리는 숙소로.
내일은 라벤더로드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세낭크 수도원으로 갑니다. 이번 블로깅을 통해 다시 한번 여행 내내 운전하느라 고생해준 남편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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