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만에 집에 왔다.
중환자실에 갇혀있던 2주 동안 계절은 초여름에서 장마를 거쳐 진짜 여름이 되어 있었고, 풀당 2주 전 마지막으로 입고 왔던 옷은 어둡고 칙칙하고 더워보였다.
환자 30-40명씩을 보려다가 갑자기 1-2명을 집중적으로 봐야하는 중환자실은 낯설었다. 사실 아직도 적응을 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환자가 없는 상황 자체에는 적응이 되어 지금은 늘어지게 자고 있다. 여름이라는 계절 덕분에 지금도 흔히 생각해오던 중환의 이미지를 가진 중환은 없다. 중환자실 입실 1주일만 지나면 ventilator의 달인이 될 줄 알았으나 90대에 가까운 할아버지 한명이 무사히 순조롭게 ventilator 한대를 잘 버텨내고 일반병동으로 간 게 다였고, 이후로는 기계를 만질 일이 없었다. 겨울에 다시 ICU를 돌아야되는데 지금 이 턴을 돌 때까지 뭔가를 배울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주치의를 하면서 이렇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기회가 또 언제 오나 싶어 아쉽기도 하다. 여유가 있다고 공부를 하게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중환자실 밖에서는 비가 계속 오기도 하고, 또 한없이 더웠던 모양이다. 가끔 배달온 밥을 가지러 나가는 길에 5분 내외로 잠깐씩 느껴본 날씨가 전부였던 나로서는 핸드폰 덕분에 바깥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다 아는 느낌이었다. 아이폰과 SNS와 인터넷 덕분에 중환자실 스테이션은 커녕 당직실 문 밖에 나가지 않아도 누워서 서울 어디에는 비가 얼마나 왔는지, 어디 댐이 무너졌다던지 무슨 사고가 나는지 다 알 수 있었다. 모든 소식들을 직접 겪지 않고도 본 것처럼 생생하게 읽었지만 허상 같았다. 더위도, 장마도 피부로 와 닿지 못한 하나의 풍경으로 남았다. 지겨워지면 실없는 웃긴 이야기거리나 연예인 뒷얘기, 웹툰, 게임 등을 잠시 보다가 불 끄면 빛 한줄기 없는 당직실에서 룸메이트와 실없는 이야기를 하고 TV를 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당직실 문 밖에서 끊임없이 미세하게 들려오는 모니터의 알람소리가 안 들리면 오히려 불안해졌다. 끊임없이 울리던 핸드폰 벨소리 대신 미세하게 삐삐거리는 소리는 잠이 드는 순간까지 귀에 맴돈다. 중환자실에 오래 있으면 섬망이 생긴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았다.
늘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의미 있는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다. 점점 혀가 굳어가는 느낌이다. 외부인이래봤자 보호자들을 보는 게 전부이고, 보호자들 면담 끝에는 항상 경고를 하게 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안 할 수는 없다.
환자가 더 없었던 내 침대 머리맡에는 나보다 환자 1-2명이라도 더 보던, 나보다는 부지런한 룸메이트가 욕창예방 스티커를 붙여주고 나갔다. 아침마다 둘다 붕어처럼 부은 눈으로 스테이션에 앉아있으면 교수님은 또 자다 나왔냐며 웃고 가셨다. 환자 없어도 아침에는 나와서 앉아있어라-며.
기계와 온갖 선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중환은 없다. 술에 쩔어있던 환자들이 어디선가 술을 먹고 피를 토하다 실려오기도 하고, 기침하다가 피가 섞여서 나왔다던지, 실수로 혹은 다툼 끝에 약을 먹거나 혹은 목을 매고 의식 없는 사람들이 경과관찰이라는 목적으로 잠깐씩 스쳐갔다. 중환자실 들어오고 3일만엔가 받았던 환자는 들어왔던 목을 맸던 60대 남자였다. 심정지 추정시각이 40분이라고 했다. 예상과 달리 환자는 거구였다. 혹시라도 운이 좋으면 살아는 있을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정말 운이 좋으면. 대신 살아만 있어 평생 가족들의 짐처럼,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죄책감으로 평생 남아있을 사람이었다. 가족들과 이야기를 해보았고, 중환자실에서 10시간을 버틴 이후부터 환자는 혈압이 잡히지 않기 시작했다. 답 없는 것이 보이자 나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교수님은 벌써 환자를 포기하냐고 버럭하셨지만 난 잘 모르겠다. 의사로서 글러먹은 자세일지 모르겠지만 평생 본인이 원하는 대로 살았을 사람이 그렇게 살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서 살려놓고 봐야하는 가에 대한 의문을 늘 품고 있다. 살아만 있어서 행복한 걸까. 결국 환자는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시신이 실려나가면서 가족들의 울음소리도 멀어졌다.
어제 밤에는 실수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살시도를 했던 것 같은 30대 남자가 농약 2모금을 마시고 들어왔다. 신경안정제를 먹었다느니 기억이 안 난다느니 질문할 때마다 대답이 자꾸 바뀌고 있는 걸 보니 다른 건 몰라도 약을 먹었던 자체를 부끄럽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고, 실수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주말을 무사히 넘기기를 기도하고 있다.
아직 남은 턴이, 여름이 길다. 아픈 사람이 오면 나는 힘들겠지만, 뭐라도 배울 수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픈 사람은 서글프고 그 자체로 그냥 슬프다. 차라리 배우는 게 없어도 좋다. 그냥 아무도 아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