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2017)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작소설을 읽은 것이 벌써 5년 전쯤 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책이 출간되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당시 서점에 베스트 셀러로 걸려있었는데, 강렬한 제목에 김영하라는 이름을 믿고 바로 집어들어 샀던 기억이 있다. 책을 샀을 당시는 본과 3학년으로 실습 기간이었다.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실습생이라는 명목으로, 머리 수를 채우기 위해 모 학회에 끌려갔었는데, 그 때 들고 갔다가 굉장히 몰입해서 읽었었다. 다 읽고 나서 뒷자리에 있던 같은 조 동생한테 너 읽어볼래? 라고 권했는데, 누나는 무슨 이런 제목을 가진 책 보냐고 쿠사리를 주더니 2시간 반 뒤에 '누나 이거 대박이다'를 외쳤다. 아까 뭐라해서 미안하다며 ㅋㅋ
사설이 길었다만, 그만큼 원작을 재미있게 읽었고 읽었을 당시에도 이건 영화로 언젠가는 만들어지겠다, 싶었는데 드디어 (생각보다는 늦게). 주인공 병수의 설경구, 민태주(소설에서는 박주태)의 김남길, 그리고 은희의 설현 모두 캐스팅이 원작 소설에도 크게 어긋나지 않게 잘 맞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민태주 역의 김남길이 소설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보다 미남이라 조금 아쉽기는 했다. 그래도 속을 알 수 없는 남자의 서늘한 그 표정하며, 분위기를 잘 살려내서, 역시 연기를 잘 하면 된다는 결론이.
올해 봄 쯤엔가, 김남길 씨와 컨택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인기나 인지도를 감안하면 거만한 느낌도 전혀 없고, 예의 바르고 참 인상이 좋은 사람이었다는 기억이 난다. 그런데 스크린에서 보인, 김남길의 이런 표정. 속을 알 수 없는, 섬뜩하고 서늘한 느낌. 최근 명불허전도 그렇고, 연기력이야 원래 인정 받았던 배우지만, 영화를 보면서 연기를 참 잘하는 배우라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하게 되었다. 아무리 연기라지만 실제로 만나보았을 때는 이런 느낌을 1도 받을 수 없었는데, 역시 배우는 배우구나 싶고.
개인적으로는 소설을 먼저 읽어보고 영화를 보기를 권한다. 주인공이자 전직 연쇄살인범이었던 병수(설경구)가 알츠하이머를 진단 받고, 점차 기억력을 잃어가는 와중에 동네에서 연쇄살인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다시 발생하게 된다. 우연히 마주친 남자 민태주(김남길)이 연쇄 살인범임을 직감하게 되고, 딸인 은희(설현)가 새로운 타겟이 되었다고 생각해서 딸을 지키기 위해서 민태주와 사투를 벌이는 병수의 이야기라는 이야기의 큰 틀은 영화나 소설 모두 일치한다. 하지만 자잘한 몇 가지 설정을 포함, 결말이 원작 소설과는 완전 다르다.
소설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원작은 병수의 시점에서 전개가 된다. 알츠하이머를 앓는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단편적인 기억이 나열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문장이 주욱 이어진다기 보다 다소 짧은 느낌의 문단의 나열이 이어져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맥락이 끊기는 느낌도 없고, 상상력으로 행간이 메꾸어진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 적절한 행간, 안정적인 호흡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아쉬움 없이 흐름과 전개가 깔끔하다. 그렇게 읽어나가다 생각치도 못했던 결말이 주는 충격, 여운에서 김영하 작가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여운을 무한정 남길 수 없다. 글은 상상할 수 있지만, 화면은 당장 눈 앞에 보여주기 때문에 구체적이어야하고, 그렇기 때문에 원작에서 최대한 발휘된 상상력을 가장 현실적으로 구현해 내어야 한다. 그렇기에 애초에 딸인 은희의 존재가 없었던 원작소설과 달리 영화는 은희의 존재를 인정하고, 민태주도 사실 살인범이었다는 반전을 심는다. 그런데, 나는 좀 아쉬웠다. 은희의 존재, 민태주의 정체까지는 영화로서 괜찮은 설정이었는데 , 결정적인 순간에 발휘되는 병수의 부정(父情), 그리고 민태주의 존재에 대한 다소 알쏭달쏭한 (여운을 주려고 만든 것 같은) 마지막 장면이 사족 같아서 아쉽다.
원작과 달리 병수는 감정이 있고, (딸은 감정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회적 악이라고 설정되는, 쓰레기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살인을 저질렀던 것으로 나온다. 민태주가 살인범이라는 설정은 병수에게 관객의 감정이입을 위한 장치이다만 글쎄다, 원작을 어느 정도 감안하면 차라리 병수가 갖고 있는 살인에 대한 욕구를 투사시키는 (가상의) 존재를 민태주로 했으면 더 괜찮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 물론 이런 생각을 한 것은 내가 소설을 읽고 영화를 봐서 일 거다. 소설을 보지 않고, 영화만 본다면 그닥 나쁘지 않은 결말이다.
설현도 생각보다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음울한 분위기에 비해 목소리톤이 높았고, 산장의 결투신에서 쓸데 없이 몸매를 강조하는 옷을 입힌 것 같아 아쉽다. 그냥 원피스를 입히는 게 나았을 듯.
여튼 영화는 괜찮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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