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 OUT (2017)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SNS에서 떠돌던 예고편을 우연히 본 이후 내심 개봉을 기다렸던 영화. 원래 국내 개봉 예정 영화가 아니었으나 (나처럼) 예고편을 본 관객들의 요청으로 개봉하게 되었다고 한다. 예고편에는 상당히 끌렸지만 막상 극장에서 볼 자신도 없고, 공포영화를 극장에서 거의 보지 않는 나였기에 B TV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드디어 관람.
사진작가인 크리스는 여자친구 로즈의 집에 초대를 받게 되고, 그녀의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여자친구의 집으로 향한다. 백인인 여자친구와 달리 자신이 흑인이라는 사실과, 그 사실을 여자친구의 가족들이 모른다는 것에 웬지 모를 불안감을 안고 출발하고,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도로로 난입한 사슴을 차로 치는 교통사고를 겪는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채 도착하지만, 예상과 달리 여자친구의 가족들은 그녀를 환대한다. 생각보다 친절한 분위기에 안도를 하는 것도 잠시, 여자친구의 집에서 일하는 흑인 가정부와 정원사의 이상한 행동들을 보게 되면서 다시 알 수 없는 기묘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자신이 흡연자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여자친구의 부모님은 과하게 금연을 강요하는 모습에 뒤숭숭한 기분을 느끼지만 딸과 딸의 남자친구에 대한 걱정이려니 한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녘에 몰래 담배를 피우러 정원에 나간 크리스는 초점 없이 정원을 달리는 흑인 정원사와 허공을 보며 이상한 미소를 짓는 가정부의 괴상한 모습을 보게 된다. 찜찜한 기분에 담배도 내려놓고 다시 집에 들어왔을 때 마침 여자친구의 어머니가 그런 자신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고, 자신에게 어릴 적의 아픈 기억을 물어보며 최면을 건다. 물 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듯한 갑갑함과 공포에 크리스가 식은 땀을 흘리며 정신을 다시 차린 곳은 침대. 악몽이려니 생각했던 크리스는 전날 여자친구의 어머니랑 무슨 대화를 했냐는 정원사의 인사에, 전날 보았던 괴상한 풍경과 자신이 겪은(당한) 최면이 그저 악몽이 아님을 알게 된다.
백인 천지인 동네에서 묘한 소외감을 느끼던 크리스가 처음으로 다른 흑인을 만나고 나서 반가움을 표현하는 손인사를 건네지만 어색한 악수가 돌아오면서 크리스는 그제서야 막연하게 느낀 불안감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연히 터진 카메라 플래시에 코피를 주르륵 흘리며 크리스에게 외치는 'GET OUT' 은 단순한 짜증이 아니었다.
미국판 곡성이라는 평도 있길래 나름 기대를 했었는데, 본의 아니게 결말을 알고 본 탓인지 곡성만큼의 충격에는 미치지 못했다. 결말을 모른 채로 봤다면 나름 곡성만큼이나 충격을 줬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살짝 남기는 한다. 그래도 이 영화는 식스센스 류의 영화는 아니다. 반전이 하나의 장치일 뿐,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아 알고 봐도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같이 본 이는 줄거리, 결말을 다 알고 봤는데, 알면서 보니 오히려 더 섬뜩하다고 말했으니까.
흑인노예제도가 사라진지 한 세기가 넘었고, 흑인 대통령이 나온 21세기에도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잔혹 동화 같은 이야기다. 지난 미국대선에서 트럼프를 가장 또라이 같다고 생각하게 만든 이민자, 유색인종에 대한 온갖 배타적 태도가 바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유령 같은 흰 가면을 쓴 KKK단은 지금도 버젓이 존재한다.
여자친구의 아버지는 신경외과 의사, 어머니는 최면에 능한 정신과 의사로 나오는데, 딸(로즈)가 유인해오는 흑인남성을 납치해서 어머니가 최면을 걸고, 아버지가 뇌이식수술을 하면서, 흑인은 스스로의 주체성을 잃고 백인의 언어, 생활방식으로 살아가게 된다. 영화 뒷부분에 대사로도 나오지만, 흑인의 뇌를 일부 남겨놓음으로서 특정 자극에 의해 잠재되어 있는 (흑인으로서의) 주체성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기에 느껴지는 건 막막함, 슬픔, 공포,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불안감만이 남을 뿐이다. 최면에 빠진 크리스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듣지 못하듯이.
유색인종(특히 흑인)에 대한 백인의 우월감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흔히들 말하는 우월하고 건강한) 흑인의 육체에 (지적으로 뛰어난) 백인의 정신(뇌)을 이식한다는 잔인하면서도 기발하고, 또 섬뜩한 설정이다. 백인-흑인 영어의 미묘한(?) 차이를 알고 보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
+ 추가로 알아낸 깨알정보
1) 영화에서 최면에 이용되는 찻잔과 은수저가 요즘 유행하는 '금수저'와 같은 맥락
2)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자신이 사슴을 싫어한다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사슴(Buck)은 백인에게 저항하는 흑인남성을 비하하는 표현.
3) 영화 말미에서 로즈가 흰 우유, 후르츠링을 따로 먹음 -> 백인과 유색인종이 섞일 수 없음을 은유함.
★★★★★
'Films' 카테고리의 다른 글
Crimson Peak (2015) (0) | 2017.10.01 |
---|---|
살인자의 기억법 (2017) (0) | 2017.09.10 |
Pirates of the Caribbean: Dead Men Tell No Tales (2017) (0) | 2017.06.06 |
Denial (2016) (0) | 2017.05.21 |
Moonlight (2016) (0) | 2017.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