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nger/'18 北海道2018. 10. 22. 15:12

후라노/비에이 투어를 마치고 아사히카와로 이동, 숙소에 가기 전 차를 반납했다. 차를 반납하는 곳이 숙소 바로 길 건너편이라 바로 숙소로 이동하기에도 부담이 없어 여행 중 가장 잘 잡은 숙소라며 혼자 뿌듯해함. 

아사히카와는 북해도에서 삿포로 다음으로 큰 도시라고 하던데 우리는 동선상 그저 하루 자고 가는 곳이라 딱히 별 기록은 없다. 도시의 느낌은 삿포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80-90년대 만들어졌던 신도시가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는 느낌이랄까.  아사히카와는 동물원이 유명하다고 하던데 일정상 가지 못해서 아쉽긴 하다.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 때는 가봐야지. 

숙소는 아사히카와 JR inn에 머물렀는데, 위치도 좋았고, 이번 여행에서 갔던 숙소 중 가장 깔끔하고 좋았다. 예매 당시 할인이 겹쳐 터무니없이 싼 값에 묵었는데, 만족도 300%. 


저녁을 해결했던 70년 전통의 창코나베집에서. 창코나베는 일본식 냄비전골로 고단백, 고칼로리 섭취를 위해 스모선수들이 즐겨먹던 음식이라고 한다. 가게 곳곳을 둘러보니 사방에 유명 스모선수들의 사진이며 사인이 걸려있었다. 재료가 나와서 어떻게 해야되나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이모님(!)이 바로 오셔서 손수 재료들을 넣어주고 가심. 온갖 해산물이 듬뿍 들어가 있는 비쥬얼에, 먹기 전 나름 예상했던 맛이 있었는데 막상 한 입 먹어보니, 한국식 전골의 깊은 맛보다는 일본 특유의 밍밍하고 달큰한 맛이 강해서 조금 아쉽기는 했다.  그래도 보다시피 내용물이 좋아 나름 든든한 한 끼. 원하는 재료 위주로 주문이 가능하다.  배불리 먹고 숙소로 돌아와 목욕하고 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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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자고 일어난 북해도의 네번째 아침. 오늘은 삿포로를 거쳐 노보리베츠로 가는 날이다. 숙소가 아사히카와 역과 연결되어 있는 곳이라 내려가기만 하면 역과 연결된 거대한 쇼핑몰이 있고, 근처에도 꽤 큰 드럭 스토어도 있어 편리하고 좋았다. 오전 10시 차라 시간적 여유가 있어 편의점에서 산 계란 샌드위치와 스타벅스 커피로 아침도 해결하고,  전날 들렀던 약국에 다시 가서 여권 제시하고 tax refund도 받고. 

성시경이 일본만 가면 사 먹는다던 그 유명한 세븐일레븐의 계란 샌드위치. 일본만 가면 사먹을 정돈가 싶긴하다. 너무너무 대단하고, 엄청난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편의점샌드위치라는 걸 감안하면 훌륭하다. 씹을 수록 고소하고, 부드러운 계란맛에 왜 한국은 이런게 없나 싶어 안타까움.  

역 1층 식품코너를 둘러보다 유바리멜론을 발견하고 고민 없이 구매해서 바로 흡입. 둘째날 니조시장에서 먹었던 것보다는 약했지만, 역시 맛있다 흑흑.


 

북해도 와서 처음 만난 화창한 날씨. 삿포로에 도착해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삿포로 역에서 만난 북해도식 수프카레. 수프와 카레의 조합에서 오는 이름 탓에 물처럼 묽은 카레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 훌륭한 메뉴였다. 치킨을 이용한 저 육수하며 토치로 가열한 브로콜리와 야채의 맛도, 식감도 일품이다. 일본음식의 달큰함에 질려있을 때쯤 구세주처럼 등장한 타이밍이라 더욱 맛있게 와 닿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먹었던 곳은 Firi Firi. 음주 다음 날이나 추운 겨울날에 먹으면 정말 제대로 속이 풀리는 느낌일 듯.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역 근처 백화점에서 구경하면서 잠시 쉬다가 노보리베츠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1시간 반 정도 걸려 노보리베츠에 도착. 노보리베츠가 온천으로 워낙 유명한 동네다보니 어느 정도 규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노보리베츠 역은 명성에 비해 초라할 정도로 낡은 간이역사다.

구석구석 도깨비 그림이며 인형들이 노보리베츠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노보리베츠 역사, 택시 승차장으로 가는 입구의 거대한 곰. 노보리베츠에는 곰목장도 있다고. 일본에서 야생곰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북해도라고 한다. 1주도 안 되는 채 짧은 일정에서도 북해도의 광활한 자연을 조금이나마 겪어보니 왜 그런지 알 법도 하다. 사진 속 곰 박제도 실제로 보면 거의 2m에 달하는 크기다. 지금은 그저 아름다운 관광지의 느낌으로만 와 닿는 북해도지만 옛날깐날은 결코 살기 만만치 않은 동네였을 듯.   



예약해둔 온센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역에서 30분 가까이를 기다려야 했던 탓에 택시를 타기로 했다. 택시가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온통 초록으로 둘러싸인 산길을 시원하게 달린다. 살짝 열어둔 창문 사이로 시원하게 바람이 들어오는데 어느 순간 약간씩 이상한 냄새가 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택시에서 내리고 나서야 그 냄새가 유황냄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공기 전체에 유황 특유의 향이 배어있다. 노보리베츠 온센에 가면 온통 유황냄새가 난다는 후기를 하도 많이 봐서 나름 긴장하고 갔었는데, 계란 썩은 냄새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리 좋은 냄새는 아니라 거슬릴 법도 하지만, 계속 맡다보면 조금씩 둔감해진다. 체크인하고, 방 둘러보며 감탄하다 보니 벌써 오후 4시다. 해가 지기 전 지옥계곡에 가야해서 부지런히 방을 나섰다.  


거대한 도깨비가 지옥계곡으로 가는 길 도입에서 지인들을 맞이한다. 신랑은 옆에서 은비까비 같다며 90년대 감성 아재 소리를 하고 있고, 나는 걔네가 삭은 것 같다고 같이 헛소리로 맞장구 쳐주고 있고....


지옥계곡으로 가는 길에 있는 간헐천. 3시간마다 분출이 있다고 하던데 우리가 지나갔던 시간대는 잠잠하게 수증기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한국의 국립공원 입구와 비슷한 곳을 지나 언덕배기 하나만 오르면 지옥계곡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계곡 구석구석에서 하얗게 피어오르는 수증기며 탁한 청회색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절로 감탄이 나온다. 뜨거운 회색의 물이 흐르는 계곡, 공기 전체에 배어있는 유황 냄새, 곳곳에서 뿜어져나오는 뜨거운 수증기 탓에 이름도 무시무시한 지옥계곡이 되었을 거고, 이 척박한 곳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부모가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이 곳에 도깨비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은 21세기에도 신비로운 전설로 남아 이렇게 외지인들을 불러들인다. 막상 보니 감탄이 나오는 풍경에 7-8월에 왔으면 도깨비 축제를 볼 수 있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았던 타이밍. 한편으로는 이런 곳에서 곰이 살았구나 싶어 신기하기도 하고. 한참을 감탄하며 구경하다가 계곡 입구내 주변 지도를 보고 하이킹 삼아 주변 등산/산책로를 둘러보기로 했다. 나무로 된 길이 있어 계곡 아래로 내려가볼 수 있는 길들이 여러 군데 나 있고, 산으로 오를 수 있는 입구 쪽으로는 따로 안내표시가 되어 있다. 




계곡에서 30분만 걸어도 어느 덧 울창한 숲 속이다. 경사가 어느 정도 있어 숨이 차,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추고 쉬다 가다를 반복했다. 이건 1시간 짜리 코스일리가 없다는 말을 한 열번쯤 했던 듯. 



높은 곳에 올라서면 이런 풍경도 보인다. 



천연족욕탕으로 향하는 길. 


도착해보니 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와서 족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빈 자리가 많지 않았다. 방문객을 위한 의자(?) 등이 있지만 그리 많지 않아 깔고 앉을 것 필히 갖고 가야함. 물기를 닦을 수건이나 물티슈도 필수. 사람들 틈 빈 자리를 찾아 앉고, 뜨뜻한 온천수에 발을 담그니 헥헥거리며 산을 올랐던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와 잠시 쉬다보니 어느 덧 가이세키 시간이 되었다. 온센마다 시스템이 다르긴 한데, 우리가 묵었던 곳은 방으로 가져다주지 않고 2층으로 이동하면 지정석으로 안내를 해준다. 예약하면서 찾아봤더니 요즘은 방으로 가져다주는 곳이 많이 없어진 듯하다. 

메뉴가 놓여있으나 까막눈의 비애. 왜 읽지를 못 하니...



전채요리를 시작으로 해서 전골, 스시, 가리비구이 등이 순서대로 나온다. 전골은 그냥 딱...전형적인 일본식 전골. 예약했던 곳이 아주 좋은 곳도 아니고, (이번 여행 준비하면서 안 거지만 좋은 온센은 최소 3달 전에 예약해야된다는 사실을 배움)은 후기에서도 요리가 예전보다 퀄리티가 떨어졌다는 후기를 많이 봐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메인인 소고기/가리비 중 가리비가 더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골랐는데 그나마 다행이었음. 그래도 일본은 일본이고, 온센 자부심을 걸고 만드는 가이세키다보니 맛과는 별개로 하나하나 정성을 담은 음식들이 서빙되서 나오는 걸 보고 있자면 대접받는 느낌을 느끼기에는 큰 부족함은 없다. 기대가 없긴 했어도 스시는 좋았다. 의외의 메뉴는 후식으로 나왔던 저 생초코렛...인생 초코렛을 일본에서 먹다니. 빨리 먹는 게 습관화되서 좀 텀이 있었지만 하나하나 맛을 음미하면서 먹다보면 한 시간 정도는 훌쩍 지난다.  




노보리베츠는 아무래도 휴양지로서의 성격이 강한 곳이다 보니 밤에 딱히 할 만한 게 없다. 특히 우리처럼 축제도 없는 시기에 온 경우라면. 저녁 먹고 방에 들어오니 8-9시 정도. 이 시간에 탕에 가면 사람이 붐빌 게 뻔했고, 마지막 밤인데 지옥계곡이나 한 번 더 보자며 숙소를 다시 나섰다. 


해가 떠 있을 적 조용했던 간헐천 쪽이 상당히 시끄러웠다. 지금 분출 타이밍인 것 같다며 서둘러 가봤다. 

워낙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굉음을 내며 간헐천이 솟아오르는 걸 볼 수 있다. 안전대가 설치되어있는 곳에서도 뜨거운 증기가 느껴지는 강력한 분출. 



밤이라 그런지 조명 탓인지 낮의 도깨비도 웬지 조금 더 무시무시해보이고, 


유카타 차림의 관광객들이 산책을 하는 모습. 지옥계곡이며 길거리 곳곳에 유카타 차림의 사람들을 보니 새삼 일본에 와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내에서만 입어야되는 줄 알았는데, 숙소 근처 정도는 입고 나와도 되는 모양인 듯했다. 온센마다 유카타가 달라 저기는 예쁘다, 저긴 별로다 이렇게 보는 재미도 있고. 


밤에도 지옥계곡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입구의 전망대에 옆의 숲길로 살짝 올라가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더니, 아, 별들이 가득하다. 이렇게 육안으로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본 게 얼마만인지. 

별이 가득한 밤 하늘이 보이는 노보리베츠. 확실치는 않지만 은하수 같은 것도 봤던 것 같다. 일본에 있던 내내 계속 비며 흐린 하늘에 아쉬움이 많았는데, 이렇게 마지막 밤에 선물처럼 별이 가득한 하늘을 마주해서 더 좋았던 밤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텅 빈 온천을 혼자 독차지하고 느긋하게 온천욕도 하고, 자기 전 아쉬워서 유카타와 게다까지 맞춰 입고 잠시 산책도 나와보고. 게다는 참 불편한 신발이었다. 






북해도 여행의 마지막날 아침, 체크아웃전 조식을 먹으러 갑니다. 

저녁보다 간촐한 아침. 직장인이 된 이후로 아침을 안 먹는게 버릇이 된 탓에 밍밍한 일본식 식사는 아침에 더 당기지 않지만 그래도 맛있게 잘 먹고 갑니다. 


세월이 느껴지는 노보리베츠 역.....



삿포로로 돌아왔는데 이륙시간까지 시간이 너무 남아버림...가기 전 일본에서 회를 안 먹었다며 초밥집에 가서 부지런히 먹고.....다시 먹기 힘들거라며 열심히 우니를 먹어댔다. 


연어알....니조시장도 그렇고 곳곳에서 파는 걸 봤는데 인기가 좋은 메뉴인듯했다. 난 식감이 영....그래서-_-


옛날깐날 경양식 파는 곳 같은 분위기. 



안녕 북해도. 다음에 또 올게.




Posted by kirindari
Stranger/'18 北海道2018. 10. 11. 17:53

떠나기가 못내 아쉬웠던 토마무에서 하루를 보내고, 오늘은 후라노/비에이로 향한다. 검색창에 북해도 혹은 라벤더를 친다면 이 곳이 항상 연관 검색어로 뜰만큼 꽤나 유명해진 곳이다. 지금은 북해도여행시 필수코스 중 하나가 된 곳으로, 나 역시 라벤더투어를 검색하다가 이 곳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만약 작년에 남프랑스를 가지 못 했더라면 아마 이 곳을 대신 왔을 지도 모른다. 여행책자에 따르면 1960년대 초반, 다목적으로 사용되던 라벤더 오일을 얻기 위한 라벤더 재배가 후라노에서 성행했다고 한다. 70년대가 되어 합성향료가 등장하며 재배열기가 사그라들었지만, 현재 팜도미타의 창업자이기도 한 도미타 다다오가 재배를 포기하지 않았고, 1975년 일본 국철 캘린더에 팜도미타의 사진이 실린 것을 계기로 관광객이 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라벤더 명소가 된 곳.   

 

그 동안은 기차로 주로 이동했지만, 자연경관 투어라는 특성상 오늘 하루는 렌트카로 이동하기로 했다. 한국과는 도로 주행방향이 반대인데다가 비까지 오는 바람에 긴장하면서 출발했지만, 도로에 차가 많지 않아 큰 부담은 없었다. 퍼붓듯이 오는 빗줄기 속, 전방의 산기슭에서 펼쳐지는 운해 덕에 토마무에서 운카이테라스를 보지 못한 아쉬움이 조금은 해갈되는 느낌이었다. 

​무섭게 퍼붓던 비가 점차 그치고 어느 덧 구름 사이 푸른 하늘이 언뜻언뜻 비치기 시작한다. 


​깊은 산 속, 무성한 숲의 토마무에서 벗어나 후라노에 가까워 질수록 커다란 농장이 있는 드넓은 평원과 예쁜 농가들, 각종 간판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꽤나 한적한 분위기의 시골임에도 불구하고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토마무에서 1시간 반을 달려 팜도미타(ファーム富田)에 도착. 



​쭉 뻗은 가로수길 양편으로 드넓은 꽃밭이 펼쳐진다. 


Welcome to FARM TOMITA !


센스 있는 보라색 유니폼. 



근처 기념품샵 입구. 내부는 너무 정신사나워서 찍지 않았다. 라벤더를 이용한 각종 특산품을 주로 팔고 있다.  


라벤더가 유명한 곳답게 전반적인 테마가 보라색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우리가 방문했던 시기가 8월 말이라 라벤더가 이미 져버린 탓도 있고, 작년 남프랑스에서 광활한 라벤더 밭을 이미 보고 온 탓에 사실 큰 감흥도 없었고, 유럽 어딘가라고 해도 깜박 속을 법한 풍경이라, 국적이 불분명한 관광지 같아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기자기 깔끔한 농장이며, 색색의 꽃들을 보는 재미가 있어 연인이나 가족들끼리 한번쯤 오기 괜찮은 곳이다. 어쨌거나 라벤더가 메인인 곳인데 그걸 못 보았으니 다소 밋밋했던 걸 수도 있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며 라벤더 시즌에 한 번 다시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 라벤더 아이스크림. 후라노/비에이를 가면 꼭 먹어야된다는 후기를 하도 많이 봐서, '후라노에서 해야할 일 목록' 같은, 일종의 의무감으로 샀더랬다. 다들 맛있게 먹는 것 같기도 하고, 여기까지 왔으니 먹어나보자 싶어서. 사진 찍고 나서 한 입 딱 먹었는데, 맙소사. 진짜 맛있었다. 보라색을 좋아하지만 음식의 보라색은 일단 거부감이 들었고, 라벤더향이 음식에 어울릴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어, 아무리 우유가 맛있는 동네라해도 이건 좀...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이건 완전히 나의 교만한 생각이었다. 입 안에 감도는 은은한 향이 아주 적절하다. 일종의 선이 있다면, 그 선을 아주 정확하게 잘 지킨 작품. 이것과 비슷한 맛을 먹어본 적이 없어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후라노/비에이에 간다면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무조건 먹어야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며, 개인적으로는 이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서라도 다시 올 용의가 있다. 참고로, 팜도미타 내 여러 곳에서 팔고 있으며 계산은 현찰로만 가능하니, 반드시 현금을 챙겨와야한다.  




​알록달록 꽃의 향연을 즐기다보니 어느 덧 점심시간. 근처에 딱히 먹을 만한 집도 없어 구글맵을 돌리다 일본 가정식을 파는 식당을 발견해서 비에이로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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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남편이 시킨 부타동, 나는 카레라이스. 

낡았지만 깨끗하게 잘 닦은 냉반에 무심하게 밥 하나, 미소 하나 툭 하나 얹어내주던 이 곳. 부타동도, 카레도 한국에서는 이제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고, 여기도 사실 뭐 별 다른 거창한 맛은 아니었다. (심지어 카레는 한국과 거의 똑같...) 어렸을 때 친구네 집에 놀러가면 친구네 엄마가 해주실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따뜻해지는 맛과 메뉴들. 남펴니는 여기서 먹은 부타동이 일본에서 먹었던 음식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시종일관 미소로 맞아주던 싹싹한, 커트머리의 여사장님. 그리고 사장님과 이런저런 수다를 나누는 동네사람들의 모습도 참 보기 좋았다. 구글맵 평가대로 일본어를 배워서 저 대화 속에 끼어들어 나도 같이 수다를 떨고 싶어지는 곳. 잘 먹고 청의 호수를 보러 갑니다. 

 



호수 주변은 하얀 자작나무가 우거진 오솔길로 쌓여있다. 바닥은 온통 흙길. 


青い池 (청의 호수)

맥북 배경화면으로 너무나 유명한 이 곳. 사실 나도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청의 호수는 자연 호수가 아니라 인공적으로 (의도치 않게) 만들어진(!) 호수라고 한다. 1988년 도카치다케가 분화한 이후로 화산 사방공사 때문에 보를 쌓는 공사를 했는데, 근처 알루미늄이 함유된 온천이 이 곳으로 스며들게 되었고, 유황이나 석회질 등의 성분이 있어 이런 푸른색을 띄게 되었다고 한다. 날씨가 흐렸던 탓인지 사진에서 봤었던 정도의 선명한 푸른 색은 아니었지만, 하얀 자작나무 숲에 둘러쌓여 오묘한 색을 내고 있는 호수는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옆에 지나가던 한국인 관광객의 표현을 빌리면 '뽕따가 녹은 것 같다.'며 지나가심...감동이 깨지는 느낌이었지만 반박할 수 없는 묘사였다. 딱 그런 색, 터키의 파묵칼레도 이런 느낌의 푸른 색이다.  호수 한 바퀴를 다 돌 때 즈음 어디선가 물소리가 계속 들려서 가봤더니 호수 한 켠으로는 꽤 큰 계곡이 흐르고 있었다. 비가 온 탓인지 누런 흙탕물이 흐르는 계곡과 호수의 푸른 색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신기한 풍경. 한 번쯤 와서 볼 만한 풍경이다. 눈이 쌓이면 더욱 신비로울 것 같은 풍경. 

 



그리고 다시 어딘가. 여긴 이름이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 그냥 사진만...

전망대 높이가 꽤 높아 너른 평원이 쭉 보인다. 눈이 시원해지는 초록의 풍경. 




비에이의 뷰포인트라는 마일드세븐언덕을 보러. 실제로 광고를 찍은 곳으로 유명해졌다고. 





마일드세븐힐의 풍경. 후라노/비에이의 뷰포인트들은 위치가 뜨문뜨문 있는데다, 네비게이션에 이름을 입력하면 없다고 뜨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느냐고? 숙소나 관광안내소 등에 비치되어있는 종이로 된 관광지도 안에 이런 명소들의 지역번호/전화번호가 있고, 네비게이션에는 이 번호를 입력해야 위치가 나온다. 

켄과 메리의 나무니, 마일드세븐이니 해도 큰 기대를 할 건 없다. 사실 어찌보면 정말 별 것 없는, 황량한 들판에 있는 몇 그루의 나무가 있는 게 전부다. 하지만 그 풍경들이 영화나 광고의 배경이 되어서, 혹은 동화 같은 이야기, 멋진 사진들이 되어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풍경 자체는 대단할 건 없었지만, 탁 트인 풍경 속 하늘의 색이, 계절마다 달라지는 색들이 이 곳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면 하얗게 눈이 덮인 풍경은 또 다른 느낌이겠지. 늦은 오후라 사람이 거의 없어 여유로운 풍경이 참 좋았다. 




​날씨가 점차 개인다. 끊임없이 변하는 북해도의 노을을 보며 아사히카와로 향한다. 













Posted by kirind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