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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5.21 Denial (2016)
Films2017. 5. 21. 23:12

 

DENIAL (2016)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년,  한참 영드 셜록에 뒤늦게 꽂혀서 몰아보기를 하던 시절 주인공만큼이나 시선을 뺴앗은 이가 있었다. 모리아티, 그리고 그 모리아티 역을 맡은 배우 Andrew Scott. 기존의 셜록을 다루던 어떤 매체에서도 모리아티를 이렇게 표현해 낸 배우가 없었다. 각설하고,  앤드류 스캇에 한참 꽂혀있던 중 배우 소개와 관련하여 이 영화의 예고편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모리아티가 나왔다는 예고에 음? 하면서 보다가 내용이 개인적으로도 늘 관심있게 보는 홀로코스트 문제였기도 하고 때마침 B TV에 뜬 것을 발견하고, 오늘 관람.  영화와 상관없는 서두로 시작하였다만, 모리아티의 잔상을 깔끔하게 씻어준 영화였다. 적어도 식민지라는 뼈 아픈 역사를 겪었던나라의 사람으로서 역사에 관한 시각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한 좋은 영화였다.

 

영화는 1996년 시작되어 4년간 지속되었던 실제 법정공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로, 꽤나 자극적이고 논란거리가 될 만한 소재를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담담한 톤을 유지한다.  유대인이자 역사학자인 데보라 립스타트 앞에 홀로코스트의 존재를 부인하는 데이빗 어빙이 갑자기 나타나고, 데보라의 강의에서 홀로코스트의 존재를 증명하는 이에게 천 달러를 주겠다며 그녀의 강의를 난장판으로 만든다. 그리고 얼마 후 데보라와 데보라의 책을 출판한 펭귄 출판사에게 자신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소송이 날라든다.  어빙은 영국에서 소송을 걸게 되고, 무죄 추정의 원칙이 없는 영국에서 피고가 된 데보라가 홀로코스트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해야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놓인다.

 

스포일러라고 하기도 무색한 말이다만, 영화는 (당연히) 홀로코스트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보라의 승리로 끝난다.  110 여분의 러닝 타임 내내 어디에도 자극적이고, 감정적일 수 있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홀로코스트를 찾은 데보라의 시선에서 유대인들이 가스실의 계단으로 내려가는 환영이 잠깐 비쳐질 뿐이고, 자신의 발언을 제한하는데 답답함을 느끼는 데보라가 화를 내는 장면이 일부 나올 뿐이다.  히틀러와 나치의 광기에 수백 만명의 유대인들이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가스실에서 무더기로 죽어나간 일이 백년도 채 되지 않았다.  너무나도 끔찍하고 잔혹스러운 일이기에 인정할 수 없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였고, 그래서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누군가가 정당성을 부여하고, 역사를 부정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들을 스스로 믿기 시작했을 것이다.  어빙의 뻔뻔한 태도가 어떤 면으로는 납득이 갈 법도 싶다. 심지어 재판관도 거의 마지막 변론에서 피고인 데보라 측에게 묻는다. '어빙이 본인이 말한 사실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위증이 되느냐'고.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눈물, 유대인으로서의 데보라의 분노는 아마 나에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통상적인 감정일 것이다. 위안부, 대학살을 겪은 우리의 역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좀 더 억울한 것은 독일은 국가적 차원에서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 우리가 통탄하고 있다는 것.  

 

 데보라의 변호사인 줄리어스(Andrew Scott)의 태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모두가 아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해도 감정적으로 휘둘리기 시작하면 오히려 재판에서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 수 많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재판대에 세워봤자 공포로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 사실을 왜곡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오히려 모욕감을 선사하여 그들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재판이 감정적으로 휘몰아치지 않도록 배심원을 배제하고, 피고인 데보라의 발언을 제한하고, 역사학자들과 함께 객관적인 사실을 수집하여 어빙의 가증스러움, 거짓말, 기만을 증명하는데 집중한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을 증언대에 세우자는 데보라에게 '사실로 질식시킬 것'이라며 명확한 선을 긋는다. 그리고 기나긴 공방 끝에 승리가 찾아오지만, 영화의 엔딩에서도 나오듯이 어빙은 어디에선가 홀로코스트가 없다며 계속 이야기한다.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광기와 삐뚤어진 믿음은 결국 고칠 수 없지만, 적어도 사실들의 존재와 법정의 역할, 잘못을 명확히 고지하는 판결문의 존재로 인해 데보라는 이 재판이 큰 의의를 갖는다고 밝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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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rind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