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쉬면서 해야할 일들을 몇 가지 정했는데 그 중 하나가 여행사진 정리다. 2년 전쯤 사진이 예쁘게 잘 나왔던 여행사진들(특히 그리스)은 인화해서 앨범을 만들기도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사진이 한 가득. 뭔가 늘 추억을 정리하지 못하고 떠안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또 그렇게 많은 사진 찍어봤자 이럴 바에는 뭔가 싶어서 자책도 들고. 교환학생 시절이나 여행 때 찍었던 엄청난 양의 사진들을 정리하겠다는 의지가 계속 있었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손을 못 대다가 이제서야 한다.
일부는 귀찮아서 아무런 글을 쓰지 않은 채 사진만 주르륵 올린 것도 있는데, 신기하게도 사진을 다시 보니 그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진 속 풍경에서 뺨으로 느꼈던 날씨, 햇살, 바람, 기억 등이 그 때로 돌아간 것 마냥 갑자기 머리 위로 와르르 쏟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진을 찍을 때의 느낌이 어땠었는지의 기억도 같이 났다.
여행을 가면서 늘 사진을 찍을 때마다 한결같이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아무리 잘 찍는다한들 사진이 실제를 넘을 수가 없구나. 물론 잘 찍은 사진들이 있다. 내가 찍은 것도 있고 남이 찍은 것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실제의 아름다움을 뛰어넘지 못한다. 심지어 전문 사진가가 찍은 사진이라 하더라도 대개가 후보정을 거친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 사진 자체로는 멋지지만, 그 멋짐이 실제를 오히려 압도해서 실제의 아름다움을 오히려 가려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늘 떨칠 수가 없어서 최근 몇 년간의 여행에서는 사진이 잠시 시들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사진을 다시 보니 그렇긴 하더라. 남는 건 사진이고, 그 사진을 통해 다시 그 때로 돌아간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심지어 그 때 느꼈던 그 행복감을 그대로 느꼈다. 살아있어서 참 행복하다, 라고 느꼈던 그 순간이.
빅터 프랭클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에 보면 그런 내용이 있다.
..수용소에서는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는 원시적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영적인 생활을 더욱 심오하게 하는 것은 가능했다. 밖에 있을 때 지적인 활동을 했던 감수성 예민한 사람들은 육체적으로는 더 많은 고통(그런 사람들은 흔히 예민한 체질을 가지고 있으니까)을 겪었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 내면의 자아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적게 손상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혹한 현실로부터 빠져나와 내적인 풍요로움과 영적인 자유가 넘치는 세계로 도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별로 건강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체력이 강한 사람보다 수용소에서 더 잘 견딘다는 지극히 역설적인 현상도....(이하 생략)
배움과 추억이 많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