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2018. 9. 18. 13:14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 양억관 옮김 (2013)

얼마 전, 이 책이 갑자기 생각나서 다시 펼쳐보았다. 책 뒷편의 출판정보를 찾아보고 나서 출간되기가 무섭게 바로 사서 읽었다는 것이 다시 기억났다. 그렇게 산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깜빡할 만큼 처음 읽었을 때 별 감흥이 없었던 터라, 하루키 책이 뭐 비슷하지라는 결론만 남았다. 이래서 제목을 잘 지어야하나, 읽고 난 감상조차 제목을 따라간다 싶어 책장 깊숙이 넣어버렸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 쓰쿠루와 비슷한 연배가 되어서 그런 걸까. 색채가 없다고 생각했던 그 이야기가 마음 속 어딘가를 진하게 물들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 지난 일이지, 라며 연륜이 생긴 척, 잊은 척, 쿨한 척해도 슬쩍만 더 헤집으면 나도 모르게 씁쓸해지고, 생생하게 떠올라 부끄러움에 이불킥을 하게 만드는 기억들이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도대체 너는, 나는 그 때 왜 그랬던 걸까. 나조차도 알 수 없는 그 때 나의 마음들을. 그래도 지금 이 아쉬움을 그 때도 알았다면, 조금 더 참았겠지. 그 때 그 말들을 삼켰더라면. 그렇게 뒤돌아서지 않았더라면. 

하루종일, 매일 같이 보면서도 모르다가 이야기를 듣고, 아 그래? 이러면서 유심히 살펴보면 그제서야  보이는 상처 같은 것들이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다. 몰랐다면 영원히 모른 채 살테지만, 한 번 존재를 알고 나면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이. (만일 그런 게 없다면 다행일 수도 있겠다.) 고3 올라가기 얼마 전이었던 것 같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가 오래도록 아물지 않았던 첫 기억. 어린 마음에 내가 준 상처는 생각하지 못 했고, 너는 냉정하고, 못 되서 나만 만신창이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더 질척대지 않게 해준 냉정함에 감사하면서도, 곱씹을 수록,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진들 너가 전혀 상관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함은 더욱 또렷해졌다. 상처가 사라지지 않고 흉터로 영원히 남아버릴 것 같은 불안함에, 상관 없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괴롭혔다. 내가 무슨 감정인지조차 알 수 없어 놓지도 못하는 관계를 겪은 후에야, 너보다 잘난 줄 알았던 내가 결국 보잘 것 없었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가 하찮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걸 깨달으라고, 그 동안 내가 줬던 모든 상처들이 한 꺼번에 이렇게 돌아와, 벌을 받는 걸지도 몰라. 이제는 그 전의 마음이라는 건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어이, 이런 거 엄청난 패러독스라는 생각 안 들어?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게 돼. 그리고 발견할 수록 자기 자신을 상실해 가는 거야." (244p)



'Books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리대왕 (1954)  (0) 2015.05.11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 (2006)  (0) 2015.04.24
빅 픽처(2010)  (0) 2015.04.14
Posted by kirindari
Books 2015. 5. 11. 17:20

 

 

파리대왕 (1954)

 

   ..(중략) 랠프는 몸부림치면서 목메어 울었다. 이 섬에 와서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린 것이었다. 온몸을 비트는 듯한 크나큰 슬픔의 발작에 몸을 맡기고 그는 울었다. 섬은 불길에 싸여 엉망이 되고 검은 연기 아래서 그의 울음소리는 높아져 갔다. 슬프에 감염되어 다른 소년들도 몸을 떨며 흐느꼈다. 그 소년들의 한복판에서 추저분한 몸둥이와 헝클어진 머리에 코를 흘리며, 랠프는 잃어버린 천진성과 인간 본성의 어둠과 돼지라고 하는 진실하고 지혜롭던 친구의 추락사가 슬퍼서 마구 울었다...(이하 생략)

 

 

 

 9살이었을 때였나, 우연히 tv에서 본 흑백영화의 한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꽤 옛날 영화 같았고, 열살 내외의 소년들이 우르르 나오는 영화였는데 땅에 박혀있는 작대기 끝에 돼지머리가 박힌 채 썩어가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잠시 멍했던 것 같다. 무엇 때문인지 영화를 제대로 본 기억은 없지만 그 때 본 그 영화 제목이 '파리대왕' 이었고, 무인도에 표류된 소년들의 이야기라는 정도만 알았던 것 같다.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영화의 원작인 파리대왕을 읽게 되었다.

 찾아보니 인간사회를 우화적으로 표현해냈다는 평가가 있는데 동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가 우화적 표현이 아니었나. 여하간, 줄거리는 위에 언급한 대로다. 핵전쟁의 위기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소년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던 비행기가 격추당하면서 무인도에 소년들이 표류하게 된다. 생존자 중 어른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위기를 느낀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의 방법을 강구하고, 초반에는 영민한 소년 랄프가 무리를 이끌게 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로빈슨 크루소 같은 생존기의 개념이 아닌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후반부로 갈수록 문명, 선을 상징하는 랄프와 원시성 혹은 악을 상징하는 잭의 대립구도로 진행이 된다. 둘 간의 대립으로 인해 아이들의 무리가 양분이 되면서 희생자가 나오고, 그러다가 결국 구조대가 오게 되는 결말.

 

사리분별과 판단력이 완성되지 않은 어린소년들이 무인도에서 보이는 저마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맨얼굴을 볼 수 있는, 꽤나 섬뜩한 이야기였다. 곱게 자란 소년들은 야생을 겪어보지 못한, 어쩌면 학교와 가정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살아가던 순진한 부류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성에 좌절하고 실망하는 것은 오직 랠프와 돼지 뿐이다. 대체적으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 사실은 인간의 선한 본성이라기 보다는 교육으로 인한 법, 도덕 이런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

 

 

 

 

'Books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0) 2018.09.18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 (2006)  (0) 2015.04.24
빅 픽처(2010)  (0) 2015.04.14
Posted by kirindari
Books 2015. 4. 24. 11:44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 (2006)

 

 

그리스 신화의 역자로 유명한 이윤기의 산문집.

담백하고 깔끔한 글이 딱 내 취향. 예전에 박완서 씨의 산문집을 읽을 때 받은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참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칠, 어찌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그런 소소한 일상 속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자기 반성, 날카로운 관찰력에 감탄하면서도 마음껏 공감할 수 있었다. 인상적인 글귀가 많아 읽다말고 틈틈히 메모를 남긴 글귀도 많았다. 이런 글들을 읽을 때마다 지성인의 정의는 때로는 지식적인 면보다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 그리고 자신이 바라본 세상에 대한 통찰력, 살아있는 양심이 가장 중요한 척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 부럽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으로도 남겨두었던 몇 가지 좋은 글귀들을 첨부해서 남겨본다.

 

 

 

...아들딸의 행복한 학교 생활을 바라볼 때면, 나는 나에게 무수한 상처를 입히던 내 청소년 시절의 학교에 대한 쓰라린 분노를 삭일 수 없었다. 사람은 상처를 입음으로써 남에게 상처 입히는 방법을 배운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은 능멸을 당함으로써 남을 능멸하는 법을 배운다고 나는 생각한다.

                                                             <1부 하늘 아래, 누구의 고향 아닌 마음이 없다>

 

 

...한 해는, 돌아다보기에 너무 긴 세월이다. 어제야말로 돌아다보기에 마참하게 가까운 날이다. 나에게는 그렇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어제 너는 무엇을 하였는가? 너는 <심심풀이>와 <얼렁뚱땅>과 어떤 싸움을 벌였는가?이렇듯이 완강하게 저항하는데도 불구하고, 어제 죽인 것이 <심심풀이>도 <얼렁뚱땅>도 아닌 <시간>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어제 죽인 것이 괴물이어야지 시간이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쓴 미국의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말이 귀에 들리는 것 같다. 20대 초반에 읽었는데 나는 아직 잊지 않고 있다.

'내가 이것을 쓰고, 그대가 이것을 읽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시계가 뱉어내는 소리는 <째깍, 째깍, 째깍>이 아니라 <상실, 상실, 상실> 이다.'

                                                                        <1부 하늘 아래, 누구의 고향 아닌 마음이 없다>

 

... 삶이란 외적 환경의 불순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긴장 관계에서 오는 끌탕을 가만히 가라앉히는 일이다. 환경의 불순물을, 혹은 긴장 관계의 끌탕을 가만히 가라앉히고 맑은 윗물을 거두어 마시는 일이다. 자주 흔들면, 자주 휘정거리면 윗물은 발생하지 않는다. 순한 사람들이 의까지 좋게 산다고 물렁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관장 멍석말이하는 사람들은, 주로 이런 사람들이다. 그렇거니, 겨우, 마을이 발생했다.

 

 

 

 

'Books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0) 2018.09.18
파리대왕 (1954)  (0) 2015.05.11
빅 픽처(2010)  (0) 2015.04.14
Posted by kirindari
Books 2015. 4. 14. 20:07

 

빅 픽처 (2010)

 

 엔젤리너스 등의 카페에 가면 구석 서가에 배치되어있는 걸 종종 보았던 책인데, 집에 이 책이 있었다는 걸 얼마 전에 알았다. 이런 책이 까페에 있다는 건 거기 둬도 될만큼 잘 팔리거나 재미있다는 이야기지.  책의 구매자인 짝궁의 강력 추천으로 집어들었는데, 3시간만에 훌훌 읽어버렸다.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월가의 변호사 벤이 살인을 숨기기 위해 자신의 죽인 사진작가로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살인을 통해 오히려 자신이 늘 꿈꾸던 사진가의 삶을 살아간다는 게 이 소설의 큰 줄거리이다. 전반부는 변호사로서의 삶, 후반부는 사진가로 그럭저럭 지내던 중 우연히 화재현장을 담은 사진이 신문에 실리면서 하루 아침에 세계적인 유명사진가가 되어버리고, 이로 인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위험에 노출될까 두려워하며 살게 되는데, 주인공의 상황이 상황인만큼 스토리의 전개가 긴장감 있게 잘 짜여있다. 주변 인물들에 대한 디테일한 설정도 굿. 번역도 깔끔해서 더 마음에 들었다.영화화 되었겠거니 싶어서 찾아보니 예상대로 프랑스에서 영화화 되었는데, 포스터가 낯선 걸 보니 유야무야 개봉했다가 내렸거나 아니면 개봉조차 아예 하지 않은 듯.   

 

 현실을 위해 꿈을 포기하고 사는 벤의 이야기는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킬 듯하다. 나도 한 때 천문대에서 별을 보면서 살거나, 혹은 그림을 그리거나, 아프리카에서 얼룩말을 사냥하는 사자를 직접 찍거나, 아니면 수족관에서 돌고래 사육사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더랬지. 기회가 되면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매력적이고 탐나는 삶들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일들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내가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기도 했다. 그나마 벤은 꿈의 변두리를 늘 잡고 있었지만,  하지만 어찌 보면 벤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살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꿈을 지속적으로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벤에게 살해당한 이웃의 사진작가 게리는 스스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에서 자부심을 갖지만, 사진가로서의 명성은 커녕 소질조차 없어 허세로 가득찬 인물로 묘사되어있고, 아버지의 신탁기금으로 그럭저럭 겨우 살아갈 뿐이다. 쓸만한 건 오직 와인취향 뿐이고, 결국은 이웃의 유부녀와 바람을 피다가 남편에게 우발적으로 살해를 당하게 된다. 게리는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삶의 현실적인 단면을 보여준다. 벤이 사진가로서의 길을 선택하고 살았다고 해서 게리처럼 되지 않고, 행복하고 유명한 사진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인간의 욕망 중 성취욕은 가장 고차원적인 욕망이라는 말을 어디서엔가 본 기억이 난다.  가장 행복한 삶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직업이 일치하는 게 아닐까- 라고 말하던 대학교 선배도 있었다. 꿈, 열정. 참 멋진 말이다. 그렇지만 꿈이 당장 밥을 먹여주지는 않는 게 잔인한 현실. 운이 좋아서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만큼 막대한 재산이라도 물려받았다면 모를까. 먹고 사는 문제에 치이는 와중에 자신의 꿈- 그것도 예술로 먹고 살겠다는 도박에 가까운 꿈에 매달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소설의 가장 역설적인 재미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포기하고 나서야 사진가로서의 꿈을 이룬 벤의 이야기를 통해, 꿈을 따라 사는 것이 사실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에둘러서 이야기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종군기자가 되겠다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는 영악하고, 억척스럽게 사는 가식적인  전 여친에 대한 회상이라던가, 사진을 할거라면 대학 등록금을 대주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협박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로스쿨에 진학하게 된 벤의 과거는 꿈을 포기하고 살아가야하는 많은 사람들의 현실을 대변한다. 

 소설 중후반부에 사진가 게리로 살아가던 벤은 연인과 산으로 캠핑을 가게 되는데, 하필 이날 산에서 큰 화재가 발생한다.  때마침 갖고 있던 카메라 덕분에 화재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낸 사진을 얻게 되고, 화재 사건을 다룬 신문, 방송 등을 통해 그 사진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벤은 하루 아침에 세계적인 유명 사진작가가 된다. 그야말로 로또에 가까운 확률 아닌가. 이는 예술가로서의 명성을 얻는다는 것이 그만큼 쉽지 않은 일임을 보여준다.

 

 꿈을 포기하고 사는 사람은 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벤은 자상하고 완벽한 남편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벤의 아내 베스는 그남편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결국 외도를 저지른다. 벤의 양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묘사되는 회사 선배도, 벤과 비슷한 과거를 갖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벤을 잘 이해해주지만,  성공한 변호사가 된 후 시한부 통보를 받는다.  작가는 다양한 주변인물들이 자신의 꿈을 포기하거나, 혹은 재능이 따라주지 못해 자의 반 타의반으로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안주하면서 꿈에 대한 아쉬움으로 인해 스스로에 대한 경멸, 연민, 좌절 등을 통해 뒤틀려가는 심리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벤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 초반부에 벤은 변호사로서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선 뒤, 작가를 꿈꾸는 아내에게 직장을 관두고 집에서 편하게 글을 쓰기를 권했던 일을 '바보 같은 실수'라고 한다. 그리고 그 한편으로 고백한다. "그도 아니면 아내가 그냥 집에 처박혀 실패하기를 바랐는지도.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주변 사람도 같이 실패하기를 바라니까."

 

★★★☆

 

 

 

 

'Books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0) 2018.09.18
파리대왕 (1954)  (0) 2015.05.11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 (2006)  (0) 2015.04.24
Posted by kirind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