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소위 말하는 내외산소 기피과 의사로 살고 있다. 우리 동기는 7명이 정원이지만 1명이 중도퇴사했고, 그나마 내가 가을턴으로 들어왔지만 결국 한 명이 더 나가버렸고 빠진 인원을 채우지 못해 6명으로 4년을 버텼다. 사람이 적다는 이유로 환자가 알아서 덜 오는 것도 아니었고, 당직이 어쩔 수 없이 많았지만 나도, 동기들도 그냥 이게 우리 팔자려니 그냥 일했고, 이에 대해 딱히 큰 불만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환자가 안 좋으면 으레 오프 자진반납하는 일도 많았고, 주 80시간이 시행되기 전이었지만 시스템상 당직을 일정시간 이상 넣을 수 없었기에 실제 더 일하고 돈을 받지 못 해도 딱히 신경쓰지 않고 일했다. 아직도 배우는 입장이니 환자를 잘 본다고는 감히 말할 수도 없고, 실수도 많이 했지만, 최선을 대해 환자를 보려고 늘 노력했다.
과 특성상 당직 때 잠을 편하게 자 본 일도 손에 꼽을 정도고, 2년차가 된 이후 환자 중증도가 올라가면서 과로사가 왜 생기는지 본격적으로 체감하는 날이 많았다. 가끔 전공의가 과로로 당직실에서 사망한 채 발견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내가 혹은 동기가 그 전공의가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 많은 직업 중 의사, 그 중에서도 내과를 하게 되서라고 백프로 연관 짓지는 못 하지만 어릴 때 시술 받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던 부정맥이 3년차 때 재발했다. 환자가 CPR이 나서 난리가 나던 그 순간 나도 증상이 갑자기 발생해서 심박수가 150-170을 찍었지만 나는 나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 나는 쓰러지진 않았다. 그 때 처음으로 내가 왜 내과를 한다고 했을까 조금 후회했다. 여유가 있는 4년차가 되고 나서 시술을 다시 받고 지금은 잘 지내고 있지만 내가 만약 평범한 직장에서 적당하게 몸 힘들지 않고 밤도 안 새고 지냈으면 부정맥이 재발 안 하지 않았을까? 라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재발했어도 시술은 더 빨리 받을 수 있었겠지.
전임으로 살고 있는 지금도 뭐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계약서에 명시된 근무시간은 아무 의미 없는 헛소리고, 검사 많은 날에는 오후 검사 시작 전 겨우 남는 30분동안 밥을 쑤셔넣듯이 밀어넣고 올라와서 다시 일을 한다. 전문의라는 이유로 얄랑한 책임감이 더해져서 더 열심히 챙겨야되고, 그나마 전공의 때보다 조금 더 오른 월급과 명찰에서 보이는 전문의 타이틀 덕에 비교적 환자들이 더 말을 들어준다는 것 외에는 다를 게 없이 산다. 보는 환자군이 다르겠지만 대부분 의사들이 다들 그렇게 산다. 소위 말하는 강남 성형외과 원장님도 얘기 들어보면 엄청 팍팍하게 산다. 집에 오면 늘 밤 9시고 주말은 없는 날이란다. 정말 부지런한 일부 선생님들은 본인을 가꾸고, 핫플도 가고 저 사람은 잠을 안 자나? 싶을 정도로 산다. (실제 쉬는 시간을 포기하고 그렇게 인생을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듯) 나는 그런 것에 취미도 없거니와 집에 오면 쓰러져 자기 바빠 잘 못 하지만 말이다.
#2. 공공의료가 뭘 의미하는지 솔직히 아직도 모르지만 지방에 의사 없는 건 맞고 그런 의미에서 의사 늘리는 건 어쩌면 맞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의사만 늘리면 뭐하냐고 병원이 없는데. 의사들도 무리하지 않고 일하려면 사람 수도 수지만 그 인원을 감당할 수 있는 시설이다. 숙직실은 물론이고, 필요하면 환자를 함께 봐줄 타과 의사도 있어야 하고, 수술이나 검사를 제한 없이 할 수 있는 모든 게 갖춰진 시설 말이다. 전공의 때 밤샘 반복하면서 몸이 작살난다는 체감을 한 이후(실제로도 작살이 났었지) 그냥 돈 안 받아도 되니까 당직 안 서는 삶이 더 만족스럽다. 지금 내가 있는 병원은 응급시술시 돈을 꽤 주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콜 안 받고 당직비 못 받아도 밤에 편하게 자는 것이 더 행복하다. 오늘 밤새서 환자 보고 피곤해서 제정신이 아닌데 다음 날 환자를 집중해서 볼 수 있을까? 의사도 사람이고, 사람은 갈아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한계를 채워주는 게 시스템이다. 넉넉한 인력이 있어야되고 그 인력들을 받쳐주는 시설과 인프라는 국가가 도와줘야 된다.
자꾸 의사가 공공재라니 희생해야된다느니 하는데 도대체 희생을 강요받을 만큼 나라에서 나에게 해준 게 도대체 뭔가 싶다. 나도, 주변 의사들도 의사 된다고 비싼 학비 빚내서 내가(부모님이) 냈지 나라가 대준 적 없다. 고생은 우리 부모님이 다 하셨다. 개원의들이 다 대출 받아 본인돈으로 개원하지 나라에서 병원 개원하면 비싼 최신 의료기기 척척 서포트라도 해주나? 알게 모르게 망해서 사라지는 동네 병원이 한 두개가 아니다.
나는 내시경을 한다. 별 것 없는 5분 남짓 위내시경 검사 하나에도 의사 1명, 바이탈 체크해주는 간호사 1명이 기본으로 있어야하고 환자가 수면(진정) 검사시 갑자기 움직이는 등이 돌발상황을 대비해 환자 잡을 조무사 1명, 내시경을 세척할 사람, 검사 후 회복실에서 환자를 볼 사람 5명이 필요하다. 용종 떼는 간단한 시술도 하고 나면 천공이 생겼는지 체크할 영상검사기기, 필요하면 영상의학과 전문의도 있어야되고, 합병증 생기면 케어할 입원실, 수술실, 수술할 의사 다 필요하다. 이 시스템을 의사 개인이 어떻게 준비를 하겠냔 말이다. 의사는 환자를 보기도 바쁜데. 그런데 개원의 선생님들은 죽어라들 노력하고 계시고, 감당이 안 되서 애초에 위험한 환자, 이미 합병증이 생긴 환자는 결국 큰 병원으로 오게 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좋은 인프라는 병원 밖의 시설도 포함한다. 산꼭대기에 병원을 지을 수는 없는 법이다. 접근성을 위한 도로도 잘 되어있어야 오지의 병원도 갈 수가 있고 도로를 짓는 일은 병원이 할 수 없는 일이다.
#3. 지금의 파업을 자꾸 밥그릇 싸움으로 몰아가는 프레임이 있는데 솔직히 지금 파업하는 사람들과 공공의대생들이 정말 밥그릇 싸움이 될까? 공공의대가 통과되었다고 치자. 졸속으로든 뭐든 5년만에 시설 다 되서 5년 뒤부터 입학 받는다고 치면 그 공공의대생들이 필드로 나오는 건 아무리 빨라도 11년 뒤다. 면허만 딸랑 달고 나오는 데. 트레이닝 받으면 5-6년 더 뒤고 지금 이미 전문의를 딴 내가 그들과 밥그릇 싸움? 글쎄....난 그 때쯤이면 은퇴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파업하는 당사자들은 솔직히 밥그릇 싸움 당사자와는 거리가 멀다는 말이다.
지방은 페이가 센 편이다. 5억 준다는 데도 의사들이 안 온다고 어디 찌라시처럼 글이 돈 모양인데, 5억은 2-3배쯤 부풀려졌을 가능성 높고 진짜라해도 글쎄? 의심스럽지 않나. 도대체 뭣 때문에 5억이나 줄까. 환자도 많고 소위 잘 나가는 병원이 아쉬울 게 없을텐데 그 돈을 줄리는 만무하다. 그런데도 왜 일하려는 의사가 없을까? 2-3년만 일하면 강남에 작은 아파트라도 살 돈인데 말이다. 알바천국에서 별 거 없어 보이는데 페이가 유독 높은 알바가 있다면 장기밀매까지 의심하는 게 정상이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무 이유없이 돈을 많이 주는 곳은 없다.
희생정신으로 뭉친 의사는 환타지다. 의사도 자기 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들어와야 그 동력으로 환자를 본다. 밤새 환자 보고 노력해도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의사 입장에서는 괴롭고 힘든데 돈은 나오지 않고 환자 죽었다고 컴플레인에 소송에 시달리면서 어떻게 일을 계속하겠는가. 의사는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는 로봇처럼 일해주길 기대하면서 희생 봉사를 왜 강요하는지.
#4. 코로나 시국에 참고 일하던 의사들이 갑자기 왜 들고 일어난 건지, 이유를 제발 이기주의로 봐주지 않았으면 한다. 왜 이러는지 정책을 들여다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편가르기, 환자를 볼모로 잡고 의사와 국민을 협박하고 있는 건 정부라는 것을 제발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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