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charted

죽을 권리

kirindari 2017. 1. 26. 23:12

 

 

<후안 라라의 장례식 전야> (1951년 / W. 유진 스미스)

 

 

PK를 돌던 첫 주, 첫 턴은 심장혈관내과였다. 의사는 사람 살리는 게 직업이라는 외 딱히 생각이 없던 시절이었다. 병원생활이 뭔지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나 다름없던 그런 시기에 나를 포함한 우리 조는 사람이 죽는 순간을 목격했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정확치 않지만 4-50대의 남자였던 것 같다. 아마도 심근경색을 주소로 응급실로 왔었던 것 같고, 심혈관조영술 중 심정지가 발생했던 걸로 기억한다. 1시간 가까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환자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아직 죽기 아까운 나이였다. 보호자로 온 아내와 딸은 환자의 상태에 대한 교수님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저앉아 울부짖다가 실신하고 말았다.

가족 중 어른이 돌아가신 적도 있고, 친구 중 누군가가 사고로, 자살로 세상을 떠나는 것도 보았기에 태어나서 죽음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었고, 죽음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심폐소생술을 본 날 알게 되었다. 그 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죽음은 생명이 꺼진다는 의미보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 혹은 그 존재의 부재 정도로 인식했었다는 것을. 마치 어린 아이가 눈 앞에서 엄마가 없어지면 영원히 없어졌다고 믿는 것처럼. 생판 모르는 남의 죽음이었지만, 구체적으로 와 닿은 죽음의 실체는 슬펐고, 우울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고, 소위 말하는 바이탈을 다루는 과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CPR이 터질 때마다 웬지 모르는 묘한 긴장감, 두근거림이 늘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순간 내과 의사가 되어 있었고, 지금은 짜증과 귀찮음이 더 많아졌지만, 아직도 신환이 오면 웬지 모르게 두근거리는 변태 같은 마음을 가진 내과의사로 살고 있다.  연차가 올라가면서 보는 환자가 크게 두 부류가 되었다. 중환자실로 실려오거나 암환자거나 기타 환자들. 늘어나는 건 지식보다 죽을 확률이 살 확률보다는 좀 더 높아진 환자들의 수였고, 그 결과는 좀 더 사망선고를 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많은 환자들이,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구구절절한 사연을 안고 죽는다. 일면식도 없는 내가 주치의라는 이름으로 그런 사연들을 떠안게 된다. 바이탈 다루는 일은 절대 안 하겠다는 다짐을 언제했는지 무색할 정도로, 나에게는 이제 죽음이 낯선 일이 아니다. 이제는 기계적으로 맥을 짚고, 동공반응을 확인하고, 사망선언을 하고, 아무 표정 없이 사망진단서를 쓴다. 챠트에서 이름이 사라진 사실에 잠시 멈칫하다가 그냥 잊어버리고, 한편으로는 일이 줄었다는 생각에 기묘한 안도감에 내 스스로가 소름이 끼칠 때도 있다.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언젠가 죽는다. 불멸의 도깨비가 어디엔가 정말 있을지도 모르지만 불멸의 도깨비보다는 필멸의 수명들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겪을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특히 한국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너무 부정적이고, 두려워하고 외면한다.  현대의 의학기술은 꽤나 발달해서 죽음을 미뤄주는 여러가지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 기술들은 참으로 대단하다. 예전 같았으면 손도 못 쓰고 보냈을 생명들을 건져내기도 하니까. 하지만 때로는 환자를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산송장으로 만들어놓곤 한다.  그 댓가로 환자, 환자의 가족, 지인,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의료진도 괴로워진다.

중환자실 주치의를 같이 했던 동기언니와 그런 말을 자주 했었다.  편하게 가실 수 있는데, 온갖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환자 기계 달아놓고 숨만 쉬게 한다고. 우리 이렇게 환자 괴롭혀서 가끔 나중에 벌 받을 것 같다고. 실제로도 환자가 깨어나면 왜 나를 살려놨냐며 원망하는 순간도 있다. 동기들 중 누군가에게는 그랬다고 한다. 눈 뜨자마자 한 말이 '왜 나를 살려놨냐고, 이렇게 살 거라면 죽고 싶다'라고. 그래서 자기도 너무 허탈했다고.  

 

DNR : DO NOT RESUCITATE

심장과 폐가 멎었을 때, 즉 환자가 사망했을 때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내가 있는 병원에서는 이 내용을 '적극적 치료 거부에 대한 동의서'로 대신한다. 그나마 요즘은 이 개념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DNR에 대해서 아직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늘 든다. DNR이 마치 최후의 보루인양, 환자에 대한 배려인 양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반드시 의사가 아니더라도, 환자를 오랫동안 곁에서 살피다보면 감이 온다. 이 사람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될지, 저 세상으로 갈지. 그런 느낌이 늘 맞는 건 아니지만, 소위 말해서 가망이 없는, 말기 암환자라던가, 회복 불능의 상태로 병이 진행되서 위중한 상태의 환자들은 대체적으로 오차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자다가, 혹은 며칠 끙끙 앓다가 죽을 운명이었다. 의사가 되고 보니 이제는 알 것 같다. 옛날에 누가 어찌어찌하다 죽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패혈증 쇼크, 심근경색, 뇌경색 등등 이었다는 것을. 물론 이 병들은 아직도 중증, 응급질환이고, 빠른 조치가 되지 않으면 환자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병들이다. 하지만 고령에서 이런 일들이 생기면 뭐랄까. 며칠 앓다 죽을 병을 5년, 10년 고생하면서 더 살게 만드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람들은 그저 살려만 달라고 한다. 마치 살아있으면 모든 게 해결되고 좋은 것처럼.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지만,  숨 쉬는 곳조차 고통인 사람들에게 살아있음을 강요하는 건 극도의 이기심이다. 물론 고통스러운 삶에서 회피하기 위한 선택이 죽음이어서는 안 된다. 단지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환자는, 가족들은 환자가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해야되고, 그건 죽음이 임박해서가 아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죽음이 임박해지는 순간들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그렇게 되면 환자도, 가족들도 떠밀리듯 선택을 하고,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돌아온다. 누군가에 대한 원망으로 혹은 그 순간의 그런 선택을 한 누군가에게, 스스로에게의 후회로. 

탄생은 선택할 수 없어도 내 삶을,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인간은 누구나 죽고, 심지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아무도 피하지 못할 죽음을 우리는 너무 모른다.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젠가 있을 일을 받아들이고 준비를 할 시간이 우리에게는 없다. 그런데도 왜 죽음이 그저 부정적이고 최후의 보루여야만 하는가에 대해서 늘 의문이 든다. 최소한 고등학교, 아니면 대학교에서는 의무적으로 죽음을 가르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