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charted

이천십오년의 가을

kirindari 2015. 11. 9. 22:29

 

#1.

그럭저럭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나날들이 지났다. 찬 바람이 불면서 환자가 마냥 늘거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여름보다는 환자가 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환자가 줄었다. 동기들과는 그런 이야기를 했었더랬다. 환자들이 한 번 정리된 것 같다고. 좀 더 적나라하고 잔인하게 표현하면 죽을 사람은 죽고 남은 사람은 남았다는 것. 병원에서 입원해 지내면서, 혹은 입퇴원을 반복해가며 지루하게 삶을 이어나가던 이들 중 몇 몇은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어느 날 새벽에, 혹은 운이 좋다면 가족들, 친구들이 함께 할 수 있었던 조금 이른 저녁에 사망을 하고는 했다. 그 중에는 내 환자도 있었고, 내 환자는 아니지만 주치의로부터 아마 오늘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는 인계를 받았던 환자들도 있었다. 학생 때는 더 없이 구린 내공의 소유자였지만, 그 덕분인지 정작 면허를 달고 나서는 그렇게 내공이 나쁘지는 않았는데 지난 달 중순경부터는 환자가 심박수가 잡히지 않는다던지, 혈압이 점점 떨어진다던지라는 콜을 1년 중 가장 많이 받았었고, 병원에 들어와서 가장 많은 사망선고를 내렸던 시간들이다.

학생 때는 그저 오래 살면 된다고만 생각했는데, 아파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오래 사는 것보다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처방창을 열 때마다 진통제가 한 가득 뜨는 환자들이 있다. 어쩌면 피의 절반이 진통제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진통제에 절여지다시피해서 삶을 이어나가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어서 소중한 걸까.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진통제 말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없다면 삶을 이어나가기를 거부할 것이다. 막상 그 상황이 오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2.

몇 년 전, 담관부의 종양을 진단 받은 환자가 있었다. 항암치료를 하고 운 좋게 완치가 되었으나, 운 나쁘게도 올해 재발을 했다. 그 와중에 다시 운이 좋게도 환자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내가 당직이 아니던 날 환자는 입원을 했고 당직의의 입원초진기록에는 환자가 항암치료에 부정적이라 다음 날 교수님과 항암치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진행하겠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의사가 되고 나서 느낀 장점은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단점은 진상도 많이 만난다는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비교적 빨리 파악하게 된다. 가끔은 환자를 보지 않고도 챠트에 적힌 몇 줄의 글로도 환자의 성격을 간파할 수 있고, 그 예상은 대부분 크게 빗나가지는 않는다.

환자는 후자였다. 얼굴도 보지 않았건만 회진 준비를 하면서 환자를 만났을 때 닥쳐올 상황에 대한 쎄한 느낌이 뭉글뭉글 올라오기 시작했고, 환자를 만났을 때 예상이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환자는 항암치료를 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우선은 시간이 없어서 교수님과의 회진 때 다시 이야기해보자고 했고, 약 30분 뒤 있었던 오전 회진 때는 같은 이야기에 살이 붙어서 구구절절한 이유가 곁들여졌다. 환자의 보호자인 부인도 합세했고, 한방치료와 불을 쬐면서 몸을 데우는 치료를 같이 하고 있어서 암세포가 같이 죽지 않을까요?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환자는 지난 번에도 같은 이유로 항암치료를 한 달간 홀드했던 사람이었고, 아마 그 때도 오늘처럼 진지했을 것이다.  나는 웃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깨문 채 회진일지만 내려다 보고 있었고,  같이 회진을 도는 펠로우 선생님은 문 밖에서 입꼬리가 더 올라가지 않게 하려고 무던히도 애쓰고 있으셨다. 환자, 보호자, 교수님, 나, 보호자, 펠로우 선생님, 그리고 병동 수간호사 중에서 진지한 사람은 교수님과 환자 밖에 없었다. 교수님은 열치료가 불을 쬐는 것이 아니라 고주파 열치료라고 이야기했고, 영상검사가 전부가 아니다, 항암제를 바꿔야된다 등등 구구절절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환자는 선뜻 수긍하지 않았다. 다른 환자 회진을 돌고 와서 다시 만나자 항암치료를 하겠다고 했고, 교수님은 회진이 끝나자마자 입이 마른다며 정수기를 찾으셨다.

10분이 지나고 병동에서 연락이 왔다. 환자가 집에 가겠다고. 환자를 만나러 갔더니 자신이 목사라면서 다음주 있을 추수감사절 예배에는 죽는 한이 있어도 참석해야한다고 가야된다고 했다.  그리고 1주일 뒤에 오겠다고 했다. 나는 말을 돌려하는 성격이 되지 못해서 환자에게 돌직구로 말했다. 퇴원하시는 건 환자분의 자유지만 우리 아버지면 발을 묶어놓고서라도 항암치료 받게 할 거라고. 환자는 망설이다가 결국 퇴원하겠다고 했다. 그 동안 약도 안 먹고 버텼다고 하던데,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소화제, 담즙분비촉진제 등을 요구해서 딱 1주일치만 처방을 해주고, 1주 뒤로 입원장을 냈다. 운이 좋은건지 나쁜 건지 이번주를 끝으로 주치의 턴이 바뀌는 주다. 하필 이 환자를 받았던 당직의- 내 동기- 가 1주 뒤 환자가 약속대로 만약 정말 온다면 그 환자를 또 받아야할 것이고, 환자의 주치의가 될 것 같다. 고생길이 훤할 동기언니를 위해 기도해야겠다.

같은 종교인의 입장에서는 어찌 볼지 모르겠다만 그 환자는 추수감사절 예배라는 핑계로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가버렸다. 나는 종교가 없기 때문에 추수감사절의 예배가 얼마만큼의 의미인지는 잘 모른다. 아마도 큰 의미겠지.  하지만 나는 자기자신을 돌보지도 않으면서 신을 믿는 태도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나는 아직도 종교를 가질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참고로 이 환자를 받았던 언니도 그 환자와 같은 종교를 믿는다.

 

 

 

#3.

입원한 김에 검사를 여러가지를 받기로 했다던 환자가 있었다. 환자는 Bechet's disease를 진단 받은 50대 여자였고, 한 달 전 류마티스 내과에서 이번에 입원할 때 필요한 검사를 같이 하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환자가 입원하던 날 나는 당직이 아니었다. 환자와 보호자는 전날 당직의였는지 자신들이 병원에서 와서 처음 봤던 간호사에게 분명히 그 말을 했다고 했다.

입원하고 다음 날 아침에 환자를 잠깐 보고 두번째로 보았을 때 환자는 진정제 기운이 남아있어서 어지럽다고 했다. 큰 문제가 없었지만 집에 갈 상황은 아니었고, 다른 환자를 정리하고 있는 사이에 환자가 입원해서 시행한 영상검사, 내시경검사 소견이 나왔다. 환자가 진정제에서 완전히 깼을 무렵, 환자를 퇴원시키라는 펠로우 선생님의 연락을 받아서 환자에게 전달하러 갔을 때 환자는 완전히 깨어나서 자기가 입원해서 무슨 검사를 받아야하는지 전일 구구절절 말했는데 왜 전달이 안 됐냐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보호자까지 가세해서 전일 근무했던 간호사를 데려와라에서 시작해서 병실과 복도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온갖 불평을 늘어났다. 더불어 주치의인 나에게도 불만이 쏟아졌다. 반년마다 입원을 해서 이 검사를 받아왔다, 처음이 아니다,  입원해서 늘 다음 날은 바로 류마티스 협진이 되서 바로바로 진행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그런게 안 되냐, 나는 3시간을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렸다(진정제에 취해서 쉬라고 둔 건데) 등등 다다다 쏟아내는 불만에 종국에는 내가 환자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 류마티스 내과 교수님에게 당장 전화하라는 협박을 나에게 하기 시작했다. 나는 교수님께 직접 전화를 드리는 건 어렵고 입원 중 원칙은 협진을 내는 것이라고 설명을 했고, 환자는 그럼 자기가 외래로 가겠다며 수액이 달린 폴대를 끌고 벌떡 일어나기에 굳이 막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서 다녀오시라고 했다.

사실 고백하자면 낮에 너무 피곤해서 30분 정도 낮잠을 잤었다. 중간에 내가 딴 짓을 한 게 하나 있으니 내가 미처 못 봤나 싶어서 할말도 없고 환자에게 조곤조곤 설명하기에는 환자가 너무 흥분해 있는 상황이라서 그러려니 싶어서 컴퓨터로 돌아와서 챠트를 열어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환자의 모든 말은 거짓말이었다. 환자가 마지막으로 입원한 건 1년 전이고, 반 년마다 입원해서 류마티스 내과 진료를 봤다는 것도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심지어 작년 마지막 입원했을 때 퇴원 요약지에 선명하게 적혀있는 한줄

 '환자가 류마티스 내과 진료 협진 설명하였으나 거부하고 외래에서 진료 보기로 함' 

그리고 그 때도 아마 지금과 비슷한 일이 있었던 듯 했다. 협진을 냈다가 돌렸던 기록이 남아있더라고.

 

 

그 와중에 다행이었던 거는 환자가 난리치기 직전 전과 협진을 냈었고, 운 좋게도(?) 환자가 외래에서 난리를 쳤을 상황에서 류마티스 내과 교수님이 협진내용을 보신 듯 했다. 협진 요청을 한지 30분도 안 내서 전과 달라는 답변이 들어왔고 지체없이 전과. 나중에 듣기로는 환자가 그렇게 점잖아져서 병실로 돌아왔다고 한다.

역시 거짓말도 당당하게 뻔뻔하게 하면 진짜 같다는 걸 새삼 느꼈다. 병실 담당 간호사, 주치의인 나만 가만 있다가 얻어맞은 꼴이었다. 5분간 뒷담화로 분노를 삭힌 뒤에 담당 간호사와 사이좋게 빼빼로를 나눠먹고 다른 환자를 보러갔다. 주치의의 장점은 과가 바뀌면 스쳐지나갈 일은 있어도 볼 일은 없다는 것. 하지만 담당간호사는 병실이 안 바뀌면 결국 자기는 또 봐야 된다며 궁시렁대더니 프로페셔널하게 환자를 만나러 갔다. 힘내라고 박하사탕 하나씩 사이좋게 나눠먹고 나는 퇴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