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상반기 생존신고

kirindari 2015. 5. 21. 19:28

2015년이 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월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다. 몇 번 들쑥날쑥하던 날씨는 이제 안정이 된 듯하다. 한낮에는 반팔을 입고 다니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초여름이 성큼 다가온 듯하다. 병원을 떠날 때만해도 금방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지긋지긋한 겨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시간은 잘 간다. 학생을 벗어난 이후로 처음으로 자유롭게 지내본 석달 여의 시간이었다. 나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다. 블로그에는 한가롭게 옛날 여행 포스팅, 영화 책 포스팅만 하고 있었다만.

 

이사를 왔다. 강남에서 살게 된 건 처음이다. 평생 서울에서 살았던 사람이고, 그렇다고 강남을 태어나서 한 번도 안 와본 사람도 아닌데, 그저 한강만 건너왔을 뿐인데, 아직도 타향살이를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꽤 큰 편의시설, 회사들이 집 근처라 놀기는 좋아진 것 같다. 초반에는 돈 많은 남자랑 결혼해서 한낮에 운동이나 가고 팔자 좋게 사는 언니 마냥 지냈던 것 같다. 한낮에 츄리닝을 입고 동네를 껄렁껄렁 돌아다니다보면 점심을 먹으러 나온 내 또래의 직장인 무리들이 나를 보는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웬지 재밌고 그랬다. 난 작년에는 밥도 못 먹고 병동에 처박혀있었다고요.

 

무엇보다도 푹- 잘 쉰 것 같다. 사실 쉬는 거나 노는 건 아무리 해도 부족하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인턴을 마치자마자 전공의로 끌려들어가느라 쉬지도 못한 동기들을 생각하면 미안할 정도로 잘 쉬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정말 원없이 잤다. 마음만 내키면 하루 20시간도 잘 수 있는 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듯 하다. 먹고 싶은 거 먹어가면서 늘어져서 케이블에서 틀어주는 영화를 닥치는 대로 보고, 집 앞 공립도서관에서 회원증을 만들고 일주일에 5-6권씩 책을 빌려와서 읽었다. 저녁 6시만 되면 라디오를 틀고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었다. 마음에 드는 음악이 나오면 기억해두었다가 개인 파일에 그 음악을 담아두었다. 처음에는 이 아저씨 뭐지? 이러다가 배철수 씨 특유의 농담에 익숙해지면서 라디오 듣는 중에 웃는 빈도가 늘었다.

 

한달 반 정도 모병원에서 건강검진 아르바이트를 했다. 모 대형마트로 나갔는데, 팀 구성도 좋았고, 스케쥴도 깔끔하고 좋았다. 하루 최대 100명을 문진하는데, 인턴 때 입원전검사실을 돌았던 터라 큰 어색함 없이 잘 적응했던 것 같다. 대학병원 내에서 쭈구리 취급만 받다가 나가니 꽤 정중한 대접을 받았다. 내가 의사라는 건 변한 게 없는데, 오히려 하는 일은 더 적은데 대우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구나 싶어서 조금 불편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검진팀 멤버가 다 좋아서 재미있게 일했던 것 같다. 페이도 꽤 괜찮았고, 오전에 사람이 몰리는 특성상 오후에는 여유가 있어서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을 하다가 검진을 하고, 그러다보면 퇴근시간이 되었다.

 

필라테스를 했다. 아마 살면서 내가 운동에 이렇게 거금을 들여서 해본 건 처음인 듯. 유연성과 근력이 제로에 가까운 몸 덕분에 내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서 절대 직업을 밝히지 않으리라 다짐했었고, 나의 한심한 상태는 필라테스 선생님에게 도전 의식을 심어줬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운동 후 상쾌한 기분을 알게 되었고, 알게 모르게 체력과 근력, 유연성이 조금이나마 늘어난 것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이 끝나서 참 아쉽다고 했다. 저도 아쉬워요 선생님.

 

라식 수술도 받았다. 오늘은 수술을 받은 지 딱 1주일 째 되는 날이다. 수술 당일은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시리고 눈 부신 느낌에 죽을 것 같았지만, 다음날이 되자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모든 것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아직도 어색하고, 뭐든지 잘 보이는 게 꼭 좋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 보이니까 어찌나 피곤하신지. 그래도 의학과 기술의 발달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건 진로가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작년에 지원했던 과에 불합격한 이후, 우울함보다 더 큰 고민은 진로에 대한 회의였다. 병원에서 인턴으로 살면서 1년을 지내다보니 나름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정보는 많아진 상태였는데, 내가 선택한 진로가 정말 옳은 것이었나 대한 생각이 끊이지를 않았다. 지원 당시 합격 여부를 떠나서도 내가 정말 원해서 지원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전문의를 따고 나간 뒤의 현실을 말해주면서 말리는 사람도 많았고. 뭐 사실 어디든 마찬가지다만. 안 될 경우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불합격이 현실이 되자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감사하게도, 우리 과로 지원하면 무조건 합격시켜주겠다며 치프 선생님, 교수님들까지도 전화를 주신 과가 있었지만 웬지 모를 아쉬움, 억울함, 말턴의 귀차니즘이 더해지면서 일단 다 놓고 쉬자는 생각 뿐이었다. 그렇게 백수가 되었다.

그런데 백수가 되고 나니 좋은 것도 잠시였다. 소속이 없다는 게 무섭다고 느꼈다.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재도전을 할지, 과감하게 길을 바꿔야할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생각해봤지만, 늘 결론은 내가 원하는게 뭐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되돌아 올 뿐이었다. 의사로 살기로 선택한 이상 전공을 바꾼다고 인생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도 없다는 것도 웃픈 현실이고.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고민을 했다. 도박이 될 수도 있는 1년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도, 가장 현실적이고 결정적인 도움이 될 조언을 받았다. 결론은, 내과로 진로를 결정했다는 것. 다음주부터는 모교 병원의 내과 전공의로 들어간다. 1주 정도 인계를 받고, 아마 그 이후는 다시 쭈구리가 되겠지. 말리는 사람이 한 가득이었다. 나도 안다. 분명 힘든 과고, 내가 간절히 원했던 과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온다고 뭐 잘 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도 앞날이 보장된 인생이란 건 없다. 그래서 그냥 해보려고 한다. 다행히 짝궁, 가족들은 좋아하고 지지해준다.

 

 

 어제 처음으로 SNS에 블로그를 공개했다. 그거 보고 오는 사람이 몇이나 되려나 싶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병원 들어가면 이렇게 한가롭게 블로그에 포스팅할 시간도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뭐 나 이렇게 살았다고 그냥 일종의 생존신고를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