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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1954)

kirindari 2015. 5. 11. 17:20

 

 

파리대왕 (1954)

 

   ..(중략) 랠프는 몸부림치면서 목메어 울었다. 이 섬에 와서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린 것이었다. 온몸을 비트는 듯한 크나큰 슬픔의 발작에 몸을 맡기고 그는 울었다. 섬은 불길에 싸여 엉망이 되고 검은 연기 아래서 그의 울음소리는 높아져 갔다. 슬프에 감염되어 다른 소년들도 몸을 떨며 흐느꼈다. 그 소년들의 한복판에서 추저분한 몸둥이와 헝클어진 머리에 코를 흘리며, 랠프는 잃어버린 천진성과 인간 본성의 어둠과 돼지라고 하는 진실하고 지혜롭던 친구의 추락사가 슬퍼서 마구 울었다...(이하 생략)

 

 

 

 9살이었을 때였나, 우연히 tv에서 본 흑백영화의 한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꽤 옛날 영화 같았고, 열살 내외의 소년들이 우르르 나오는 영화였는데 땅에 박혀있는 작대기 끝에 돼지머리가 박힌 채 썩어가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잠시 멍했던 것 같다. 무엇 때문인지 영화를 제대로 본 기억은 없지만 그 때 본 그 영화 제목이 '파리대왕' 이었고, 무인도에 표류된 소년들의 이야기라는 정도만 알았던 것 같다.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영화의 원작인 파리대왕을 읽게 되었다.

 찾아보니 인간사회를 우화적으로 표현해냈다는 평가가 있는데 동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가 우화적 표현이 아니었나. 여하간, 줄거리는 위에 언급한 대로다. 핵전쟁의 위기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소년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던 비행기가 격추당하면서 무인도에 소년들이 표류하게 된다. 생존자 중 어른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위기를 느낀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의 방법을 강구하고, 초반에는 영민한 소년 랄프가 무리를 이끌게 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로빈슨 크루소 같은 생존기의 개념이 아닌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후반부로 갈수록 문명, 선을 상징하는 랄프와 원시성 혹은 악을 상징하는 잭의 대립구도로 진행이 된다. 둘 간의 대립으로 인해 아이들의 무리가 양분이 되면서 희생자가 나오고, 그러다가 결국 구조대가 오게 되는 결말.

 

사리분별과 판단력이 완성되지 않은 어린소년들이 무인도에서 보이는 저마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맨얼굴을 볼 수 있는, 꽤나 섬뜩한 이야기였다. 곱게 자란 소년들은 야생을 겪어보지 못한, 어쩌면 학교와 가정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살아가던 순진한 부류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성에 좌절하고 실망하는 것은 오직 랠프와 돼지 뿐이다. 대체적으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 사실은 인간의 선한 본성이라기 보다는 교육으로 인한 법, 도덕 이런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