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charted

의료파업을 응원하며

kirindari 2020. 8. 14. 09:52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 전임의까지 병원생활한지 7년이 다 되어간다. 메르스도 겪었고 올해는 코로나에 징글징글하게 시달리고 있다. 선배들에 비하면 택도 없지만 7년이라는 시간동안 많은 일들을 보고 겪었다. 힘들고 거지 같은 순간들도 있었지만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후회한 적은 없다. 아마 다른 선생님들도 그럴거다. 의사라는 업 자체, 혹은 자기 전공이 정말 안 맞고 힘들면 결국 관두더라고. 개인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이 힘들어도 그러려니 하고, 환자가 안 좋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사명감이라는 건 타고나는 게 아니라 훈련으로 만들어진다는 것도, 사람의 목숨이라는 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그래서 의사는 신이 아니라고, 환자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돕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Holy 하게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저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의사도 그저 평범한 인간들일뿐이라는 것. 젊을 때나 2-3일을 밤새면서 환자도 보고 그러는 거지 이 짓도 5년쯤하다 보면 내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게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힘든 과일수록 노화에는 가속도가 붙고, 마음은 옹졸해질 확률이 높다. 일부 극한 과에서 성격 파탄인 일부 선생님들을 보면 십분 이해한다. 누구나 내 생명 갉아가며 힘든 일은 웬만하면 안 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해도 환자 살리는 게 어렵다면 의사도 지친다. 누구나 위험 부담은 안 하려고 한다.

내외산소 필수과가 왜 적냐고? 나는 소아과 인턴 때 2살짜리 남자환아 넬라톤을 시도하려다 (사실 뭘 해보지도 못함) 긴장한 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 바람에 보호자인 할머니로부터 ‘우리 손자 고추 망가뜨리는 미친년’ 소리도 들었고 (지금 생각해도 열받네) 바이탈 보는 모 과에서 환자 c line 잡다가 complication으로 cpr 이 떠서 (c line 잡는다는 자체가 이미 환자가 넘어가기 직전이라는 의미) 보호자한테 교수님의 멱살이 잡혔다는 말도 들었다. 항암 시작하는 환자 보호자한테 30분 설명해주니까 너무 감사하다 그래놓고 다음 날 니가 뭐랬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항암 왜 하는 거냐고 물으면서 나중에 얘기하자니까 싸가지 없다고 왜 설명 바로 안 하냐고 지랄한 적도 있었다. 심장에 물이 차서 중환자실 가라고 하니까 왜 여기서 치료 안 해주고 니 맘대로 입원 시키냐는 말도 들어봤고 응급실에서는 지 손가락에 맞는 붕대 없다고 쌍욕하는 미친 놈도 봤고. 하튼 뭐 기억 나는 것만 몇 개 써봤는데 열거하면 한도 끝도 없다.아가씨 저기요는 이제 애교다.




내과를 선택하고 호흡기나 감염도 관심이 있었지만 난 결국 소화기로 왔다. 중환이 잘 없고, 내시경도 재밌었으니까.

얼마 전 입원 환자 중 시술 후 천공이 생긴 환자가 발생했다. 교수님이 시술 오래 걸렸다고 한 것 외에는 특이사항도 없었고, 환자가 증상도 없었기에 하마터면 놓칠 뻔 했지만, 정말 운 좋게 내가 빨리 발견했고, 환자는 입원기간이 1주 연장 됐지만 수술까지 가는 사태는 면했다. 정말 운 좋은 케이스. 하지만 입원기간 내내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보호자가 퇴원 후 등판해서 교수님 외래에서 법적 조치 취하겠다고 난리를 치고 간 모양이다. 아침 저녁으로 들여다봤는데도 의사가 안 왔다느니 동의서 쓸 때 설명 아무 것도 못 들었다느니 하는데 둘다 열심히 했던 나로서는 정말 힘이 빠졌다. 이런 걸 보면서 동기들과 시술은 하면 안 되는 구나 라는 결론이 나버렸다지. 누가 하겠냐고. 의료 수준이 높아지니 환자들도 시술 중 위험이 생길 수 있음을 얘기하면 알겠다고 하고 막상 생겨서 잘 대처를 해도 고성과 욕설이 오간다. 최근 5년 이상 시술 중 문제가 없었다고 하는, 수백 수천 케이스를 경험한 교수님이 한 건데도 이 모양. 힘든 걸 왜 안 하거나 피하려고 하는지를 이해하고 대처를 세워야지 의대정원 늘리고 필수복무 연장을 외치는 걸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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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파업 뭐 , 어떻게 보면 밥그릇 싸움 맞다. 그런데 이 상황에 의료진이 수련을 받을 좋은 병원, 시설의 안정적 유지가 가능한 의료 수가에 대한 대책 없이 무작정 머리수만 늘리면 단순한 밥그릇 싸움을 넘어 개싸움으로 간다. 지금도 집 앞에 내과 치과만 3-4개에 피부클리닉은10개가 넘는다. 기본적으로 사람 많은 서울에 개업을 해야 유지라도 된다. 먹고 살려고 환자 끌어오려고 무슨 짓인들 못할까. 감기로 3분 진료에 3천원 내고 의사 욕하면서 피부 레이저 100만원은 어쩜 다들 군소리를 안 하는지. 1-2분내 진단이 하루 아침에 나오는 내공이 아니다.

얼마 전 부산에서 급성심근경색환자가 ktx 타고 서울대 응급실에 나타나서 난리가 났었다. 일부 몰상식한 환자들은 수틀리면 의료진 프로필을 뒤져서 서울대 출신이 아닌 걸로 비난하기도 한다. 서울이나 경기도의 웬만한 대형/대학병원에서조차도 만족을 못 하고 서울대 삼성 외치면서 다 가버리는 걸 어쩌나. 아산 응급실에서는 심근경색도 서서 대기한다는 농담도 있었지 아마...서울 안에서도 이 모양인데 지방은? 기본적으로 지방은 후지고 실력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정원 늘리고 강제로 전공 정해서 흉부외과 외상학과 전공하면 뭐 하나. 아파트 상가에 개업하면 누가 수술하러 오겠냔 말이다. 명의 데려와도 보조인력과 시설이 안 받쳐주면 돌팔이 된다. 지방은 간호사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더라.


다들 환자 걱정하면서 찝찝해하면서 파업 나온다. 의료진 수준이 저하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건 환자들이다. 의대정원증원의 본질적 문제를 이해하고, 제발 대책을 세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