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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하루 (2016)

kirindari 2019. 8. 9. 15:42

 

최악의 하루 (2016)

개인적으로 한예리라는 배우를 좋아한다. 단 번에 시선을 뺏을 만큼 화려한 미인은 아니지만, 단아하면서 단단해보이는 얼굴, 귀를 기울이게 되는 목소리와 인위적이지 않은 연기, 무용 전공자답게 우아한 춤선 등 참 매력적인 배우. 몇 년 전 육룡이나르샤라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걸 보고 누구지 싶어 바로 찾아보고, 늘 기억하고 있었고, 배철수 아저씨의 라디오 이후 그녀가 진행하는 프로도 가끔 음악보다는 그녀의 목소리 때문에 연달아 듣곤 했었더랬다. 여튼 그런 그녀가 흐드러진 능소화를 배경으로 찍은 이 포스터를 보고 언젠가 꼭 봐야지 싶었는데 드디어.

약 90분 정도의 시간동안 배우 지망생인 은희(한예리)가 겪는 최악의 하루가 담담하게 흘러간다. 길 안내 때문에 우연히 만나게 된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 은희와 남산을 걸으면서 혹시라도 누가 자길 알아볼까봐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려대는 아침드라마 출연 중인 현 남친(권율), 그리고 은희가 별 생각없이 감성 사진을 담아 올린 트위터를 보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남산으로 달려온 구남친(이라긴 바람 상대이자 이혼남/이희준). 현남친은 실수로 다른 여자 이름을 부르고, 헤어진 구남친은 전부인과 재결합 예정이라고 하면서도 은희를 놓지 못하고 질척거린다. 트윗 한줄에 전여친 얼굴 보겠다고 남산까지 달려온 구남친은 헤어지고 가는 척하면서도 몇 번을 다시 돌아오는데 난 정말 공포영화보다 섬뜩했다. 불행해지겠다고, 그래서 전부인과 재결합은 할거라며 그래도 우리 좋았지 않느냐 좀 더 얘기를 하자 따위의 개소리를 시전하는 구남친은 분명 제정신이 아닌데, 그런 남자를 완전히 쳐내지도 않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며 여지를 주는 듯한 은희의 태도도 사실 노이해 -_-.

현 남친의 배우병, 구 남친의 집착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대차게 쳐내지 못한 은희의 처신이 사실 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를 (조금이나마) 좋아했고, 그들 앞에서는 나름의 진심이었을 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각각을 향한 진심은 거짓말들로 점철되기 시작하고, 현 남친과 은희를 보러 되돌아온 구 남친이 대면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진다. 결국 두 남자는 은희를 내버려두고 술을 마시러 같이 가버린다.

영화 초반 일본인 료헤이가 은희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일을 한다며, 소설가로 자신을 소개하고 은희도 자신이 배우 지망생이라며 같을 일을 한다고 말한다. 아무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소설도 연기도 실제로는 아주 잘 짜여져서 진짜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짓말들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최악의 하루로 이어진다. 결말은 이런 내용의 영화답게 열린 결말(?)로 마무리. 이해되지 않는 주인공과 결말 탓에 중도에 뭔가를 끊고 나온 느낌(-_-)이지만, 맑은 여름날 남산과 서촌을 걷고 싶게 하는 풍경이 참 예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