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um SAN
2월이 지나가기 전 운 좋게 받아낸 겨울휴가. 풀로 휴가를 쓸 수 없는 신랑님이랑 날짜를 조율하다 보니 월, 화요일이 함께 비는 일정이 되었다. 무얼 할까 고민하던 중 강원도 원주의 뮤지엄 산에 다녀왔다. 가기 전 날 저녁 대설주의보로 재난문자까지 오는 탓에 반 포기 상태였지만 막상 흩날리는 눈발에 비해 길은 깨끗해서 과감히 길을 나섰다. 나갔다 정 아니면 돌아오지 까짓 것 별거냐! 싶은 비장한(?) 마음으로.
집에서 원주시까지는 네비 상으로 약 2시간 정도 되는 거리. 비교적 부지런하게 나선 탓에 눈 내리는 날씨, 중간에 휴게소를 들른 걸 감안해도 원주시에 들어오니 11시가 좀 넘는 시간이었다. 휴게소에서 깨알 같이 알감자와 소떡소떡도 먹고, 나름 장거리(?)라 간단하게 먹기라도 잘 했다며. 뮤지엄과 원주시와도 거리가 어느 정도 있는 편이라 점심을 먼저 해결하고 가기로 했다. 식사는 전날 미리 검색하고 찾아둔 '까치둥지'로.
11시 오픈인데 주차하느라 한 번 길을 도느라고 11시 20분 넘어 도착, 대기번호 4번을 받았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자리가 나고. 이 곳의 메뉴는 오직 하나, 알탕이다.
뚜껑을 열면 이런 비쥬얼. 알과 곤이가 냄비 가득하다. 사이사이 버섯, 오징어, 미더덕이 있고 위에 쑥갓이 듬뿍.
끓으면서 야채의 숨이 죽으면 부피가 확 줄어드는 느낌이지만 막상 먹다보면 양이 상당하다. 알과 곤이만 먹기에도 바빠서 다른 해산물은 다 먹기도 버거움. 국물이 칼칼하면서도 탁한 느낌이 없어 깔끔하니 좋았다. 든든하게 먹고 갑니다.
차로 다시 30여분을 달려 뮤지엄 산에 도착했다. 평일에 눈발까지 날린 덕에 주차장은 휑하기 그지 없었다. 기본 입장권 가격은 18,000원이지만 명상관 혹은 제임스 터렐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만원이 추가된다. 명상을 체험하고 싶다는 신랑의 의견을 따라 명상관 포함 28,000원짜리 티켓으로 구매.
티켓을 구매하고 명상관으로 이동하는 길.
작년에 새로 오픈했다는 STONE GARDEN의 명상관. 무덤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들은 설명에 따르면 뮤지엄 산을 만든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경주 왕릉에서 곡선에 대한 영감을 받아 만든 곳이라고 한다. 무덤이라고 표현했지만 막상 음침한 느낌은 없고, 돔 한 가운데의 틈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아늑하고 쉬고 싶은 요람 같은 느낌을 준다.
시간대 별로 명상의 종류가 다르고, 공간의 제한으로 인한 입장인원 제한이 있다. 타이밍을 잘 맞춘 덕에 입장객은 나와 남편 둘 뿐이었다. 쉼명상 이었는데, 복식호흡 및 전신의 이완/긴장을 직접 해보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 시작 전 손등에 페퍼민트 오일을 몇 방울 떨어뜨려주는데 안내에 따라 양 손바닥을 문지르고 귀뒤, 정수리 등에도 발라준다. 페퍼민트 특유의 화한 향이 자극적인 듯하면서도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안내에 따라 깊은 호흡과 운동을 몇 번 따라하니 추위와 장거리 이동에 긴장된 몸과 마음의 긴장도 풀리는 느낌.
밖에서 보는 명상관은 이런 구조.
눈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 스톤가든. 참 좋았다.
안도 타다오의 향기를 느끼며 구석구석 뮤지엄 산을 둘러보고. 아마 나 같이 단순한 사람은 절대 떠올리지 못할 구조의 건물일 것 같다. 재료며 색깔, 질감 무엇 하나 튀는 것 없이 어우러져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뻔하지 않은 구조.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하늘을 만날 수 있고, 구석구석 바깥의 빛이 새어들어 별다른 조명 없이도 어둡지 않다.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면 이런 멋진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걸까. 약력을 보니 안도 타다오는 정식으로 건축을 배운 적이 없다고.
뮤지엄 산 안에는 일반 전시갤러리 3개, 종이 갤러리가 3개 있고, 백남준관이 있다. 6개월마다 전시가 바뀐다고. 한솔제지와 관련 있는 곳이라 그런지 종이갤러리도 인상적이었다.
흑과 백으로만 표현한 들불.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흰 색이 번져나가는 것만으로도 들판에 불이 번지는 느낌이 생생하다.
손에 잡힐 듯한 구름의 이미지.
말 그대로 설국. 산기슭 넘어 온통 하얀 빛은 하늘인지 눈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작년 북해도에서 안도 타다오의 물의 교회를 보지 못한 아쉬움이 채워진 시간들. 다만 안도 타다오의 건축에 있어서 주요한 구성인 물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사진 속 자갈밭으로 보이는 곳이 원래는 물로 채워져 있는 곳인데, 겨울이다 보니 물을 다 빼놔버린 상태. 그나마 운 좋게도 눈으로 덮여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이색적인 풍경을 원없이 볼 수 있었다.
잘 보고 갑니다. 언젠가 하늘이 파란 가을날 다시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