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함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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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수술 전 동의서에 서명을 했어도 해당 수술에 대한 자세하고 충분한 담당의사의 설명이 없었다면 병원 측이 설명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4부(부장판사 송인권)는 최모씨(38)가 서울 서초구 소재 한 대학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및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단한 원심을 일부 파기하고 위자료 2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사지마비 1급 장애인으로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인 최씨는 지난 2013년 3월쯤 코 중앙을 나누는 칸막이뼈가 한쪽으로 휘는 비중격만곡증으로 인한 코막힘 증상을 개선하기 위해 해당 병원 이비인후과를 찾았다.....상담 끝에 최씨는 입원 수속 직후 전공의로부터 수술에 관한 설명을 듣고 15분 만에 각종 동의서를 작성한 후 비중격·비갑개·외비성형술을 받았다. 최씨는 상담 과정에서 필요한 경우 귀의 연골을 사용해서라도 비주를 내려달라고 여러차례 요청했다.
퇴원 후 5월쯤에도 최씨는 코뼈가 휜 것에 변함이 없고 심지어 코끝에서 인중까지 비주를 절개한 부위가 말려올라가 함몰로 인해 들창코 모양이 됐다는 점을 발견,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으로 지난 2015년 10월 향후 치료비 등 800여만원과 위자료 200만원을 청구하는소송을 제기했다.
최씨는 수술 과정에서 동의없이 임의로 의사가 비첨 연부 조직을 제거하고 연골을 충분히 사용하지 않아 비주가 함몰됐으며, CT상 코에 금이 간 부분이 있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 병원 측이 본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으므로 의료과실이 있고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병원 측은 비주의 함몰은 수술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수술 결과 발생한 것이 아니며, 주 증상이었던 비중격만곡증은 개선됐고 병원의 진료나 수술과정에 과실이 있다 할 수 없다고 맞섰다.
1심 재판부는 최씨가 주장하는 손해는 심미적인 영향으로 손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병원 측의 의료과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최씨가 서명한 수술 동의서에 부작용에 대해 기재돼 있다는 점을 들어 설명의무 위반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원고 전부 패소 판결을 했다.
최씨는 이에 불복해 설명의무 위반을 중점으로 다시 항소를 제기했고 △수술동의서에 수술의 단점이 추상적으로 기재된 점 △수술 직전 15분간 6종의 수술동의서에 서명한 점 △대형병원에서 외비성형술과 함께 비중격만곡술을 받은 이유가 비주를 내리는 것을 원했기 때문이나 달성되지 못한 점 등을 강조했다.
2심 재판부는 "의사가 환자에게 부담하는 진료채무는 결과를 반드시 달성해야 할 결과채무가 아니다"라며 "현재 의학수준에 비춰 필요하고 적절한 진료조치를 다해야 할 채무이므로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해서 바로 진료채무의 불이행으로 단정할 수 없고, 의사는 진료방법을 선택할 상당한 범위의 재량이 있다"고 원심과 같이 의료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설명의무에 대해서는 "담당의는 환자의 외모가 어느 정도 변하는지와 발생이 예상되는 위험·부작용 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도록 설명할 의무가 있다"며 "결과를 일부만 구현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내용을 상세히 설명해 시술을 받을 것인지 선택하도록 할 의무가 있으며 이같은 입증책임은 의사 측에 있다"고 '위반' 판단했다.
(기사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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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담당의가 어떻게 설명을 했는지는 알 수는 없다. 그리고 설명의 내용을 환자가 어떻게, 또 얼마나 받아들였는지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전신마취 시행 후 진행할 정도의 수술이고, 특히 안면부 쪽의 수술이기 때문에 환자도 분명 부담이 있고 상식적인 범위 내에서의 부작용이나 수술후 결과에 대한 설명이 없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궁금한 것은 '충분히 이해하도록 설명할 의무'의 기준이다. '충분히' 이해했다는 말의 정의는 뭘까? 동의서의 모든 내용을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설명한 다음, 환자에게 다시 설명을 해보라고 시켜야하는 것일까?
2년차 주치의 때의 일이다. 외과에서 수술을 받고 항암을 받으러 온 환자가 있었다. 첫 항암이었다. 환자와 보호자를 앉혀놓고 긴장도 풀어줄 겸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꼬박 30분을 넘게 설명해줬다. 질문 없으시냐고 물었더니 동의서에 서명을 하면서, 궁금한 거 있었는데 묻기도 전에 미리 알려주셔서 이해 잘 되고 너무 좋았다고, 감사하다고 거듭 인사를 하고 간 보호자는 그로부터 3일 뒤인 퇴원 전날, 처음 보는 보호자와 새로 나타나서 나에게 다시 설명해달라고 했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보호자의 다음 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선생님이 며칠 전 뭐라고 설명한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요. 그런데 수술까지 했는데 항암은 도대체 왜 하는 거에요?"
대부분의 환자들은 의료지식이 의사만큼 없기 때문에 상세하게 설명을 듣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고 의사 역시 국가에서 부여한 면허를 가진, 의료지식을 갖춘 자로서 환자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다만 충분한 설명의 전제가 완전한 이해라면, 그건 어디까지나 불가능할 것이다. 더욱이 수술 동의서 등에 따른 설명을 이해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지식을 갖춰야하는데, 그것이 가능한 건 같은 의료인 외에는 없을테니까. 나 역시 올해 병원에 입원해서 몇 가지 검사나 시술, 수술을 받았었다. 하지만 비교적 내가 온전히 이해한 건 봄에 받은 RFCA 뿐이었는데, 그건 내가 내과의사였기 때문에 가능한 이해였다. 그렇다고 다 아느냐고? 내가 그걸 다 이해하려면 전문의를 따고 나서도 카디오 파트에서 3년은 더 굴러봐야 더 이해하겠지.
올 초에 중이염 수술도 받았었다. 우리 병원에서 받고, 내가 누군지 아는 이비인후과 전공의도 꽤나 긴장해서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결국 내 기억에 남은 건 피상적인 내용이 전부였다. 아, 마취하고, 여기 절개한 다음에 열어서 여기여기를 이렇게 저렇게 하고 닫고 나오는구나, 부작용은 이런 게 있구나 등등등. 소위 병원밥 몇 년 먹은 나도 이런데, 일반인들이 과연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최대한 이해시켰다고 치고 수술방에 들어가도 막상 수술을 시작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법이다. CT니 MRI니 미리 다 찍어봐도 막상 들어가봐야 아는 것들이 생긴다. 이론과 실제는 상당히 다르다.
모든 의술행위에는 대개가 필연적으로 예상치 못한 일부 부작용들이 있고, 그 부작용들은 단순하고 일시적인 것에서부터 사망까지 다양한 범위를 아우른다. 동의서가 장황한 건 그 때문이고, 어차피 지식 없는 이해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의 설명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불가능하다. 모든 부작용을 일일이 듣고 설명하고 나면 수술동의서에 선뜻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비교적 확률이 높은 몇 부작용만 들어도 겁이 덜컥 났더랬다. 진짜 이 로또 같은 확률의 부작용이 혹시라도 나한테 닥치면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고, 나는 Case report 사례가 되서 pubmed니 각종 논문에 떠도는 망령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망상까지 들더라. 때로는 아는 것도 병이다.
0.0000001%의 사망가능성도 환자에게 닥치면 당사자에게는 100%가 된다. 그 오지게 재수 없는 사람이 내가 아닐 거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극단적으로 가서, 의료 시술에 관한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환자도 시/수술 한달 전부터 수술 부위의 해부학적 구조와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의 모든 생리학, 약리학을 이해해야 하고, 이를 감수할 각오가 되어있노라고 거듭 다짐을 해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발상황이 생기면 절개한 부위를 다시 닫고 마취한 환자를 다시 깨워서 이해한 것을 확인하고 재수술을 해야 할 것이다.
지식에 비례해서 불안감은 오히려 비례하는 법이다. 내가 RFCA를 받는 걸로 병가를 내러 갔던 날, 담당 교수님조차도 어릴 때는 모르고 받았던 거 이제 다 알고 받으려니 불안해서 어떡하냐고, 진정제라도 놔 달라고 하셨더랬다. 충분한 설명에 전제하는 암묵적 동의는 상식적인 범위의 설명과 상식적인 이해일 것이다. 기사 속 환자가 원치 않는 결과를 얻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환자는 수술과 이에 따를 수 있는 여러가지 부작용에 대한 설명과 이해를 했다는 의사의 표시로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설명의 의무는 의사에게 있지만, 본인이 받을 시술이나 수술에 대해 최소한의 의문이나 상식을 알아보고,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알아보는 것도 환자로서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충분'이라는 막연한 말로 의사와 환자간의 싸움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