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charted

내공의 힘

kirindari 2014. 7. 16. 22:35

 

 

나는 신앙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했다.

나의 말이 권위를 갖게 해달라고.

누군가를 조정하고, 억누르기 위한 권위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믿고 따라오게 할 수 있는 힘,

환자가 의사를 믿고 따라올 수 있게 하는 그 힘, 

그 힘과 언변이 과해서 일종의 미혹으로 보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의사에게 있어서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환자가 의사를 믿고 따라오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환자의 compliance가 달라지고, 치료는 긍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절박하든, 혹은 그렇지 않든 환자의 입장에서는 주치의인 나를 믿고 따라오게 할 수 있는 힘, 권위를 갖게 해달라고.

나는 기도하게 되었다.

 

 

두번째로 긍정의 언어를 쓰는 것은 중요하다.

인턴이나 전공의 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환자에게 어떤 시술이나 술기, 약에 대해 설명할 떄 상대적으로 낮은 확률의 부작용을 먼저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경우 부작용은1-3%뿐인데,

우리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혹은 그 만약의 가능성 때문에 부정적인 단어부터 앞세우게 된다.

듣는 사람은 그것이 낮은 가능성이라 할지라도 두려워하게 된다.

적어도 긍정의 말을 먼저 하되, 낮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하면 같은 말이라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더 마음이 편할 수 있는 방법이 좋을 것이다.

 

세번째로 의사는 by-stander이다.

환자가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조급해 할 것도, 그렇다고 포기할 것도 없다.

우리는 늘 일정한 거리에 서서 환자가 스스로 깨닫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길잡이와 같다.

환자는 언젠가는 깨닫는다. 의사의 말을 듣는 것이 가장 옳은 길이었음을.

우리는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도와주고, 항상 기다려주면 된다.

 

 

 

 

 

대학병원 같이 모든 것이 빡빡하게 돌아가는 곳에서 온갖 사람들을 만나보니 왜 사람 상대하는 일에 질린다는지 새삼 느끼고 있는 하루하루다. 환자, 간호사, 동료의사, 선배의사 등등 온갖 사람들에게 치이고 치여서 하루에도 몇 번씩 화가 나고 실망하고 짜증을 내게 된다. 가장 두렵고 싫은 것은 그들을 비난하면서 나의 잘못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 역시 그들을 욕하면서 그들을 닮아가는 것이 아닐까. 특히 지난주부터는 병원 내에서도 유독 악명이 높은 모 병동에서 일하면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2주이기도 했다. 그러던 찰나에 어제 저녁 있었던 교수님과의 대화는 참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나를 악순환의 늪에서 나를 밖으로 당겨준 동앗줄 같았다. 가끔 내공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참 좋은 말씀들이었고,  아직 내가 많이 부족하고, 어리구나. 라는 것을 많이 느끼고 반성한 하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툴툴거렸지만.  

 길지 않은 인생에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들 중 하나는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늘 있다는 것이다. 참 좋은 교수님이 우리 병원에 계시고, 그런 분이 나의 지도교수라는 것이 엄청난 행운이었다는 생각을 의사가 되고 나서야 새삼 실감한다. 

 

인턴 한 고비가 끝나간다. 아직도 힘든 과가 한 가득 남아있다. 당장 다음달의 신경과, 응급실 3번, 내과 2번, 그리고 마이너과까지. 앞으로도 치이는 일 투성이겠지.  인턴 면접장에서 했던 나의 소개에서 나의 각오를 잊지 말아야겠다.

 

성실한 의사가 되자.

그리고 어떤 경우에라도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