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charted

3주만의 귀가

kirindari 2014. 4. 13. 23:11

외과에서 내과로 턴이 바뀌면서 잘린 오프에 내과 2주치 오프가 날라가면서 3주만에 집에 돌아왔다.

처음에는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그닥 들지 않았는데 2주차부터는 너무 힘들었다. 내과는 기본적으로 일 자체가 많은 데다가 응급이 적지 않게 있는 편이라 5시간 이상 푹 잔 적이 거의 없었던 듯. 머리만 대면 기절을 했던 터라 스트레이트로 자도 확실히 집이 아닌 곳은 숙면이 쉽지 않은 가보다. 그나마 스트레이트로 자면 괜찮은데 새벽에 MRI KEEP이라도 뜨면 그날은 세수고 나발이고 그냥 나가기 바빴음. 아침부터 그냥 좀비다.

2주차까지는 그냥 막연히 집에 가고 싶었는데 이번 주부터는 진심으로 일주일 내내 집에 가고싶다는 말을 130번쯤 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막상 오프가 되서 집에 오게 되니 오히려 집이 오는 게 은근 귀찮아졌던 것도 사실. 오히려 집이 휑해서 낯설까 걱정했는데 그래도 정말 달게 잔 걸 보면 집은 집인 모양이다.

구구절절 기록할 것도 없이 한 달간 많은 일이 있었다. 외과 때는 대구로 트랜스퍼를 갈 일이 있었는데 중도에 환자가 사망해서 달리는 앰뷸런스 안에서 사망선고를 해보았더랬다. 나름 충격적인 이벤트였는데, 그 일이 가물가물하게 잊혀질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다. 외과에서 가장 바빴던 날이 매일같이 이어지니 역시 내과는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GI, Nephro를 맡았던 내과 첫 월요일은 지금도 생각나는 게 세벽 4시쯤 왔던 처서 콜로 환자의 expire 소식이었다. 좀 묘했다. 콜 받기 바로 2시간 전에 ABGA를 하고 왔었는데 그 새 가시나 싶어서 황당하기도 하고. c-line인 빼고 pcd site에서 관 뽑고 수처한 걸로 시작한 다이나믹한 첫 날. 심지어 그날 아침 L-tube를 끼우다가 환자에게 물릴 뻔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콧줄 꽂은 때가 새벽녘이라 delirium이 있던 게 아닐까 싶었는데...그 나를 물어뜯으려고 하던 그 눈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_-

무엇보다도 기억이 남는 건 드레싱. 외과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드레싱 환자가 2분 계셨는데 한 명은 몸에 꽂은 관이 4개였는데, 관 옆으로도 자꾸 배액이 나와서 드레싱 거즈 두께만 5cm에 달했고 (나중에 다른 병실로 가셨는데 거기 있던 인턴이 붕대 감아서 내려온 줄 알았다고 식겁했다는 후문이...) 다른 한 분은 예전에 성형외과에서 관리하던 sore가 있었는데, 상처가 너무 심해서 피부 속에 구멍이 휑하게 나서 힘줄과 뼈가 보이는 환자였다. 두 환자 모두 보호자와 친했던 터라 잡담하면서 여유있게 해도 30분이 걸리던 환자. 아마 입 다물고 드레싱만 해도 20분은 걸렸으리라 생각되던 환자. 심지어 daily로 드레싱이라 너무 힘들었지만 하는 환자라 힘들었다. 게다가 동의서는 왜 그리도 많은지. 하루에 30명쯤 똑같은 말 앵무새로 반복하면서 동의서 받아주는 중에 콜은 쌓이고. 사실 가장 두려웠던 것 중 하나는 병동 분위기가 살벌하다는 것. 간호사들이 무섭다고 소문난 병동이었는데 내가 운이 좋았는지 어쨌는지 몰라도 별다른 트러블 없이 잘 지나갔고, 막판에는 컬쳐도 해주고, 음료수도 수시로 가운 주머니에 꽂아주는 적당하게 훈훈한 사이로 발전했다는 기쁜 소식.

다시 턴이 바뀌어서 오늘 아침부터는 혈종, 호흡기내과로 내려왔다. 급하게 생긴 오프 덕분에 루틴 끝내놓고 나오느라 정신 없었지만 그래도 일요일이라 생각보다 일이 많지는 않았다. 후다닥 끝내고 오프시간이 되기 무섭게 나오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한지.

3주 만에 바깥세상(-_-)은 계절이 바뀌어서 화사하게 옷을 입은 아이들 사이로 혼자 회색겨울코트를 입고 있는 내가 있었다. 내일 또 4시반에 일어나야하니 얼른 자고 준비해야지. 쓰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일단 기록만 남기려니 글이 중구난방이다. 다음 오프 때 좀 정리해서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