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charted

첫 주의 기록

kirindari 2014. 3. 9. 01:42

#1. 드레싱과 뜨레싱의 차이.

외과라서 postop 환자가 많다보니 드레싱이 아무리 없어도 하루 평균 10명은 있다. 처음에는 요령 부족에다가 한 명 하는데도 평균 20분씩은 걸렸고, 나름 긴장한 탓에 드레싱 하나 끝낼 때마다 땀에 흠뻑 젖었는데 이제는 손에 익어서 평균 7분을 넘기지는 않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환자 한 분 드레싱 갈아주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저 지금도 좀 어설프죠?"랬더니 환자분이 웃으면서 "아유~선생님 지금은 정말 잘 하세요. 처음에는 티 나더라."고 하심 ㅎㅎ 어쨌거나 환자가 인정할 정도면 제법 늘었겠지 싶으면서도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곤 한다. 뭐 사실 당연하지 고작 입사 1주차인데. 암튼 대개 이런 건 드레싱이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 약간 진상끼가 있는 환자에게 L-tube insertion을 했는데 환자가 토하면서 튜브를 개운하게 손으로 잡아 빼는 게 아닌가. 옵션으로 수술 부위 덮어놓은 거즈 위에 개운하게 토하는 바람에 드레싱 다 갈아주고...짜증도 나고 어이도 없고...토사물이 미역보다도 진한 녹색을 띄는 담즙성 구토다. 누가 봐도 L-tube 꼭 꽂아야 하는 상황인데 환자는 자기가 이런 거 예민하다며 완강하게 거부하고, 설득해도 씨알도 안 먹혔다.  결국 주치의 선생님 다시 부르기로 하고 일단 잠시 정지. 오프시간 얼마 안 남아서 뒷정리하고 숙소로 들어갔다가 마침 방에 있던 동기한테 툴툴거리며 그랬더니 동기가 "언니도 뜨레싱이라고 하네?" 라고 한다. 열 받으면 드레싱이 뜨레싱이 된다는 걸 처음 안 날.

 

 

#2. 간 때문이야

일 시작한 첫 날 간이식 수술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병원은 이식 전문은 아니란 말이지. 한 마디로 1년에 한 번 있을까말까한 수술을 인턴 첫날부터 들어간거다. 치프선생님이 갸우뚱거리면서 "이거 일년에 한번 하는 수술인데 너네는 어떻게 첫날부터 하냐. 이거 누구 내공일까?" 라고 갸우뚱거리심.

응급으로 한 수술인데다가 자정즈음부터 ICU(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데려오고 어시하느라 5시까지 못 잤는데 손 바꿔주고 들어가면서 다음 날 병동일이 한 무더기가 쌓여있었다.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었다. 내 뒤를 이어 들어간 짝턴은 수술방 턴이니 사실 부르기도 뭐 했고, 그 친구도 5시부터 8-9시까지 어시를 서느라 쓰러져 자고 있을 게 뻔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소처럼 일한 날이었달까. 덕분에 수면리듬 망가져서 3일을 정신이 나가있었다. 우연인지 몰라도, 외과와서 뭔가 기억에 남는 일들은 유독 간 에 관련된 일이 많았다. 수혈팩 빠뜨리는 사고를 친 것도 폴리 끼우느라 몸부림치는 간경화환자 붙잡다 그런 거였으니 악연인지 인연인지 원. 심지어 ICG test도 우리 병원에서 그렇게 자주 하는 검사는 아니라고 했는데 난 일 시작한지 일주일만에 이미 3번째. 시약이 광분해되는 특징을 갖고 있어서 불을 꺼놓고 해야되는 검사고, 5분 단위로 3번 샘플링을 해야되서 미리미리 준비를 잘 해놔야 되는 검사인데, 검사 자체야 간단하다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일단 검사를 내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새벽 6시쯤에 하는데다가, 난 주사기를 다루는데 능하지 않은 신입 인턴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으니. 오늘은 거의 혼자 했는데, 모르겠다. 좀 5분, 10분째 샘플링이 바로 안 되서 30초씩은 밀린 것 같아 기분이 좀 그렇다만 오늘에서야 샘플링 감을 좀 잡았다. 하지만 또 하고 싶지는 않다. 남 간 보다가 내 간이 나갈 것 같다.

 

#3.ABGA

인턴에게 가장 두려운 술기 중 하나가 환자에게 통증을 가하는, 이른바 침습적 시술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ABGA, 일명 동맥혈 가스분석검사라는 것이다. 보통 손목의 radial artery에서 시행하는데, 여기서 여러번 해도 실패하면 허벅지 오금에 잇는 femoral artery를 건드려야 하기 때문에 꽤나 성가신 검사다. 환자의 나이가 많거나, 유독 혈관이 안 보이거나 맥이 잘 안 잡히는 사람, 또 이미 주사에 여러번 찔려 멍이 든 사람은 잘 안 된다. 무엇보다도 깊숙한 곳의 동맥을 건드리기 때문에 당하는 사람은 꽤 아픈 편이고, 그렇기 때문에 안 되면 다시 당하는 환자도, 다시 시행하는 의사도 긴장하게 된다. 어쨌거나 정식으로 근무시작하고는 그렇게 많이 해보지도 않았지만, 거의 실패한 적이 없었는데 어제 오전 응급으로 ABGA 콜이 왔다. 세트를  챙기면서 주사기 옆의 네임텍을 봤더니 환자 나이가 75세. 불길한 예감에 할머니 어때요? 라고 스테이션의 간호사에게 슬쩍 물어봤더니 그 할머니 혈관 잘 안 잡히시던데. 라고 한다.

긴장하고 갔는데, 역시나. 이미 오른쪽 손목에 구멍이 5개 보인다. 이전에 5번 찔러 겨우 뽑았다는 이야기다. 반대쪽 손목을 봤더니 역시 구멍 2개가 더 보임. 한숨이 푹 나왔다. 손목을 만져봤더니 맥은 제대로 잡히지도 않고. 한참을 손목 짚어가며 맥 집어서 했는데 2번 실패. 때마침 병동 수간호사 선생님이 오시더니 환자를 보고 오히려 나를 설득하셨다. 이 분 안될 것 같다고, 그냥 주치의 불러서 femoral 하자고. 할머니를 봤는데 끙끙거리시는데 너무 안 됐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싶어서 수선생님을 설득해서 제가 한 번만 더 해보고 그 때도 안 되면 말씀드릴게요. 했더니, 그래요. 그런데 안 될거 같네. 라며 자리를 비켜주셨다.

할머니, 제가 꼭 할게요. 이거 안 하면 허벅지에서 뽑아야되서 너무 힘들어요. 라고 달래고, 반대쪽 손목을 한참을 맥을 잡고 넣었는데 또 안 나온다. 그래도 여기서 꼭 뽑아야겠다는 생각에 바늘을 이리저리 움직였더니 붉은 피가 맥에 맞춰서 주사기 안으로 확 들어오는게 아닌가. 성공했다는 기쁨에 나도 모르게 환자와 보호자 앞에서 "오예"를 외쳐버리고 말았다. 피 뽑는 거 성공했다는 이유로 좋다고 쾌재를 부르는 내 자신이 섬뜩해지는 순간. 그래도 할머니 더 안 아프게 해서 기쁘긴 했다. 할머니도 좋아하셨고 보호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공기 빼고 capping해서 달려갔더니 수간호사 선생님은 기대도 안 하고 계셨던 모양인지 눈이 동그래지면서 "선생님 대단하시네요"를 외쳤다. 다음 달에 내과를 가면 원 없이 할테지만, 여튼 술기 성공으로, 그것도 내가 가장 자신없어하던 ABGA로 환자에게 부담을 줄였다는 사실 하나로 하루종일 뿌듯한 하루였다.

 

 

#4. 압뻬의 비밀.

일명 사람들이 맹장염이라고 부르는 병의 진짜 이름은 Appendicitis, 충수돌기염. 줄여서 압뻬라고 한다. 대개가 우하복부의 복통을 주소로 응급실에 주로 오는데, 정말 충격적으로 지난 주는 하루 평균 최소 2명씩 환자가 왔었다. 명색이 3차병원에 압뻬 러쉬가 웬 말이요. 덕분에 만사 제쳐두고 응급으로 심전도 판독 받느라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짝턴과 함께 압뻬의 유병율에 대해서 고민을 해봐야되는 게 아니냐고 이야기했었는데 치프 선생님이 한 마디로 정의 해주셨다. 환자 유독 오는 시즌이 있다며, "압뻬는 전염병이야 전염병~~~"

그렇다. 압뻬는 전염병이다.  주변에 압뻬가 있으면 피하자. (정말 믿는 건 아니겠지...)